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슈워더 다음날 병원에 오자마자 변백현에게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고 난 뒤에야 진료실에 혼자 남을 수 있게 된 나는 아직까지도 쨍알거리는 변백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것 같아 양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게 내가 퇴원은 아직 이르다고 했어, 안했어?!' 이 말만 병원에 도착한 뒤로 몇번을 들은건지 이젠 귓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였다. 니가 책임진다고 그랬으니까 이제 진짜 니가 다 알아서해! 쾅 하고 제 승질머리처럼 거칠게도 닫혔던 진료실 문을 바라보며 안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지는것 같은 기분에 쿵쿵 괜한 책상만 주먹으로 두드렸다. 병원으로 루한의 보호자가 찾아왔다. 루한이 병원에 온 첫날 그때 봤던 아주머니가 아닌 왠 젊은 남자였다. 깔끔한 검은색 수트를 입고 내 책상 위로 하얀 명함 한장을 곱게 내민 그의 이름은 김준면. 새하얀 얼굴에 부드럽게 걸린 미소가 어딘가 모르게 많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냥, 그런 사람이였다. "루한씨, 형입니다" "...그렇군요" "잠시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지금은 좀 곤란한데 일이 끝나고 나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준수한 모습에 단정한 이미지 그리고 몸에 벤 매너와 어딜봐도 예의 바르게 느껴지는 언행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나는 어딘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는걸 느꼈다. 조금 무서운 기분. 아니, 보통 자기 동생의 이름을 저런식으로 부르나? 어쩐지 조금 차갑게 느껴졌던 루한씨 라는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문득 맨손으로 그가 건낸 명함을 집어들었다는걸 깨닫곤 무의식적으로 명함을 바닥으로 던지듯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책상 한켠에 놓인 항균 티슈를 뽑아 손을 벅벅 닦아내곤 장갑을 낀채 명함을 집어들어 쌓여있는 종이 위로 대충 올려두었다. 다행히 오늘이나 내일 안으로 의식을 찾을것 같다는 종대의 연락에 불안했던 가슴을 달래곤 서둘러 병원을 나설 준비를 마쳤다. 살았으면 그걸로 됐다. 몸이 아픈게 다 낫고나면 그때부턴 그의 가슴 속에 난 상처는 내가 모두 뜯어 고쳐버릴테니까. 이 병원에 왔던 첫날부터 묘한 죄책감을 안겨주었던 그 사람에게서 이런식으로 마음의 짐을 얻게 된게 벌써 두번째였다. 아무리 내가 상대하고 싶지 않은 환자라고해도 일단 내 담당 환자로 있는 한 세번의 실수를 할수는 없었다. 그가 성정체성 장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잠시 잊자. 난 의사니까. 오로지 지금 내가 환자에게서 봐야할것만 보자. 아주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며 굳게 닫혀있던 문의 손잡이를 밀었다. "안녕하세요" "네, 이렇게 따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마침 저도 할말이 있어서요" "그런가요?" "......" "우선 뭐 좀 시키시죠" "아니요. 저녁을 먹고 와서.." 내 쪽으로 메뉴판을 내미는 남자의 행동을 손을 들어 저지하곤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사람도 쉽게 물러서질 않는다. 테이블 가운데에 놔둔 메뉴판을 펼치고는 '그럼 마실거라도?' 하고 유한 얼굴로 미소를 짓는데 그것까지 거부할수는 없어서 어쩔수없이 메뉴판에 적힌 음료를 아무거나 가리켰다. "아메리카노 하나랑 화이트초코 하나요" 종업원에게 다정하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주문을 한 그는 동그란 쟁반을 든 종업원이 테이블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할말이 뭐죠?" "의외로 성격이 급하시네요" "저기요" "일단 주문한거라도 나오고나서 얘기하는게 어때요?" "......" 뭔가 상당히 거슬리는 사람이였다. 그 사람의 형이라서 그런걸까? 저 웃는 얼굴 뒤로 뭔가 다른 생각이 숨어있을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여전히 입꼬리를 위로 끌어올리고있는 김준면씨를 바라보자 '통성명부터 제대로 할까요?' 하고 내 앞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었다. "김준면입니다" "...김민석입니다" "제 손이 조금 민망한데.." "죄송합니다만 제가 결벽증이 있어서요" "아아, 실례했네요" "저야말로" 내 앞에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어간 그가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종업원을 보곤 '이쪽이 화이트 초코요' 하고 예의바르게 나를 가리켰다. 나와 그의 앞에 머그컵이 하나씩 놓여졌다. 잔뜩 올려진 휘핑 크림을 빨대로 한번 휘젓고는 주문한것도 나왔으니까 할 말 있으면 빨리 해보라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작게 소리내어 웃은 그는 느긋하게 들고있던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아, 귀여워라" "...도대체 무슨..." "루한씨랑 저는 친형제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말이죠?" "첫날 병원에 왔던 여자분은 제 어머니입니다. 그러니까 루한씨의 친어머니는 아니죠" "...이복형제?" "뭐, 그렇죠" 달갑지 않은 얼굴로 '따지고보면 어쩔수없이 그렇다' 같은 대답을 내어놓은 이 사람은 그래서 말인데 담당의사인 당신에게 부탁할게 있어요. 하고 원래 얘기하고자했던 본론을 꺼내놓았다. 루한의 아버지이자 김준면, 눈 앞에 이 남자의 새아버지이기도 한 그 사람은 중국에서 꽤 큰 사업을 하고있다고 했다. 엄청난 주식 부자에 하고있는 사업의 규모도 무시할수없는 수준이라 재혼 후 거의 내놓다싶이한 루한을 한국으로 내쫓듯 보내버린것도 모두 그 아버지의 뜻이라고 했고 당연히 루한의 새어머니인 그녀도 눈엣가시인 루한이 달가울리 없던 터라 그대로 아예 내칠 생각이라고 했다. "그 아이, 게이 아니에요" "......" "그냥 버려질 이유가 필요했던것 뿐이지" "저한테 왜 이런 말을 하시는거죠?" "저도 그 애가 병원에 있었으면 하거든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 사람은 성정체성 장애가 아니에요. 우리 병원에 그런 이유로 입원 할..." "나 좋자고 하는 일만은 아니잖아요?" 그 아이가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 이유, 다 우리 가족 때문인거 당신도 어렴풋이 알고있잖아. 안그래요? 의사로서 아주 약간의 책임감만 가져줬으면 하는건데, 어려우려나? "저기요. 내가 댁들 사정봐줘가면서 내 일터에 사람 들여야해요? 당신이 말한대로라면 그 사람을 그지경까지 몰아간건 당신들이잖아. 그런데 왜..." "그러게 병원으로 보냈잖아요. 정말 이런일이 생길까봐" "......" "진짜 죽어버릴까봐 노심초사하는건 우리야. 우리 집안에서 자살? 그건 말도 안되지" "뭐라고?" "살려줘요. 내 동생. 당신이" 김준면이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을 내가 있었다. 뭐 이딴 새끼가 다있어. 찌푸려질대로 찌푸려진 내 표정을 바라보며 다시금 부드럽게 웃어보인 이 남자는 '커피 드세요' 하고 아무렇지 않게 비틀린 내 입가를 막아버렸다. "한모금도 안마신거 같은데..." "단거, 안좋아해서요" "아아" "할 말 다 끝났습니까?" "그쪽이 내 말뜻을 다 이해했다면요" "...좋습니다" 원하는대로 우리 병원에 입원시켜드리죠. 단,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당신의 사정을 봐줘서도 아니고 그 사람이 안타까워서도 아닙니다. 물론 그가 진짜 게이일거라고 생각해서는 더 더욱 아니고. 다만 내가 살수있게 만들고 싶을 뿐이에요. 내 밑에 있으면서 눈앞에서 두번이나 자살시도를 하다니 이건 내 자존심이 상해서 말이죠. "당신 고집이 세네요" "면회 올 생각은 하지마세요" "물론 그럴일은 없죠" "그럼 얘기 끝난건가요?" "그래도 몇번 당신은 더 만나고 싶은데" "......" "나도 그 아이의 상태가 호전될지 궁금할거 같아서 말이야. 일단은 보호자로서" ...제 번호 알고있잖습니까. 자리에서 일어서며 차갑게 노려보자 시원하게 웃어보인 준면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놓인 머그컵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댔다. "역시 입원시키길 잘했어" 그의 마지막 말에 내 인상은 더욱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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