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닿기를.
w. 초꽃
***
“날 기억하고 있었어?”
“너도 날 기억하고 있었잖아”
대답 없는 내 모습에 내 볼을 찌르던 손을 내리며 ‘아니야?’ 라고 묻는 남우현의 모습에 대답 대신 고개를 세차 게 저었다. 그제야 다시 눈을 접어 웃는 남우현의 모습에 나는 그저 남우현을 따라 웃음을 지었다. 즐겁지도 그렇다고 딱히 기쁘지도 않았지만 그냥, 그냥 남우현의 웃는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갔다.
“친구들은?”
“친한 친구들이랑은 다 떨어 졌어”
“쓸쓸 하겠다”
괜찮다며 고개를 저으려했지만 내 머리 위로 올라오는 남우현의 손 때문에,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너무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우현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손이 머리칼을 가르고 지날 때면 알 수 없는 느낌에 온 몸이 찌릿했고 그 느낌이 이상해서 하얀 실내화에 감춰진 발가락을 잔뜩 웅크렸다 폈다 반복했다. 조금만 더, 1분만 더 내 머리를 다정하게 만져주길 원했지만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 남우현은 내 머리위에 올려 진 손을 내 어깨 위로 옮겼다.
“나랑 친구하자. 성규야”
그저 친구하자는. 별 다를 거 없는 말에 나는 바보같이 설레어 버렸다.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에 놀러가자는 엄마의 말에 할머니 댁 앞에 펼쳐진 냇가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루던 어린 날의 나처럼, 소풍이라는 특별한 날에 설레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그 때처럼 나는 설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내 어깨에 올려 진 손이 내 어깨를 또 팔을 지나서 내 손을 마주 잡았을 때 그 손을 잡으며 내게 눈을 맞추고 웃음을 짓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알아 버렸다.
***
그 이후로 우현이는 나와 함께했다. 등교 길도 남들보다 조금 늦는 내 하교 길도 모두 함께 했다. 어느새 두꺼운 목도리 대신 선선한 바람이 내 목엔 따뜻한 바람이 스쳤고 교복에 닿지 않았던 머리가 셔츠 끝자락에 닿을 만큼 길어졌다.
“머리 뻗쳤다”
“길어서 그런가?”
어색하게 목 뒤에 뻗친 머리를 쓰다듬자 우현이가 그런 내 손을 잡아 내리고는 내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조심스런 우현이의 손길을 받으며 살짝 돌려진 우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멍하니 우현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난 우현이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고 나서야 내 목 뒤에 닿았던 손길이 사라졌다는 걸 느끼곤 어색하게 웃었다.
“성규야”
“응?”
“머리 잘라줄까?”
“너가?”
“아니, 나 말고 진짜 솜씨 좋은 사람 내가 알고 있거든”
뭔가 평소와 다르게 들떠 보이는 우현이의 모습에 나도 조금 들뜬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답을 들은 우현이가 어딘가로 연락을 해야겠다며 핸드폰을 꺼내었고 곧 익숙한 손길로 번호를 누르곤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통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리며 웃는 우현이의 모습에 나도 따라 웃었지만 그 웃음은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무척 어색한 웃음이었다.
-딸랑
우현이가 나를 데리고 온 곳은 내 생각과 조금 다른 허름한 이발소였다. 이발소 안으로 익숙하게 들어간 우현이는 누군가를 보며 밝게 웃었고 우현이의 웃음을 받은 사람은 영화에 나오던 이발소처럼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였다.
“누나!”
“왔어? 이쪽은 친구?”
“아, 안녕하세요. 김성규입니다”
“금방 끝나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도와줄까?”
“그럼 저기서 염색 약 좀 꺼내 줄래?”
“키도 작으면서 왜 이렇게 높게 올렸대”
“이게, 누나한테 또 까분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여자를 향해 웃는 우현이의 모습을 보자 의자에 앉아 둘을 지켜보는 내 자신이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를 향해 예쁘게 웃으며 머리를 잘라내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바라보며 염색약을 꺼내는 우현이의 모습엔 내가 끼어들 자리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는 머리 어떻게 자르고 싶어요?”
“그냥....뒷머리가 안 뻗치게만 해주세요”
“예쁘게 잘라줄게요”
사각, 사각 머리카락이 잘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짧게 잘려 나가는 머리가 내 몸을 덮고 있는 하얀 가운위로 떨어져 스르륵 퍼졌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던 난 우현이가 궁금해 고개를 살짝 올려 거울을 봤지만 후회했다. 거울 속에 비친 우현이의 눈길이 나를 향해 항상 지어주던 그 웃음이 내가 아닌 내 머리를 자르고 있는 여자에게 향해져 있었기에.
“어? 왜....”
“네? 아, 죄송해요”
“혹시, 어디 찔렸어요?”
“무슨 일....성규야 너 울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갔나 봐요”
“손으로 비비면 안 돼. 어디 봐봐”
눈으로 향하던 내 손을 잡아낸 우현이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하곤 내 눈을 바라봤고 나는 그런 우현이를 바라봤다. 있지도 않는 머리카락을 찾는 우현이의 눈은 바쁘게 굴러갔고 그런 우현이의 뒤로는 여자가 가위를 들고는 불안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딱, 딱- 거리며 가위가 부딪히는 소리에 나를 향해져 있던 우현이의 시선이 뒤에 있던 여자에게 돌아갔고 나에게 향해져 있던 여자의 시선도 우현이에게로 돌아갔다.
나만이 아니었다. 우현이도, 우현이도 나처럼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현이의 사랑은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나의 사랑은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고....
너에게 닿기를 |
이런 분위기 좋다고 해주는 독자분들 너무 고마워요 ㅠㅠ 이런 분위기 저 진짜 좋아하고 또 이런 분위기의 픽을 써왔는데 오랜만에 와서 그나마 없던 감도 잃고 요즘 추새에도 안 맞을까봐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요 ㅠㅠ 재밌다고 말씀 해 주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저에게는 너무나 큰 힘이 되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