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거 꼭 해야돼?"
"얘는 이사했으면 떡을 돌려야지. 요즘 사람들 그런다고 너도 그러는 거 아니다. 다 도와가며 살아야지 너 이런 게 나중에 다 복으로 돌아온다고."
옆 집에 이사를 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게 고등학생이라니. 꽤나 시끄러울 거 같았다.
부모님의 걱정이 담긴 잔소리가 끊이질 않는 거 보니 자취하는 건가.
그때 그 고등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쳐다보는 눈빛이 꽤나 매서웠다.
둘러보던 걸 멈추고 집에 들어갔다. 절대 그 고등학생한테 쫀 거, 아니다. 내가 문을 닫자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뭐지, 내가 쳐다보는 게 기분 나빴나. 요즘 고등학생들은 어른이고 뭐고 없다던데. 아 방금 들어왔는데 없는 척 할 수도 없고 어떡하지.
"아저씨!"
"나 아저씨 아닌데!"
아저씨란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문을 열었나보다.
"요."
분명 아저씨라고 했고 심지어 교복까지 입은 고딩에게 쫄아 존댓말한 거 절대, 아니다. 단지 예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사왔어요. 202호."
은박지접시에 올려져있는 시루떡을 내민 고등학생은 세상 모든 게 불만인 듯 했다.
"아, 예.. 고등학생이신가봐요?"
"네. 오세훈이요. 아저씨는요."
지금 나한테 질문하는 건가.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에 순간 의아했지만 뒷 말을 하지 않는 걸로 보아 내게 질문을 한 것인 것 같았다.
"아, 저 나는 아니, 저는…."
"반말하세요. 보시다시피 고등학생인데. 설마 중학생은 아니시죠."
"어? 아, 그래. 난 스물 일곱이고."
"스물 일곱이요?"
자신을 세훈이라 소개한 아이는 내 나이를 듣고는 다시 되물어왔다.
"김준면이야, 반갑다."
"와, 진짜 아저씨였네. 본인 나이 맞아요? 27?"
순간 아저씨라는 말에 또 한 번 욱했지만 몇 번 안 볼 고등학생이니 그러려니했다.
"많아봤자 스물 넷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는 게 어쩌면 자주 볼 것 같기도 했다.
"연희야! 박연희! 오빠가- 잘…."
실연의 아픔은 생각보다 컸다. 다른 남자가 좋다며 떠나가버린 내 여자친구는 매정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맺고 끊음이 정확한 사람인줄은 정말 몰랐다. 내 생일 때 선물해주는 십자수의 실만 잘 끊는 줄 알았더니.
아, 술을 마셨더니 번호가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렇게 한참을 앞에서 있는데 202호 문이 열렸다.
"아저씨 뭐해요."
"세훈아, 네 말대로 난 아저씨인가봐. 난 늙었나봐. 그래서 여자친구도 날 버리고 이젠 우리 집도 날 버리나봐 세훈아."
술을 마셔도 발음은 정확한 편이었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은 나와 술을 마시기를 더 꺼려했다.
시끄러운데 발음은 정확해서 더 듣기 싫다고,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없다고.
"아저씨 술 마셨어요?."
"연희야! 오빠가 잘못했어! 내 생일에 십자수받고 네 생일엔 가방 사줘서 잘못했어! 앞으로는 가방도 사주고 옷도 사줄게!"
"와, 아저씨 이런 캐릭터였어요? 이거 찍어도 되죠?"
"연희야! 오빠는 널 사랑한다! 알지!"
"대박, 내일 이거 보고 주무실 때 이불 뻥뻥 차시겠네요."
재밌는지 계속 웃으며 동영상을 찍는 세훈을 보니 나도 신이 나기 시작했다.
"세훈아, 아저씨 찍어? 그래 열심히 찍어! 이것도 찍어! 기브잇투미 오 베이비 기브잇투미-"
내가 노래방가서 걸그룹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 연희는 참 좋아했는데.
"서른이 넘기전에 결혼은 하런지히"
여리여리한 가성이 포인트인 부분을 강조하여 불렀더니 세훈이 똑같다며 좋아했다.
"와 아저씨 존나 웃긴다 진짜."
"야! 개새끼야! 술먹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갑자기 윗집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마 우리한테 하는 말 같았다. 세훈이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날 일으켜세웠다.
"아저씨, 일단 우리 집 가죠."
"우리 집? 201호인데, 세후니네는 202호인데?"
아마 그렇게 세훈이네 집에 들어 가 잠이 든 것 같았다.
온몸이 뻐근했다. 속은 뒤집어 질 것 같았고 눈은 떠지지도 않았다. 이불은 편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이 느껴졌다.
"아저씨, 일어났어요?"
"으..어, 지금 몇 시야?"
"7시요."
"그래, 콩나물 국 좀 끓여놔."
"아저씨, 지금 여기가 어딘 줄은 알아요?"
"어?"
생각해보니 난 혼자 살았다. 그럼 얘는,
"야! 너 누구야! 뭐야? 오세훈?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세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곤 주변을 살폈다.
나 또한 그를 따라 눈동자를 굴렸고 이 방이 내 방이 아니라는 것과 어제 내가 춘 씨스타의 춤이 생각났다.
"하하. 내가 왜 여기있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척을 했다.
"아저씨 어제 하나도 기억 안 나요?"
"어? 글쎄 잘 기억이 안 나네."
고개를 끄덕거리는 세훈을 보니 믿는 눈치였다. 다행이도 눈치는 없는 것 같았다. 세훈은 핸드폰을 꺼냈다.
"아저씨 내가 재밌는 영상이 있는데 그거 같이…."
"야! 너 그거 당장 지워!"
그 이후로 세훈과 많이 친해졌다. 서로의 집에 자주 놀러가기도 했고 집에 있는 날은 대부분 세훈과 지냈다.
가끔 세훈에게 넌 친구가 없냐고 물어보면 세훈이는 내게 똑같이 질문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아저씨랑 있으면 돼요.
"아저씨, 라면 좀 빌려주세요."
"그래, 아 맞다. 그리고 아저씨 오늘 약속있어."
"네, 저 갈게요."
인사에 대한 내 대답은 듣지 않고 세훈은 그냥 갔다. 나도 약속시간이 다가와 차키를 들고 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술을 먹다 내게 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야, 너 박연희랑 헤어지고 연애하냐?"
"뭐? 무슨 개소리야 이새끼는."
"아니 아까부터 핸드폰 보고 실실 쪼개는 게."
아까 세훈에게서 온 카톡을 말하는 것 같았다. 별거 없는 내용이었는데.
"아니야, 연애는 무슨."
"그래? 그럼 소개팅할래? 우리 회사 직원인데 진짜 예뻐. 한 번 만나기라도 해봐."
"됐어."
"너 지금 뭐라그랬어? 설마 됐다고 한 건 아니지?"
"맞는데."
"와, 야 니가 이런데도 연애를 안 한다고? 누구냐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거 아니야, 없어."
"야 우리가 교복이나 입고다니는 좆중딩이냐 그런 거 부끄러워하게 아 뭔데, 누군데?"
"그런 거 진짜 없다니까?"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모르냐. 지금 니 반응을 봐선 애인도 없고,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
"니가 좋아하는 걸 모르네, 나이가 몇인데 순진하다 순진해."
"너 자꾸 개소리할 거면 집에 가라 김민석."
"개소리는 네가 하는 중이시겠죠."
그래놓고는 내 입으로 청양고추 한 주먹을 쑤셔넣었다.
"야! 이 씨발새끼가 진짜."
물 한 통을 원샷하는 내가 웃겼는지 들고있던 상추까지 집어던지며 웃는 김민석을 째려봤다.
조금 진정하고 물을 컵에 따라 마시게 되었을 때 김민석은 주변에 누가 없는지 내게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정말 우습게도, 생각났던 건 오세훈이었다.
"오세훈, 안전벨트."
"아저씨. 아저씨가 사는 거 맞죠? 그러니까 아웃백가는 건 어때요."
"싫어 인백갈 거야."
"아 씹…."
정말 작게 중얼거리는 세훈이었다. 아마 순간 주체하지 못한 화가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8살은 형인데.
"아저씨."
"그래, 8살 어린 고삐리한테 욕듣는 아저씨야."
"아저씨를 보면 가끔 삐삐가 생각나요."
지금 나 구세대같다는 건가. 세대차이 못느끼게 많이 노력하는데.
"치고싶어요."
"…."
"농담인 거 알죠. 아저씨 개그가 제일 웃겨요."
역시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는 애였다.
끝까지 우겨 삼겹살을 먹었어야했는데. 패밀리레스토랑에 둘이 온 남자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세훈도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는 못했는지 많이 당황스러운 것 같았으나 이미 들어 와버렸다.
"두 분이세요?"
스마일을 가득 단 알바생 에이미가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저씨 체할 것 같아요."
"네가 오자했으니까 다 먹어."
"네."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민석이였다.
"어, 왜."
ㅡ 저번에 말한 거 소개팅.
"소개팅?"
앞에서 날 쳐다보는 세훈이의 강력한 삼백안이 느껴졌다.
"먹고있어, 아저씨 전화 좀 받고올게."
ㅡ아저씨? 와 야 몇 살 만나냐. 소개팅 안 한다는 이유가 있었네 예뻐? 몇 살이야?
"닥쳐, 그런 거 아니니까."
ㅡ야 너 진짜 안 받아? 그럼 나 다른 사람한테 소개해준다.
"그러던지 여튼 난 절대 안 받는다. 끊어."
자리에 돌아가 앉을 때 까지 세훈이의 강력한 삼백안은 날 쳐다봤다.
"아저씨 소개팅해요?"
"어? 아, 친구가 자꾸 받으라고 하네."
"그래요?"
"응, 다 먹었어? 이제 그만 일어날까? 늦었다."
"그래요 그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세훈이는 말이 없었다. 내가 뭐 실수한 게 있었나. 딱히 없었던 거 같은데. 아니면 졸린가.
멍하니 창밖을 보는 걸 봐서는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세훈아, 스시 먹다가 이에 끼면 뭔 줄 아니."
"…."
"ESC."
"…."
"하하. 이건 좀 재미없었나."
분위기를 풀어보겠다고 한 말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 같았다. 나름 준비한 건데, 진짜 재밌는 것 같은데 이거는.
"그럼 돌잔치를 영어로하면?"
"…."
"락페스티벌."
"…."
"이것도 별로야? 그럼, 다른…."
"아저씨."
"어? 왜. 말만 해 세훈아."
"그 소개팅이요, 안 하면 안 돼요?"
"소개팅?"
"네. 그 연희인가 년희인가 그런 사람 또 만나면 어떡해요?"
"어? 아니 어차피 그 소개팅은…."
"아 주제 넘은 거 아는데 신경쓰여서 못있겠어요. 아저씨 그거 진짜 하지 마세요."
"아니 세훈아, 어차피 그건…."
"그럼 차라리 제가 먼저 만나볼게요. 아 이건 좀 오바인가."
어차피 그 소개팅은 나가지 않는 거라고 말을 해야하는데 말 할 틈을 주지 않는 세훈은 계속 혼자 나아갔다.
"아, 아저씨 막 무슨 집안들끼리 결혼이 약속되어있고 막 그런 거예요?"
"세훈아!"
"아, 제가 주제넘었죠. 죄송해요."
"아니, 나 그거 소개팅 안 해."
"네?"
"그거, 안 한다고. 원래 안 하는 거였는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한 번 나가볼까 싶기도한데."
"아니요. 절대 안 돼요."
"그래."
세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ㅡ 아저씨, 안녕히 주무세요.
ㅡ 오늘 저녁 감사했어요.
자기 전에 세훈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꽤 오래 전에 보낸 것 같은데 씻느라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 너도 잘자고. 마침표까지 찍은 문자를 보내자마자 1이 사라졌다. 얜 잠도 안 자나.
화면을 한참바라봐도 새로운 문자는 오지 않았다. 잠이나 자야지.
'너 박연희랑 헤어지고 연애하냐?'
자려고 누운 나의 머릿속을 민석의 말이 헤집고 다녔다.
8살 어린 고등학생이랑 나랑? 심지어 남자랑? 그냥 친한 이웃사촌일 뿐이라고,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조차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소개팅 제안을 듣고 왜 세훈이 생각난 갓일까. 대체 왜. 세훈은 왜 내 소개팅을 그렇게 막은 것일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들을 누르고 잠을 청했다. 내일이면 없어질 생각들이었다.
다음날 조금 늦게 일어났다. 어제 잡생각으로 잠을 설친 탓이었다.
급하게 문을 나섰다. 지각은 면할 것 같았다.
회사일이 갑자기 바빠졌다. 어쩐지 최근 여유롭다했는데 결국 다 일로 돌아왔다.
5일동안 야근을 안 한 날이 없고 심지어 회사에서 잔 날도 있었다. 주말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일주일동안 세훈을 보지 못했다.
세훈또한 고3 방학을 맞아 열을 올리는 중인 것 같았다. 가끔 오다가다 만나거나 문자 몇 번을 주고 받는 게 다 였다.
그러는 일주일동안 내게 큰 생각의 변화가 생겼는데, 내가 오세훈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랬다.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곧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사건의 시작은 3일 전 새벽이었다. 세훈에게 뜬금없는 문자가 왔었다.
ㅡㅈㅇㅎㄴㄱㄱㅇㅇ
이게 뭐야? 문자를 보낸 내게 오세훈은 대답이 없었고 난 한참을 핸드폰을 잡고 씨름하던 난 포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내가 낙서하던 종이가 보였다.
좋아하는 것 같아. 오세훈. 설마.
끝끝내 모르겠다고 보냈으나 답은 나왔다.
생각해보면, 오세훈은 어느 순간 내게 찾아온 게 아니다.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물들어있을 때였다.
그래서 인정할 수 없었고 자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든 생각은 피해야겠다였다.
오세훈은 위험했다, 그것도 아주.
내가 잠시 미친 것 같으니 그 때 동안 피해다니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세훈 또한 마찬가지로.
일이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세훈을 피해다닌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
세훈과 문자도 이젠 거의 하지 않았다. 오늘은 평소보다 늦게 들어갔다.
계단에 누가 쪼그리고 앉아있었다.세훈임을 알아차린 난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지나갔다.
"아저씨."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나를 세훈이 불렀다. 갑작스러운 부름에 깜짝놀랐다. 게다가 나를 부르는 세훈의 목소리에서 평소답지 않은 진지함이 묻어나왔다.
"그만 인정하죠."
손잡이를 잡은 내 손이 살짝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말이야 세훈아, 아저씨는 잘 모르겠…."
지금은 위험하다. 이 상황을 꼭 피해야했다.
"아저씨가."
"저기 세훈아, 아저씨가 지금 피곤해서 나중에 다시 얘기하면…."
"나 좋아하는 거요."
안 될까. 내 말 끝이 마무리 되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졌다.
"....."
"나도 아저씨 좋아하고."
"....."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요. 서로 삽질하는 거."
들어버렸다. 애써 외면하려던 내 진심도, 세훈의 진심도.
"난 아저씨랑 연애를 좀 시작해볼까하는데, 아저씨는요?"
세훈이 눈을 접고 웃으며 말했다.
아, 완벽한 세훈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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