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오늘도 어제처럼, 그리고 그저께처럼 매점을 가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지갑을 열었으나 보이는 건 딸랑 2만 원뿐. 그러니까 고작 초록 지폐 두 장밖에 지갑에 없었단, 이 말이다. 이게 말이 돼?!! 한 달 전에 이모한테 오만 원 받아서 얼마나 내가 기뻐했는데. 내 예쁜 신사임당님 어딨어, 어디 갔어! 다시 한 번 지갑을 뒤져봐도 동전 몇 개밖에 없다. 으어어어어엉. 이건 말도 안 돼. 맨날 새벽까지 인티하느라 시력이 나빠져서 보이는 환각일 거야. 머리를 쥐어뜯으며 현실을 외면하려고 애쓰고 애썼다."봉산탈춤 추냐?"매점 간다고 하니 제일 큰소리로 같이 가자고 외치던 내가 지갑을 보자마자 울며 발악을 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민아가 진심으로 꺼려진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책상 서랍에 숨겨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홀드키를 누르고 잠금화면을 풀었다. 디데이를 확인하니 23일째. 계산기 어플로 계산해보니 1200 x 23 = 27600. 헉, 진짜 많이 썼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집 파산 나겠다.그래서, 나 이제 어떡해? 잔뜩 얼굴을 구기며 울상을 지었다.
"왜 그래, 정말 무섭게.""나 어떡하지? 어떻게 해? 오또카지? 오오오오또카지!!""응, 나 매점 감.""언니, 저 오늘 초코빵 하나만 사주시면 안 돼요♥?""."
매정한 년. 나는 툴툴거리며 2000원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났다. 늦잠자는 바람에 아침밥도 못 먹어서 지금 뱃속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어쩔 수 없지. 초코빵을 포기하고 뚱바나 사야겠다. 나는 축축 쳐지는 발걸음으로 매점을 향했다.
"무슨 일인데?""돈이 없어…….""너의 사랑도 동시에 끝나겠구나.""죽고싶냐, 밀어버린다.""용돈 타면 되잖아.""나 용돈 안 받는 거 알면서.""그럼 고백하던지.""시끄러. 아, 왜 선배는 꼭 뚱바만 먹는 거야. 그 드럽게 비싼걸. 과수원도 피크닉도 있는데."
민아는 혀를 쯧쯧 차며 안쓰럽다고 했다. 알아 나도, 완전 찢일이인 거. 근데 어떡해, 선배 생각만 하면 터질 것 같은 가슴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선배에게 뭐라도 해야 그 불같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 같은데.18년 동안 보던 오글거리고 믿기지 않던 연애를 하는 여자의 심리 묘사에 드디어 공감할 수 있게 됐다.
"야, 학연 선배 지금 연습시간 아니냐?""맞아.""근데 저기 지나간다."
선배를 좋아하고 생긴 못된 습관 중 하나인 틈만 나면 생각하는 선배의 모습에, 괜스레 부끄러워져 고개만 푹 숙이고 선배의 얼굴을 그리고 있었는데 민아의 말을 들은 내 고개는 본능적으로 기립했다.왜 공감할 수 있게 됐냐고? 당연히 저 멀리에 있는 우리 학교 수영부의 반장이자 제일 실력 좋은, 차학연 선배 때문이지.와, 멀리서 봐도 잘생겼어. 멋있어. 완전 설레, 진짜. 다 내 꺼야! 나는 민아의 어깨를 붙잡고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야, 나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진짜. 너무 떨려.""가까이 있지도 않은데 뭔 난리야.""심장이 목구멍으로 넘어올 것 같은 느낌 알아?""너 얼굴 완전 토마토야. 거울 줄까?"
화끈한 볼을 두 손으로 마주 잡고 심호흡을 했다. 바르르 떨리는 가슴을 따라 손끝도 얇게 떨린다. 내가 좋아하는 학연 선배가 매점 안으로 들어간다. 아, 대박 사건.……나는 결국 민아에게 못 가겠어! 라고 외치고 왔던 길을 다시 뛰어갔다. 나에게 욕을 하는 민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친구들과 함께 매점으로 들어가던 얼마 전에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염색한 선배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B.4교시가 끝났다는 종이 치자마자 애들은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너도나도 책을 덮었다. 그런 애들을 보며 나는 혀를 차는 대신 책상 서랍 속에 있는 뚱바를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10분이 지나면 나는 한 달 전부터 하루의 일과가 돼버린, 학연 선배의 캐비닛 안에 몰래 뚱바를 넣으러 수영장에 가야 했다. 선배가 밥을 다 먹고 다시 수영장으로 와서 캐비닛을 열었을 때, 내가 넣어둔 뚱바를 발견하고 맛있게 먹어주는 상상은 언제 해도 달콤한 바나나 향을 몰고 오는 것 같다. 자고 있는 짝꿍에게 포스트 잇을 빌리고 필통에서 네임펜을 꺼내 들었다.아직까진 들키지 않아서 그런가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는 것 같다. 뭐…언젠가는 들키겠지만 왠지 그 기간은 꽤 오래될 것 같다. 수영부는 뭐가 그리 급한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거의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급식실로 뛰어가고, 내가 학연 선배에게 뚱바를 바치는 것처럼 다른 여자애들도 선배에게 많은 공물을 바치는 터라 선배가 굳이 귀찮게 나를 찾을 것 같지도 않다. 괜히 인기가 많아 가지고.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심통이 나서 혼자 중얼댔다.「아침밥 못 먹어서 넘흐 배고파요ㅠ.ㅠ 초코빵 먹고 싶다! 암튼 맛있게 드세요 슨배.」나는 포스트 잇을 집어들고 발을 크게 동동 구르고 흐헣, 꺆, 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선배에게 러브레터를 받은 것처럼 가슴이 쿵쿵 뛰고 미치겠다. 선배는 이거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표정? 선배는 이렇게 난리 치며 쓰는 나를 단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이 뚱바를 들이키겠지만 나는 이렇게 발광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건데 사람에게 있어서 망상이 가장 위험한 거 같다. 현실을 외면하고 브이텍으로 인해 죽을 것 같은 나를 봐라. 다시 읽어보니 너무 창피한 것 같기도 해서 그대로 구겨버릴까 했지만 난리 치느라 벌써 10분이 다 돼가 나는 얼른 뚱바에 노란 포스트 잇을 붙이고 반을 나섰다. 민아가 얼른 오라고 당부를 했다.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을 나갔다.선배를 좋아하는 미천한 존재지만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선배에게 줄 무언가를 한 일주일 가까이 고민하다가 선배가 뚱바를 자주 먹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아무 고민 없이 그 다음 날부터 당장 매일 뚱바를 사서 선배에게 바치는 중이었다. 23일째. 나는 파산 위기. 하지만 고작 때문에 18년 만에 찾아온 첫사랑을 포기한다면 진짜 난 상병X인거고. 근데 계속 이렇게 바치다가 선배 졸업까지 좋아하면 돈이 얼마냐 대체…. 대체 상품을 찾아볼까? 아냐, 그건 너무 약아 보이잖아. 안 되겠다, 이번 주부터 엄마와 전쟁을 해야겠어. 에휴, 한숨을 쉬며 나는 선배의 캐비닛을 열고 뚱바를 집어넣었다. 다음 포스트 잇에 피크닉은 안 좋아하냐고 물어봐야지. …아, 답할 길이 없구나. 바보. 가서 밥이나 먹자.돌아가는 길에 드는 생각이, 이렇게 내가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게 선배를 완전 좋아하고 있는데, 선배가 좀 알아줬으면 - 이 아니고 아니지. 알면 내 몰골을 보고 인상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일단 예쁘고 봐야지. 흡, 세상의 모든 거울을 내가 다 부숴버릴 거야.2학년들보다 먼저 밥을 먹는 3학년들은 2학년이 밥을 다 먹고 나올 때쯤 대부분이 밖으로 나와 운동장을 따라 걷거나 운동을 한다. 그래서 가끔 내가 준 뚱바를 입에 물고 걸어다는 학연 선배를 볼 수가 있다. 오늘이 그런 운 좋은 날이었다. 하느님, 또 이렇게 감사하게 저 우울한 거 아시고……감쟈감쟈. 선배의 까무잡잡한 피부가 빛을 받아서 더 섹시하다. 코피 터질 것 같네. 이힣. 갑자기 싱글벙글 웃으며 밥을 먹는 나를 보고 민아가 옆자리로 이동했다. 나는 여전히 모자라 보이게 웃으며 민아를 따라 옆자리로 옮겼다. 앞에 있던 선유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나 이렇게 선배 좋아해서 어떡하지?
C - 1
어제부로 학연 선배를 좋아한 지 30일이 지났다. 상상조차 안 되는 일이지만, 선배와 내가 사귀게 된 날을 세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좋아하냐고 타박하는 민아에게 상큼하게 닥쵸와 엿을 함께 날리고 헤실헤실 웃었다. 애니에서 봤던 주위에 꽃이 날리고 나는 하늘을 날고 있는 느낌이다. 여러분 세상은 참 밝아요. 하핫. 신난당당당. 아침부터 기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나를 받아주고 있는 민아와 선유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왜 역사적인 날이 아니야, 내가 선배를 좋아한 지 31일이나 됐는데. 그치? 선유를 쿡쿡 찌르며 물으니 오만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 오늘은 딸기 맛이랑 뚱바 둘 다 사갈까? 아니야, 오늘은 31일인데. 어제 사야 됐어, 이 센스없는 나란 못난……. 왜 어제 디데이 못 보고 오늘 봤을까. 그거 가지고 나는 또 찡찡대며 민아와 선유를 괴롭혔다. 결국 헤드락을 당하고 나는 상큼하게 다음 교시를 준비했다.
절로 나오는 허밍에 고개를 작게 끄덕이기까지 하며 나는 즐겁게 뚱바를 선배 캐비닛에 넣었다. 오늘은 좀 특별하니까 뚱바 2개를 넣어놨다. 포스트 잇에다 예쁘게 분홍펜으로 하트도 그려놓고.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수영장을 나섰던 걸음 중 가장 즐겁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캐비닛만 있는 방을 나섰는데, ……오 쉣.
"너 누구야, 왜 여깄어?"
뎅뎅. 어디서 내 인생이 종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죠? 수영부 안전담당이지만 제일 먼저 급식실로 뛰어 나가는 이재환 선배가 왜 내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거죠? 오늘 무슨 날이에요? 선배가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있다니.
선배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박일 때마다 식은땀이 스멀스멀 등줄기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저어, 그게……."
"누구 찾아?"
"아뇨, 그것이 아니고……."
"뭐야, 고백 받냐 이재환?"
가는 날이 장날이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 국어 시간에 배웠던 사자성어와 속담들이 서로 뒤엉켜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사실 시야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더 어지러웠다. 왜냐고? 재환 선배의 주위로 홍빈 선배와 택운 선배가 모여들었고 저 멀리서 이쪽을 보고 학연 선배도 슬며시 여기로 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재환 선배 앞에 있는 수영장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하하…신이시여….
"아…혹시?"
학연 선배가 다가왔다. 엎어지면 바로 푹 안길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서 선배는 멈췄다. 현기증이 일어나고 사지가 발발 떨리기 시작했다. 나 이렇게 가까이서 선배를 보는 거 처음인데…죽을 맛이야. 매섭게 쿵쾅대는 심장 박동 소리에 귓가가 멍멍하고 입안이 바싹 말랐다. 엄마, 나 학연 선배 앞에만 서면 발생하는 무슨 병이 있나 봐. 내 정신과 몸이 아닌 거 같아. 으헝.
"누구한테 볼 일 있어서 왔어?"
재환 선배가 샐쭉 웃었는데 날카로운 침에 어깨가 찔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선배는 친구들이 다가온 이후로 발발 떠는 나를 보고 뭔가 알았다는 눈치였다. 고백한다고 생각하는 게 확실하다. 아뇨, 선배. 저 지금 약빤 것 같이 시야가 돌고 헛것이 보이는 것 같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힐끗 바라본 학연 선배는 정말 눈물 나오게 잘생겼다. 내 남자…….
"너무 떠는 거 아니야, 얘?"
"누군데, 누구."
네 남자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됐다. 아, 도망칠까. 그러면 분명 나는 뛰어가다가 뒤로 자빠지고 학연 선배를 가까이 처음 본 오늘을 내가 선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으로 장식하겠지. 안 되겠어. 일단 아무나 붙잡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야겠는데….
옛날에 선유가 해줬던 이야기가 왜 지금 떠오르는지 모르겠다만, 남자는 자기 친구들한테 잘해주는 여자 좋아해. 라고 선유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택운 선배요……."
학연 선배와 택운 선배가 절친이라는 건 둘 중 한 명만 알아도 다들 알게 되는 사실이니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택운 선배를 불렀다.
홍빈 선배가 조용히 올, 이라는 소리를 냈고 재환 선배는 아줌마같이 오모오모 거리며 학연 선배의 등을 밀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살짝 찌푸려진 학연 선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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