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필요한 시각 01:30 AM
w. 시린
2월 13일
당신,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까. 아니, 모르겠지. 당신이 사라진 지 일년 되는 날이다.
참,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이제 졸업반이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모습이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돌아왔을 때 난 이렇게 살았어, 하고 보여줄 수 있도록. 생각해 보면 당신은, 당신에게 어울리는 계절에 사라졌다. 은빛 늑대와 겨울. 눈 속에 걸어다니는 그대를 생각하면 괜시리 가슴 한 켠이 뜨거워진다.
당신이 사라지고 나서 일주일은 돌아오겠지,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그 뒤로 한 달은 식음을 전폐하고 죽지 않기 위해 살았다. 참, 모순된 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차피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말이다. 죽지 못해 사는 것, 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사는 것도 죽는 것이므로. 나는 그래서 이 생을 일찍 끝내려 했다. 당신과 있었던 고작 몇 년의 삶이, 나에게 이렇게 큰 것이라는 걸 알기에는 꼬박 한 달이 걸렸다.
하지만, 대학 후배가 나를 말렸다.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서, 술김에 울면서 말을 했더니, 내 어깨를 붙잡고는 정신차리라 말하더라. 형, 그 사람이 형 이러는 거 원할 거 같아요? 하면서.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라. 당신은 이런 나를 보면, 울면 울었지 웃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 후배에게 참으로 고맙다. 당신이, 만약 돌아온다면, 꼭 소개시켜 주고 싶다. 설마..질투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반년을 보내고, 당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실종신고부터, 휴학계와 이런 저런 당신이 남기고 간 일들. 당신이 잠시 아르바이트 하던 학교 앞 카페의 당신 자리는 내 차지가 되었다. 윤기 형 어학연수 갔어요, 하고 내가 잠시 대타를 뛰겠다고 한 게, 벌써 6개월이 되었다. 나도 이제 꽤 커피를 잘 내린다. 매일 녹차만 고집하더니, 내 커피 한번 마시고 나서부터는 커피만 시켰던, 당신이 생각나 울음이 나올 뻔 했다. 그냥,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나의 우주, 나의 전부, 나의 당신, 민윤기, 형, 나의 애인. 나는 여전히 너의 아래에서 숨 쉬고 있다. 여전히 너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나는 여전히 변하고 있지 못하다. 마음에 든다, 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가. 마음에 그대가 들었다는 말은, 그대가 내 마음에 들어 있다는 것. 내 안에서 당신이 살아 숨쉬는 한,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다. 꿋꿋이 버틸 수 있다. 내가 무너지는 것은 당신이 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므로. 당신을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 마음에 들어 있다. 당신은, 내 마음에 든다. 나는 여전히 너의 안에서, 숨 쉬고 있고, 살아가고 있다. 너의 왕국 아래에서 살아가는 난, 당신 없이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당신이 돌아오길 원치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뻔한 거짓말일 것이다. 당신 앞에서 거짓되고 싶지 않다. 당신이 보고 싶다, 네가 보고 싶다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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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이 한숨지으며 책상 위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는 울었다. 소리 없이, 제가 일하는 카페의 한 구석 자리에서. 윤기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 일 년, 잘 버텼는데, 그가 사라진 날이 오니 무너지는 지민이었다. 나 우는 거, 원치 않을 건데, 하면서 마음을 추스려도, 잘 되지 않았다. 그 때, 누군가가 자신의 등을 쓸었다.
"형, 괜찮아요?"
"아, 정국아"
"형 보러 왔는데, 그냥 갈까요?"
"아냐, 좀 이따 가도 돼, 커피 내려줄까?"
네, 그럼 뭐 감사하죠, 하면서 정국이 웃었다. 지민이 잠시만, 하고 고개를 들어 데스크로 향했다. 그 때, 유리문 바깥에 익숙한 형체가 지나가는 것 같아, 지민이 문을 거칠게 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럼 그렇지, 하고 기운이 빠진 지민이 발걸음을 돌렸다. 일 년 넘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역시 형은 나에게 너무 큰 사람이었어. 하면서 커피를 만들러 들어가는 그였다.
"오늘이, 그 형 사라진 날이죠"
"응, 그래서 그런가 조금 우울하네"
"당연하죠, 형 마음껏 우울해하세요"
뭐야 그게, 하면서 지민이 푸스스 웃었다. 윤기가 사라지고 나서 유일한 제 버팀목이 된 사람이었다. 흔들릴 때마다 잡아주던 정국이 고마웠다. 언젠가, 언젠가 윤기가 돌아온다면, 그에게 꼭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 내가 벅차올라서 울음이 터졌을 때, 나 대신 정국이가 꼭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는 지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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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 돌아가고, 늦은 밤 지민이 터벅터벅 집으로 걸었다. 카페에 있을 때면, 커피 향 가득한 곳에서, 손님이 없을 때 꾸벅꾸벅 졸던 동그란 뒤통수 하며, 커피를 내릴 때, 갑자기 끌어안으면 귀가 조금 튀어나왔다 들어가던 그 날들을. 하늘의 별을 보면서 말없이 잡던 손을. 처음 윤기에게 안겼던 그날 밤, 제 머리칼을 쓸어 올리던 그 손끝을 기억한다. 아프다 우는 소리를 내면 말없이 깍지를 끼던 그 손 마디마디를 기억한다. 일 년이 되어가니, 별 게 다 생각난다.
윤기가 떠나도, 그의 물건은 단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여전히 칫솔도 두 개, 베개도 두 개, 의자도 두 개, 노트북도 두 개, 샤워 가운도 두 개. 제 방에서 하나인 것은 자기밖에 없었다. 그냥, 그 물건을 버리면 윤기를 버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제 핸드폰 배경화면도, 여전히 윤기와 찍은 사진이었다. 이렇게 해사하게 웃던 당신인데,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계단을 다 올라가서 3층, 지민이 자신의 자취방에 도착했다. 1322. 비밀번호는 아직 바꾸지 않았다. 0309 윤기의 생일과 1013 자신의 생일 중 무엇을 할까 고민할 때, 윤기가 그럼 두 개를 합치면 되잖아. 해서 한 비밀번호 1322였다. 네 자리 숫자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제가 분명 정리하고 나간 이불이 흐뜨려저 있었다. 신발을 꺼내두고 간 적이 없는데 신발이 있었다. 지민이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집이 털렸다, 강도가 들어왔나, 나 여기서 죽는 건가, 아 아직 죽으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으로 멍하니 서있던 그 때, 뭐야- 하면서 욕실 문이 열였다. 노란 조명과 함께 더운 김이 나왔다.
"뭐야, 너"
지민은 주저앉았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두 손으로 입을 감싸고 눈을 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이 사람이 허상이라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고.
"너, 누구야"
자신을 정말 모른다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샤워 가운을 입고서 젖은 머리를 털고 있는,
"아니, 갑자기 왜 울어"
빤히 바라보던 제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자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아니, 울지 말아 봐 하면서 눈을 맞춰오는,
"야...야!"
에라, 모르겠다. 하고 꽉 끌어안자 당황한 듯 어버버 거리다가 제 등을 토닥거리며 얘 왜 이러는 거야, 하며 어이없어 하며 서툴게 달래는 이 남자는,
"..민윤..기..."
"너 나를 알아?"
"..."
"아니, 울지 말라니까"
민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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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AM 오기 전, 잠시 찾아온 1:30AM과 함께 온 시린입니다!
1시30분은 2시를 보기 위한 약간의 예고하고 해 둘게요-
곧 2시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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