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한 다음 날, 나는 그 날이 내 인생을 뒤흔들 날이 될 것이라는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적어도 체육시간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체육시간 전 여자애들은 햇빛에 피부가 탄다며 거울 앞에 여럿이 모여 썬크림을 바르고 있었고 나와 친구들은 옷을 다 갈아입고는 여자애들이 교실에서 나가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야, 김민석!! 너 왜 하필 오늘 주번인데"
"아, 내가 2번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같은 중학교에서 온 친구들은 몇 없었지만 다행히 나는 중학생때부터 학원을 같이 다녔던 김민석과 같은 반이 되었다. 그렇게 이틀 사이 친해진 친구 몇 명과 같이 하필 오늘 주번이라 문단속을 해야하는 김민석한테 짜증을 내고 있는데, 여자애들이 삼삼오오 모여 계속해서 거울 앞에서 수다를 떨고있는것이 보였다.
"여자애들은 잠깐 체육하러 나가는건데 뭘 저렇게 신경을 많이쓰냐"
"여자애들이니까"
"야! 니네 빨리나가, 문단속 해야돼"
김민석이 재촉하는 소리에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떨며 교실을 나섰고, 김민석은 뒷문을 잠그고는 앞문을 잠그기 위해 앞문으로 다가섰다. 그런데 그 순간, 처음보는 여자애 두 명이 급하게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야!! 이제 들어오면 어떡하는데?"
"미안해, 미안해~ 오늘 체육복 빌리느라...3분만!!"
이상하게 계속 눈길이 갔다. 그 애는 빠르게 옷을 갈아입더니 거울로 다가가서는 입에 머리끈을 물고 머리를 묶었다.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것 같았다. 다른 여자아이들과 달리 얼굴은 화장기 없이 순수했고, 그래서 더욱 예뻤다. 조금은 큰 체육복을 입고 머리를 묶는 모습이 너무나 학생답고, 순수하고, 예뻤다. 나는 한참동안 그 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 예쁘다-
"너는 지금 머리 묶을 시간이 있냐?"
"야, 김민석, 그만해. 조금만 기다리라잖아"
나도 모르게 튀어나간 말이었다. 나도 말하고서는 깜짝 놀랐지만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다. 마침 머리를 다 묶은 그 여자애는 내 말에 고맙다는 듯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애가 미소지으면서 나를 보는데, 심장이 멈추는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김민석이 옆에서 이상하다는듯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슬슬 시선을 피했다. 그 애는 곧 친구와 함께 교실에서 뛰어나갔고, 나는 한참동안 그 애가 나간 앞문만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멍을 때리고 있는 내가 이상했던 듯 친구들이 나를 뭐하냐? 하며 쿡쿡 찔렀다.
"김민석, 너 쟤 알아?"
"아까 머리 묶은 애?"
"응"
"같은 중학교 나와서 좀 알아, 관심있지?"
"...조금?"
"와, 김종대 입학하자마자 여자 꼬시냐-"
"아! 그런거 아니라고! 하여튼 이름 말해봐, 이름 뭐야?"
"김여주"
"김여주?"
"응, 왜 이름까지 예쁘냐?"
"응"
"와, 미쳤네 얘"
내 대답에 친구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를 않았다. 김민석이 가장 크게 웃으며 걔 성격 좋아, 잘해봐-하고 내 등을 두드렸다. 그 날 체육시간 내내 나는 김여주만을 쳐다보느라 바빴다. 내숭떨지 않고 열심히 밝게 웃으며 하는 모습에 한번 더 반했더란다. 그 날 이후로, 내 눈은 쭉 김여주 만을 쫓아다녔다. 지독한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유치한 김팀장 04
"아, 목말라"
일하다 갑자기 목이 너무 말라서 휴게실 가서 음료수나 뽑아 마셔야지-. 하고 휴게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간 휴게실에는 예상치 못하게 김종대가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순간 아, 그냥 나갈까...하다가 내가 꿇릴게 없다는 생각에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김종대가 내 걸음을 따라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는것이 느껴졌다. 아, 왜 저래 진짜...나는 김종대가 저번에 나한테 음료수 준 이후로 이제 잘해주려나...싶었는데 무슨, 당연히 내 착각이었다. 김종대는 평소와 똑같이 나를 괴롭히는 재미로 출근하는듯 했고,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절대 덜 괴롭히지는 않았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김종대를 애써 외면하고는 자판기로 다가가 돈을 넣고는 음료수 버튼을 눌렀다. 김종대가 하도 빤히 바라봐 내 모든 행동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음료수가 나오지를 않는다. 설마 돈 먹었어? 내가 짜증나서 버튼을 힘줘서 몇번 세개 누르니 김종대가 옆에서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또, 또 무식하게 힘쓰지"
"나대지마라, 진짜"
"그거 고장났는데"
"알면서 말도 안해주냐?"
"내가 왜 말해줘야되는데?"
김종대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비웃듯이 바라보았다. 하...진짜 쳐때리고싶다...^^ 그런 김종대를 한참동안 노려보다 그냥 휴게실에서 나왔다. 진짜 유치하다 김종대. 내가 하루에 수백번도 더 하는 생각인데 왜 나는 하필 이 회사에, 그리고 하필 이 부서에 들어와서 이 모양일까...하...김종대 깝쭉거리는거 보면 진짜 하루에도 몇번씩 때리고싶은 충동이 생긴단 말이다.
이내 휴게실에서 따라나온 김종대가 내 옆에 나란히 와서 섰다. 내가 뭐, 하고 띠껍게 대답하자 김종대가 어이없다는 듯 허-하고 웃었다.
"오늘 신제품 나오는거, 홍보 전략 짜야돼"
"어쩌라고"
"짜오라고"
"보통 이런거 신입한테 잘 안시키지 않아?"
"나는 시켜"
"..."
"그니깐, 해오라고. 지금 2시니까 3시까지 7개 생각해 와. 구체적으로"
"야, 미쳤냐? 한시간만에 어떻게 다 해"
"못하면 노력 부족이지, 나는 다 했어"
"아 진짜 개싫어 김종대"
"...나도 너 싫어, 그니깐 빨리 해 와, 더 싫어지기 전에"
"아 네~네"
나는 김종대를 무시하고 먼저 휙 가버렸고, 김종대가 걸음을 멈추고는 멀어져가는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는것이 느껴졌다. 김종대는 나 짜증나게하는데 재미들렸다. 정말 확실하다. 지금 2시인데 어떻게 3시까지 저걸 다해...나쁜새끼 진짜...
***
"1번부터 3번은 너무 뻔하고, 좀 독창적인걸 생각해봐요. 4번은 지금 자금 상태로 봤을 때 불가능해요. 5번은...어휴...6번 7번은 이미 타 경쟁사에서 하고 있는 방식이잖아요, 조사는 제대로 하고 작성하신거 맞아요?"
"아니, 한시간만에 다 하라고 했으면서 어떻게 조사까지 다 해요."
내 말에 김종대가 내가 낸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는 굳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나는 쫄보니까 그 눈빛에 쫄았고, 김종대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좀 크고 나니까 겁나 무섭게 생겼다. 웃을때랑 느낌이 확 다른데 나한테는 안웃어주니까 나는 저런 무서운 모습밖에 못 본다고!! 그리고 김종대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주씨"
"..."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안시켜요"
뭔 개소리야. 저번에 한시간만에 보고서 스무장 써오라고 한 다음에 다 못썼더니 존나 깠잖아;;;;
내가 겁나 어이가 털려서 짜증나는 눈길로 쳐다봤더니 김종대가 피식 웃으며 서류를 다시 집어들고는 내게 건냈다.
"하여튼 여주씨"
"...네?"
"다시 해오세요, 못하면, 뭐 오늘도 야근이고"
...그냥 야근하라고 해라 개새끼야
***
결국 오늘도 야근행이다. 가끔 엄마한테 전화할때마다 너는 왜 이렇게 야근을 자주하냐고, 대기업이라 그러냐고 하긴 하는데, 회사 문제가 아니라 김종대 문제입니다만...^^ 김종대만 빼면 우리 회사 진짜 완벽하다. 결론은 김종대가 문제라고. 내 인생에 도움이 1도 안된다. 신경질내면서 하고 있는데 김종대가 또 깝쭉대면서 시비를 건다.
"내가 짜증내면서 하지 말랬지"
"닥쳐"
"말 예쁘게 안할래?"
"내가 말을 예쁘게 하든 말든, 니가 뭔 상관?"
"내가 너 상사잖아"
"상사가 이런것까지 간섭하냐?"
"너는 상사한테 반말하는게 말이 되냐?"
이렇게 한참동안 끝이없는 입싸움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엘레베이터가 우리 층에 띵 하고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혹시 우리의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다면 난리가 날게 뻔하기 때문에...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내리는 사람은 우리 부서 사람이 아니었다.
"야, 김종대. 퇴근 언제하냐?"
"...김민석 너 왜 왔어?"
김민석??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누구지...? 한참동안 컴퓨터로 서류 작성하면서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생각이 안난다. 결국 누군지 생각해내는걸 포기하고 그냥 내 할일이나 하고 있는데 김민석이란 사람이 나를 손으로 가리키더니 어??? 하고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어??? 김여주?"
"...누구세요"
"나 기억안나? @@중학교같이 나와서 고등학교 가서도 1학년때 같은 반이었잖아! 김종대 친구!"
"어...아!!!"
아 이제야 기억났다. 맨날 김종대랑 붙어다니던 애다. 김종대랑 상당히 많이 친하던 애인데 나한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는게 이상하다. 김종대 친구들은 내가 쓰래기같은 발언 하면서 헤어지자고 한거 알아서 나 싫어할텐데...쟤는 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지? 그런 나와 김민석을 아무말 없이 바라보던 김종대가 인상을 쓰고는 머리를 헝클였다.
"오랜만이네, 나는 재무부에 있어, 고등학교 동창이 세명이나 같은 회사에 있네, 신기하다"
"아...그러게..."
나는 어색하고 불편해 죽겠는데, 김민석은 뭐가 저렇게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우리 이렇게 만난것도 신기한데, 우리 셋이 같이 저녁이나 먹을래?"
"야,"
계속해서 아무 말도 없던 김종대가 먼저 인상을 팍 쓰고는 야, 하고 말을 꺼냈다. 지금 저녁같이 먹기 싫다고 저러는건가? 나도 먹기 싫어요 님아
"...김여주 할 일 많아, 그렇게 여유있게 밥먹고 할 시간 없어."
"뭐 어때, 하루인데, 같이가자 여주야. 이거 진짜 쉽지 않은 인연이다?"
"아...그게..."
"야 그리고 김종대, 너는 왜 이렇게 오늘따라 안 어울리게 짜증이냐? 짜증같은거 낼 줄 모르는 놈이"
"아...저 그게, 민석아. 나 할 일 많아서 그런데 저녁은 다음에 같이 먹자. 미안해..."
내가 결국 앞으로 닥칠 어색함과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김민석에게 밥 같이 못먹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김민석이 너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뭐,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 내 앞으로 와서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우리 번호 교환이나 하자, 시간 있을 때 밥도 같이 먹고 하게"
"아..."
내가 망설이다 번호를 찍자 김종대가 인상을 쓰고 다가와서는 띠꺼운 표정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표정 왜저래 개띠껍네;;; 그리고 김종대는 곧 김민석을 끌고 사무실을 나갔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오늘 안에 일 다 끝내라 이렇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곧 김민석에게 문자가 왔다.
[우리 내일 저녁 같이 먹자]
[할 말도 있고]
***
그렇게 다음날 나는 김민석과 밥을 먹게 됐고, 지금 내 앞에는 김민석이 앉아있다. 아 뭔 말을 해야하지...나는 할 말이 없어 한참동안 뻘쭘하게 앉아있는데, 김민석은 계속해서 웃고만 있다. 아 어색해... 한참을 눈치보며 밥만 먹고 있는데 김민석이 먼저 말을 걸었다.
"여주야"
"ㅇ,응?"
"미국가서는 잘 지냈어?"
"아...응..."
지금 설마 비꼬는건 아니겠지, 김종대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쳤다고 말이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숟가락을 쥐고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긴장한 것이 보였는지 김민석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비꼬는거 아니야, 그냥 정말 안부 물어보는거야"
"아..."
"어쩌다 김종대랑 같은 부서 들어갔냐, 신기하네-"
"그러게..."
"김종대가 괴롭히지는 않아?"
"...맨날 시비걸어"
그 말에 김민석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줄 알았어, 하여튼 김종대 유치하다니까"
"그니깐!! 진짜 나만 힘들다니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며 공감했고, 그러다 갑자기 격한 반응을 보이며 공감한 내가 민망해져 아...하고 다시 조용히 수저를 들었다. 아, 민망해, 얼굴이 약간 빨개진것 같기도 하고...그런 나를 보더니 김민석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귀엽네"
"아..."
"이런거에 김종대가 반한건가..."
"응?"
"아무것도 아니야"
....? 뭐지...그렇게 우리 둘은 한참 아무 말도 없이 밥을 먹었고, 김민석은 뭔가 할 말이 있는듯 했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는것이 보였다.
"왜?"
"응?"
"너 할 말있잖아, 물어봐도 돼"
"아..."
김민석은 또다시 입을 꾹 다물고는, 한참을 고민하다 어렵게 입을 뗐다.
"...이거 예민한 주제인거 아는데, 왜 김종대한테 헤어지자고 한거야?"
"..."
"...솔직하게 말해주면 안돼? 물론 우리가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중학생때도 계속 같은반이었고 나 너 봐온 기간만 해도 5년이었어. 그런데 너가 그런식으로 김종대한테 헤어지자고 한거 이상해서. 너 원래 그런식으로 말하는 애 아니잖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내 눈치를 보더니 김민석이 조심스럽게 술을 따라 내 앞에 내밀었다. 조용히 술을 마시고는 고민했다. 솔직히 지금도 힘들다.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다. 김종대랑 같이 일하면서 티는 안냈지만 매일매일이 죄책감의 연속이었고, 서러움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나도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사업이 망했어"
"...응?"
"원래 굉장히 잘 되던 사업이었는데, 아빠가 사장으로 있던 기업이 갑자기 망했어"
"..."
"당연히 우리는 파산했고, 아빠는 빚쟁이들한테 쫓기는 신세가 됐어. 그래서 겨우겨우 아빠 빼고 우리 가족만 미국으로 도망간거야. 유학간거 아니야, 쫓겨난거나 마찬가지지"
김민석은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가서도 계속 일만 했어. 빚 갚아야 되니까...우리 가족 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나도 돈도 벌고 공부도 해야하니까 정말 열심히 살았어. 결국 많이 나아져서 지금은 이정도 된거고 나는 한국으로 와서 일하는거야."
"...이제는 괜찮아?"
"응,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졌어"
"왜 김종대한테는 그렇게 얘기 안했어?"
"...그냥, 내 자존심 때문일수도 있고...김종대한테 그렇게 말하기가 뭔가 자존심상했어. 김종대한테는 맨날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런 내 초라한 모습 보면 김종대가 나한테 정 떨어질수도 있을 것 같았고...자신이 없었어, 미국가야되는데 미안하게 김종대 붙잡고 있을 생각도 없었어."
"..."
"내가 그런식으로 나쁘게 말하면 김종대도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나 금방 잊을 것 같아서..."
나는 그 말까지만 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밀려오는 씁쓸함에 계속해서 술만 마셨고, 김민석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김민석도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시며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마음이 복잡한 듯 했다.
"김종대한테 사실대로 말 할 생각은 없어?"
"...없어"
"왜?"
"김종대는 이미 나 싫어할대로 싫어하고, 다시 우리 사이는 되돌릴수가 없잖아. 나 때문에 김종대가 10년동안 얼마나 많이 힘들어했는데, 내가 사실대로 말한다 해서 그 10년을 내가 보상해 줄 수는 없어"
"김종대만 힘들었어? 너도 힘들었잖아"
"...그래도"
"...답답하다, 정말"
김민석이 답답하다며 얼굴을 찡그리다가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너가 정 그렇다면 내가 간섭하지는 않을게"
"..."
"너의 선택이니까, 당연히 내가 너희 둘 사이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싶지는 않아"
"..."
"그래도, 너도 힘들잖아. 조금은 솔직해져도 괜찮아."
계속해서 마신 술에 나도 조금 취한것 같았고, 김민석은 그런 나를 보더니 자신을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없이 술만 마시고 있는데, 테이블 옆에 누군가 다가온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그 곳에는 김종대가 서있었다. 나는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였고, 내 앞에 흐릿하게 김종대가 보였다.
"...내가 너 올 줄 알았다"
"..."
"맨날 그렇게 싫다하면서, 이런 일 있으면 와서 챙기는건 뭐야?"
"..."
"이상하다고 생각 안해?"
김민석이 김종대에게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귀에는 작게 웅웅거리기만 할 뿐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종대는 김민석의 말에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여주한테 너무 많이 뭐라 하지마"
"..."
"간다, 여주 집에 데려다 주고"
김민석이 자리를 곧 떴고, 김종대는 한참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 사이에는 길게 정적이 흘렀지만,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것이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김종대가 내 팔을 저기 어깨에 두르고는 일으켰고, 나는 김종대에게 반항할 힘도 없어 힘없이 질질 끌려갔다. 김종대가 차를 가지고 왔는지 나를 조수석에 태웠고, 곧 운전석에 탄 김종대는 아무 말도 없이 한숨을 내쉬고는 피곤한지 눈을 살짝 감았다. 나는 그런 김종대를 한참동안 빤히 바라봤다. 김종대는 고등학생때와 많이 달라진게 없었다. 내가 맨날 만지작거리던 입꼬리도, 여자보다 예쁘다고 부러워했던 쌍꺼풀과 속눈썹도 말이다.
그러다 김종대가 다시 눈을 뜨고는 김종대를 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김종대 눈은, 정말 언제봐도 참 이쁘다. 옛날에는 김종대 눈 이쁘다고 우리 둘이 한참 서로 눈만 쳐다보면서 장난치고 그랬는데, 나도 모르게 옛날 생각에 빠졌고, 그렇게 우리는 한참동안 서로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김종대가 점점 나에게 다가오는것이 느껴졌다. 정말 천천히, 우리 둘의 얼굴 사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들렸다. 평소와 다르게 술 때문인지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같았으면 진작에 밀어냈을 텐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도, 그럴 기운도 나지 않았다.
어느새 김종대와 나의 거리는 서로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였다. 자칫하면 입술이 부딪힐 정도의 거리,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감을듯 나른한 김종대의 눈을 바라보고있는데, 김종대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내게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멀어졌다.
"집 어디야, 말해"
김종대가 내게 집 주소를 물었고, 나는 멍하니 내 주소를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우리 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나의 집에 도착했고, 김종대는 차에서 내려서는 나를 부축해서 내려주었다. 비틀거리는 나를 꽉 잡아준 그는 내가 집 비밀번호 누르는 것을 지켜보며 말했다.
"...앞으로 늦은 시간에 술 먹고 그러지 마"
"왜애-"
"위험하잖아"
"내가 위험하든 말든, 너가 뭔 상관이야-"
"...상관 있어, 그러니까"
"..."
"그러니까, 늦은시간에, 그것도 남자랑 단 둘이 술 마시지마."
김종대는 그 말만 남겨놓고 곧 차를 타고 떠났고, 나는 한참동안 복잡한 마음에 집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사담
종대가 갑자기 여주한테 그랬던건 종대가 처음에 여주보고 딱!! 첫눈에 반했던 장면을 여주가 다시 재연했기 때문...★ 여러분 다들 고척돔돔돔돔은 잘다녀오셨나요 ㅠㅠㅠ 저는 뭐...ㅎㅎ...집콘...ㅎ 하여튼 오늘도 제 글을 보고 약간을 설렘을 느끼셨기를 바라면서ㅋㅋㅋ 물러가겠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잘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