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소문이라는 게 참 사람 마음대로 안된다는 건 알아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라고 해봤자 며칠 지나지 않아 복도에서 나를 힐끗 힐끗 쳐다보는 시선의 까닭을 알게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득한 사실이었다. 고등학생들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터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영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제대로 된 단어가 안 떠오르는 걸 어떡해. 또 어디서 타고 들어온 소문을 주워와서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여학생들. 그 중에는 이미 알고 있는 애들이 반, 뭔데 뭔데 거리는 애들도 반. 수업시간에 그렇게 거울 꺼내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듣지. 여학생 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창가 주변에 너저분하게 올려진 교과서며 체육복이며...어지럽다, 정말. "진짜에요? 쌤 너무 해요." 반장이라는 애는 그저 말없이 웃으며 깍지를 끼고 있었다. 나름 분위기 잡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본인도 궁금한건지, 술렁거리는 반 분위기를 잠재울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는 것 같다. 자, 다들 토론 대형 만들어라. 수행평가 날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분명 지난 시간에 다음은 토론하는 날이라고 수업 종치기 전에 미리 책상들 뒤로 빼 놓으라고 얘기를 했었는데...그새 까먹었는지 연신 소문에 대해서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여자 반이 이정도인데 남자 반은 오죽할까. 벌써부터 쏟아질 질문 공세와 넘쳐날 드립에 눈 앞이 어질했다. 다들 조용. 한 손으로 교탁에 출석부를 탕탕탕 내리치며 이 소란스러움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수업을 진행한다고 해도 계속 저들끼리 떠드느라 엉망진창일 것 같았다. "그래, 왜. 소문에 뭐라고 하든?"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이제는 아예 교탁에 팔꿈치를 세워 턱을 괬다. 어떻게 보면 별로 그다지 중대한 일도 아닌데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애들을 보자니 역시 10대는 10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느리게 눈을 끔뻑거리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가 기혼이라는 건 비밀이었는데, 컨셉이 들통나고 말았으니. "저희한테는 결혼했다고 얘기도 한 번 없으시더니.." "맞아요, 임신이라니요!" "아아, 다 됐고..진짜에요? 네?" "쌤! 애기는 남자에요, 여자에요?" 턱을 괸 상태로 가만히 눈동자를 굴려 벽을 쳐다보았다. 벌써 수업 시작한지 10분이나 지났네. 이젠 그냥 뭐든, 어떻게든 답이나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이대로 수업 시간을 까먹으려는 귀여운 계략에 넘어갈 수는 없지. "흠..." 헛기침을 두어 번 하자, 뭔가 나올 것 같다며 술렁거리던 아이들이 질문을 멈추고 다 나를 쳐다본다. 맞아, 나 결혼했어. 비어있는 네번째 손가락이 시린 느낌이 든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리 볼 것도 없는 손을 애써 꼼지락거리며 지나치게 들떠있는 지금 이 분위기를 가라앉힐 생각을 하니 그닥 즐겁지 않았다. 애초에 처질까봐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게 큰 이유이긴 한데 지금이라도 입을 열지 않으면 헛소문이 더 부풀려질 것 같아서, 그건 위에 있는 아내에게 몹쓸 짓을 하는 거라고. 시간이 꽤 지나서인지 코끝이 시큰거리는 일은 더이상 없었다, 기일이라면 모를까.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선생님이 학생한테 한다는 게 여전히 꺼림칙했다. "...사별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헛소문은 넣어 둬. "...아." 이런 분위기가 걱정되고, 싫었던 것이다. "토론은 다음주로 미루자, 다들 교과서 104쪽 펴 봐." 적어도 이 소식은 부풀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내 작은 바람이 되었다. 이번 수업 끝나면 점심 시간이니까...다음 남자 반에서는 같은 얘기를 또 꺼내진 않았으면 좋겠다. 얘들아, 이왕이면 점심시간에 얘기들 좀 하고 다녀줘. 마음 속에 있는 말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입가에서 맴돌았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소와 함께. "석진 쌤, 이번에 선생님 반 차례래요." "네?" "그거, 전학말야." "아, 하긴...저희 반에서 전출이 두 명이나 있었죠." "표시는 해 뒀어요?" "네, 출석부 담당하는 학생한테 맡겨뒀어요." "어째 이번에는 막 좋은 학교에서 오고 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이를 닦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바로바로 닦지 않으면 영 찝찝한 게 수업 시간에도 신경이 쓰여서 어쩔 수가 없다. 워낙 말을 많이 하다보니 당연한 일인 건 맞는데, 업무가 밀릴 땐 깜빡하기 일쑤다. 그럴 땐 리스테린이 최고지. 학교 앞에 카페라도 있으면 잠깐 나갔다오겠지만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중학교랑 고등학교같이 학교가 두 곳이나 있는데도. 얼마 전에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석식 시간마다 나가서 매출을 올려줬던 슈퍼마저도 나가버리는 바람에, 근처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야 뭐라도 사 먹을 수 있게 됐다. 여러모로 불편하단말이야, 그렇게 크게 차지하던 게 한 순간 훅 사라지면. 안 선생과 복도에서 만나 교무실까지 걸어오며 전학생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다. 이번에 또 우리 학교로 온다는 얘기같은데, 2학기 초반이니 어지간히 나가고 들어오는 일이 잦은 것 같다. 아까 들어갔던 여자 반에서도 새로운 얼굴이 보이더만. 시큰둥한 얼굴을 하며 교무실에 다다랐을 때, 안 선생은 반에 전달할 사항이 있다며 먼저 내려가보겠다고 웃었다. 그래요, 나도 따라 웃으며 익숙하게 내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어째 이번에는 막 좋은 학교에서 오고 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 그래도 나름 이 지역에서 내 입으로 말하긴 우습지만, 일반고 중에는 으뜸이라 외고나 자사고에서 조금 주춤하던 애들이 오는 경우와 문과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과더라, 하는 스토리를 가지고서 전학 오는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설마 강전은 아니겠지. 에이, 특성화고면 근처에 다른 곳도 많... "....지가 않구나." 아, 강전인가 그럼. 벌써부터 되도 않는 걱정에 책상에 고개를 박고선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린다. 강전인 경우가 뭐가 있더라? 아, 요즘에는 학교 폭력이 있었지. 그놈의 학폭은 진짜. 교육을 해도 듣지도 않는데 자습 시간 빼면서까지 왜 하는 건지. 아니야, 다 교육청에서 시켜서 하는 거라 어쩔 수가 없는가지..그놈의 방침은 진짜! 아니야, 학폭 말고 또 있던가..? 그렇게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점점 커질 무렵, 책상 위에 결재 파일과 서류 봉투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 이제서야 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아니야." 새로운 얼굴의 정보가 적혀있는 파일을 탁 하고 양손으로 덮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개과천선했을 수도 있지, 그래."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훨 나을 것 같았다. 나에게도, 그리고 곧 마주할 녀석에게도. "...선입견을 버리자, 선입견을 버리자, 선입견을..." -알립니다, 예비종이 쳤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로... 선입견을... 아. 서둘러 노트북과 충전기를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1반이네, 땀 냄새 엄청 나겠구만. 벌써부터 나는 것 같은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면서 녀석들의 질문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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