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내 앞에는 하얀 마스크를 쓴, 머리가 샛노란 쇼트컷의 소녀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손에는 커다란 캐리어 하나가 잡혀있었다. 그 아이는 추운지 몸을 부르르 떨고있었다.
"저....누...구세요?" "명수 김이 사는집, 아니야?" "맞는데....누구신데 반말이세요?" "맞네, 비켜. 나 들어가게." "저기요. 누구시냐니까요?" "명은 안이 말 안한거야?" 명은....안? 명은안이 누구지? 아, 설마 안명은? 우리 엄마이름인데.....? "저기, 너 누군데?" "Chris Bell. 됐지? 비켜." 뭐라는거야 얘가?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무슨 영어를 내뱉는다. "야, 누군데 그렇게 주절주절거려? 추워 얼른 문닫어!" 남우현이 춥다고 징징대면서 나를 재촉한다. 내가 뒤돌아서 곧 닫을거라고 얘기하려던 순간 이녀석이 내 팔과 문틈사이로 머리를 숙여들어갔다. "야...야! 너 뭐야?!" 저....저게 겁도없이 사내가 드글거리는 방에 막들어오다니.....그러다 무슨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말이야. "야, 너 진짜 뭐야?" 그 아이가 자연스럽게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침대위에 걸터앉는다. 그러더니 마스크를 벗더니 다시 나를 쳐다본다. "명은 안에게 물어보라니까?" 저....저 싸가지없는.... 그리고 이름은 왜 저따구로 불러? 양키년도 아니고 참....근데 뭔가 좀 이상한 애야. 여자애가 목소리도 걸걸하고 마스크벗은걸 보니 턱도 약간 각지게 튀어나왔다. 뭐 여자애가 저래.....남자애도 아니고 머리도 쇼트컷에......일단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싶어서 휴대폰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다가 남우현이 눈에 들어왔다. 남우현을 보니 녀석이 입을 헤- 벌리고 무언가를 쳐다보고있었다. 시선을 따라가보니....저 싸가지? 뭐야.....재수없게 보고 반하기라도 한건가? 아 그건 내 알바가 아니지..... 휴대폰을 찾아서 엄마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오래 걸리지않아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 "엄마!!!!" "야 깜짝이야!!" 『어매나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얘 누구야? 갑자기 우리집에와서 엄마이름 들먹이면서...." 『아아 성종이? 난또 누구라고』 "아니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엄마친구아들이라도 돼?" 『아아니- 느이 이모 아들이야. 그니깐 니 사촌. 너보다 한살 어려.』 사촌....? 사촌? 난 이런 사촌 한번도 못봤는데? 거기다가 나보다 한살이 어린애면 내가 모를리가 없는데.... "사촌은 무슨 사촌이야? 갑자기?" 『왜 예전에 미국으로 이민갔다던 이모 있잖아. 지은이이모. 어제 비행기로 아들만 한국에 왔거든. 사촌이고 또래니까 서로 얼굴몰랐던 형제끼리 좀 가까워지라고 일부러 거기로 보냈어.』 "아....아니 근데 엄마 아무리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여자애랑 같이 살라고 그래? 진짜 미치겠네. 그리고 지금 집에.....아우...!" "야, 누가 여자애야?" 갑자기 뒤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돌아보니 그 아이였다. 『...여자애라니?』 "뭐야.....그럼 여자애가 아니면 남자애라고?" 내가 놀란 말투로 통화를 이어가자 남우현이 나를 눈이 휘둥그레진채로 돌아보았다. 갑자기 나를 쳐다보니 순간 조금 움찔했다. 『그럼 여자애로 보이니? 참.....너도 이제 대학들어가니까 맘놓고 연애도 하고 그래라. 얼마나 외로우면 그러니....』 저게.....남자애라고? 빼빼말라가지고는 저게? "......" 『할얘기 다 했지? 이만 끊자, 엄마 지금 아빠가 빼먹으신거 있다셔서 가져다드려야되니까. 주말에 한번 올라갈께 아들!』 전화가 끊긴 뒤에 나도, 남우현도 멍하게 그 여자....아니 남자아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짐을 풀던 녀석이 시선을 느꼈는지 우리를 뒤돌아본다. "뭘봐?" "아아아아냐......아냐....." 분명 저건 나를 보고 한 말인데 남우현이 대답을 한다. 저거.....진짜로 쟤 보고 반한거 아니야? 라고 의심이 들었다. 짐을 풀던 녀석이 목에 둘린 검은 목도리를 풀어냈다.풀린 목도리를 보니 목에는 목젖이 툭- 튀어나와있었다. 이걸로 저녀석이 진짜 남자아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녀석이 꽁지로 묶은 머리를 풀어헤쳤다. 남자로서는 상당히 긴 길이의 생머리가 흩어졌다. 노란빛의 머리가 형광등의 빛을 받아서 백금색의 띄었다. 녀석이 짐을 푸르고 잠시 고개를 움직였다. "나 배고파. 저거 내가 먹는다?" 녀석이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 곳을 보았더니 카레가 얹어진 밥그릇이었다. 왜 남이 먹는걸 뺏어먹으려고......하냐라고 말하려는 순간 녀석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입이 벌어지더니 나와 그 밥그릇의 주인, 그러니까 또 다른 '나'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너네.....쌍둥이었어?" "어? 아아니 그게 아니고" "Oh my god......내가 이렇게 좁아터진 집구석에 3명이서 살아야한다니....." "야, 쟤도 나랑 같이살게되는건 맞는데 쌍둥이는 아니...." "쌍둥이야! 우리." ....? 저녀석이 지금....우리보고 쌍둥이라고 한거야? 쌍둥이라는 소리에 나와 남우현 동시에 또다른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 쌍둥이야. 얘기 못들었구나? 하여튼 이모도 참, 얘기좀 잘 해주시지." "Oh god......이런데서 어떻게 3명이 자?" 그리고, 여기있는 얘는 또 누구고?" 녀석이 우현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나는 그냥 친구야. 명수 친구." "그래? 그럼 다행이네. 나는 또 4명으로 불어난줄알고. 아무튼 나 배고파. 저거 내가 먹는다?" "야! 안돼. 니껀 없...." "이거 먹어!" 내가 '너 줄건 없어' 라고 말하려던 찰나에 남우현이 자기앞에 놓인 카레그릇을 그녀석 손앞으로 내주었다. 남우현의 눈을 보니 초롱초롱한게 딱.....말도안돼.... "나는 배 안고프니까....이거 먹어. 여기 숟가락 있어!" "흥흐흥 Thank you 잘먹을게~" 저 녀석....미국에시 살다왔다는 애가 카레를 생각보다 잘먹네? 입맛까다로운줄 알았더니.... 그러고보니 아직 녀석의 이름을 제대로 듣지못한것같다. 그래도 내 사촌이라는데 이름은 알아둬야지. "야, 너." ".....누구? 나?" "응. 이름이 뭐야? 네가 내 사촌이라는데 이름을 모르면 안되지." "아까 얘기하지않았나? Chris Bell." "아니 이상한 영어이름 말고. 한국이름." "아아, 난또. 이성종." "이성종....이...성종...." "이야....이름도 예쁘네...! 미국어디에서 살다왔어?" 남우현 저자식....아까부터 수상하단말이지. 쓸데잆이 말이나 걸고. 설마 저거 진짜 쟤 좋아하는거야? 에이 말도안돼.....남우현이 그럼....남자를 좋아하는 그런 애라고? 아닌데, 지금까지 사귄 여자애들을 보면 그럴 애가 아닌데....쓸데없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때 또다를 내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귓등에 대고 나에게 말을 했다. "너....쟤 저대로 내비둘거야?" "무슨소리야?" "저 둘말이야.....남우현이 보니까 뭔가 낌새가 이상한데." "음...근데 그게 왜?" "바보. 니 사촌동생이 잘못하면 남우현한테 잡힐지도 모르는데? 그 전에 니가 싹을 잘라야지. 슬쩍 떠봐." 듣고보니 그러네.....아 이거 안되겠어. 당장 남우현 심문시작. 내가 쓸데없이 이성종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남우현의 팔을 끌어 일으켰다. 남우현이 갑자기 왜그러냐며 뭐라했지만 반항하진 않았다. 내가 그대로 남우현을 끌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야, 너 솔직히 말해." "뭘" "너, 쟤 좋아하지." "뭐...뭐?" "너, 쟤보고 첫눈에 반했지? 그치?" "....." "너 게이였냐?" "무슨...!" "근데 왜그래. 쟨 남자잖아. 그럼 그게 게이지 뭐야?" "말조심해. 지금 어디서 엄한 사람 잡고있어?" "미리 말해두는데 안돼." "왜!" "봐라. 너 쟤 좋아하네. 너같은 바람둥이한테 맡긴다는것도 안되지만, 남자니까 더욱 안되지." "누구맘대로! 아아 지금 나랑 해보시겠다?" "뭐라는거야?" "너도 쟤 좋아하지? 그치? 그래서 일부러 나 떨어뜨려놓으려고...." "무,무슨소리야 지금? 쟨 내 사촌동생이니까 그...." "사촌은 얼어죽을....오늘 처음본 싸가지한테 금새 정이라도 들었냐? 아무튼 난 안돼." "야, 야!" 녀석이 화장실 문고리를 열고 나가는 바람에 화장실에서 나오게돼었다. 밖에서는 이성종이 아직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또다른 김명수가 나를 화장실로 다시 끌고 들어갔다. "아씨, 왜!" "어떻게 됐어?" "뭐가" "남우현." "야, 너때문에 걔가 나도 이성종 좋아하는줄알잖아!" "무슨소리야?" "내가 걔를 이성종한테 떨어뜨리려고 했더니 내가 이성종을 좋아해서 자기를 견제하는줄안다고!" "아이 진짜....아 왜 그렇게 얘기ㅎ..." 짜증이 나서 그냥 나와버렸다. 아직도 헤벌레한 남우현이 꼴뵈기싫었다. "야 남우현, 너 가." "뭐?" "너 가라고. 할것도 없이 여기서 뭐할건데 얼른가." "야, 기껏 생각해서 와줬더니....." "너 여기와서 하는게 뭔데? 얼른 가!" "치사한 자식, 역시 너도지? 그래 드럽고 치사해서 사라져준다 흥." 남우현이 삐졌는지 단박에 일어나서 겉옷을 챙겨서 나가버린다.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어떡하겠어. 둘은 절대 안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