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녀는 예뻤다
(본 소설은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와 전혀 상관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선배, 사람 자리에 없다고 그렇게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뭐?"
"민윤기가 선배한테 무시당해야 할 만한 애도 아니고 그런 말 들을 이유도 없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마요."
"… 야, 김유은 너 많이 컸다?"
그냥 기분이 안 좋았다. 말 그대로 윤기는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고, 설사 그럴만한 잘못을 했다해도 남의 입에서 민윤기의 이름이 나쁜 쪽으로 언급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태형이 옆에서 참으라며 조용히 언질을 주었지만 참을수록 윤기의 험담은 더욱 심한 말로 넘어갔다.
기현 선배의 여자친구가 윤기에게 매달리는 것은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거의 알 만한 소문이었고, 그것은 분명 윤기의 잘못이 아님에도 선배는 윤기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수 많은 여학생들로 부터의 러브콜, 그것에 대한 유치한 질투가 뻔했다. 그렇기에 속이 훤히 보이는 기현 선배의 행동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금 내 가방에도 윤기에게 전해달라는 한 여학생의 수줍은 고백이 들어있으니까.
"뭐해, 여기서."
환청처럼 들리는 민윤기의 음성에 놀라 뒤를 돌아봤을 땐 내 어깨위로 손을 올리고 나를 센 힘으로 일으키는 민윤기가 있었다. 선배님이 하시는 제 욕만 해도 저 앞으로 백년은 더 살 것 같네요. 내일 학교에서 뵐게요, 선배님. 여유 가득한 민윤기의 말에 선배는 물론 주위 사람들 조차 어떤 말도 덧붙이지 못하고 벙져있는 새에 윤기가 강한 악력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거의 끌려가다시피 밖으로 나온 탓에 아려오는 손목을 만지며 민윤기를 올려다봤다.
"아, 왜! 너 안온다며!"
"너도 안간다며."
"난 김태형이랑 놀러왔다가 만나서 어쩔 수 없이 합석한거거든."
"치마봐라, 확."
짧은 치마를 훑어 보고는 손을 치켜들어 때리는 시늉을 해보이는 윤기에 혀를 쏙 내밀고는 조금 앞장서 걸으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리던 발걸음 소리가 곧 옆으로 따라붙는다. 배고프다며 찡찡대는 것은 항상 내 몫이였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윤기가 먼저 식당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함께 산 진한색의 청자켓을 하필이면 또 같은 날 입어서는 괜히 커플 옷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맛있게 구워진 고기를 내 밥 위로 올려주며 빨리 먹어, 하는 윤기의 말투가 어쩐지 무거웠다.
"야, 무슨 일 있어?"
"…"
"… 왜?"
곧바로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조바심이 났다. 안좋은 일이라도 생긴 것이 분명했다. 엄마 병원 갔다왔어. 덤덤한 말투였지만 곧 윤기의 입에서 따라나올 말들은 결코 덤덤할 수 없는 말일 것임을 각오해야했다. 민윤기는 어릴 때 부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사람들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오열, 하다못해 신음조차 내지 못했던. 그리고 그 앞에는 초연한 모습을 보이기엔 윤기보다 한참이나 앳된 내가 그를 대신해 펑펑 울었었다.
"길어야 세 달이래."
거 봐라. 이런 말을 할 때 조차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민윤기를 어찌하면 좋을까. 내 앞에서 만큼은 울고 싶은 만큼 울어도 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가 내 앞에서 보이는 행동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감정 표현임을 나는 잘 알았으니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닌, 그저 감정을 숨기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나오는 말하자면 습관일지도 몰랐다.
"괜찮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었다. 괜찮다는 위로와 괜찮냐는 걱정이 반반씩 적당히 섞인 말. 이럴 때는 그냥 그 말 한 마디와 함께 민윤기와 밥 한 끼나 먹어주는 게 그에게 최고의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는 위로였다.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물을 흘렸고, 윤기는 말 없이 내게 물 한 잔을 건네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항상 바빴던 우리 엄마를 대신해주던 고마운 분, 아줌마라고 칭하기엔 너무 가깝게 느껴지던 터라 이모라 부르며 잘 따르던 그 분이 돌아가신다는 것은 큰 슬픔이었다. 물론 민윤기의 슬픔과는 비할 바가 없었겠지만.
가방 속에 들어있는 걱정 인형을 계속 매만졌다. 건네줄 타이밍을 잡지 못한 탓이었다. 우리보다 한 살 어린 1학년의 여학생이 윤기의 얼굴에 항상 피곤함이 가득한 것 같아서 걱정된다며 윤기에게 꼭 전해달라던 것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기엔 꼭 전해주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던 내 행동이 씹혔고, 지금 전해주기엔 차마 그럴 상황이 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내가 주는 선물이 아닌 얼굴도 모를 여학생이 주는 선물이라면 받지도 않을 것이었다. 이름을 떠올렸을 때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던가, 얼굴을 봐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던가, 그런 정도의 사람이라면 상대도 해주지 않았고 이런식으로 나를 통해 전해주는 물건도 한사코 거절을 하곤했다. 지금 민윤기의 기분에 이런 걸 내밀었다가는 저 인형은 가차없이 도로 내 품에 안길 것이 뻔했다.
"나 오늘 너네 집에서 잘까?"
"우리 집에 왜. 집 들어가."
"지금 들어가면 엄마한테 혼나. 너네 집에서 잔다고 하면 우리 엄마 별 말도 없단 말이야."
혼자 두기 불안했다. 아직까지도 윤기의 목 언저리에 남아있는 흉터는 이제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몰랐지만, 어쨌든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에 층분했다. 그 때의 악몽을 다시 겪는 것은 정말이지 싫었다. 윤기의 자살시도. 그 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민윤기를 곁에 두지 않고서는 나는 살 수 없겠구나. 후에 다른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육체적인 것을 공유하고, 그 사랑스러운 증거물을 만들게 되더라도 나는 민윤기를 옆에서 떼어내지 못하겠구나. 나는 윤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구나. 하는 것들을.
"자살 안해. 약속했잖아. 그러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 다 큰 남녀 둘이 한 집에서 자는 거 남들이 알면 흉 봐."
"내일 학교 마치고 병원가자. 나도 이모 보고싶어."
"응, 그러자."
결국 제 고집대로 나를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내가 집에 들어가는 것 까지 보고가는 윤기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창문으로 내려다 본 윤기는 우리 집 담벼락에 기대 담배가 아주 짧아질 때까지 피고서야 제 집으로 향했다. 그 쓸쓸하다 못해 처량한 뒷모습을 몇번이고 눈길로 토닥여주고서야 나도 커튼을 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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