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2부
11-1.
복도로 쫓겨났다. 수업시간이라 그런지 1반부터 5반까지 넓게 이어진 복도가 휑하다. 몇 대 맞아본 적은 있어도 복도로 쫓겨난 적은 또 처음이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까지 겪는다. 오늘은 정말 다사다난 한 것 같아. 조용히 뒷문을 닫자마자 먼저 나와 있던 변백현이 날 돌아보며 말한다.
“말 걸지 마.”
뭐야, 그런 표정. 무표정으로 딱딱하게 말 하면 내가 아, 예 알겠습니다. 하면서 굽신거릴 줄 알았나. 표정 없는 변백현이 낯설긴 하지만 그 정도에 물러설 내가 아니지. 굳은 표정을 하고선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싫은데.”
그랬더니 변백현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답답한 건 난데, 왜 지가 답답하다는 듯이 저러는 거지? 거참.
“미안하다고 했잖아.”
복도 쪽 창가에 딱 붙어 서 있었는데, 변백현이 나한테서 점점 멀어지기에 옆으로 따라붙으며 말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관심 없다는 듯, 더 멀리로 도망 가버린다. 그럼, 더 쫓아가지 뭐. 분명 뒷문 쪽에 서있었는데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다보니 벌써 앞문 근처까지 다 달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변백현이 인상을 쓴다.
“그래서 뭐?”
그러면서 귀찮다는 듯이 한 마디를 툭 내던지는데, 그 뉘앙스가 ‘사과했는데 나 더러 어쩌라고.’ 이런 식인 거다. 아니, 그럼 뭘 더 어떻게 해야 되는데? 미안하다고 하면 끝 아닌가? 더 이상 뭐 할게 남아있나? 진짜 모르겠어서 멀뚱멀뚱 녀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은 저딴 식으로 재수 없게 하긴 했어도, 이제 좀 받아주려는 건가. 처음과는 달리 대답도 꼬박꼬박 해준다. 슬슬 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찌됐든 거의 다 온 것 같아.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그랬어.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 오로지 진심만 전달하면 되는 거야. 백현이도 나의 미안함을 알아 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작정하고 눈을 부릅뜨고 더 가까이 다가갔다.
“사과라도 줄까? 그래야 풀려?”
씩 웃으며 내 어깨로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반대쪽을 쳐다보던 변백현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온다. 근데 표정이 좀 안 좋은 거 있지.
“장난 하냐?”
아, 이게 아닌가. 잘못 던진 건가 싶었다. 그래서 대답은 않고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그러고 있는데, 표정이 안 좋은 변백현이 무릎 위까지 올려놓은 내 체육복으로 시선을 준다. 나도 따라서 시선을 내렸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데, 보니까 또 아픈 것 같아. 빨간 약을 바른 자리가 괜히 화끈거린다. 그나저나 김종인한테 다쳤다고 말해야 돼, 말아야 돼. 이것 참 고민이다. 별거 아니긴 한데. 다쳤다고 말해서 그 애가 걱정해주는 걸 보고 싶기도 하고 또 괜히 걱정할까봐 숨기고 싶기도 하고. 방금 머릿속으로 내 무릎을 부여잡고 울상을 짓는 김종인을 상상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 거다. 입 꼬리를 올려 싱글벙글 웃었다. 변백현이 이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아니, 누구 때문에 다친 건데 그런 눈으로 봐?
“아, 존나 아파.”
괜히 다리를 절뚝이며 다친 무릎을 부여잡았다. 변백현 보라고 일부러 그런 거다. 좀 찔릴까 싶어서. 대놓고 변백현과 내 무릎을 번갈아 쳐다보며 다 죽어갈듯이 연기했다. 녀석이 입을 꾹 다문 채 날 본다. 좀 찔리긴 하나보지? 그 반응 때문에 더 신나게 오버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무시로 일관하던 백현이가 반응을 해주니까 이거다 싶었던 거지. 근데 내가 생각해도 오버가 심하긴 해. 누가 보면 뼈라고 부러진 줄 알겠다. 아, 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닌데…. 변백현 앞에서 재롱잔치 하는 것도 아니고. 난 계속 ‘아야아야’ 다 죽어가는 소리로 아픈 척을 하고 있고, 백현이는 이젠 팔짱까지 끼고 묵묵히 내 연기를 감상하고 있다. 표정을 보아하니 찔린 것도 이제 지났어. 언제까지 하나 지켜보자 이런 표정이다.
그에, 한도 끝도 없이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무릎을 짚느라 구부렸던 몸을 폈다.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걸 가만히 보던 백현이 갑자기 벽을 타고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앉는다. 두 무릎을 감싸고 앉아 내 상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뭘 하려고 이러나 싶어서 가만히 쳐다보는데, 손바닥으로 내 무릎. 그러니까 다친 곳을 꾹 누른다.
그것도 존나 세게.
“악!!”
반사적으로 얼른 무릎을 부여잡으며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존나 아파 진짜... 눈가에 눈물이 다 맺히려고 한다.
그러고 있는데, 변백현이 몸을 일으켜 멀뚱멀뚱 나를 본다. 이게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재수 없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화를 애써 꾹 눌러 담았다. 참자. 참아야하느니라. 무릎을 가리던 손바닥을 뗐다. 피가 묻어나온다.
시발.
“야 이 미친놈아. 이게 뭐하는 짓이야?”
피를 봐서 흥분했다. 빨간 걸 보니 눈이 뒤집혀서 이성을 잃었다고. 욱신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변백현에게 소리쳤다.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날 본다.
“내가 뭘.”
뻔뻔하기로는 번데기 같은 변번데기 자식.
“이러지 말자 좀. 차라리 말로 해, 말로.”
“너랑 할 말 없는데.”
“야.”
“자꾸 말 좀 걸지 마. 대답하기 싫으니까.”
이게 뭔가요. 지금 유치원생이랑 얘기하고 있나요.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해. 한숨을 푹 내쉬며 피가 묻지 않은 다른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불만 있으면 말로 하라고.”
“불만 없는데?”
불만이 없기는 개뿔이. 니 얼굴이 다 적혀있어, 인마. ‘나 지금 엄청 뿔났음.’ 이렇게 적혀 있다고.
“우리 대화로 풀자, 대화로.”
“난 할 말 없다니까?”
일부러 이러는 게 분명해. 날 열 받게 하려고. 내 인내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시험해보려고 이러는 거지? 아, 변백현이 이렇게 얄미운 인간이었나.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짜증을 어디다 삭혀야 될지 모르겠다.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내쉬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변백현을 쳐다봤다.
“뭘 봐.”
아, 도저히 안 되겠어. 나는 못 참겠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야.
“너 본다. 이 유치한 새끼야.”
“너 지금 나한테 유치한 새끼라 그랬냐? 이 시발. 야!!!!!!!”
유치함 폭발이다. 유치함의 끝이라고요. 끝. 이제 난 몰라.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쓸데없이 흥분한 변백현이 내 멱살을 잡으려는 찰나,
“…이것들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창문이 쾅 소리내며 열렸다. 누군가 귀를 세게 잡아당긴다. 누구긴 누구겠어. 선생님이지. 아 존나 아파.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다. 앓는 소리를 내며 자꾸만 위로 당겨지는 귀를 따라 몸도 같이 올라갔다. 슥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변백현도 같은 처지다. 유치하게 굴더니 꼴좋다고 생각하는데 머리 위로 여자치곤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둘 다 교무실로 따라와.”
아, 쒯.
一
출석부로 머리를 몇 대나 맞았는지 모른다. 죄송하다고 앞으론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빌고 또 빌었다. 잔소리를 하던 선생님이 인상을 쓰며 앞으로 지켜보겠다고 하며 돌아가도 좋다기에 교무실을 나섰다. 하지만 태도점수가 감점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공기처럼 살아왔던 내 인생의 치욕이다. 태도점수가 깎이다니. 나, 이래 뵈도 성적에 신경 쓰는 성실한 학생인데. 오, 맙소사. 요즘은 될 일도 안 되고 그러네요.
오늘은 왜 이렇게 아픈 곳이 많나 몰라. 무릎도 아프고 귀도 아프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를 두 손으로 부여잡으며 옆에서 걷는 변백현을 노려봤다. 이 모든 게 이 인간 때문이야. 변백현 때문이라고. 아, 유치한 새끼. 그러니까 이쯤하고 그만 풀자. 어? 그럼 내가 다 용서해줄게.
“이제 좀 풀어라. 어?”
분명, 같이 교무실을 나왔는데 또 저 만큼 앞에 가있다. 보폭을 크게 넓혀 앞서있는 변백현에게 따라붙으며 말을 걸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진짜. 니가 생각해도 좀 유치하지 않아?”
“…….”
“아직도 화가 덜 풀렸으면, 차라리 날 때려. 때리고 풀자. 제발.”
그래도 나보다 몇 걸음 앞서 걷던 변백현이 고개를 돌려 날 본다.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게 꼭 날 때리려는 것 같았다. 오늘이 날인가. 도경수 동네 북 되는 날이냐 이 말이에요. 흔쾌히 맞아줄 의향은 있는데 갑자기 그렇게 보니 좀 움찔했다…는 건 비밀.
“야.”
좀 전에 선생님한테 잡힌 변백현의 왼쪽 귀가 빨갛다. 그걸 손으로 문지르며 변백현이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해온다. 이 자식은 뭔데 또 분위기를 이렇게 잡고 난리야. 닭살이 돋을 뻔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화해는 영화 찍듯이 화려하게 하자 이건가? 입을 다물고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니들 밖에서 손은 잡고 다닐 수 있냐?”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그런 말이었다. 조금 전, 유치하게 싸울 때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였다. 할 말을 잃고 멀뚱히 녀석을 쳐다보기만 했다.
“가족들한테 사귄다고 당당하게 얘기는 할 수 있고?”
쉬는 시간의 복도는 그야말로 인간 군상의 도가니. 그러니까, 한 마디로 개판이었지만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조금은 작은 목소리로 말하던 변백현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멍했다. 그냥, 아무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멍했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백현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
그런 날 가만히 지켜보던 백현이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 계단을 먼저 오른다. 그 뒷모습을 그대로 지켜보다가 난간을 잡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이런 충격, 전에도 한번 느꼈던 것 같은데 이번엔 그 강도가 더 세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 이런 기분일까. 끝도 없이 아득해졌다.
***
부득이하게 11편은 5편처럼 1,2로 나눠서 올리게됐네요ㅠㅠ
이해해주세요!
오늘도 너무 감사합니다! 하트~
몽글몽글 쏘쏘 낑깡 백토끼 라면 파리채 민트색 순백흑백현 찌롱 까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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