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민윤기] 무제 A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1163/48e07a2e75ca8eecc536b25ba1493937.gif)
민윤기. 그 애 말이다.
하필 담임 시간에 학교에 왔다. 늘 늦는 놈이라 조례시간에 본다거나 1, 2교시에 본다는 건 기대조차 않지만 그날은 늦어도 유독 늦었다. 점심시간도 지났던 오후. 담임 선생님이 한창 수업 중인데 아주 조용하고 작게 뒷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허여멀건 얼굴이 등장했다. 특유의 툭툭 뱉는 듯한 느릿한 걸음. 영어가 적힌 검은 티 위에 다 풀어헤쳐진 하얀 교복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전보다 조금 짧아진 게 이발을 한 것 같기도 했다. 며칠만의 등교던가. 일주일만이었나. 담임 선생님은 녀석의 그 위풍당당한 등장에 어이가 없어 넋이 나가신 듯싶었다. 방금 말한 그 무기력한 걸음으로 민윤기가 자리에 앉았다. 정신을 차린 선생님이 피식 웃으시고 교탁 위에 얌전히 올려져있던 길고 굵은 막대기를 손에 쥐셨다. 선생님의 고생 많이 한 듯한 굵은 손가락이 민윤기를 향해 몇 번 까딱였다. 민윤기가 무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단에 올라섰다. 그 뒤론 늘 있던 일이다. 빠진 날짜대로 맞았다. 아마 6대였나, 7대였나. 민윤기는 그 흔한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꾹 다문 입술로 매를 버텨내곤 했다. 아마 선생님은 그런 점이 더 마음에 들지 않으셨겠지. 알 만한 감정이었다.
딱 그런 부류의 애였다. 양아치도 아니었고, 평범한 애도 아니었다. 교실에 속해 있는 그 어떤 누구가 아니라, 민윤기라는 이름이 어떤 고유한 것을 갖고 있었다. 홀로 떨어져 얕게 호흡하면서도 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원치 않는 관심인 듯하지만, 얼굴에 가끔 생기는 상처와 늘상 있는 몸의 상처가 그 아이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보통 쯤 하는 키, 말라빠진 몸. 무기력한 낯과 말투, 허연 피부와 묵묵한 평소 행동과 다르게 그 애는 싸움질을 잘했다. 무언가 확 올라오면 주먹이 나가는 걸 참지 못하는 딱 그런 애였다. 학교도 자주 빠지고, 싸움질을 하고, 그러면서도 딱히 양아치는 아니고 아이들을 괴롭히지도 않는. 정말 민윤기는 무언가 달랐다. 아이들은 가끔 그런 것에 막연함을 느낀다. 그에 따라 민윤기는 친구가 없다. 그 애는 그저, 특이한, 어떤 고유명사다.
'야.'
'…….'
'너 수학 숙제 했니?'
그래서 내가 민윤기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민윤기는 참 아연한 표정을 했나보다. 민윤기는 우리 반 꼴찌다. 그래도 수학부장인 내가 그 애에게 안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딱 숙제를 걷는 날에 학교에 온 건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숙제를 내준 날에 학교를 오지 않았고, 그 애에게 숙제가 있었다고 전해줄 만한 애가 없었는데 말이다. 민윤기는 어이없다는 듯, 아니라면 뭔가 쑥쓰러운 듯, 둘 다 아니라면 뭔지 모를. 그런 아주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돌았을 뿐이다. 민윤기와 나는 그렇게 연관성이 없었다. 민윤기는 나를 불편해했다. 민윤기는 나를 공부 잘해서 잘난 척 하는 그런 애로 여기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민윤기와는 중학교도 달랐고, 노는 부류도 달랐다. 그 애는 노는 부류가 없지만, 하여튼. 나는 속히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 껴있었다. 물론 그 중에서 제일 공부를 잘했다. 무릇 그런 법이다. 나는 반 1등이었고, 그 앤 꼴찌였다. 우리 집은 단독 2층집이고, 민윤기네 집은 내 방에서 보이는 저 옥탑방이다. 그 애는 거의 혼자살다시피 했다. 엄마는 없다고 했고, 아빠는 헌책방을 하는데, 늘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하니까. 민윤기는 형제도 없다. 그 혼자다. 나는 오빠가 있다.
사람이 가난하지 않고 잘 살면 그런 게 티가 나도록 돼 있다. 나는 반 안에서 그런 애였다. 내 옷은 그 어떤 흔한 것도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걸 쉽게 눈치챘다. 가난한 동네지만 근방에서 제일 좋은 집이 우리 집이라는 것도 다들 알았다. 그러나 가난한 동네는 가난한 동네다. 누군가가 돈은 가난하고 화목은 부자인 집에서 산다면, 나는 돈은 부자지만 화목은 가난한 집에서 살았다. 오빠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열아홉 살이었다. 배를 걷어차는 게 특기다. 공부를 더럽게 못했다. 해군 장교인 아버지의 꾸중 대상이었다. 차녀인 나보다도 못하다며 비난을 듣기 일쑤였다. 오빠는 분명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그렇게 팰 리가 없다.
'얼굴 가려, 얼굴 가리라고, 씨발년아.'
오빠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팔꿈치 아래로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망치의 쇠부분만치 시리고 차가웠다. 딱딱한 신발을 신은 오빠의 발이 내 배로 날아들었다. 원래는 배를 가려야한다. 배를 맞으면 제일 아프고, 입에서 가끔 피도 쏟고, 숨도 잘 안 쉬어지니까. 근데 얼굴을 가리라니 얼굴을 가린다. 오빠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 고통의 안위가 아닌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거다. 아빠는 말했다시피 해군 장교다. 집에 잘 없다. 근처 미술관을 운영하는 엄마는 늘 집에 있다. 그런 엄마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오빠는 얼굴을 피해 때리는 기술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머리가 나쁘면 그런 것도 못한다. 그저 나한테 명령한다. 얼굴 가려.
때리는 이유는 늘 몇 가지다. 너 때문에 혼났어. 너 존나 재수없다. 너 왜 오늘 학교에서 나 마주쳤어. 오빠는 키가 똥자루만한 나와 다르게 꽤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 때리면 맞아야지. 부모님께 말하는 건 상상이 안 간다. 가부장적인 아빠와 순종적인 엄마. 아마 별 일 아닐 취급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도 그렇다. 선생님께 말하는 건 부모님께 말하는 거랑 같다. 선생님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빠는 늘 뒷골목으로 불러 나를 내리치고, 나는 그 손길에 픽 픽 쓰러진다. 말했듯 얼굴은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날은 뭔가 달랐다. 아주 단단히 화나 있었다. 그런 사소한 우연에서 민윤기와 나의 연관성이 생긴 걸수도 있다. 보통 같았음 그렇게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딴 길로 처 가라며 내 머리통을 몇 대 갈기고 끝이었을텐데, 그 날은 다짜고짜 내 배를 발로 차서 넘어트렸던 그런 것에서. 그리고 하는 말이 얼굴 가려, 였다.
'닌, 씨발, 내가 공부, 살살하라, 했지.'
퍽, 퍽. 몸을 하도 움직여대며 말해선지 말이 뚝뚝 끊기는 게 같잖았다. 그 같잖은 몸짓에 죽도록 아파하는 내가 더 같잖을 수도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폭력에 얼굴에선 눈물이 줄줄 흘렀다. 중학교 때, 오빠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나와 비교 당하며 아빠한테 뺨 맞은 날 이후로 오빠에게 가장 심하게 맞는 것 같았다. 그 때 입에서 피를 쏟았었다. 배를 하도 걷어차여서였다. 벌써부터 비릿한 피맛이 도는 게 혹여 이렇게 죽으면 어쩌나 생각했다. 순간이었다. 얼굴 가린 손을 오빠가 거칠게 떼어냈다. 그리고 미친듯이 뺨을 내리쳤다. 얼얼한 뺨. 터진 입 안의 여린 살. 뺨 맞은 건 처음이라 잠시 멍했다. 다시 배를 걷어 차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니 때문에, 나만, 존나 혼나잖아!'
쾅, 뒤의 갈색 벽돌벽에 내 머리를 후려내리친다. 머리가 띵하고, 아 정말 죽겠구나 했다. 오빠도 알았던지 나를 땅바닥으로 휙 내치더니 더이상 때리지 않고 숨만 훅훅 몰아쉬었다. 내 위로 묵직한 오빠의 가방이 던져졌다. 오빠가 내 발치에 침을 뱉었다. 볼이 땡땡히 부어오르는 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거, 처음 알았다. 내 가방 니가 들고 와. 으르렁 대듯이 말을 뱉고 골목길 끝으로 걸어간다. 이렇게 후려 맞은 적은 오랜만인가, 처음이라 손끝도 까딱할 수 없었다. 색색 내 숨이 내쉬어지는 소리만 귓가에 웅웅 울렸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고개가 툭, 그 망치의 쇠부분 같이 시린 시멘트 바닥에 닿는다고 느껴질 때쯤.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보인 신발은 익숙한 그것이었다. 민윤기의 닳고 닳은 검은색 컨버스. 그 신발을 보고 순간 그러고보니 이 골목이 민윤기의 옥탑방이 있는 골목길과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눈을 떴을 땐 밤하늘이 보였다.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 예쁜 밤하늘이 아니라 거진 까만색인 아주 흐린 밤하늘이었다. 살짝 몸을 일으켰다. 옥탑방의 마루였다. 두 팔을 등 뒤로 짚고 제 앞을 보고있는 민윤기의 등판이 보였다. 흰 반팔이 펄럭인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속에서 울컥 피가 솟구쳐 올랐다. 벌떡 일어나 달려 마루의 난간을 잡았다. 피를 토해내듯이 울컥 뱉었다. 떨어지는 피가 보기싫어 손으로 입을 막았다가 마구 입 주위를 닦아냈다. 입고있던 교복에 피가 흥건했다. 정말, 흥건했다. 이렇게 난간에서 떨어져도 날 더이상 적실 피가 없을 것만 같이.
피가 멎었다. 몸 곳곳이 욱신거렸다. 땅을 디디고 서있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금방이라도 뒤로 엎어질것처럼. 민윤기가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내 어깨를 꽈악 쥐었다.
'괜찮아?'
여느 남자들이 다친 여자에게 묻는 다정한 물음이 아니었다. 툭 건네듯, 내 머리위로 톡 떨어지듯 아주 무심한 물음이었다. 다리에 힘을 주었지만 이내 스르륵 내 어깨를 쥔 그 손에 기대게 되었다. 고개를 저었다. 전혀 괜찮지 않다. 민윤기는 나를 질질 끌어 다시 마루 위에 앉혔다. 마루위엔 건들지도 않은 것 같은 교과서 몇 개, 물통, 햇반이 제각기 널부러져 있었다. 민윤기가 어깨를 놓자마자 마루에 쓰러지듯 누웠다. 민윤기가 그런 내 옆에 앉았다. 이런 상황이 어이없었지만 웃음조차도 나지 않았다. 민윤기의 흰 반팔만 덩그러니 시야에 꽉 찼다. 잠시간 고요가 흘렀다. 별이 반짝이는 소리가 들릴만큼의 적막한 고요였다. 그 고요를 깨고 민윤기가 나지막이 물었다.
'누구야?'
뭐가. 말하려고 했지만 입만 뻐끔대는 꼴이었다. 살짝 고개를 끌어올렸다. 나를 내려보던 민윤기와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그 애의 종이처럼 얇은 몸.
'너 때린 사람.'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민윤기가 손을 뻗어 내 입주위를 닦아줬다. 민윤기의 하얀 손에 내 피가 묻어나온 게 눈에 보였다. 이제 좀 머리가 돌아간다. 민윤기는 내가 맞는 것을 봤고, 쓰러지는 것도 봤고, 그걸 끌어다 제 집 마루에 얹어둔 거다. 손목을 겨우 움직여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밤 열두 시를 그대로 지나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너무 아파서 불가능이었다. 순간 삐삐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이 고요한 상황을 찢어버리겠다는 듯이. 주머니를 뒤져 삐삐를 꺼냈다. 1818. 오빠였다. 다시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민윤기의 시선이 죽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우리 오빠.'
그 애가 건 말처럼 나직하게 대답했다.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남자애들의 농간에 놀아난 여자애들이 펑펑 우는 모습과 내 모습이 겹쳐진다. 입술을 꾹 물었다. 몸을 일으켰다.
'나 오늘 집 못가.'
'…….'
'아마 가면 자살할지도 몰라…….'
엄마는 누구에게 맞았냐 할 테고, 나는 오빠라 할 테고, 엄마는 무시할테니까. 뒷말은 삼켰다. 민윤기의 시선이 평소와 다르게 생생했다. 무기력하게 초점없는 낯이 아니었다. 침을 크게 한 번 삼켰다. 민윤기가 종이라면 나는 종이보다 얇다.
'재워줄래?'
그랬다. 맞아서 볼이 부은 탓인지 발음이 잔뜩 뭉개지고 있었다.
민윤기는 무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주 잠시동안이었다. 말도 없이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삼선 슬리퍼를 죽죽 그으며 걸어 옥탑방의 문을 연 민윤기가 살짝 뒤돌아 나를 보았다. 나는 서서히 느껴지는 추위에 발발 떨고 있었다. 그런 날 잠시 보던 민윤기는 바닥에 있던 돌을 발로 끌어 문 앞에 둬 문을 고정시켰다. 그리곤 내게로 걸어왔다. 여전히 삼선 슬리퍼를 죽죽 끄는 걸음이었다. 엎어져 있는 나의 팔을 잡아 끌고 어르어 제 등 뒤에 업는다. 별 말 할 수 없었다. 마른 등이 생각보다 너무 넓었다. 나를 업고 옥탑방으로 갈 때도 슬리퍼는 질질 끌렸다. 돌을 발로 차서 문을 닫는 모습은 익숙했다. 그 애 등에서 맞은 방 안의 어둠도 그 행동처럼 익숙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나를 업고 민윤기가 방 불을 켰다. 집 안이 더러웠다. 정리 되어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민윤기는 나를 조심스레 욕실 앞에 내려두었다.
'씻어.'
말이 이상하지만, 첫날밤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첫날. 민윤기와 대화를 두 마디 이상한 게 처음인 그 날.
민윤기가 쓰는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샴푸조차 없었다. 피와 얼룩으로 난리난 교복은 제껴두고 민윤기의 옷을 빌려 입었다. 상하의 다 약간 컸다. 씻고 나가보니 민윤기가 이불을 깔고 있었다. 방이 좁아서 꽤 가까이 누워야할 것 같았다. 민윤기가 내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방구석에서 검은색 비닐봉투를 가져왔다. 그 안엔 온갖 약들과 대일밴드가 가득 들어있었다. 필시 민윤기가 싸움질하고 쓰는 것이었다. 방 안에 거울 하나가 없어 화장실로 가서 목과 팔 등 시멘트바닥에 긁힌 상처들에 밴드를 붙였다. 민윤기는 내 뒤를 쫓아다니며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밤에 누운 이부자리는 편했다. 원래 내가 자던 곳인듯. 그때까지 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지 잘 몰랐다. 그저 집에 들어가기가 지독히도 무서웠고, 민윤기가 재워준다고 했으니 상황파악은 미뤄두고 받아들였다. 뺨을 맞고 머리를 벽에 박았다. 나를 향한 오빠의 근본적인 혐오가 두려웠다.
잠에 들락 말락 하던 때 민윤기가 조용히 물었다. 왜 맞았냐. 웅얼웅얼 대답했다.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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