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웁-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쉰다. 팔을 양끝으로 폈다 가슴으로 모았다를 반복하며 다이빙대 아래로 흘끗 시선을 던졌다. 높아. 씨알도 안먹힐 투정이었다. 5m 허공에 허리를 꼿꼿이 추켜세운 내 발밑 플랫폼으로 땀인지 물인지 모를 것들이 투둑 떨어진다. 뛴다, 뛸 수 있다, 뛰어야한다.
침을 꼴깍 삼키고 다시 내려다본 수영장의 물 색깔은 검고 한없이 깊어보였다. 마치, 나까지도 집어삼킬듯 하게. 3m 스프링보드와 고작 2m 차이 밖에 나지 않는 다이빙대였지만 몸에 와닿는 격차는 상당했다.
아, 씨발 박찬열 말 들을 걸.
마지막으로 헛기침 한번 하고 힘차게 발을 굴렀다. 두다리를 모아 발과 허리를 곧게 뻗자 찰나의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따뜻하다. 그렇게, 너의 잔상이 가득한 검고 무서운 곳으로 나는 파고들었다.
청춘고함
w. 김삿갓
00.
" 야, 그러게 내 말 들으랬지. 푸하- 귓등으로도 안 쳐듣드니 꼬라지봐라. "
" 시끄러. "
" 와, 목도리도 있네. "
보기만 해도 더워. 기어코 책상 옆에 걸어놓은 가방을 가져가 한 껏 풀어제낀 찬열이 목도리를 지분대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욕이라도 한바가지 해줄려고 마스크를 벗었지만 싸하게 아려오는 관자놀이에 그만두고 책상에 이마를 맞댔다. 고3이라고 아침부터 에어컨을 빵빵 틀어놓았는지 그 덕에 얼어붙을 듯 시원해진 책상이 약을 먹어도 뜨겁게 달궈진 이마를 차차 가라앉혔다. 눈을 감은체로 바람막이 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적거려 몇일 전에 새로 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눈감고도 다룰수 있는 터치식 엠피를 능숙하게 이리저리 조물대곤 책상서랍에 집어넣었다.
얕게 든 잠이 퍼뜩깨고 잔잔하게 들려오던 뉴에이지가 갑작스럽게 멈췄다. 발 어귀에는 새하얀 눈송이를 녹여놓은듯 깨끗했던 이어폰이 먼지에 뒹굴고 있었다. 귀에서 강하게 뽑혀나간 이어폰을 줍기도 잠시, 이어폰보다 내 어깨를 잡고 호들갑 떠는 박찬열이 내 행동을 저지했다.
" 아호, 뜨거! 씨발! 야, 무슨 4월에 핫팩을 들고 다니고 그래. 가방뒤지다 골로 갈 뻔 했네. "
" 비켜. 이어폰 줍게. "
" 허 참, 한 뭉텅이네. 혼자 지나간 겨울맞이 하세요? "
" 네, 씨발아. 겨울잠 자게 혼자 좆까세요. "
언제 또 얽혀버렸는지 꼬여버린 이어폰 줄을 풀기전에 덥수룩 묻어있는 먼지를 톡톡 털어냈다. 엄마가 마지막 이어폰이라고 말했던 것이 퍼뜩 생각이 나서였다.
까칠한 욕설에 박찬열이 덩치에 안맞게 입을 삐죽거렸다. 오늘 까칠하네 자기. 그게 어디서 집어온건지 나도 모르는 쿠션으로 얼굴 받치고 이어폰을 다시 꼽기 전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사실 옆에서 계속 웅얼거리는 박찬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듣기 싫으니까 안들린셈이다. 잔잔하게 다시 흘러들어오는 뉴에이지가 정신을 아득하게끔 앗아갔다.
*
툭툭-
깨우는 것 치곤 손길이 상당히 성의 없고 거칠었다. 보나마나 박찬열 일테지, 박찬열 씹새끼. 절대 응해주지 않으리란 다짐에 잠이 달아났음에도 꿋꿋이 쿠션에 고개를 처박았다. 간간히 들리는 욕이 낯설었지만 그냥 미친놈 재롱이라고 생각하고 넘거벼렸다. 거의 때리는 강도에 다달았을 때 못참고 쿠션을 놈의 얼굴에 집어던진 내 눈엔 모르는 얼굴이 가득 채워졌다. 던져진 쿠션이 그 얼굴을 보기좋게 빗나가 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바닥을 구른다.
" 선생님이, 깨우라고 하셔서. "
서둘러 고개를 돌린 교탁에는 물리 선생님의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리저리 그려진 더러운 도르레 그림도 잠시, 박찬열 이 새끼는 나 아프다고 안하고 뭐하고 있는 건지. 고개를 쭉 뻗어 본 짝꿍 너머 옆분단에는 이미 혼을 뺏긴듯 숙면중인 박찬열이 보였다.
" 그럼 그렇지. "
다시 고개를 쑥 집어넣으려 할 때 오른 쪽 뺨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역시나, 얼굴모르는 아까 그 뉴페이스였다.
" 전학생이야. "
" ...... "
" 너 학교 안 올때 왔어. "
" ...어쩌라고. "
" 궁금해하는 거 같아서. "
" 아닌데. "
너 존나 궁금해 미칠 거 같은 얼굴이야 라고 말하는 듯한 녀석이 못내 재수없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잠이 덜깨 짜증나는 거겠지만, 그냥 내가 기분나쁘다면 나쁘다는 거다.
' 김 종 인 '
현기증이 날 정도로 조끼에 정갈하게 달린 명찰과 목을 꽉 조이듯 맨 넥타이가 답답해보여 한번 흘끗 시선을 주곤 쿠션없는 차가운 책상에 이마를 맞댔다. 녀석은 날 다시 깨우지 않았다. 속편했지만 뭔가 찝찝함이 먼저였다. 다시 자게 냅둘거면 애초에 깨우질 말던가. 목으로 삼키는 투덜거림이 옆자리까지 들릴까 조심스러웠다. 근데 이상한건 물리 선생님도 더이상 날 깨우지 않았다. 포기 했나. 이것도 또한 속편하지만 찝찝한 그런 거였다.
반응 없으면 그냥 조용히 사릴께요^,ㅠ.........그냥 갑자기 쓰고 싶어서 썻어요..........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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