삼 주가 다 되어갔다. 집 밖에 나가지 않은 건 이 주쯤 됐다. 핸드폰은 잠잠했고 속으로 수천번 김진환을 욕했다.
김진환은 자기 자신이 이겨야지 속이 풀렸다. 성격 자체가 그랬다. 사소한 것부터 큰일까지 자신의 말이 맞고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이 뭐라 반박 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나이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냥 싸가지가 없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김진환은 중학교때까지 인생을 자기 위주로 살았다. 어릴 적, 김진환은 존나 똑똑했다. 말도 금방 하고 한글도 빠르게 뗐다. 물론 그런 걸로 똑똑하다고 보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이미 동네 아주머니들에게는 천재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 때문에 옆집이었던 나는 매번 김진환과 비교를 당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존나 억울했다. 김진환이 똑똑한거지, 내가 멍청한게 아닌데. 여튼 김진환네 어머니는 김진환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고나서부터 여러 대회를 내보내셨다. 수학 경시대회부터 웅변 대회까지. 수 많은 대회를 나갔는데 김진환은 그 수 많은 대회에서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상을 받아왔다. 아주머니들의 칭찬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고 그때부터 김진환은 기고만장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때까지, 초등학생의 반 정도를 김진환과 같은 반으로 지냈다. 이거 김진환이 조작한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믿고 싶지않았다. 해가 지날수록 김진환은 나와 붙어지내기 시작했다. 등교할때도, 하교할때도, 밥을 먹을때도. 물론 나는 그러고 싶지않았는데 김진환이 일방적으로 붙어오는 터라 어쩔 수 없었다. 정색하는 김진환의 얼굴이 무서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보면 무서워서 쭈구리가 되긴 하지만.
김진환과 붙어 지내다보니 놀림을 많이 받았다. 사귀냐고. 지금 나이 같으면 뭐 시발?! 하면서 화를 냈겠지만 초등학생 시절 사귀냐고 놀림을 받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웠다. 칠판에 김여주랑 김진환이랑 사귄대요~ 하고 적혀있기도 했고 짖궂은 남자애들이 우리 둘을 보고 얼레리 꼴레리 하면서 놀려댔다. 신기한 건 그런 짓을 한 아이들이 다음 날이 되면 잠잠해지고 김진환만 보면 기겁을 하고 도망갔다. 왜 그런지 몰라서 눈을 껌뻑거리고 있으면 김진환은 도망치는 남자애들을 보며 병신. 하고 비웃어줬다. 김진환이 싫어하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귀신이라도 본 듯이 김진환을 마주치면 으어어. 하면서 도망치기 바빴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김진환한테 나대지말자고.
중학생이 되자 김진환에게 벗어날 줄로만 알았다. 왜냐하면 김진환이 매번 말버릇처럼 나는 국제중가서 성공할거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국제중에 갈 일은 없으니 이렇게 김진환과 빠이빠이구나 하고 기뻐했는데…그랬는데……. 나랑 같은 중학교 입학식에 나랑 같은 교복을 입은 김진환이 내 옆에 서있었다. 너 왜 여기있어? 국제중은 어쩌고. 이런 내 말에 김진환은 넥타이가 갑갑한지 풀어내리며 거기 교복이 존나 구려. 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진짜 미친 새끼.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자 김진환이 나 와서 기쁜건 알겠는데 입은 다물어. 하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지랄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학생 때도 역시 3년 내내 김진환과 같은 반이였다. 우리 학교 학생수가 존나게 많은데 이게 말이나 돼??? 현실 부정하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그래봤자 김진환 손바닥 안 이라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으로 내 인생이 불쌍하다고 생각됐다.
김진환의 자기 위주 인생은 중학교때가 인생 정점이었다. 중2병 + 사춘기 = 노답 수준으로 어마어마했다.
숙제가 하기 싫은 날에는 친구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숙제를 시켰고 매점에 가기 귀찮은 날에는 돈을 쥐어주고 빵을 사오라고 시켰다. 돈만 안 줬으면 셔틀이나 다름없었다. 애들은 꽤 짭짤한 알바라고 좋아하긴 했지만 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김진환은 중학교 들어오면서부터 인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필 이때 인기의 맛을 보고 말았다. 기념일 같은 날의 김진환 책상 위에는 먹을 것이나 선물이 가득히 올려져있었다. 물론 김진환은 자신의 인기가 어느 정도구나 가늠만 할 뿐 선물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반 애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쓰레기통에 버렸다. 김진환을 좋아하는 애들은 나쁜 남자라며 더 좋아했지만 난 속으로 비웃었다. 나쁜 남자가 아니라 나쁜 새끼지. 그것도 개새끼 수준.
그런 김진환이 고등학생이 되어서부터는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안경을 쓰고 와서 못 알아봤다. 근데 겉모습만 변한게 아니고 성격도 변했다. 방학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도를 닦고 왔나? 싶을 정도였다. 이전보다 많은 숙제와 수행평가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지가 했다. 애들한테 빵을 사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여자 애들이 선물을 주러오면 고맙다고 웃어주기까지 했다. 이게 바로 개과천선인가.
김진환에게 왜 착해졌어? 라고 물어볼 순 없으니 안경 왜 썼어? 라고 돌려말했다. 김진환은 아무 말도 안한 채 문제만 풀다가 내 말에 고개를 들더니 범생이 같아보이잖아. 라고 입을 열었다. 말하는 걸 보니 김진환이 맞긴 맞는데…뭘까. 왜 달라진거지. 근데 그것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나에 대한 행동도 달라졌다. 존나 돌직구로 상처받게 하고 무섭게 정색하던걸 완벽히 고치진 않았지만 안 하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 처음에는 기겁했다. 얘가 왜이래. 존나 아픈가. 아픈건 아니었다. 아직도 지가 할 말은 꼭 했으니까. 그래도 그런 김진환이 아직은 어색했다.
“어? 남소?”
“응. 옆 반에 어떤애가 너 소개시켜달라 그래서.”
사건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나름 평범하게 지내고있었는데 대뜸 우리반 친구가 다가와선 남소를 하겠냐고 물었다. 아는 남자라고는 김진환이 전부고 연애담도 인터넷으로만 접해서 난처했다. 아직 남자를 만나기에도 뭐했고. 거절하려고 말하려는데 대뜸 친구가 아 김진환 때문에 안되려나. 하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할게! 남소 할게!”
“그래? 그럼 내가 너 번호 걔한테 줄게. 너도 핸드폰 줘봐. 번호 찍어줄게.”
“그,그래.”
아 나도 모르게 김진환이라는 단어에 반응해서 허락해버렸다. 친구가 번호를 찍는걸 가만히 지켜보는데 친구 뒤 편으로 나를 보고있는듯한 김진환이랑 눈이 마주쳤다. 미친 깜짝아. 죄를 짓는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버렸다. 핸드폰을 건네받았을때는 김진환은 앞을 보고있었다. 눈 마주친게 아니였나.
받을거야? 하교를 하던 도중 김진환이 꺼낸 첫 마디였다.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대답을 안 하고있으니 제법 길어진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나한테 다시 물었다. 남소, 받을거냐고. 역시나 아까 김진환하고 눈이 마주친게 맞았다. 그거 받지마. 대답을 하기도 전에 김진환이 먼저 치고 나왔다. 참나 어이리스네.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받지 말라고 하니까 뚜껑이 살짝 열렸다. 이유는 듣자 싶어 제자리에 딱 멈춰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물었다.
“왜. 난 받고싶은데.”
“받으면 너 나 안 보는걸로 안다.”
김진환은 존나 단호했다. 아니야 이럴수록 세게 나가야 해.
“너 내가 아직 초중딩때처럼 너 무서워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거든.”
“그래서.”
“그래서라니. 이제 너 말 안 듣는다고.”
“듣지마. 그대신 남소도 받지마.”
시발. 이젠 정말 뚜껑이 확 하고 열렸다.
“그래, 남소받고 너 아는 척 안하면 되는거잖아. 그치?”
김진환은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내려다봤다. 존나 무서워서 쫄뻔 했지만 눈을 최대한 부라렸다. 그러자 먼저 김진환이 시선을 피했다. 아까처럼. 앗싸 이겼다 라고 생각했는데 김진환이 대뜸 안경을 벗곤 그래. 아는 척 하지마. 하고 쐐기를 붙였다. 이게 아닌데. 김진환이 져줘야 맞는 시나리오인데.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김진환의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그 다음 날 등교하면서 풀리겠지 싶었는데 김진환이 먼저 등교했다. 학교에서 조차 단 한 번도 내 자리에 오지 않았고 등만 보여주었다. 새끼가 진짜. 존나 꽁하네. 너 나랑 진짜 아는 척 안할거야? 라고 쪽지에 적어 김진환 책상 위에 올려놨더니 김진환이 가차없이 바닥에 떨궜다. 그때부터 나도 김진환을 같이 무시하기 시작했다. 몰라 나도. 나야 편하지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때까지 김진환에게서 벗어나기만을 바랬으니 나에게는 좋은 결과나 다름없었다. 근데 왠지 모르게 존나게 섭섭했다.
결국 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김진환과 나는 단 한 마디도 섞지 않았다.
그게 바로 삼 주 전 이야기였다. 겨울 방학이라 밖에 나가기도 싫고 1년이 다 되어가도록 반에서 엄청 친한 애가 김진환 뿐이였으니 만날 애도 없었다. 초딩때라면 옆집이라서 억지로라도 마주쳤을텐데 걔도 나도 그 아파트에서 이사간지 오래였다. 집에서 폐인처럼 지내기만 이주가 다 되어갔다. 오늘도 역시 집에는 나 뿐이였고 다들 일 하느라 밖에 나간지 오래다. 와 존나 외톨이 된 기분이다. 게임이나 하려고 핸드폰을 집어들었는데 문자가 와있었다. 김진환이네. …김진환?!
김진환
[어디야]
[어디냐고 물었다]
[내가 찾아갈까 아님 너가 대답할래]
미친. 누워있던 몸을 한 번에 일으켰다. 김진환이다. 진짜 김진환.
[왜 나 지금 밖이야]
집에서 폐인처럼 지내고 있는걸 티내긴 싫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김진환한테 전화가 왔다. 받을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받았다.
[“너 진짜 죽고싶나보다. 나한테 거짓말을 다 하고.”]
“뭔 거짓말. 용건만 간단히 해줄래~? 친구랑 같이 있어서 말야~”
[“방금 너네 어머니 만났어.”]
“근데 그게 뭐.”
[“너 집에 쳐박혀서 안 나온다고 빨리 화해하라 그러셨어.”]
“…….”
[“존나 쪽팔리지?”]
시발 알면서 왜 물어.
[“나와.”]
“어딜.”
그 순간 우리집 문을 누군가 쾅쾅 두드렸다.
[“화해하러 왔다, 문 열어.”]
존나 어색했다. 김진환과 뒷 산 산책길을 걷고있는데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우리 둘 뿐이었다. 아무말이 없어서 슬쩍 옆을 보니 김진환은 그새 머리를 잘랐는지 길었던 머리가 꽤 깔끔해져있었다. 난 폐인처럼 지냈는데. 뭐지 개억울. 그때 김진환이 나를 딱 쳐다봤다. 쫄아가지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눈을 피했다.
“중학교때까지는 너가 눈치없는 거에 대해서 참 감사했었거든.”
“혹시 너 지금 나 눈치 없다고 까는거야…?”
내 말에 김진환이 닥치고 들으라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아,알겠어 말해.
“근데 답답하더라. 티를 존나 내도 모르니까.”
“…뭘?”
“내가 너 좋아하는거.”
진짜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맨 바닥에서 넘어질 뻔 했다. 아 미안 잘 못 들었어. 뭐라고? 이런 내 말에 김진환은 확인 사살 시켜주듯 좋아한다고. 라며 낯 뜨거워지는 말을 덤덤히 말했다. 진짜 너무 놀랐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김진환이 나를 좋아한다는게 그 어느 것보다 더 더 더 더 놀라웠다. 생각해보니 상황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것도, 남소를 받지 말라고 한 것도.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가 갔다. 어, 저 그니까 그게,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건만 김진환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싫어도 어쩔 수 없어. 너도 알잖아, 나 막무가내인거.”
“….”
“내 뜻대로 되게 만들거고. 될 때까지 할 거야.”
“아니 저기 진환아,”
“당장 받으라는 소리 아니야. 근데 죽기 전엔 받아.”
미친 그게 그거구만. 당황한 날 아는지 모르는지 김진환은 샐쭉 웃어보였다.
천천히 하자, 그럼 언젠가는 너가 넘어오겠지. 그렇게 말하며 김진환이 내 손을 불쑥 잡아왔다. 아니, 야!! 난생처음으로 김진환한테버럭 소리를 지른거였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을 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꽉 잡아왔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김진환을 봤지만 그에 비해 김진환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실실 웃어댔다. 평소에 미친놈이라고 욕은 했지만 진짜 미쳤나봐. 그 길로 내 집까지 가는데 김진환이 내 손을 꽉 잡은채 한 번도 놓지 않았고 날 집에 데려다준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문자를 보냈다.
김진환
[오늘은 그냥 보내줬는데]
[내일부터는 너네집 앞으로 갈게 데이트 준비 해둬]
[생각 정리되면 내일 당장 내 고백 받아도 상관 없어]
미친 지랄도 유분수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문자가 왔다.
김진환
[아 그리고 좋은 말로할때 남소 그 번호 지워]
[내가 존나 난리치는 꼴 보고싶지않으면]
…내가 고백 받은 입장이어도 아직 나는 김진환에게 을이자 쭈구리라는걸 각인 시켜주는 듯 했다.
시발 김진환. 아, 귀를 막아서라도 고백을 듣는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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