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보아 - 로망스(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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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근 무겁네… "
샌드위치랑 생과일주스를 15개나 사서 그런가 무겁긴 무겁다. 11개 사려다가 감독님도 계실거고, 다른 선수들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사긴 했는데… 그렇다고
전화해서 물어보면 눈치만 더럽게 빠른 기성용은 오려고 ? 하면서 혼자 실실, 눈꼬리 접으면서 방방 뛸거고.손에 들고 산책이나 할겸 걸어갈까 하다가 역시나, 무리인것 같아
택시를 타고 선수촌에 가기 시작했다. 날씨 엄청 좋네, 택시에 타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데, 행복해서 그런가 눈에 알콩달콩 달달하게 사랑을 나누는 커플들만 보인다.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옛날엔 알지 못했는데 특별히 뭘 하지 않고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는, 그런 감정 25살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늦었다 생각할수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행복한 감정 , 기성용과 연애하면서 깨달았으니까. 슬쩍 웃으며 밖을 쳐다보는데, 언제 다 왔는지 택시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왔습니다.
" 아, 죄송합니다. 여기 돈이요."
" 감사합니다 "
" 수고하세요 "
모든게 다 행복하다. 이렇게 한가하게 하늘 바라본것도 몇년전이더라… 몇번 본적 있지만 마음이 불안정해서, 사는데 급급해서 모든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었다. 철없을 시절,
하늘을 바라보며 숨이 탁 트인다며 환하게 웃던 엄마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나이 먹고서야, 이제야 깨달았다. 이런게 행복이구나, 이런 삶이 행복한 삶이구나.
기성용을 만나고 변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항상 급하고 모든지 빨리를 외치던 나와 달리, 기성용은 다정다감하고 모든지 차근차근이었다. 답답하다, 하고 생각할때도 있었
지만 지금 보면 너무 부럽다, 그래서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거고…. 택시에 내린 뒤 선수촌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별거 아니지만 기성용의 놀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선수촌에 슬쩍 들어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기성용을 찾는데, 기성용은 축구공을 가지고 구자철 선수와 놀고 있었다. 재밌게도 노네, 저런 소소한 걸로 잘 웃는거 저것도
매력이지,웃으며 기성용을 쳐다보다, 아직 저녁시간이 안된것 같아서 다시 조심스레 선수촌을 나와, 밖에 있는 의자에 털석 주저앉았다. 힘들다, 저녁시간 되면 들어가야지.
" 라면이나 먹을까, "
" 또 라면이야 ? 난 청용이랑 밥 먹으러 갈건데 "
" 이 새끼가 … 염장 지르네. "
" 뭐, 넌 라면이나 먹으러 가 "
" … 나쁜 새끼 "
의자에 앉아,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는데, 뒷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저녁시간 된건가… 옆에 놓여진 핸드폰을 잡고는 시간을 봤는데, 벌써 8시다.
아까 선수촌 왔을때가 7시였는데 너무 정신을 놓고 있었나, 어느새 1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이제 선수촌으로 들어가야겠다 싶어서 의자에 올려놓은 봉지를 손에 쥐고는 자리
에서 일어났다. 이청용이랑 밥 쳐먹어 ,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아까 들렸던 목소리는 내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하지,모른척하고 갈까…
내 쪽으로 오는 사람들, 축구 선수들 같은데 괜히 고개 빳빳히 들고 가기엔 괜히 민망하고, 꼴도 좀 웃기고… 그냥 모른척 , 고개 숙이고 지나가야겠다 싶어 몸을 돌려 고개를
숙이곤 걸어가려고 하던 참이였다.
" 구자철 잘가… 아, 뭐야 "
" … 헐, 죄송합니다, 옷에 안 묻으셨어요 ? "
" 괜찮아ㅇ… 어, 이용대 너, "
" 어 ? "
고개를 숙이고 조심히, 눈에 띄지않게 걸어가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누군가와 팔을 부딪히면서 내 계획은 와장창 깨지게 되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축구선수와 부딪힌건지
살짝 휘청거렸다. 아, 아파… 부딪힌 팔이 살짝 아려오기 시작했다. 그냥 당당히 걸어갈껄, 짐을 내려놓고선 아려오는 팔을 만지다가 나와 부딪힌 남자를 무심코 힐끗 봤는데
옷에 주스가 살짝 묻어있었다. 부딪히면서 쏟았나, 황급히 봉지를 보니 쏟은것 같지는 않다. 미안함에, 봉지에서 휴지를 꺼내 차마 얼굴은 쳐다보지 못하고 누군지도 모르는
선수의 옷을 닦아주는데 괜찮아요, 하며 말을 건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설마, 하며 슬쩍 고개를 들었는데 역시나,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기성용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진짜 운명인가봐, 몰려오는 허탈감과 괜한 기쁨에 픽 웃었는데 많이 놀란건지, 기성용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말을 했다.
" 이용대지 ? "
" 그럼 내가 이용대지, 누구야. "
" 너가 여길 왜 … 연습하러 왔어 ? 오늘 배드민턴 연습날이야 ? 스케줄에 없던데 "
" 무튼, 운동 끝났어 ? "
" 응, 근데 진짜 왜 왔어 ? 손에 그건 뭐고 "
기성용은 놓여져있는 봉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궁금한것도 많네 …. 아이같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기성용을 보고 씩 웃으면서, 봉지에 들어있는 생과일
주스와 샌드위치를 각자 하나씩 꺼내 살짝 흔들며 말했다. 저녁 대충 챙겨먹을것 같아서 선수들이랑 감독님 몫까지 샌드위치랑 주스 사왔지.웃으며 말을 뱉는 내 모습을 보며
기성용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기성용 진짜 맹구같아, 기성용은 이런 내가 기특한건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큰 손으로 내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말했다.연락하지,
" 깜짝 파티, 이런거 하려고 했지, 에이 타이밍 안맞게… "
" 우리 용강아지 깜짝 파티 하려고 했어요 ? "
" 또, 또 애 취급하지, "
" 알았어, 라면 먹으려고 했는데 잘됬다 "
내가 라면 먹지말라고 수백번 말했는데… 고새 나랑 한 약속 까먹고 라면이나 먹으러 가려고 하고, 원망스러움에 기성용을 째려봤더니, 멋쩍은듯 슬쩍 웃는다. 웃지마
맹구야, 운동도 하루에 10시간 넘게 할때도 많으면서 몸 상하게 제대로 밥도 안챙겨먹고, 정 그러면 대충이라도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던가. 친구도 없나, 혼자 먹으러 다니게.
괜한 안쓰러움에 등짝을 살짝 치고는 입술을 삐죽거리자 실실 웃으며 맞은 등을 살살 쓸어댄다. 맨날 불리할때는 말도 안하고 웃어대더라,… 기성용 손에 샌드위치와 과일
주스를 홱 쥐어주자 약올릴려는 심산인지, 날 쳐다보며 얄밉게 빨대로 주스를 마셔댄다. 화를 내려다가 꾹 참고는 차분히 말을 꺼냈다.
" 내가 라면 먹지 말라고 했지 "
" 까먹었어 "
" 말한지 일주일도 안됬거든, 내가 몸에 안좋다고 했는데 "
" 아, 알았어. 우선 안으로 들어가자 "
잔소리 하려는 나를 직감적으로 알아챘는지, 내 말을 끊고는 실실 웃으며 허리에 손을 두르고는 기성용은 내게 말했다. 알았어, 다 알아들었으니까 얼른 들어가자, 용대야.
어디서 허리를 만져대,허리에 손을 가져다대는 기성용을 힐끗 쳐다봐주고는 손을 치자 순순히 손을 놓고 밑에 내려놓은 봉지를 들고는 빠른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팔운동 많이 해서 팔 많이 아플텐데… 또 기성용 걱정이다, 저런거 정도 들수도 있을텐데 괜히 물가에 애 내놓은것 처럼 불안하고 계속 생각난다. 그런 내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온다. 어이없어서가 아니라 행복해서, 내가 이런 완벽한애를 붙잡고 있는게 아닐까, 어머님 말대로 기성용의 앞을 막고 있는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포기할까, 싶다가
나를 보며 웃는 기성용의 얼굴만 보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듯, 생각은 말끔히 사라진다.
" 얼른와, 뭐해. "
" 어 ? … 어, 어 "
" 정신 놓고 있네, 얼른 뛰어와서 안겨 "
" … "
정신을 놓고선 땅만 쳐다보는데, 멀리서 기성용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기성용의 소리치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자 흐릿하게나마 기성용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보다
어두워져서 흐릿하게 인영만 보였지만 , 그 와중에 날 보며 웃고있는 기성용의 얼굴만이 자세히 보였다. 웃고 있네, 너도 웃고 있는 내 모습 보이겠지. 기성용의 웃는얼굴에
나도 환하게 웃으며 기성용에게 다가가자 팔을 벌리며 내게 말했다. 뛰어와서 안겨, 다른 사람 다 들으라는듯, 보란듯이 외치는데 이젠 두렵지 않고 설레임의 감정이 물밀듯
몰려왔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기성용과 같이 있는 시간만으로도 너무 좋다. 기성용에게 웃으며 뛰어가 허리를 껴안고는 고개를 들어 기성용을 쳐다봤다. 웃고있네, 나는
항상 너가 웃는 모습만 봤으면 좋겠어…. 사랑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기성용에게 말했다. 나 행복해, 진짜 너무 행복해. 나도….
*
" 안녕하세요 "
" 어, 이용대 선수 아닌가요 "
" 네, 맞아요 "
" 왜 여길 … 혹시 스케줄 변경된건가요 ? "
갑작스럽게 등장한 나 때문에, 스케줄이 변경된건지 아셨는지, 감독님이 급하게 짐을 싸시길래 내가 더 당황해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성용이랑 잘 아는데
이쪽 들리다가 저녁 안드셨을거 같아서 샌드위치랑 주스 사온거에요. 내 말에 멍하니 나를 쳐다 보는 선수분들과 감독님을 쓱 보고는 앞에 음식을 놓았다. 그러자, 이제 상황
파악이 된건지 감사합니다, 하고 웃으며 허겁지겁 먹는 사람들을 보니까 괜히 흐뭇해진다. 뿌듯하네, 자식 있지도 않은데 아빠미소가 마구 샘솟는다.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아직도 샌드위치 껍질을 못 벗겨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는 낑낑 거리는 기성용의 모습이 보였다. 애냐 , 저러다가 샌드위치 다
망가지겠네, 기성용의 손에서 샌드위치를 뺏고는 쉽게 껍질을 벗겨주자 민망한지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기성용에게 말했다.
" 어, 어떻게 뜯었어 … "
" 바보냐, 여기 화살표 있잖아, 여기 잡고 쭉 뜯음 되지 "
" 아, 화살표 못봤네 "
" 무튼, 싸오려고 했는데 시간도 없고, 맛도 보장 못해서 그냥 사왔어 "
" 잘했어, 바쁜데 뭘 싸와, 나 이거 먹고 집 가는데 같이 가자 "
어떻게 같이가, 저녁운동 있을텐데 … 기성용의 말에 고개를 돌렸는데, 언제 다 먹었는지, 샌드위치를 껍질을 바닥에 내려놓고선 탈의실로 들어가는 기성용을 멍하니 보다가
덩그러니 쓸쓸하게 버려져있는 껍질을 쓰레기를 버리고는 얼마나 기다렸을까, 사복을 입은채 탈의실에서 나오는 기성용의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성용은 진짜 가려는
지, 짐을챙기고는 선수들과 감독님께 인사를 하고는 선수촌을 나서길래, 어색하게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따라나와 나를 기다리는 기성용에게 말했다.
" 너 저녁운동은 ? "
" 내가 떼써서 빼달라고 했지, "
" 뭐 진짜 ? 그러지 말랬지, 내가 "
" 또 째려본다. 힘들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저녁운동 하지 말자 했는데 감독님도 순순히 오케이 해주셨어, 다른 애들도 안하고 "
" 그런거였어 ? "
떼써서 그런건지 알았지 … 의심한 내 모습에 삐진척, 나를 퉁명스럽게 쳐다보다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나, 짐 놓고 왔는데 빨리 들어갔다 올게. 기성용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빨리 갔다 온다며 짐을 내려놓고선, 선수촌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저렇게 뛰면 체할텐데 …. 걱정스러운 내 말에 기성용은 뛰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괜찮다는듯, 제스쳐를 취하고는 선수촌으로 들어갔다. 못말린다니깐, 기성용을 보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으면서 아까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이제
정말 밤이 됬는지, 무심코 바라본 하늘에는 전보다 훨씬 환한 반짝거리는 별들이 몇개보였다. 와, 별 진짜 밝네 … 특히 한 별이 나를 비춰주는듯, 나를 향해 밝고 따스한 빛을
내려 주고 있었다. 따뜻하다,
" 아, 감사하다고 해야 되는데 "
" 너가 하라니깐 "
" 니가 좀 말해봐, 이용대 선수 싸인도 받아야 되는데…
" 그니까 니가 하라니깐… "
왜 내 이름이… 이용대라고 했던거 같은데, 별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뒷쪽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성용 목소리는 아니고, 누군가 싶어서 슬쩍 뒤를 돌아봤는데
돌아볼지 몰랐다는듯, 놀란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이는 남태희 선수와 백성동 선수가 있었다. 아는 사이가 아니라, 반갑게 인사할수 없어서 어색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남태희 선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가 가보라니깐 … 나한테 말을 걸려고는 하는데 둘다 한 소심 하는지 서로 밀며 투닥거리기만 하고 있다. 원래 축구 선수들은 저렇게 맹한가
…. 나라도 먼저 말을 걸어야겠다, 해서 두 선수 앞으로 다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더니, 내 손을 한번 쳐다보고, 내 얼굴도 한번 쳐다보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 안녕하세요 "
" 안녕하세요! "
" 남태희 선수랑 백성동 선수 … 맞죠 ? "
" 네, 맞아요. 샌드위치 잘 먹었어요. 맛있어요 "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감사합니다, 하며 내 손을 한번 잡고는 두 선수를 따라 같이 웃어주었다. 막상 인사를 했는데, 간단한 안부를 물을수도 없고 서로 뻘쭘해서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데 싸인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라며 멋쩍은듯 내게 무언가를 내미는 백성동 선수를 한번 쳐다보고선 내민 무엇인가를 봤는데, 당연하게도 싸인할 종이와
검정펜이었다. 근데 왜 2장이지 … 잘못 준건가. 내 궁금해하는 머릿속을 읽었는지 백성동 선수는 살짝 발그레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곤 내게 말했다.
" 아, 한장은 제 사촌동생꺼에요. 20살인데 팬이라고 해서 … "
" 아,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해드려야죠 "
" 근데 20살 어떻게 생각하세요 ? "
" 네? 그게 무슨 … "
" 제가 소개해드릴까요 "
소개라니 무슨… 당황스러움에 싸인할 생각도 못하고 백성동 선수만 쳐다보는데, 백성동 선수는 뭔가를 결심한 눈빛으로 나를 초롱초롱 쳐다보며 말했다. 소개 받으세요,
거절했다간 욕 엄청 먹을것 같고 그렇다고 받을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알만 도르륵 돌리는데,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어깨동무를 하더니 옆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까 나를 보며 씩 웃는 기성용의 모습이 보였다. 아 다행이다, 기성용 덕분에 살았네, 자식.
안도감 섞인 내 한숨에 기성용은 슬쩍 웃더니 다시 정색을 하며 백성동 선수를 쳐다보았다.
" 아, 형은 왜 난리에요 "
" 어쭈, 형한테 까부냐. 이게, "
" 맨날 이럴때만 형이래 … "
" 백성동 형한테 안맞은지 꽤 됬지. "
기성용의 의기양양한 표정에 백성동 선수는 기가 푹 죽었다. 후배인게 죄에요… 백성동 선수가 어느순간 불쌍해져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봐주었는데, 그런 내 얼굴을
본건지 기성용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싸인만이라도 안될까요 , 백성동 선수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펜을 잡았는데 그런 내 행동이 마음에 안들었
는지 기성용은 내 손에 들린 펜과 종이를 뺏고는 자기 싸인을 하기 시작했다. 됬고, 형 싸인이나 가져. 왜이래 … 자기 싸인이 담긴 종이를 백성동 선수 손에 직접 쥐어주는데,
어이없어서 헛웃음 다 나온다. 백성동 선수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인지 종이만 멍하니 쳐다보는데, 그런 백성동 선수가 귀찮은건지 대충 손을 휘휘 저어대며 말했다.
얼른 꺼져,
" 아 , 형… "
" 가라니깐, "
" 싸인만 받음 안될까ㅇ … "
" 가라, 성동아 태희야. 형 많이 참고 있어 "
기성용의 성격을 무엇보다도 잘 아는 두 선수였기에, 기성용의 말에 아쉽다는듯, 물에 젖은 강아지처럼 축 처져서 등 돌려 인사도 안하고 선수촌을 빠져나간다. 인사 안하냐,
기성용은 끝까지 두 선수를 놀릴 심산인지, 짓궂게 웃으며 크게 외쳐댔다. 그 말에 두 선수는 우리 쪽을 보고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대충 고개를 꾸벅이고는 툴툴거리며
점점 멀어져갔다. 기성용 진짜, 두 선수가 가는 모습을 끝까지 보다가 얄밉게 실실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기성용의 팔을 살짝 꼬집으며 말을 뱉었다.
" 야, 사람 무안하게 왜 그래 "
" 소개 시켜준대잖아,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냐 "
" 진짜, 기성용 내가 너랑 뭔 말을 하겠어… "
집착한다니깐… 그래도 이런 기성용의 행동이 싫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기분이 너무 좋아서 기성용 허리에 손을 두르고 웃자, 내가 잔소리라도 할줄 알았는지 기성용은 날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왜, 싫어 ? 실실 웃으며 허리를 더 꽉 껴안는 내 행동에 기성용도 같이 실실 웃으며 고개를 젓곤 내게 물었다. 너 오늘 기분 좋은일 있었지, 뭐길래
이래. 눈치 하난 엄청 빠르다니깐… 어머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좋게 끝났으니까 말해도 되겠지. 대답을 원하는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기성용을 보며
픽 웃고는 말했다. 나 어머님 만났어,
" 그래… 어 ? 어머님 ? 우리 엄마 ? "
" 응, 너희 엄마 "
" 너 약속이라는게 … "
" 응, 그 약속이 어머님이랑 약속이야. "
" 너 진짜… 무튼 맞았어 ? 괜찮은거야 ? "
어머님이 무슨 깡패시니… 내가 한대 맞고 아무렇지 않은척, 한다고 생각한건지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그 큰손으로 내 얼굴을 부여잡고는 이쪽저쪽 맞은곳
없나, 꼼꼼히 살펴본다. 내가 맨날 맞고 다니겠냐, 기성용의 손을 떼어내고는 괜찮다는듯 슬쩍 웃자 내 팔을 잡고는 화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내가 함부로 만나고 다니지
말랬지. 표정은 화나 있었지만 말투엔 걱정스러움에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물밀듯 밀려왔다. 걱정 엄청 했을텐데, 미안함에 미안, 하고 조심스레 말하자
기성용은 한숨을 푹 쉬더니, 내게 말했다. 엄마랑 무슨 얘기했어. 지켜봐 주신대. 어 ? 내 말에 무슨뜻인지 모르겠다는듯, 나를 쳐다보는 기성용에게 웃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지켜봐주신다고 했다구,
" 지켜봐주신대 "
" 지켜봐주신다는게 혹시… "
" 그래 , 너가 생각하는거 맞아 "
" … 진짜 ? "
" 응, 진짜 "
" 진짜? 아, 좋다 "
기성용은 무척이나 기쁜듯, 내 손을 부여잡았고, 나는 웃으며 잡은 두 손을 더 꽉 잡았다. 이젠 정말 놓지 않을거야, 따뜻하게 맞잡은 두 손 절대 놓으려고 하지 않을거야,
잘했어, 이용대. 머리를 쓰다듬는 기성용의 행동에, 최대한 팔을 쭉 뻗어서 기성용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줬더니, 뭐가 그렇게 좋은지 크게 웃는다. 아, 행복해. 나도, 진짜.
지금은 어머님께 엄청 고마워할 기성용이지만, 워낙 표현을 못해서 집에 들어가도 아무렇지 않은척, 화난척 할게 머릿속에 그려져서 기성용을 보며 입을 떼었다.
" 어머님께 잘해드려 "
" 어 ? "
" 지켜본다는 말 쉽게 나오는거 아니잖아,"
" 응, 알지 "
" 너 생각해서 물러나신 거니까 떼쓰지 말고 잘 해드려야돼 "
" 내가 무슨 애냐… "
내가 무슨 애냐… 내 말에 금새 삐져서 툴툴 거리는 기성용의 등을 툭 치고는 말했다. 애 맞구만, 또 삐졌네. 애기 취급하는 내가 싫었는지 등을 쓰는 내 손을 억지로 떼내곤
고개를 홱 돌린다. 등치는 산만한게 초딩 같이 놀아요 , 삐진 기성용을 쳐다보다가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기성용에게 말을 걸었다. 내일 아버님 뵈러 오래. 내 말에
예상치 못했다는듯,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기성용에게 말했다. 내일 저녁 8시쯤에 아버님 뵈러 가자. 그 전엔 안될것 같고,
" 아빠 가만히 안계실텐데 "
" 괜찮아, 이미 겪었으니까 "
" … 엄마보다 훨씬 심하실거야 "
" 괜찮아, 내 편 생겼잖아. 아버님 찾아뵙고 우리집 가자, 부모님 어차피 밤에 들어오시니깐 "
괜찮겠어 ?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기성용에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겨내기로 했잖아. 내 말에 한숨을 내쉬던 기성용으 나를 살짝 껴안았다. 고마워, 잘 견뎌줘서,
라는 말과 함께. 너가 나한테 고마워할게 뭐 있어, 우리 이해해주신 어머님이랑 너 자신한테 고마워해야지. 넌 항상 내 편이 되줬잖아. 여기까지 온것도, 나 너 덕분이야. 내
등을 토닥이는 기성용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해, 내 말에 기성용은 웃는듯 하더니 내 귀에 사근사근 말했다. 나도, 나도 사랑해.
*
기성용과 헤어진뒤 집에 들어와 침대에 털썩 누웠다. 내일 아버님 만나뵈려면 제대로 준비 해야하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나와서 미치겠다. 아까 사랑한다고 말한것도 그렇고,
이제 와서 낯부끄러워서 발만 동동 구르는데,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은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누군가, 하고 핸드폰을 봤는데 모르는 번호다. 받긴 해야할거 같아서 통화버튼을
누르고는 차분히 말했다. 여보세요. 용대군, 나 성용이 엄마에요. 어, 어머님…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전화기를 부여잡았는데, 살짝 다급한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머님, 늦은 시간에 왜 … "
" 미안해요, 근데 할얘기가 있어서 전화했어요. 내 얘기 똑바로 들어요 "
" … 네 ? 네 "
" 성용이 아빠가 급한일 때문에 방금 독일로 출국했어요 "
" 아, 그럼 내일 어떡하ㅈ … "
" 그게 중요한게 아니에요, 성용아빠가 성용이랑 용대 사이를 안것 같아요. "
… 네 ? 어머님의 마지막 말로인해 내 몸은 약속이라도 한듯, 굳었다. 아버님이 아셨다니…어떻게 아셨지. 기성용이 말할리는 없을텐데. 여보세요, 용대군. 내가 전화를 끊은지
아셨는지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어머님의 목소리를 멍하니 듣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대답을 했다. 네, 어머님. 내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셨는지, 말이 없으시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다. 사실 나도 어떻게 된지 모르겠어요,
" 어떻게 안지 나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안거 같아요. 오늘 살짝 화나서 독일 가기전에 용대군 만난다고 한걸 말렸긴 한데… "
"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거에요 ? "
" 두달 정도 있다가 귀국할거에요, 그럼 그때 용대군을 만나러 올거에요 "
" … "
" 성용이아빠가 보수적이라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했던것 처럼 당당히 말해줘요 "
" … "
" 둘이 사랑하는건 나도 반대지만, 이런식으로 성용이 아픈것도 싫고, 둘이 거쳐가야할 하나의 산이라고 생각해요, 난 "
" … "
" 성용이한테는 말하지 말아요, 용대군에게는 말해야 할것 같아 말했지만 둘다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아요. "
어머님의 말에 대답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이것도 하나의 관문이라고 생각해야지. 때리시면 다 맞아드리고, 더럽다고 욕하시면 그것도 다 들어드리고. 견딜수 있겠지,
지금까지 잘해왔으니까… 걱정 섞인 내 한숨에 어머님도 같이 한숨을 내쉬더니 용대군 , 하고 나를 부르셨다. 네, 어머님. 어머님은 나의 대답에 망설이는듯, 말을 하려다 말고
하시다가 결정하신듯, 내게 말씀하셨다. 내일 용대군 부모님이랑 만날때 나도 같이 만나고 싶어요,
" 네 ? "
" 이상한 말 안할거에요, 그냥 어떤 분이신지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그래요 "
" … 그럼 내일 8시에 약속 잡았는데 어머님 집 앞 한식 음식점에서 만날수 있으세요 ? "
" 네, 그러죠. 성용이한테는 잘 말해줘요 "
"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
" 그래요, 내일 봐요. 너무 심한 걱정은 하지 말고 "
어머님과의 전화를 끝내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잘할수 있겠지, 부모님 앞에서 당당한 모습 보여드리고 싶은데,마음 약해져서 말도 못하고 그러면 안되는데… 지갑에 끼어져
있는 기성용의 사진 한장을 빼서 봤다. 웃는 기성용의 모습을 보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내일도 오늘처럼 웃으면 좋겠다. 태양보다 환하고 밝게, 이런 모습으로.
*
" 너희 어머님 오신대 "
" … 어 ? 우리 엄마가 ? "
" 응, 오신대. "
" 무슨 소릴 하시려고 … "
" 그런거 아니신거 같아. 얼굴 뵙고 싶다 하셨어. 자세한건 잘 모르겠다. "
불안한듯 나를 보는 기성용을 보며 웃었다. 이제 내 부모님께 말씀 드리는 거네, 음식점 앞까지 도착한지 30분인데 너무 긴장되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부모님 나한테 엄청 실망하셔서 얼굴도 보지 않으려고 하시면 어떡하지, 난 이제 누구한테 기대야 하는걸까… 아무렇지 않은척 했지만 너무 떨려서 식은땀이 나온다. 대충 쓱
닦으며 심호흡을 하는데, 내 등을 살살 쓰다듬는 기성용의 행동에 얼굴을 들었더니, 살짝 젖은 내 앞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 긴장하지말자, 우리 잘했잖아 "
" 응, 그래… "
" 너희 부모님 이해해 주실거야, 분명 그러실 분이셔. 무엇보다 너 사랑하시니까 "
" …그러겠지 ? "
" 응, 그니까 긴장하지 말고 이제 슬슬 들어가자. "
기성용의 손을 드는 행동에, 안 올라가는 입꼬리를 힘겹게 올리고는 화이파이브를 했다. 잘하자, 기성용과 마주보고는 슬쩍 웃고는 음식점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혹시
이용대씨세요, 내게 친절하게 말을 거는 직원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날 방으로 인도해주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나와 기성용에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는 멀어져가는
직원을 슬쩍 보고는 신발을 벗고 부모님이 계시는 방 문을 열었다. 엄마, 아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내 얼굴 보시며 환하게 웃으시다가 뒤에 따라 들어오는 기성용의 모습에,
두분 다 당황하신듯, 기성용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시다 말을 걸으셨다. 성용아, 너가 여길 왜…
" 용대야, 어떻게 된거야 ? 성용이도 같이 먹는거였어 ? 그럼 더 시켜 놓을ㄱ… "
" 아니에요, 엄마. 좀만 기다려주세요, 아직 한분 안오셨어요 "
" 어 ? 그게 무슨 … "
"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셨어요 "
" 응, 그래. 오랜만이네 "
부모님은 기성용의 등장과, 아직 안온 누군가의 소식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시며 서로를 쳐다보셨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물러날곳도, 도망칠곳도 없어. 나한테는.
방안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따뜻해보이던 음식들도 점차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네 사람 다 누구 할것없이 한마디 없이, 멍하니 딴곳만 쳐다보고 있었다. 안떨려고 했는데,
무척이나 긴장이 되는지 손은 긴장감에 반응하며 덜덜떨렸다. 이런 모습을 들키기 싫어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는 고개를 푹 숙였는데, 식탁 밑으로 누군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따뜻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더니, 기성용은 나를 보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긴장하지마, 잘하자. 기성용의 응원에 슬쩍 웃고 손을 푸르던 참에, 벌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누구… "
" 안녕하세요, 성용이 엄마에요. "
" 아,안녕하세요. 근데 여긴 어쩐일로 … "
" 자세한 얘기는 이 둘한테 듣는게 좋을거 같네요, "
어머님은 방 안으로 들어와 손을 내밀며 부모님께 인사를 건내셨다. 악수를 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시겠다는듯, 나를 영문 모를 표정으로 쳐다보셨다.
용대야, 대체 할말이 뭐니, 내게 침착하게 말을 건내는 엄마의 눈을 쳐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나를 본 기성용도 고개를 숙이고는 무릎을 꿇었다.
우리 둘의 모습을 보시던 엄마는 당황하셔서, 우리 곁으로 다가와 어쩔줄 몰라하셨다. 왜 그래, 갑자기 둘다. 흔들리는 엄마의 눈동자를 보고있자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
질듯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님 죄송해요, 기성용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나도 말했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믿음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못난 아들이라 더 죄송해요.
" 아… 아니, 너네 왜 그러는건데 "
" 엄마 정말, 정말 죄송해요 "
" 성용이 어머님, 보지만 마시고 와서 좀 말려보세ㅇ … "
" 엄마, 저 성용이랑 사겨요. 친구로서 말고 연인으로서, 그니까 … 사랑하는 사이로서요. "
뭐… ? 어머님은 나의 울음기 섞인 말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셨고, 엄마는 나를 일으키려던 손길을 멈추시고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아빠는 잘못 들으신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장난이라고 말하라는듯 재촉어린 눈길로 나를 바라보셨다. 용대야, 너 지금 … 엄마가 잘못 들은거지, 응 ? 더 실망하실까봐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고개를 젓는데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듯, 엄마는 내 팔을 잡고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멍하니 날 쳐다보며 말씀 하셨다.
" 지금 장난 하는거지, 그만해. 엄마 재미없어 "
" … 죄송해요 엄마 "
" 아니지 ? 왜 그래 … 엄마 무서워 "
이제야 진심인걸 깨달으신건지, 나를 부여잡고 엉엉 우신다. 아들 어떻게해, 하시며. 진짜 어떡해야 할까, 평생 걱정만 시켜드렸는데 엄청난 고민거리를 안겨드렸다.
엄마한테 너무 죄송해서, 그런데 포기할수 없는게 더 죄송해요. 나를 부여잡은 엄마를 껴안아드리지 못하고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같이 엉엉 울었다. 우리 아들 외로워서
어떡해, 사람들 시선 어떻게 견디려고… 마음이 찢겨질듯 아프신 와중에도 못난 걱정 아들 하는 엄마에게 너무 죄송해서 말없이 끅끅 거리며 눈물을 참는데, 누군가 우리
곁으로 쿵쿵 다가오더니 나를 껴안는 엄마의 손을 거칠게 치웠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뿌옇게 사람 인영만 보이길래, 눈물을 벅벅 닦고는 고개를 들자, 내 눈에 보이는건 화난
표정의 눈물을 흘리시는 아빠였다. 여보, 뭐하려구요. 울면서 아빠를 말리시는 엄마의 손길을 거칠에 뿌리치고는 악에 바친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다.
" 너 지금 엄마아빠한테 뭐라고 하는거야 "
" 아빠, 죄송해요 , 정말 죄송해요 "
" 지금 죄송하다는건 니 말이 사실이라는거야 ? "
" …죄송해요. 성용이 어머님은 얼마전에 아셨어요, 인정은 아니지만 지켜봐주신다고 했고… 정말 죄송합니다 "
" 이용대, 이 자식 … "
믿기지 않다는듯, 내게 계속 아니라는 대답을 재촉하는 아빠의 물음에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데, 아빠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내
멱살을 잡으시곤 날 억지로 일으키셨다. 진정하세요, 그런 아빠의 행동에, 눈물을 흘리던 기성용은 놀라, 일어나서 말렸지만 아빠는 기성용을 거칠게 밀어내고는 내 멱살을
쥐고선 말씀 하셨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이랬던거야. 언제부터 엄마 아빠한테 숨기고 이제와서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거야,
" 죄송해요, 엄청 오래되진 않았어요 "
" … 뭐 ? "
" 처음엔 이렇게 될지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까, 정말 어쩌다 보니까… 죄송해요 , 아빠 "
" 너 지금 … "
" 죄송해요, 포기할수, 포기할수가 없어요, 둘이 있는것만으로도 행복해서, 그래서 죄송해ㅇ … "
" 용대 아빠 ! 제발 그만해요 ! 제발 … "
" 용대 아버님, 이러지 마세요, 이성을 찾으세요 "
이런 상황에도 기성용과 행복했던 생각이 떠올라 아빠의 눈을 쳐다보고 울며 입꼬리를 올렸는데, 왼쪽볼에 저번과는 달리 훨씬 더 얼얼한 느낌이 들다가 몸이 심하게 휘청
거리더니 중심을 못 잡고 바닥으로 내팽겨쳐졌다. 내팽겨쳐짐과 함께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 입 안이 심하게 터졌다보다, 혀가 살짝 닿는데 깊이 패인 상처에, 소독을 하듯
무척이나 따끔거렸다. 그렇게 돌려진 얼굴을 죄송함에 들지도 못하고 그 자세로 눈물만 뚝뚝 흘리는데, 아빠는 아직 화가 더 풀리신듯 내 멱살을 다시 잡고는 힘 풀린 나를
억지로 일으키셨다. 기성용이 말리려 했지만, 기성용 어머님은 우시며 기성용을 잡고는 못나가게 막았고 아빠는 소리를 지르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봐, 뭐 ?
" 다시 말해봐 "
" … "
" 다시 말해보라니까 ! 너 엄마 우는거 안보여 ? "
" … 죄송해요, 저 진심이에요, 정말 포기 못해요. 죄송한거 아는데… 그래도, 너무 좋아서 … "
" 이 자식이 정말 … "
한마디, 한마디 하는데 터진 입안 때문에, 입이 따끔거린다. 이기적인거 알지만 마음이 진심이라는거, 하나는 꼭 전하고 싶어서 계속 말을 이어가는데 아빠는 정말 화가
나신건지, 핏대가 서서 붉어진 얼굴로 다시 한번 손을 드셨다. 이래서 화가 풀릴수만 있다면, 몇대가 되던지 맞아드릴게요, 눈을 감고는 이 끔찍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내 얼굴에는 얼얼한 감촉이 아닌 ,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따스한 손길에, 낯설어 눈을 뜨니 나를 때리려는 아빠의 앞을 막고 엄마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시면서
엉엉 우시다 아빠께 소리치셨다. 그만해요, 제발 그만해요.
" 당신은 비켜, 이놈자식이 말같지도 않은 사랑 타령을 하잖아 ! "
" 제발 그만해요, 제발 … "
" 비키라니ㄲ … "
" 제발 그만해요 … 제발, 여보 내가 빌게요. 제발 "
아빠의 나를 붙잡으려는 손길에 엄마는 엉엉우시며 아빠 앞에서 무릎을 꿇으셨다. 어머, 용대군 어머니 , 그런 엄마를 막으려는 어머님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엄마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씀 하셨다. 내가 빌게요, 내가 … 무릎을 꿇고는 아빠의 바짓자락을 붙잡는 엄마의 모습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옷 자락을 잡고 말
했다. 엄마, 일어나세요… 일어… 나세요. 덜덜 떨리는 내 목소리에 눈물 범벅이된 얼굴로 엄마는 내 눈물을 닦아주시더니 날 껴안고는 아빠에게 힘 빠진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우리라도, 얘네한테 등불이 되줘야지, 우리라도 얘네 편이 되줘야지. 엄마의 목소리에 나와 기성용을 번갈아 쳐다보시던 아빠는 의자에 주저앉으셨다.
" 우리라도 휴식처가 되줘야지, 안그러면 우리 아들 힘들어서 어떡해, 이 세상 어떻게 살려고 "
" 아빠 정말 죄송해요 , 어쩔수… 없었어요 "
" … 뭐가 어쩔수 없었는데 "
" 저도 힘들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까 … 싶고 "
" 그럼 끝까지… 끝까지 숨기지 그랬어 "
소리치며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에 울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괴로웠어요, 괴로웠다는 나의 말에 초점 풀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아빠를 똑바로 쳐다보고는 울며
말했다. 사랑하는데 왜 숨겨야 되나 싶고, 포기하려고 해도 자꾸 생각나서 안되고…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우는데 엄마는 나를 힘껏 껴안으며 말씀하셨다. 난, 우리 아들 믿어.
" 얼마나 힘들었어 "
" … "
" 우리 아들, 엄마한테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끙끙 해대느라 힘들었겠네 "
" … 엄마 "
" 미안해, 진작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들 "
" …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
엄마의 진심어린 말씀에 죄송하고 고마워서 , 따뜻한 품에서 우는데, 이런 내 모습을 못 보시겠는지 어머님은 눈시울이 붉은채로 방을 나갔고, 우리의 모습을 쳐다보던 아빠는
허탈하신지, 헛웃음을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휘청휘청 문쪽으로 걸어가셨다. 아빠 …. 애타는 목소리로 아빠를 불렀지만, 끝끝내 대답해주지 않으시고는 방을 나가셨다.
우리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기성용도 힘이 빠진건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먼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행복, 유효기간이 이렇게나 짧은걸까. 우린 원래 이렇게 비극적인
운명인걸까,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사라질만큼, 조금의 행복도 느끼면 안되는걸까. 얼얼한 뺨 만큼이나, 가슴도 누군가 때린듯, 얼얼해져왔다.
*
" 엄마, 갈게 용대야 "
" … 엄마 "
" 성용이랑, 얘기 하다가 와. 성용아, 우리 용대 부탁할게 "
" … 네 "
" 너희 어머님도 힘드실텐데 가서 위로 해드리고, 인사 제대로 못한거 죄송하다고 전해드리렴. 나중에 한번 뵙자고, 너무 걱정하지마, 둘다, 알았지 ? "
" 네, "
" 먼저 갈게, 성용이 나중에 한번 보고, 용대는 좀있다 집에서 보자 "
부은얼굴로 아들 걱정할까, 힙겹게 웃으시며 차에 타는 엄마의 모습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자, 안타깝게 보던 기성용은 내 어깨를 끌어안고는 나를 품에 가뒀다. 죄송해서,
고개도 못들고 가만히 기성용 품에서 어깨만 들썩거리고 우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희 둘편이야, 누가뭐래도. 성용아, 우리 용대 보기보다 많이 여리니까 잘
이끌어 줄거라 믿을게. 엄마는 울음 섞인 말투로 말을 하시고는 자리를 떠나셨다. 울기만 하는데 기성용의 한숨소리가 들리더니 기성용 손으로 인해 내 얼굴이 들려졌다. 많이
부었다… 팅팅 부은 볼을 쓸던 기성용은 내 손을 잡고는 공원쪽으로 나를 끌고가서는 의자에 앉혔다. 저번에도 여기 와서 위로받고 갔는데 오늘도 그럴수 있을까, 그만 울고
싶은데 자꾸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어 기성용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눈물을 닦는데 기성용은 잠시 어디 갔다오는듯, 하더니 내게 음료수를
내밀었다.
" 먹어 "
" … "
" 먹으라니까, 너 정말 탈수증 생기겠어 "
" … "
" 너 이러면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 , 아무것도 해준거 없는데, 모든 고생은 너가 다 하네. "
음료수를 건내는 기성용의 모습에, 난 음료수 마실 자격도 안되는것 같아 고개를 돌리고는 눈물을 참으려 입술만 깨무는데, 안그래도 터진 입술을 깨물고 있으려니 더 강하게
비린맛이 느껴졌다. 이런 내 모습을 본건지, 기성용은 얼굴을 자기 쪽으로 잡아끌어 깨물고 있던 입술을 벌리며 말했다. 너 이러면 내가 너무 미안해져, 아무것도 못해줬는데.
너가 못해준게 뭐있어, 왜 나는 주변 사람들을 미안하게만 하는걸까. 나 봐봐, 조용히 뱉는 기성용의 말에 고개를 들어 기성용 얼굴을 쳐다보는데 자꾸 눈물이 가려서 제대로
보이지않는다. 너무 울어서 쓰라린 얼굴을 다시 거칠게 닦는데, 그런 내 행동을 손으로 제지하고는 살짝살짝 닦아주더니 기성용은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다 말했다.
" 누가 채가면 어떡해 "
" … "
" 불안하네, "
기성용의 부드러운 손길에 눈을 감고는 몸을 맡겼는데, 가까이에서 기성용의 특유의 체취가 코로 확 풍겨오더니, 내 입술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한 10초 정도 있었을까,
따스했던 감촉이 살짝 떨어지며 기성용의 듣기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울지마, 안울기로 했잖아. 기성용의 목소리에 눈을 뜨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울기로 했는데 또
울었네, 나 거짓말쟁이 된건가… 가서 얼굴 꼭 찜질하고 자야겠다, 이렇게 부어서 어떡해.
" 괜찮아, 알아서 잘 할게 "
" … 이제야 목소리 듣네. 괜찮아 ? "
" …응, 좀. "
" 아버님도 힘드실거야. 우리가 당당해져야 그래도 마음이 편하실거야 "
" … 성용아 "
" 왜, 왜 또 그렇게 설레게 예쁘게 이름 불러 "
" … 고마워, 이런 나 이끌어줘서 "
" 내가 더 고마워, 이런 나 믿고 와줘서. "
우리 서로 고마운것도 많다, 그치. 그러게 . 기성용과의 말을 끝으로, 서로 마주보고 웃고선 마음이 통했는지, 동시에 하늘을 쳐다봤다. 어제와는 다르게, 두 개의 별이 환하게
우리를 향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쁘다, 우리도 저렇게 빛나는 날이 오겠지. 그래, 그런 날이 온다고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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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 너무 오랜만에 글올리는거 같아요! 죄송해요 ㅠㅠ
그래두 이제 축제도 끝났겠다 ! 한가하니까 마니 쓸게요 !
독자님들 의견반영해서 시즌1은 달달로 끝내고 시즌2는 갈등을풀어나가면서 달달형식으로갈게요.
그래서 성용이 아버님은 아직 에피소드 안넣은거에요 ! 오늘 충분히 기성용대 힘들었기 땜시 ㅠ.ㅠ
만약 자신의 의견과 내용이 다른 독자님들 ㅠㅠ화내지 마세용 ㅠㅠ그래도 독자님들 의견반영하려고 최대한노력 했으니까요 ㅠㅠ
글구 이거 마지막화아니에영 ! 아직한편남앗쓰영 ㅠㅠ 왕 벌써 마지막화라니..감회가 새롭네요.
* 그리고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번에 어떤 공지에 암호닉 몇백개를 받았었는데요
거기에 암호닉 적혀있는 분들만 텍파나눔할때 암호닉 밝히시고 메일주소 써주시면 텍파 드릴수 있어요.
암호닉 안 적히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못드리구요 ㅠㅠ 말햇듯이 시간도 없고 지금 암호닉 있는것만 해도 보내기 벅차서요 ㅠㅠ
만약 암호닉 적혀있는데 월요일 저녁6시부터~ 화요일 저녁6시까지 멜 주소 못보내신 분들은
선착순 10분 정도만 보내드릴검니다.
하...................글 다썼는데 취소 누르는 바람에 글이 사라진거에요...................................................
깜짝놀라서 다시 켜서 임시저장 된거 보는데 반밖에 안 저장되있어서 다시 반 썼어요......진짜 죽고싶었어옄ㅋㅋㅋ ㅠㅠ
그래서 이제야 소설 올리네요 ㅠㅠ 죄송해요ㅠㅠ 그래도 엄청 기네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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