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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영어 문제집을 펴놓고 의미없는 밑줄이나 죽죽 그어대던 나는 생각했다. 이런 삶을 이어나갈 가치나 있을까? 하여 나 최종현은, 이번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 자살할 예정이다. 중간고사가 6일 남았다. 

 

 

멜랑콜리 듀 데이트 

 

 

공책에 뜻없는 단어를 끄적거렸다. 머릿속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다가 금방 소금물처럼 증발해버리는 가벼운 단어들. 

 

한창 열을 올려 단어를 적기 시작하자 연필심이 부러져 버렸다. 

 

항상 이런식이라니까. 

 

 

 

 

 

 

 

 

8교시 보충은 항상 지루했다. 내가 맨 앞자리에 앉아 공책에 '삶' '졸려' 따위의 단어나 끄적여도 선생은 나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 여기 to부정사는 무슨 용법이지?" 

 

부사적이요-  

그렇지, 그러면 그걸 토대로 이 지문을-. 

 

 

지루함의 연속이다. 

 

 

 

 

 

 

오늘도 야자를 뺐다.  

야자 빼주세요, 

하며 뻔뻔스럽게 얼굴을 비추는 나에게 담임은 이젠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나 몇번 주억거렸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가방은 가벼웠다. 내일 숙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것쯤은 이미 내게 아무것도 아니였다. 수행평가 점수나 벌점 쯤이야, 중간고사가 끝난 후엔 내게 아무런 영향조차도 주지 못할 것 이란걸. 아주 잘 아니까. 

 

투벅투벅 걷던 발걸음이 점차 빨라진다 싶더니 이젠 달음질 하기 시작한다. 뭣 땜에 뛰는걸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도 이유조차 모른 채, 달릴 뿐이였다. 

 

 

방금 차에 치일 뻔했다. 빨간 불로 바뀐 줄도 모르고 건널목을 건넜다가 일어난 일이였다. 이 새끼야, 앞 똑바로 안보냐? 하며 창문을 내린 험악한 인상의 아저씨는 내가 줄곧 한 곳만 응시하고 있자 나를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으로 착각한 듯  

에이씨, 장애인 새끼가-. 하며 내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집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매트리스에 벌렁 누워 가만히 숨이나 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언제부터 이따위였지? 

따위의 생각이나 하며 뭣도 아닌 인생을 비관하면서. 

 

 

 

 

애초에 나 같은게 태어난 게 잘못이였던거다.  

 

시각장애에 우울증인 엄마와, 알콜 중독자에 정신지체 2급 아빠. 치매인 할머니, 집은 가난해. 이 무슨 드라마 같은 설정이래. 나는 그래도 행복했다. 그래, 내가 초등학생일때까지는.  

 

엄마는 알바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죽었고, 아빠는 엄마가 죽은 것에 대해 비관하며 술을 퍼마시다가 자살했고, 할머니는 작년에 병세가 악화되어서 죽었고. 

 

지금 내가 가진 건 삼촌이라는 작자가 선심쓰듯 던져 준 15평짜리 아파트. 관리비는 주말에 알바해서 벌고 가끔은 훔치고.  

 

비참하네. 왜 태어났을까. 왜 여태 살아왔을까. 그래. 어쩌면 할머니를 보고 살았던 걸지도. 집에 들어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들리던 작은 숨소리에 위안을 얻었던 걸지도.  

 

 

 

나는 그렇게 침대에 누워 밤을 샜다. 

 

 

 

무의식과 의식의 어디쯤에서 방황하며, 쨍한 해를 바라보며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7시의 허리가 반쯤 잘려나간 시간. 나는 조금 서둘러 일어나 동전을 집어들곤 밖으로 나섰다.  

 

공중전화 박스가 없어지면 나는 어떻게 하지? 라고 중얼거리며, 학교 교무실로 전화했다. 

 

"여보세요?" 

 

"쌤, 저 종현인데 저 오늘 열이 좀 나서, 학교 못 갈 것 같아요." 

 

"아……. 그래, 쉬어." 

 

 

미련 없다는 듯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담임에, 나는 조금은 서운했던 것 같다. 

 

 

 

 

시험기간인데 난 이러고 있다니. 

정말 말도 안되는 꼬라지지.  

 

연필끝이나 좀 씹으려다가 연빌마다 끄트머리에 모조리 잇자국이 나있는 터에 에이씨, 하며 다시 매트리스에 누웠다. 잠을 안자서 그런지 잠이 몰려들었다.  

 

 

 

꿈을 좀 꿨는데, 

그 꿈에 흠뻑 취해서 정말 깨어나고 싶지 않단 생각을 했다. 

 

넷이서 환하게 웃고있는 꿈-.  

 

 

 

 

 

 

저절로 눈이 떠졌다. 사실 눈이 띵띵부어 저절로 떠졌다는 건 좀 오바. 다 낡아서 켜면 나오는것이 간신히 사람이고 풍경이고 음식인지 구분할 수 있는 TV를 켜 오늘이 며칠인지, 중간고사가 며칠 남았는지 알아봤다. 

 

4월 20일. 시험이 4일 남짓 남은 토요일 오전이였다. 

 

 

물을 좀 마시고, 오랜만에 밥-이라고 하기도 좀 뭐한 컵라면-을 먹었다. 지갑엔 오만원이 조금 못되는 돈이 들어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날 먹고 싶은 것은 먹고 죽자며 남겨놓은 돈이였다.  

 

 

식사를 마치고 매트리스에 걸터앉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을 읽었다. 참 좋은 인생이구나, 한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죽다니.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꼭 겪어보고싶은 끝이다. 얼마나 낭만적이야.  

 

 

그리고 나는 충동적으로 공사판으로 달려나갔다.  

 

야, 이놈 새끼야, 너 여기가 어디라고 또 와? 몸 상한다고 몇 번을 말하냐고 새끼야-! 

너는 대가리 굳으니까 이따위 짓 하지 말랬지! 

 

 

작업반장 황씨 아저씨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그런다.  

 

에이- 아저씨도 나 고아새끼라 돈 없는 거 알면서.  

 

하고 비실대며 웃자 아저씨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는 입술을 몇번 달싹이더니 뺨을 내려쳤다.  

고아새끼? 돈이 없어? 그래 이 옘병할 놈아, 아예 네가 고아라고 광고를 하고 다녀라! 

 

하며 내게 5만원짜리 두장을 던지는데, 나는 그 순간에도 돈이 생겨서 기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벼운 걸음으로 집에 가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해왔다. 

 

어…안녕! 하며 인사를 건네는데 도무지 누군지를 알아야지. 인상을 쓰고 한참을 바라보자 상대쪽에선 당황을 하는지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아! 생각났다! 

 

"이병헌!" 

 

"어엉 맞아-. 끈데 너 어제 왜 안왔어?" 

 

"글쎄. " 

 

하며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썹을 위로 살짝 들어올리자 놈은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너 내 짝이잖아!" 

 

하고 소리를 치듯 내게 말하면서. 

 

그랬던가. 

 

 

 

딱히 들고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이병헌의 말에 따르면, 반 애들이 나에대해 모두 수근거렸다고 했다. 

 

그래서 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되려 본인이 당황한다. 

 

아니-. 니 욕을 했다고! 너 진짜 막 산다고, 부모는 너 그러고 사는 거 안말리냐면서. 기분 안나빠? 

 

본인이 더 기분나빠했다. 나는 고개를 느리게 가로저으며 몇마디를 내뱉었다. 

 

뭐 어때, 난 고아새낀데. 

 

 

내 말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듯 뭐?? 하며 몇번이고 되물던 녀석은 결국 너 그럼 혼자살아? 하고 묻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니가 무슨 상관이냐는 듯 눈을 크게 뜨자 녀석이 입을 달싹거리더니, 나 너네 집 가볼래! 한다. 

 

뭐래. 귀를 후비적대며 못들은체 하자 짜증을 내더라. 아 왜!! 나 간다고!!!!! 

 

지랄이야. 발작났니? 말을 건네자 더 떼를 쓴다. 갈래! 갈래!! 

 

 

 

 

 

 

 

 

 

 

 

 

"와- 여기야? 생각보다 좋은 데 사네." 

 

"무슨소리. 존나 좁아. " 

 

"아, 응" 

 

뻘쭘해 하는 녀석을 뒤로 하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총알처럼 튀어들어간 이병헌은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바빴다. 

 

참나, 볼 게 뭐 있다고. 

 

"야 종현아! 나 여기 누워봐도 돼?" 

 

"그러든가." 

 

쟤 왜저래. 학교에선 몇마디 말만 붙이는게 다였던 애가 여기선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원래 저렇게 들러붙는 스타일이였나? 

 

 

이병헌이 누운 매트리스에 나도 같이 누웠다. 푸우욱 꺼지는 오래된 매트리스가 기분 나쁠 법도 한데 용케 안 일어난다. 

 

"야" 

 

"응?" 

 

"너 왜이래?" 

 

"뭐가?" 

 

"왜 이렇게 친한 척 해?" 

 

헐. 

 

정곡이라도 찔렸다는 듯 눈을 몇 번 깜박거리던 녀석은 입을 꾸욱 다물었다. 

 

"야, 말을 해 말을." 

 

"아-. 어-. 그니까-" 

 

"…" 

 

"그냥 멋있어 보여서 친해지고 싶었어! 근데 맨날 넌 자고! 밥도 거의 안먹고!" 

 

그게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또 다시 우물우물 거린다. 저 새끼 저거 버릇인가봐.  

 

"-그래, 다 핑계야! 학교에서 너 소문 안 좋은 편이라서…! 그래서 말 별로 못 걸었어!" 

 

내가 거짓말 하지 말고 똑바로 불어라. 하는 표정으로 본인을 쳐다본 줄 알고 지가 알아서 다 분다. 생각보다 단순한 애네 저거. 

 

"그래, 알겠어-.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어엉-." 

 

"근데 소문때문에 학교에서는 말도 못 걸겠다?" 

 

"응? 아니-. 그게 아니라-." 

 

"맞잖아. 딱 밖에서만 보자. 학교에선 안 친한 척 살자. " 

 

"…" 

 

"그거 아냐?" 

 

"…" 

 

"너 존나 이기적이다." 

 

눈물이 울망울망해서는 떨어질 것 같다. 녀석은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나, 나 갈게! 하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친구가 있는 건 나쁘지 않았다. 용기 내서 친해지자고 한 애 개쪽주고 싶은 마음도 평소라면 없었을 텐데, 어떡하니. 나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자살할 텐데. 마음을 주기 싫었던 거다. 애써 이제 끝내려고 했는데 발목을 잡는 무언가가 생기는게 싫어서. 

 

 

 

 

 

비겁한 변명이였다. 

 

 

 

 

 

 

 

 

** 

 

 

 

반가워여! 깽판이에여. 

공사판으로 달려간 종현이처럼 충동적으로 글을 올리게 되었습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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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느어어어ㅓ 좋아요 좋아여 왈칵........8ㅁ8 고마워요 잘읽었어요 !
8년 전
깽판
댓글..!댓글이다!!!!!!!!댓글!!!저야말로 읽어줘서 고마워요ㅠㅠㅠㅠ!!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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