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필요한 시각 04:00 AM
w. 시린
문이 쿵, 하고 닫히고, 태형이 억세게 쥐고 있던 지민의 손목을 놓은 채로 그대로 주저앉았다. 욕을 낮게 읊조린 그는 마른 세수를 하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민이 야, 야, 어디 아퍼? 하면서 그를 툭툭 치자, 혼란스러운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태형에 입을 꾹 다물었다. 벽을 집고 일어나더니, 거실 한가운데 있는 흰 소파에 몸을 내던지는 그를 지민은 바라보기만 했다. 쟤 진짜 몸이 안좋은가, 아까부터 왜저러지... 하며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태형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여전히 그 혼란스러운 눈을 하고서는 지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널 어떻게 하니, 하는 게 다 얼굴에 써 있어서 그런지 지민은 약간 기분이 나쁠 뻔했다.
"야, 박지미니"
"왜"
"니..."
"아 왜!"
말을 꺼내다 말고 입맛을 쩝, 하고 다시는 그가 답답했는지 지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할 말 있다며, 니 입맛 다시는 소리 들으러 온 거 아니거든. 하며 그가 다음 말을 재촉하자, 태형이 으으아아!!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더니 저도 바닥에 내려와 소파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지민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담배를 찾는 듯, 주머니를 뒤졌지만 아까 편의점 앞에 그것을 두고 왔는지 주머니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후, 하면서 갈 곳 잃은 손을 잠시 떨던 그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물었다. 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야 해. 듣고 있었어-, 새끼야. 하, 씨발 진짜 뭐 부터 말해야 하지. 고백하는 것만 아니면 다 들을 수 있어. 내가 미쳤다고 니한테 고백을 하냐. 아 썅, 그렇긴 해.
"단도직입적인 게 좋냐, 아님 서론을 듣는 게 좋냐"
"요점부터 얘기해 봐, 필요하면 서론 듣게"
"니, 종국이? 종.. 걔랑 언제부터 알았어?"
"종국이? 아, 전정국?"
"그래, 뭐 정국이든 종국이든 걔."
윤기 형 사라지고 나서, 뭐 어쩌다 보니? 왜 그런 걸 물어보느냐는 얼굴로 태형을 바라본 지민이 야, 손 물지 마. 하며 태형의 손을 그의 입 안에서 쳐냈다. 그래서, 종국이랑 친해? 정국이라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친해? 친해.
"그럼 친하게 지내지 마."
"뭐?"
그게 내 할말이야, 종.. 아 몰라 암튼 걔랑 친하게 지내지 마. 왜 그러는데? 아, 몰라 일단 친하게 지내지 마. 아 왜 그러냐고. 내 말 들어, 박지미니. 아니, 이유가 있어야 할 거 아냐, 왜 그러냐고 묻잖아 지금.
지민의 입에서 쉽게 긍정의 말이 나오지 않자, 태형이 으아! 하며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쿵, 하고 찧었다. 얘 정말 어디 아픈가, 하고 머리를 짚어보려 지민이 손을 뻗자,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번쩍, 하고 눈을 떴다. 씨발, 놀래라. 야. 왜. 그냥, 이라는 말로는 못 넘어가? 뭐를? 그냥, 이유 없어도 같이 안 다니면 안 돼? 응 안 돼. 왜? 윤기 형 없을 때, 걔 아니면 다닐 사람도 없었어. 그게 다야? 그게 다냐니, 걔 말곤 친구도 없었다니까?
"서론, 듣고 싶어?"
"응, 뭐. 필요하다면"
그러면, 너 나를 잘 보고 있어봐. 다른 데 보지 말고, 나를 봐봐. 하며 어깨를 턱, 잡는 태형에 지민이, 어, 그래. 하며 떨떠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제 어깨를 붙잡고 눈을 꾹 감고는 심호흡을 하던 태형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턱에 군살도 없고, 코는 좀 크지만 이만하면 높으니 패쓰! 눈도 황소만하니 크고, 입술도 적당히 예쁘고, 머릿결도 꽤 좋다. 여기 있는 귀도 예쁘고. 복실복실한 게. 잘생긴 거 자랑ㅎ.. 귀? 귀? 잠시만, 귀?
"와악!!!"
"씨발 시끄러워!!!"
"너, 너, 너 귀!!!!"
"그래, 내 귀"
"너 뭐야 너, 너 귀 왜 나왔어!!!"
내 니가 이렇게 놀랄 줄 알고 있었지, 하며 팔짱을 끼는 태형의 머리를 지민이 퍽, 하고 내려쳤다. 썅, 아파! 아, 니 귀 뭐냐고! 뭐긴 뭐야, 늑대지! 뭐야 너도 늑대야? 그래! 미친, 널린 게 늑대야, 존나게 많네! 그게 내 탓이냐, 새끼야! 야, 내가 늑대새끼한테 새끼라는 말을 들어야 하니? 어이 없는 얼굴로 태형을 몇 대 더 때린 지민이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뭔, 내 주변에 벌써 늑대가 두 마리야... 내가 무슨 사육사니?
"너, 그러면 우리 옆집으로 일부러 이사 온거야?"
"말 하자면 길어."
"길고 자시고 얘기해 봐."
"아 귀찮은데"
"너를 늑대라떼로 만들어 줄까?"
"아니"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하는 듯, 태형이 눈을 내리깔고 손가락을 꿈지럭거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등짝을 미친 듯 때리며 재촉하던 지민도 얌전히 그 모양새를 지켜보기만 했다. 꽤 시간이 흘렀을까, 태형이 진짜 짧게만 이야기해 줄게, 하며 입을 뗐다. 지민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왠지,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일단 나는 늑대야. 응, 알아. 나는 늑대고, 윤기 형도 늑대야, 지민아. 응, 그것도 아는 거야. 여기서 내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이 뭐게? 어? 틀린 말이 있어, 찾아봐. 모르겠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난 늑대가 아니라"
"..."
"늑대였었지."
"..."
"뭔 좆같은 상황인지 다시 늑대가 되었지만."
"그게 가능해?"
몰라, 나도. 뭐? 나도 모른다고. 너가, 방금 늑대였었다며. 그렇지. 그럼 한동안 늑대가 아니었다는 소리 아냐? 똑똑하다, 너. 어쩌다 다시 늑대가 된 거야? 모른다니까. 하, 복잡하네 진짜. 천천히 얘기해 봐.
"늑대는 죽었을 때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어."
"...계속 얘기해."
첫째는 늑대로서의 명예로운 죽음. 둘째는 인간으로서 주어지는 두 번째 삶. 대부분의 늑대들은 전자를 선택해.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윤기 형은 후자를 선택한 케이스야. 너한테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했었잖아, 그거 죽을지도 몰라서 그랬던 거야.
"뭐?"
지민의 눈이 커졌다. 윤기 형이, 그럼, 저 기억을 잃은 게, 죽었다 돌아와서 그런 거야? 그럼 같은 사람이 아니야? 뇌가 꼬이는 느낌이었다. 다 안다는 듯, 태형이 지민의 머리에 손을 잠시 올려서 톡톡, 두드리고는 다시 내렸다. 마저 들어. 착하지.
"윤기 형이 가기 전에 오래 걸릴지 모른다, 언제 다시 돌아올 지 모른다, 하고 말하고 떠나지 않았어?"
"응, 그랬어."
그건 기억을 지우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지 몰라서 그런 거였을거야. 인간의 삶을 선택한 늑대들은 그 순간부터 늑대에게서 철저히 분리되어 그 기억을 지워. 이유는 뭐, 허울 좋게 종족 비밀 엄수를 위해서라곤 하지만, 그냥 꼴도 보기 싫은거야. 변절자니까. 그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기억을 지워버리고 인간 세계로 내보내는 거야. 그 때, 인간이 되기 전, 기억을 지울 때, 우린 망각의 길을 걸어. 윤기 형은 그 길을 다 걸어내는 데 1년 정도가 걸린거야. 꽤 오래 걸린 거지 뭐. 가진 기억의 강도에 따라서 기억을 지우는 시간이 각자 다르거든. 윤기 형이 지금 아픈 건, 너랑 있었던 때의 기억이 너무 깊게 박혀서 망각의 길에서도 덜 뽑혀서 그래, 일종의 흉터라고 해 두자.
"뭐가 이렇게... 복잡한 거야"
"넌 기뻐해도 돼, 윤기 형이 이렇게 아픈 거에 대해서"
"..."
"그만큼 너랑 있는게 좋았다는 거거든."
아무튼, 뭐. 나도 그런 종류 중 하나야. 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 태형의 얼굴이 어딘가 어두워보였다. 나는, 나는, 하면서 몇 번이고 말을 되씹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죽고 나서 기억을 다 지웠어. 그리고 한동안 잘 살다가, 한 번 쓰러졌던가? 막 어지럽고 생 지랄을 다 떨었지 뭐. 아 썅, 담배 없냐. 좀 피워, 새끼야. 아무튼, 후, 뭔 병신같은 일인지, 이상하게 막 잔상 같은 게 지나다니는 거야, 머릿속에서. 나중에는 이 기억, 저 기억 막 꼬여서는 뇌가 터지는 줄 알았다니까. 뭔가 떠오르는 게 하나 둘 생기는데 그런 게 늘어날 때마다 꼬리도 조금씩 나왔다가 귀도 나왔다가 그랬어. 나는 이전의 기억이 지워졌으니 떠오르는 파편들이 뭐에 관한 건지도 모르겠고, 몸에선 자꾸 이상한 게 튀어나오고 하니까 돌아버렸지 뭐. 그러다가 쓰러진거야. 그리고, 기억이 돌아왔어.
"그 덕에 이렇게 지랄맞은 시다바리 일이나 하고 있다, 뭐 그런 얘기야."
"...존나 복잡하다, 진짜."
"조금 기쁜 건, 이번 일만 제대로 끝내면, 날 풀어준댔어"
"좋은 일이네, 뭐"
"이번 일이 뭔 줄 알아?"
뭔데, 하고 눈짓으로 지민이 묻자, 태형이 씨익, 하고 웃어 보였다.
"민윤기씨 기억 되살리는 거."
-
그리고 어떻게 다시 제 방으로 돌아왔는지 지민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윤기 형 혼자 오래 두지 마, 얼른 가 봐. 하고 제 등을 떠미는 태형의 손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지민은 뭐가 뭔지 복잡하기만 했다. 망각의 길, 기억, 뭐가 뭔지. 태형의 말마따나 뇌가 꼬이는 기분이었다. 윤기 형, 죽음, 길, 늑대. 알 수 없는 단어들만이 꼬리치며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을 뿐이었다. 결국 전정국에 관한 건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한 지민이었다. 윤기의 기억을 다시 찾는다,라. 아픈 윤기와 그가 걸었을 망각의 길은 관계가 있는 걸까. 그리고 김태형은, 왜 그리 어두워 보였을까.
"...박지민"
"아 형, 일어났어요?"
"물 좀"
잠긴 목소리가 저를 부르는 소리에 윤기를 바라보니, 한 쪽 팔로 눈을 가린 채 그가 누워있었다. 비틀, 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난 지민이 윤기에게 물을 가져다 주었다. 투명한 물. 물. 윤기 형. 흡입. 마신다. 물이 윤기를 마시는 건지, 윤기가 물을 빨아들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꿀렁대는 목울대, 흰 목선. 물잔을 건네 받고는 지민이 탁, 하고 바닥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물이 윤기의 기억을 지웠던가- 아니면 그 물을 타고 윤기가 사라져 가는 걸까. 빈 몸뚱아리에 물을 채워 넣는 걸까. 기억. 망각. 모르겠다. 에이, 몰라.
"야, 야 숨막혀"
"형- 좀만 이러고 있을게요"
"애냐, 너가"
"..."
"그래, 애다 애."
어느새 제 위에 올라와 눕고서는 어깨에 머리를 기댄 지민을 보고 윤기가 픽, 하고 웃었다. 말로는 애냐, 너가? 하면서 핀잔을 주는 듯 했지만, 어느새 제 눈을 덮고 있던 윤기의 팔은 지민의 등을 쓸어 주고 있었다. 이상하게 지민의 숨소리가 파들거리며 떨리는 듯했다. 뭐가, 널 그렇게 떨게 하냐-. 하고 말을 건넸지만 본인은 별로 의미 없이 한 말인지 대답을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만가만 그의 등을 쓸으며 윤기가 고른 숨을 내쉬었다. 어느샌가 둘의 숨소리가 하나였다.
'...왜 안자'
'아까 영화 본 거 자꾸 생각나서요'
'그러길래 그거 왜 보자 그랬어'
'나는 재밌을 줄 알았지...'
'그래서 잠이 안 와?'
'응, 안 와요'
또 다시 알 수 없는 대화가 들렸다. 여태까지와 다른 건, 머리 아픔이나 이명이 많이 적다는 것. 그리고 목소리와 말이 선명히 들린다는 것. 지민과 저의 숨소리에 따라 골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윤기는 이유 모를 불안에 대한 안정을 저한테 찾는 듯한 지민을 안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물론, 두통이 확실히 그리 심하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두 개 중 하나는 자신의 것임이 분명했다. 나머지 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잔상이 흐릿흐릿하게 보였으나, 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건 접어 두기로 했다. 지금은, 이 허상의 목소리와 형체보다 지민의 고른 호흡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토닥토닥. 윤기가 그를 안은 채로 옆으로 돌아 누웠고, 눈을 감았다.
'이리 와, 안아줄게.'
-
안녕하세요, 시린입니다.
우선 말없이 9월 내내 연재하지 않은 점 죄송합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건강상의 이유와 더불어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그랬어요.
기다리셨을 여러분께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ㅠㅅㅠ
간만에 온 네필시인데도 분량이.....................많이 짧습니다 아 왜 이렇게 죄송한 일만 많은지 으앙
앞으로 더 노력하는 시린 될게요 (울먹) 여러분의 구독료 아깝지 않는 글 쓸겁니다 네 그럴거에요 (다짐)
10월 되면 다시 속도 빨라질 예정이니 안전바 단단히 잡고 계세요! 헤헤
여러분의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암호닉 정리 ♡
깝곰 침침태태 메리 미칟 납치탄 건방지게↗ 밀짚모자 태태뿡뿡 따슙 퀄리티 메리츠 침침 윤타 후드 슈기 나니꺼 푸우우 윤기융털 영감 웬디 연이 수능특강 계란말이 설마슙민
누락된 분 계시다면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
그럼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큰절) 여러분 사랑합니다!
이상 시린이었습니다.
알림 여러번 갔을 거에요 죄송합니다 ㅠㅠ 자꾸 브금이 삽입이 안되서.........ㅠㅅㅠ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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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차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