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린 같은 이불에서 일어났다. 6년 만에, 어느새 하루가 지났고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우리를 깨운 건 다름 아닌 이모의 목소리였다.
“일어나야지, 얼른 일어나서 밥 먹어”
“이모 금방 나갈게"
어젯밤의 흔적을 말해주듯 굳게 잠긴 문과 헝클어진 머리 더워서인지 뜨거웠던 밤 때문인지 우리의 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늦게 잠을 이룬 탓에 얼마 자지 못해 피곤함이 몰려왔다. 아무 곳에 흩어져있는 옷을 입고 우린 밖을 나갔다. 창문이 다 닫혀있던 백현이의 방과는 달리 문이 온통 열려있는 탔에 시원함이 확 몰려왔다. 백현이는 생각 외로 심하게 절뚝절뚝 거리며 걷고 있었다. 나는 백현이의 뒤로 빠짝 붙어 귓속말을 하였다.
“많이 아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하긴 6년 만에 보는 사랑하던 첫 사랑을 만나 흥분을 참지 못하고 서로를 느꼈으니 첫 경험인 만큼 많이 아팠을 것이다. 생각 보다 많이 아파하는 탓에 그 행위는 끝을 보지 않고 중간에 포기해야만 했다. 누군가 들으면 비웃을 수도 있는 말이었겠지만 나의 욕정을 푸는 것보단 백현이가 더 소중했다. 그렇게 우린 몸을 포개곤 서로의 입술만 탐할 뿐이었다. 걸음걸이가 신경 쓰였다.
“백현이는 어디 다쳤어?”
“아…, 그냥 어제 비 와서 미끄러워서 넘어졌었어. 허리 부딪혀서…,”
“조심 좀 하지”
우린 밥을 다 먹고 마당에서 얼굴과 머리만 씻어내고는 푹푹 찌는 여름 탓에 부채 하나씩을 들고는 낡은 하늘색의 문을 열고 집 밖을 나섰다. 말리지 않은 머리 탓에 시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물기가 달라붙어 땀과 뒤 섞여인지 찝찝하기도 하였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길로 백현이의 느릿느릿 한 걸음을 맞춰추며 산을 올라갔다. 어제 우리가 밝은 달빛을 보았던 곳을 지나 더 위로 올라가 보이는 작은 집. 하얀색의 대문을 열어 보았다.
“할머니 나왔어”
엄마는 부엌에서 아침을 먹은 것을 설거지하고 계셨고 할머니는 방 안에 앉아있다 내 목소리가 들리자 아픈 허리를 짚고 방 안에서 나오셨다. 백현이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였고 우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 내가 쓰던 방은 그대로였다. 엄마가 쓰고 있는 것인지 옷장에는 엄마 옷 몇 벌이 걸렸있었고 이곳저곳에 엄마의 짐이 정리되어있었다. 우리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불 위에 앉았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셔?”
“전이랑 똑같아 별로 신경 안 써 성적에만 관심 있고”
백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어때?”
“여기가 더 좋아. 공기도 안 좋고 나쁜 사람도 더 많아 그리고 인정이 없는 것 같아”
“정말? …. 서울 가고 싶은데”
“놀 곳은 서울이 더 많아 재미있어. 다음에 서울 구경시켜줄게"
“진짜? 꼭이야. 약속했다?”
엄마가 설거지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오자 백현이는 자리에 일어서 90도로 인사를 하였다.
“어렸을 때 친구야. 나 가지 말라고 울던 애”
“아…, 많이 컸네? 그때 그 꼬마였구나 어머니는 잘 지내시니?”
“네 잘 지내세요”
엄마가 처음에 백현이를 보았을 땐 시선은 눈에 제일 띄는 노란 머리로 향했고 엄마의 표정이 많이 굳어졌었다. 12살 때 서울로 올라가 어린 나이에 반항심이 생겨 술 담배를 입에 댔고 친구도 질이 좋지 않은 아이들과 놀러 다니며 부모님 속을 썩였기에 정신 차린 이후로 유일하게 나에게 신경 쓰는 것이 성적 그리고 친구 관리였다. 그렇게 어머니 안부를 묻고는 정적이 흘러 나는 방 안을 빠져나와 거실로 갔다.
“할머니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잘까?”
“그러면 할머니야 좋지”
“오늘 같이 자자”
오늘 저녁에는 백현이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에게 그동안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기 위해, 해가 지고 저녁 9시쯤이 되자 백현이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얇은 이불을 덮으며 할머니 옆에서 작은 베개를 배며 옆으로 누워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할머니도 웃으며 몸을 옆으로 돌려 나를 보았다.
“할머니”
“응”
“방학마다 오고 싶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못 왔지
그래도 그동안 손주 잘 컸지? 할머니 많이 보고 싶었어. 우리 엄마는 할머닌데 나 키워줬으니깐
할머니 서울 구경도 시켜줘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안됐어.
내가 꼭 할머니 서울 구경시켜줄게"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68년 긴 세월 동안 이 시골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 손주가 서울 구경시켜줄게. 그러니 대견하다며 우리 손주가 많이 컸다며 베개에 눈물을 적셨다. 할머니 또 울어? 우리 손주가 너무 예쁘네. 할머니의 우는 모습이 싫었다. 안 그래도 작고 여리고 약한 몸이 눈물을 흘리면 더 작아 보였다. 손을 들어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니깐 그때까지 할머니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해, 어른 되면 외국에도 같이 가자, 일단 서울 구경부터 계획 짤까?”
늦은 밤.
할머니와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서울 구경에 대해 계획을 짰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콩국수도 먹으러 가고 안마도 받고 서울 간 김에 큰 병원에 들려서 건강검진도 받아보고 그날도 이렇게 같이 잠에 들자고. 할머니의 뜨거운 손을 잡았다. 남자인 나의 손보다 더 까칠까칠 한 손,
“다음에 올 때는 핸드크림 가져올게"
이 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할머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있어야 해 그래야 서울구경 제대로 할 수 있지 그러니 할머니는 소녀처럼 웃음을 지었다. 어릴 적 보았던 할머니의 어릴 적 사진. 교복을 바르게 입고 누가 봐도 예쁘다 하고 생각할 만큼 고왔던 얼굴. 주름 하나 없던 고운 얼굴. 그리고 사진 속 웃고 계셨던 할머니의 모습 그 사진 속 모습이 지금 웃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과 같았다. 소녀 같은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의 손을 더 꽉 쥐었다.
“할머니 사랑해”
“나도 우리 손주 사랑해”
눈을 감았다. 짧으면서 달콤했던 이 밤을 오늘로 끝을 낸다.
서울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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