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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종인. 어디 갔다 와?”

, 경수형 호출…….”

왜 점심 때 부르고 지랄이야. 본인이 직접 부르던가."

 

표정이 잔뜩 우겨져 있다. 풀어주고 싶다. 그 특유의 바보 같은 웃음을 보고 싶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내 것을 안고 싶다.

 

"가자, 밥 먹으러.”

…….”

 

아직 그럴 용기는 없었다. 천하의 오세훈이, 하늘 아래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던 오세훈이 자기 맘대로 못하는 게 있을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자꾸 뒤쳐지는 걸음에 팔을 잡아끌고 갈까 하다가 티나지 않을 정도로 내 발걸음을 늦췄다.

 

"얼굴 좀 펴."

"? ……. 많이 안 좋았어?"

 

gray새끼야. 차마 입 밖으로는 내지 못할 말을 삼키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자기 손으로 얼굴 여기저기를 만지며 펴댄다. 미치겠네.

 

"뭐해."

"주름 생겼을까봐!"

 

천진난만한 눈을 뜨며 나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니 귀여워서 미칠 것 같다. 마음과는 반대로 그게 뭐냐, 하며 핀잔을 준 나는 여전히 얼굴에 붙어있던 손을 떼어내어 잡아끌었다. 군말없이 따라오는 김종인에 나는 손이 서서히 땀으로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길어져버린 배식줄을 가벼이 무시한 나는 앞쪽에 서 있던 익숙한 얼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 왜 늦었어?"

"찬열형 때문에요."

"도경수호출? 박찬열 걔 또 밥 안 먹는다던데. 배도 안 고프나. 도경수가 간식을 들고 다니는 거야 뭐야."

 

분명 한마디 받아줬을 뿐인데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종대형을 보며 저 입을 닥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다가 내 손목을 붙잡는 손길이 느껴져 뒤를 돌아봤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울상을 한 김종인이 나를 처량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 손 아직도 잡고 있었나. 아차싶어서 재빨리 손을 놔주자 조금 아팠던건지 손목을 가볍게 문지른다. 으으, 어쩌지...

 

"세훈아."

", 미안. 아팠어? 일부로 그런 건 아닌,"

"줄 서서 밥 먹으면 안 될까...? 나 애들 눈치 보여..."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2학년 줄. 나는 중학교 때부터 해온 일이라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 녀석은 아니었나보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끝없이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과 차마 앞에서 뭐라 하지는 못하고 눈빛으로만 우리를 원망하고 있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다시 뒤로 가기엔 쪽팔린데. 한번만 여기서 먹자할 심산으로 김종인을 다시 바라보니 여전히 울상인 얼굴이 마음에 켕겼다. 그렇다고 저 뒤로 갈 순 없잖아.

 

"…….알았어."

"가자."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내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몸을 돌려 사람들 틈 사이로 총총 사라지는 모습을 보다 혹여 놓칠세라 뒤에서 들려오는 찡찡은 무시한 채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찰랑거리는 갈색머리를 뒤쫓았다. 쪽팔리게 몇몇이 의아한 눈길로 날 바라보는 게 느껴져서 대충 노려봐주고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녀석에게 향했다. 짜증나.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되는건데. 내가 하라는 대로 시키고 싶은데, 완전 역관광이잖아.

 

"근데, 세훈아."

"?"

"...경수형. 진짜 그대로 둬도 돼...?"

 

이 새낀 눈치도 없나. 눈앞에 없는 그 형은 걱정돼도 내 기분 잡친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건가. 아니면 평소 내 인상 때문에 티가 안 나는 건가 .

 

"냅 둬. 지들 일이지."

"근데 이상하잖아……. 그런 일 당하고도 멀쩡하게 지낸다는 게."

"멀쩡해보여? 그 둘이?"

"아냐……? 어제는 하교도 같이 하던데……."

"그래서 더 정상이 아닌 거야. , 넌 내가 밥까지 뒤에서부터 줄서서 먹어주는데 고맙단 말 한마디가 없냐?"

"당연한 건데?"

 

젠장, 할 말이 없다. 그래, 어차피 평범한 애 끌어들인 게 나니까.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꽁하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열불이 나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더니 어느 틈엔가 앞에 서있던 애랑 신나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김종인을 보니 배알이 뒤틀렸다. 저걸 어떡해야 될까……. 가만히 생각하며 얘기중인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자 나와 눈이 마주친 그 학생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눈길을 고정시켜 빤히 바라보니 몸까지 뻣뻣해지나보다. 신나서 떠들며 흔들거리던 몸뚱이가 멈췄다.

 

"오세훈!"

"."

"왜 애 겁을 줘?"

"내가 뭐했다고."

"아니면 얘가 왜 굳는데!"

"아냐, 아냐, 아니니까 싸우지 말고 종인아, 이따 학원에서 봐!"

"아니라잖아."

 

. 난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입술을 쭉 내밀고 나를 노려보려고 하는 그 눈빛에 주머니에서 손을 빼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끝에 닿았던 입술의 감각이 선명하다. 부르르 얼굴을 흔들어 털어대는 김종인과 달리 나는 손을 고이 주먹 쥐어 주머니에 도로 넣어버렸다. 삐진 체를 하는 건지 삐진건지 내 쪽에서 몸을 돌린 김종인은 앞에 끝도 없이 늘어선 배식줄만을 바라보며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 아니다라는 자존심이 발동한 나 역시도 말 걸 생각은 안 한 채 동그란 뒤통수만 바라봤다. 내심 뒤돌아서서 눈길이 마주치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급식을 다 받을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보다 좀 더 늦게 받아 등에 붙어버릴 것 같은 뱃가죽을 느낀 나는 앞서가던 김종인을 지나쳐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데이트는 잘했냐?"

"닥쳐요."

 

역시나 예상대로 바로 깐족대는 종대형을 무시한 나는 주변 눈치를 보며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는 김종인을 눈길로 불러들였다. 망설이는 듯한 발걸음으로 내 앞에 앉은 김종인은 잔뜩 위축돼보였다. 알고 보면 찌질한 형들인데 뭐가 무섭다는 거야. 나를 잠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김종인은 고개를 숙여 밥을 먹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무어라 떠들던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초반에 도경수형을 걱정하면서 쳐져있던 모습이 겹쳐 보여 더욱 마음에 걸렸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쳐다보며 밥을 먹다가 결국엔 입맛도 없어져버렸다. 그렇다고 자리에서 일어난 건 아니고 억지로라도 다 먹긴 했지만. 나도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지. 계속 끌려 다니는 건 싫다. 저 까만 녀석이 뭐가 좋다고. ...그럼 대체 왜 데리고 다니는 건데.

 

"...김종인. 체했냐?"

"? , ..."

"나 다 먹었는데. 가자."

"? , 잠까……. 아니, 아니다. 가자."

 

평소 같았으면 급식시간이 끝날 때까지 여기는 내 자리요 너희는 쩌리들이니 하며 다른 무리와 시끄럽게 떠들었을 테다. 근데 저 밥도 제대로 못 쳐 먹는 놈 하나 때문에 도무지 신경이 쓰여야지. 본인을 무리에서 빼내주려는 걸 눈치 챈 건지 김종인은 아직 절반정도밖에 채 먹지 못한 급식판에 눈길을 한 번 주곤 나를 따라 일어섰다. 뒤에서 '오오~ 얼레리꼴레리.'하는 소리들에 가볍게 엿을 날려주고 먼저 급식실을 빠져나와 김종인을 기다렸다. 찌질이들. 엿 한 번에 조용해지냐.

 

"아으, 배고파……."

"매점가자."

", 니가 쏘는 거야?"

"각자 돈."

"...치사해."

  

뭐가 치사하단거야. 난 너 때문에 뒤에서 먹는 개 쪽을 당했고 너 때문에 입맛도 떨어졌고 너 때문에 떠들지도 못하고 나왔는데. 솔직히 면전에다 대고 한 번 쯤은 저 말들을 말하고 싶었다. 다른 애였으면 말하고도 남았겠지. 근데 넌, 매점으로 향한다는 이유 하나로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넌, 나보다 키도 작은 주제에 분위기는 좋은 넌... 말 못하겠다.

 

 

--*-*-*--

 

 

"오오, 오세훈! 웬일이냐, 니가 매점을 다 오고?"

"닥치고 먹던 빵이나 계속 쳐먹어."

"넌 형한테 쳐먹어가 뭐야. 형들 안녕하세요!"

  

젠장, 왜 하필 저 인간들이야……. 복잡한 심정으로 도착한 매점엔 다행히 평소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학교가 큰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하고서 조금은 마음이 밝아졌었는데. 받아주는 이 없어도 혼자서도 잘 떠드는 변백현이랑 그 옆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도경수형이 있음으로서 내 기분은 바닥을 긁다 못해 뚫어버릴 기세였다. 최대한 못 본 체 하며 매점 안으로 들어서려했지만 눈치 없이 끼어든 변백현 때문에 남은 점심시간을 둘이 보내려던 생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향수 뿌렸어요?"

"탈취제."

"……."

"."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빵을 오물거리며 김종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도경수형은 흥미가 떨어진 건지 뭔지 이내 고개를 돌리고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보이진 않지만 잔뜩 긴장해있던 김종인은 옆에서 깔짝대는 변백현의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도저히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저 형들 또 저래... 한 명은 관심 없으면서 사람 빤히 쳐다보고, 한 명은 쉬도 때도 없이 떠들고. 도저히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들이었다. 김종인은 저렇게 자연스러운데. 또 짜증난다.

 

"또 왜!"

"안 먹어?"

"어이구, 질투났쪄?"

"닥쳐."

"아 좀 형 대접하라니까."

 

하루에 두 번이나 이럴 줄이야. 신경질적으로 김종인 팔을 잡아끌고 매점 안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칭얼거리면서도 잘 따라온다. 그럼에도 내가 꿀리는 거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찬열형이랑 경수형. 또 한 거겠지...?"

"뻔하잖아. 뜨겁게 한 판 했겠지."

"...안 말려도 되는 거 맞아?"

"중학생 때부터 저랬어. 저 형도 즐기는 거야."

"둘이 안 사귀잖아."

", 내 알바 아니야! 내 앞에서 딴소리 좀 그만 해."

 

, 큰일 났네. 분명 눈빛은 '?'라고 하는 눈빛이었다. 어쩌지. 딴소리 좀 그만하라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얘길 한거야... 속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김종인은 다행히 눈 앞의 수많은 먹을거리로 관심을 돌렸다. 그래도 짜증냈던 거 사과는 해야되는 거겠지.

 

"...미안."

 

, 자존심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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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드디어 세종이들 등장했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잘보고갑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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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ㅜㅜㅜㅜㅜㅜㅜ질보고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세종이들 귀여워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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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잘보고가여ㅎㅎ 드디어 세종이들 등장이네여ㅋㅋㅋ 너무 귀여워옂ㅋㅋㅋㅋ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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