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은 남자를 좋아한다
w. 정국학개론
윤기 오빠가 농구공을 잡았다. 다음은 전정국이었고. 다음 이야기는 시합이 끝나고 듣겠다며 웃던 전정국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장실을 다녀온 새에 벌써 윤기 오빠네 팀이 두 골이나 먹었다. 신입생, 재학생 두 갈래로 나뉜 자리에 당연히 신입생 자리에 앉아야 할 게 맞았지만 어쩐지 고민이 되었다. 한일 월드컵이라도 보는 것처럼 다들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신입생과 재학생, 그 중간에 앉았다. 다들 농구에 정신이 팔린 덕에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점수를 매기던 회장 선배가 다리가 아픈지 통통 두드리다 이내 포기한 듯 털썩 앉는다. 나를 힐끔 보던 회장 선배가 다시 경기에 집중하다, 입을 연다.
" 누가 이길 것 같냐. "
사실 누가 이기든 상관은 없었다.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았고, 치킨은 좋았지만, 술 안주라고 생각하니까 끌리진 않았고. 방금 앉아 막 경기를 보기 시작한지라 각 팀에서 누가 에이스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멀뚱히 쳐다보다 당연히 누구보다도 피지컬이 훨씬 뛰어난 전정국이 있는 신입생 팀이 이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전정국이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도 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는 전정국은 승부욕이 장난 아니었다. 이기고 지는 것, 구분이 가능한 것이라면 무조건 이기고 봐야 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나는.
" 전정국 운동 잘해요. "
넌지시 신입생 팀이 이기지 않을까, 말을 던져보았다. 당연히 회장 선배도 나와 같은 입장이 아닐까 했는데, 그게 아니었는지 옆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전정국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순간 빠르게 치고 나오던 윤기 오빠가 골을 넣는다. 입이 쩍 벌어졌다. 어떻게 저 거리에 골을 넣지? 그런 내 모습을 본 건지 회장 선배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민윤기는 농구 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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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과 윤기 오빠, 그 사이가 아슬아슬하더니 결국엔 사고였다. 처음부터 다칠 걸 알고 들이댄 건지 동시에 둘이 넘어져서는 놀란 동기들은 전정국에게로, 선배들은 윤기 오빠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난 당연히 전정국에게로.
달려가려고 했는데 발이 절로 멈춰버렸다. 왜? 몸이 전정국을 향했는데, 시선이 윤기 오빠에게 닿아 있었다. 누가 이기든 상관이 없었다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 내기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알게 모르게 자만심에 휩싸여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를 고르고 있었던 것만 같아 괴로웠다.
전정국과 윤기 오빠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축되어 농구 코트를 떠날 때까지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구에게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전정국을 부축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던 수정이와 눈이 마주쳤다. 뭐하냐며 어서 붙으라는 그 표정에도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전정국의 오른쪽 다리가 불그스름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전정국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싫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러고 있는 내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한동안 농구 코트에 있었다. 다들 떠난 자리에서, 농구 코트에 불이 꺼지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식사 시간이 다가왔지만 쉽게 움직이지를 못했다. 왜 머뭇거렸을까. 좋아하는 사람이 다쳤는데, 달려가서 부축해도 모자랄 지경에 왜 나는 그 순간 너에게 다가갈 수 없었을까. 괴로웠다. 내가 지금까지 설렌 순간들, 가슴 아팠던 순간들, 그 순간들이 혼란스러웠다. 좋아하는데. 전정국만 생각하면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 나는 왜.
대체 왜.
" 김아미! "
수정이었다. 달려온 건지 숨을 고르고는 왜 아직 여기 있냐며 나를 타박했다. 쪼그려 앉아 있는 내 손목을 잡고 나를 일으킨다. 일어나서는 수정이가 이끄는 대로 발을 움직였다. 농구 코트를 벗어나는 순간, 전정국이 떠올랐다.
" 전정국은 괜찮아? "
" 그렇게 걱정되면 아까 따라올 것이지 왜 그러고 있었어. "
" 수정아. "
" 왜 멍청아. "
" 나 잘 모르겠어. "
내 손목을 잡은 수정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순간 수정이의 발이 멈췄다. 덩달아 끌려가던 내 발도 멈추었다. 수정이가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마주친 눈에서 아무 것도 읽히지 않았다. 어두워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수정이가 내 손목을 놓았고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아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수정이라면 알 게 분명했다.
" 뭘 모르겠는데? "
" 나 전정국이랑 고등학교 동창이야 수정아. "
" 그래. 근데 그게 왜? "
" 고등학교 때부터 전정국을 좋아했는데. "
" ……. "
" 지금은 모르겠어. "
" ……. "
" 전정국을 좋아하는 게 맞는 걸까. "
" ……. "
" 좋아하다 보니까 너무 익숙해서 그냥 나는 전정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수정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마 수정이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입만 움직였다. 목이 메여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아서 과연 들릴까, 싶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수정이는 여전히 허리춤에 손을 올려놓은 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은 조용했고, 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떨리는 두 손을 붙잡고 있었다. 수정이 입에서 곧 나오게 될 질책이 무서웠다.
" 너 나한테 뭐 잘못했어? 왜 나랑 눈도 못 마주쳐. 바보야? "
" …그냥… "
" 네 마음이 아니라서 그래. "
" ……. "
" 좋아하는 순간부터 네 마음이 아니라고 그건. "
" ……. "
" 그 사람 거지, 네 거가 아니라 멍청아. 이해 못했어? "
" ……. "
" 네 마음이 아닌데 네가 뭘 어떻게 해. 네가 그 마음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모른다고 이러고 있어. 그거 모른다고 안 죽어. 몰라도 돼. 넌 그냥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 거야. 자책하지 마.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네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아. 김아미, 선택은 누구나 하는 거야. 중국집 가도 짜장면 먹을지 짬뽕 먹을지, 사소한 것들도 선택을 하는데 사람이라고 뭐 다르겠어? "
" ……. "
" 그리고 너 전정국이랑 잘 어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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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에게 갔더니 남자애들이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 했나, 아무튼 별 핑계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고는 문 앞을 막아서고 있는데 거기서 그걸 뚫고 가기도 민망해서 돌아와, 윤기 오빠 방으로 갔다. 다행히 다들 저녁을 먹고는 밖으로 놀러 간 건지 방 안에는 윤기 오빠밖에 없었다. 이불을 펴고 누워서는 티비를 보고 있는데 다친 사람이 맞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표정이 태평했다.
" 오빠 괜찮아요? "
" 어, 왔어? "
마치 내가 올 것 같았다는 말투로 말하는데 괜히 마음이 콕콕 찔렸다. 이불을 덮고 있어서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를 몰라 다리를 숨긴 이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그런 시선을 느낀 건지 살짝 웃던 오빠가 조심스럽게 이불을 거둔다. 전정국과 같았다. 오른쪽 다리에 하얀색, 뭘 붙이고 있었다. 어떻게 다친 위치도 똑같은지 얼굴을 찡그리며 나름 심각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이마에 따뜻한 손가락이 닿았다, 떨어진다.
" 네가 다쳤어? 뭐가 그렇게 심각해. "
" 아파 보여요. "
" 별로 안 아파. 한두 번도 아니고. "
내 반응이 꽤나 심각했던 건지 윤기 오빠가 민망한 듯 이불을 다시 덮었다. 그제서야 시선을 떼고는 윤기 오빠를 한 번 보았다가, 윤기 오빠가 보고 있는 티비를 한 번 보았다가. 민망했다. 방 안에는 둘밖에 없고, 둘만 있었던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심지어 같은 하숙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지내고 있는데 이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고 티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우리 사이를 채웠다. 윤기 오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티비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입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나가야겠다, 싶어 그만 나가겠다, 말을 하려고 입을 뗄 때였다.
" 전정국은. "
" 아, 저, 그. 아직 못 봤어요. 남자애들이 못 들어가게 해서. "
" 아까 부딪혔을 때. "
" 네… "
" 너 중간에 서 있었잖아. "
" …그랬죠… "
" 전정국한테 안 가고. "
윤기 오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눈치는 더럽게 없는 편이었지만 알 것만 같았다. 구체적이지 않아도 대충 그 느낌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인지, 또 다음은 어떤 분위기로 진행되어야 하는지. 익숙하지 않은, 부담스러운 분위기에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여전히 티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윤기 오빠를 쳐다보았다.
" 기회 준 걸로 받아들여도 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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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리에이션이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전정국이 보이지 않았다. 다친 걸 못 봤으니 얼굴은 어떤지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데 우리 사이에 전정국이 보이지 않았다. 빨리 앉으라는 수정이의 말에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는데, 마침 옆에 윤기 오빠가 있었다.
기회를 준 걸로 받아들여도 되냐는 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게 분명한데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지금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이 많았다. 사실 부담스러웠다. 수정이 말대로라면 내가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게 되는데, 내가 그런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도 부담스러웠고, 내가 전정국을 보는 시선으로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보는 게 마냥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그게 윤기 오빠라면 더더욱.
" 헐, 전정국. "
아까 그런 말을 하고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지 앞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윤기 오빠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게 된 건 수정이의 한 마디였다. 전정국의 이름이 불렸고, 모두가 환호했다. 그리고 무대에는.
" 쟤 왜 저러고 있어? "
다쳐서 아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오른쪽 다리에는 아까 윤기 오빠의 다리에 붙여져 있던 걸 똑같이 붙이고는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는 게. 참. 이마를 짚었다. 수정이가 옆에서 환호하고 있었다. 언제 준비한 건지 검은색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 비치는 치마를 입고 선 굵게 웨이브를 하는데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볼 수는 없는데 또 눈에는 담고 싶어 억지로 눈을 뜨고 보다 손에 잡힌 휴대폰에서 카메라를 켰다. 추억이니 찍어야 해. 그러다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내가 보였는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보는데 괜히 쫄아서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새로운 모습에 동기들 모두가 격앙되어 있었다. 그렇게 짧디 짧은 4분의 시간이 끝나고 전정국이 얼굴을 가리고는 무대를 내려왔다. 뒤에 앉아 있던 태형이가 급하게 뒤로 달려갔다. 전정국과 사진을 찍으러 간 게 분명하리라. 수정이가 덩달아 신나서는 내 손을 붙잡고 일으켜 이끌었다. 안 돼. 지금 전정국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 미친. "
역시나였다. 태형이가 전정국과 셀카를 찍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번에는 전신샷을 찍자며 전정국을 거울 앞에서 붙잡고 있었다. 싫다며, 옷 갈아입겠다며 발악하는데 수정이가 웃으며 욕을 뱉었다. 끈질기게 휴대폰을 올리고 있는 태형이의 뒤통수를 수정이가 세게 쳤다. 그제서야 전정국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귀가 빨개진 것 같았다. 당황스런 표정으로 나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수정이와 태형이가 멀어졌다. 수정이가 태형이를 억지로 끌고 간 것 같았다. 전정국이 거울에서 머리에 꽂혀 있던 핀을 확인하고는 잽싸게 뺐다. 두 개인진 몰랐던 건지 한 개만 쏙 빼고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는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괜히 웃겨서 한 발, 한 발 조금씩 다가가 손을 올려 남은 핀 하나를 빼서 건넸다. 귀가 더 빨개졌다.
" 진짜. "
절로 입이 움직였다. 뜬금 없이 뱉어진 말에 전정국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었다. 당황스러워서 커진 눈. 토끼 같다. 빨개진 귀도 귀엽고. 늘 내 이름을 불러 줬으면, 하던 입도 너무 예쁘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라는 말. 그게 정답이었다. 너를 좋아하는 순간부터 내 마음이 내 마음인 적이 없었다. 설레는 걸 붙잡을 수도 없었고, 아프다고 그만둘 수도 없었고, 그냥 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진짜.
" 내가 너 많이 좋아하나 봐. "
커졌던 눈이 더 커졌다.
전정국은 남자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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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여기에 제 사담만이 아니라 독자님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들이 있으니까 꼭 확인해 주세요! 혹시 모바일로는 너무 길어서 그런가요 8ㅅ8 피씨에서는 겨우 세 줄밖에 안 되는데 안 읽고 넘어가시는 분들이 계셔서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남겨요! 암호닉은 따로 글을 세웠으니 그 곳에서 신청해 주세요! 여기서는 신청을 받지 않고 있어요 여러분♡ 앗 그리고 오랜만에 와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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