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에 대해서는 사실 그리 관심이 없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만 찾으면 됐으니까. 적어도 이 시점쯤으로 시간을 건너뛰어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그를 만날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어렸을때의 '나' 는 뭐가 그리 불안한건지 나를 자꾸 어디론가 숨기려고 했다. 뭐, 같은 사람이 갑자기 하나가 더 생겼다는게 어린 나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과 부모님께도 아주 충격적인 일이 아닐수 없겠지만. 괜히 오기가 나서 나를 숨기려는 '나'에게서부터 열심히 저항했더니 결국 나를 숨기지 못한 채로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들어온 사람은 남자였다. 그리곤 다정하고 쾌활한 목소리고 자기가 왔다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 순간 머릿속 기억의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내 자취방의 비밀번호를 아는, 그리고 나를 반갑게 부르는 목소리......
......내가 찾던 그 사람이다. 확실한듯했다 아니, 확실해졌다. 현관문을 닫는 사내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아이도 나를 봤다. 그래.....맞다....맞아....웃을때 작게 휘어지는 눈꼬리와 입가의 팔자주름.....좀 더 어릴적이라서 그런지 앳된 모습만 좀 다를뿐, 내가 시간을 거슬러온 이유를 너무나도 빨리 찾아버렸다. 나를 본 그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더니 곧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느정도 예상했던 반응이라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다만 그 아이의 얼굴을 다시보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현관에서 내가 보이지 않도록 살짝 옆으로 비껴들어갔다. 내가 그토록 보고싶었던 얼굴이 당장 내 앞에 놓여있어서인지 고여있던 눈물이 결국 툭- 툭- 한방울씩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조절이 안되서인지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다가 결국 주저앉았다. 이렇게 쉽게, 이렇게 빠르게 찾을걸 생각지도 못했는데......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너무나 쉽게......찾아버렸다. ---------------------------------------------------- '김명수'가 나와 남우현을 놓고 이어가던 대화를 끝냈다. 녀석이 배가 고픈건지 밥을 차리겠다며 부엌으로 빠졌다. 우리 사이의 적막을 조금이나마 깨주던 '내'가 빠지고 나니 나와 남우현사이의 분위기가 매우,어색해졌다. '내'가 부엌에서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이쪽으로 걸어온다. "야, 나 슈퍼에 갔다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반찬이 없어서인지 슈퍼에 가겠다는 녀석을 말리고 싶었다. 이대로 둘만 남겨지면 이 분위기는 어떻게 하라고? 라고 소리쳐서 말리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남우현도 마찬가지인지 우리 둘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녀석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 나와 남우현 둘뿐이다. 바닥에 쳐져있던 녀석과 내 눈이 마주쳤다. 괜스레 쑥스러워서인지 나와 녀석이 헛기침을 하면서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서든 깨어서 남우현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한참을 맘속으로 갈등하다가 결국 내가 먼저 남우현에게 다가갔다. 내가 한발짝 다가서자 녀석이 움찔한다. 하지만 결국 내 목적을 이루려면 겪어야하는 일이기 때문에 용기내어 한발짝 다가간다. ".....남우현." "...어?" "......우현아." 녀석이 나를 보던 시선을 다시 내리깔고 조금씩 움찔움찔한다. 괜스레 서운해진다. 나는 모든걸 포기하고 너를 찾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나를 이렇게 피해버리면 나는 어떡해...... "우현ㅇ....." "저기...!" 나와 우현이 동시에 서로를 불렀다. 그것때문에 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아....." "어.....머..먼저 말해...." "아니야..! 너....먼저 말해....." "그게.....그러니까, 너.....정말 김명수 맞아?" 녀석이 아직도 상황정리가 되지 않은것인지 나에게 내가 정말 김명수가 맞느냐고 물어온다. "....응.....맞아...." "아....." 내 대답에 녀석이 큰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남우현은 내 대답을 듣고 다시 나의 시선을 피해 바닥을 쳐다보았다. 남우현에게 하려던 말이 목에 걸려서 막혀버렸다. 왠지 말을 걸수 없는 분위기였다. 결국 말을 꺼내지 못한채 그대로 다시 우리 둘 사이에 적막이 쌓였다. ★ "나 왔어!"
다행히 별일 없었는지 집안은 고요했다.(별일이 생기는게 오히려 이상한거지만.) 녀석들덕분에 간만에 슈퍼에서 맛있는 반찬도 사들고 왔다. 비싸서 돈아끼려고 사지도 않던 소시지와 통조림, 3분짜장과 3분카레 각각2팩씩, 그리고 김치1팩을 싱크대에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찬장에서 햇반 3개를 꺼내고 큰 냄비를 하나 꺼내어 물을 거의 가득차게 받았다. 가스레인지위에 올려서 불을 켜고 그 안에 햇반과 3분요리팩을 3개 넣었다. 남은 반찬들도 냉장고에 넣어놓고. "흠.....일단 뭐 이렇게 된거, 잘 지내봐야될거아니야. 나 혼자 살기에도 빡빡하지만.....그래도 잘 버텨보라구. 아, 네가 미래에서 온 나니까 내가 여기서 얼마나 힘들게 지냈었는지 알거아냐? 그건 다 감수하고 온거지?" "....응. 뭐, 여기로 떨어졌을때부터 대충 얼마나 힘들지 예상은 했어."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야 남우현!!" "어? 어.....왜?" "그렇게 불편하게 있지말고 바보야. 얘도 나고 나도 나니깐 나한테 하던것처럼 하면 될거잖아. 안그래? 이렇게 있는다고 뭐가 달라지냐?" "아....그렇지....그래 맞아....." "에헤이, 왜이렇게 성격이 죽었어? 니 원래모습대로 굴어. 야 김명....김명수, 얘 10년뒤에도 막 깝죽거리고 그러냐?" "음.....글쎄? 아마 그러지 않은가 싶네." "햐여튼, 세살버릇여든간다더니 딱 너같은애들이구나. 다들 앉아, 밥상 내올게." 흠....이대로 정리해보니 어느정도 편해진것같다. 물이 끓는 냄비에서 햇반과 카레2팩,짜장1팩을 젓가락으로 건져올렸다. 가스레인지 불을 내리고 선반에 올려진 그릇3개를 꺼내서 아직뜨거운 햇반비닐을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레 잡아끌어올렸다. 각 그릇에 밥을 엎은 후 그 위에다 소스들을 쏟아부었다. 쟁반에 하나씩 옮겨올리고 그 쟁반을 조그만 상에 올려서 내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 먹어!" "야....." 남우현이 이자식은 또 뭐가 불만이어서 먹으라는 밥은 안먹고....! "뭐?" "수저가 없잖아 바보야." 아.....수저..... "미안하다. 기달려." 에이 귀찮게시리 자리에서 일어나 수저를 꺼내러 갔다. 디잉 도옹-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이 아침에 올사람이 누가 있다고? 택배가 이렇게 일찍오나? 더군다나 난 시킨택배도 없는데....?
"누구세요?" 도어락의 파란 버튼을 눌러서 해제했더니 내가 먼저 열기전에 그쪽에서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그곳에는 누군지 알수없는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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