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 천사는 알고 있다
[영재X윤수]
야, 천사.
처음 윤수에게 천사라는 별명을 지어준건 영재였다. 학교의 시설을 바꿔주고 입학 한 윤수를 질투, 혹은 우습게 여긴 아이들이 뒤
에서 간간히 ‘기부 천사’ 라며 비아냥 대긴 했지만 대놓고 천사라며 비아냥 거린 사람은 조영재가 처음이였다. 그리고 그 별명의 뜻
을 알리 없는 윤수는 분명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걸 알긴 했지만 차마 뜻을 몰라 욕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이였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
이며 ‘고마워.’ 라는 짧은 한 마디로 자신을 비웃는 별명에 대해 긍정적인 표현을 내보였다. 이에 영재는 뭐가 그리 웃긴지 그 넓은
중앙 복도에서 깔깔 거리며 배를 움켜 쥐고 웃어 댔다. 고맙댄다, 병신 새끼.
너, 기부 천사라고. 대천사. 학교에 존나 기부 해 대서 천사라고, 너.
돈 주고 학교 입학한 놈들이 있다고 간간히 듣긴 했지만 그게 우리 학교에도 있는 줄은 몰랐네. 우리 학교 존나 코미디 하나봐. 뒤
를 이어 그 말을 듣자마자 윤수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여태 자신이 들어온 말 중에 쓰레기, 조염병. 이 모든게 전부 조영재
를 가르키는 말이였다. 소문으로만 저 새끼 쓰레기다, 상대 하고 싶지 않다……하는 말을 종종 듣곤 했지만 실제로 제 자신이 이런 식
으로 저 녀석 한테 비웃음을 당할줄은 몰랐다. 윤수는 진심으로 화가 났지만 그저 무시하고 제 갈 길을 지나 갔다.
쓰레기야 무시하면 되는거고, 조롱이야 듣지 않으면 되는거다. 윤수는 제 주머니에 있는 이어폰을 꺼내 제 귀에 꽂았다. 간간히 흘
러 들어오는 음악 뒤로 영재의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윤수는 오늘에서야 깨 달았다. 저 녀석이
왜 조염병인지, 쓰레기인지.
학교의 선생님들은 함부로 윤수를 건들이지 못 했다. 수업을 아무리 빼 먹어도, 수업에 참여를 전혀 하지 않아도, 선생님들은
윤수를 건들지 못 했다. 조영재는 그런 패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윤수와 똑같이 수업을 빼 먹고 똑같이 수업 시간에 잠을
디비 쳐 자도 항상 걸리는건 자신 혼자 뿐 이였다. 아무리 저 대천사는 수업을 빼 먹어도 찾는 이 없었고, 잠을 쳐 자도 신경쓰
는 이 없었다. 저 녀석 주위는 전부 평화로워 보였다. 아무도 건들지 못 하는 것은 어찌보면 좋은 일 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을 조영재는 동경 했다. 자신을 쓰레기 취급 하며 뒤에서 조롱하고 비아냥 대는 아이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바
라는 유은성, 매일 밤 뒤에서 몰래 제 자신 혼자 안았던 유은성. 그녀 역시 자신을 다른 아이들 처럼 비아냥 거리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리고 제 앞에서 조차 자신을 조롱하는 그녀를 차마 영재는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사랑하는
여자 마저 자신을 비웃는 제 삶과 주위는 윤수와 달리 평화롭지 못 했다. 가끔씩 뒤에서 윤수를 비웃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런 것
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무신경한 태도에 아이들 은 점차 윤수에게 관심을 떼었고, 선생님들 조차 윤수를 건들지 못 하는
그 만의 완벽한 평화.
어쩌면 그는 정말 천사가 아닐까.
그런 의심과 함께 영재의 마음 속 에선 다른 애들보다 더 많은 그에 대한 질투심이 자라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동경도 자라났다. 그
러나 그는 질투는 받아 들이되 동경은 받아 들이지 못 했다. 그랬기에 그는 윤수를 지독히도, 그리고 끈질기게도 늘고 물어지며 괴롭
히게 되었다. 그의 앞에서만은 영재는 진심으로 자신이 쓰레기가 되는 것 만 같은 기분이였다.
“옳지, 천사. 난 네 주머니가 항상 두둑해서 좋아.”
“……….”
“간다.”
“…조영재.”
그리고 어김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지나쳐 넓디 넓은 복도를 지나가는 윤수를 붙잡고 자연스레 주머니로 손을 넣어 지갑을 빼 낸 영재가 홀쭉해진 지갑을 윤수에게 던지며 자리를 뜨려 하는 찰나, 낮은 그의 목소리가 영재를 붙잡았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건넨 말 이였다. 매번 저럴 때 마다 그냥 무시하고 가거나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
러 주었다.
“왜?”
문득 낯선 호기심이 생긴 영재가 발길을 다시 돌렸다. 보고 있노라면 어둑해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을 것 만 같은 윤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시선은, 똑바로 영재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넌, 내가 부러워?”
“뭔 헛소리야.”
“넌 내 돈이 부러운거야, 뭐가 부러운거야?”
“하나도 안 부럽거든, 천사.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더니 지금이 오락가락 할 때인가보다?”
그러자 윤수는 달라진 것 없이 힘 없는 웃음을 끝으로 발 길을 돌렸다. 뭔가 자신을 약올린 기분이다. 조영재 안에서 계속해서 자라
나는 질투와 동경을 들킨 기분이다. 모든걸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아득한 그 눈, 그렇다면 그는 정말 천사가 아닐까. 천사는 나를 벌
하려는 것 일까. 천사는………
그렇게 찝찝한 기분을 안고 영재는 윤수가 간 길과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틀었다. 윤수의 낮은 음성, 귓가에서 계속 울릴 것 만 같아
무섭다. 마치 나를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였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복도가 제 마음 속 쓰레기 같은 본능을 보여주는 것 만 같다. 나는
정말 그의 돈이라도 부러웠던 걸까, 그의 평화로움은 정말 돈 때문일까. 하지만 그는 한 번이라도 자신의 부에 대해 자랑하거나 내놓
고 말 한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평화는 어디서 오는 걸까.
몇 발자국 쯤 걸었을까, 계단을 내려가려 발을 디딛는 순간 뒤에서 저를 장난스레 밀치는 손이 느껴져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털썩 주
저 앉은 영재가 뒤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그 뒤엔 제 배 까지 내려오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는 양강모가 보였다.
“뭐냐, 넌?”
“너 진짜 천사한테 뺏은 돈으로 집 짓겠다.”
“넌 하루라도 안 맞으면 몸이 쑤시냐?”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주저 앉았던 계단에서 일어나자 쫄래 쫄래 강모가 영재를 쫓아 계단을 내려왔다. 신경이 거슬려 영재가 뒤를
돌아보곤 신경질 적으로 ‘아, 쫓아오지 마라 너!’ 라며 소리를 지르자 강모가 심통 맞은 표정을 짓곤 반대편으로 돌아 발 길을 옮겼
다.
그렇게 다시 어두운 복도 쪽으로 올라가는 강모의 뒤에다 대고 ‘아오, 저거 진짜……’ 라며 신경질을 내던 영재가 문득 넓은 현관의
홀을 보자 현관 홀 구석에 위치 해 있는 피아노 위에 윤수가 앉아 있었다. 멍한 눈, 귀에 꽂은 이어폰, 천장을 올려다 보는 그의 시선.
마치 개울가에서 장난을 치는 소녀 같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의 다리, 흰 피부……아득히 까만 눈. 무겁게 내려 앉은 그의 길고 긴
속눈썹. 마치 세상의 더러운 것을 막으려는 듯 그의 눈꺼풀이 닫혔다. 영재는 그에게서 시선을 놓지 못 했다.
너는 보고 있노라면 날 비참하게 해.
자신과는 너무나 다르다. 유은성과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윤수와 자신 역시 사는 세계가 다른 듯 모든게 다르다. 그렇다면 내가 그
에게 느끼는 감정은 유은성에게 느꼈던 감정과 같은 것 일까?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유은성은 좋아한다, 좋아하고 있다. 마음 속
으로 품어 놨다 몰래 몰래 꺼내어 보는, 건들일 수 조차 없는 그런 새 하얀 무언가라면 윤수는………글쎄, 호기심? 그리고 윤수에 대
한 호기심은 그를 더럽히고, 괴롭히고, 망가트리고 싶은 그런 욕망? 하지만 그는 조영재, 자신에게 물들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 일
까? 조영재는 윤수를 한 없이 망가트리려 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눈길 조차도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더럽혀 지지도 않았다.
흰 피부와 같이 그는 항상 한 없이 하얗기만 해서 더 괘씸했다.
나는 이런데, 나는 이렇게나 비참한데.
천사, 그렇다면 너는…………정말 천사 인 걸까.
영재는 다시 발 길을 옮겼다. 그리곤 다시 계단을 올라 섰다. 현관의 넓은 홀은 지독히도 밝아 도저히 자신이 밟고 있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계단을 올라 서자 저 끝 부터 불이 꺼져 무섭도록 어둑한 복도들이 보였다. 나는, 차마 너를 탓 하지 못 하겠다. 천사야. 영재는
한 칸 한 칸 계단을 올라 설 때마다 몇 번이고 고개를 돌리며 피아노 위 윤수를 쳐다 보았다. 차마 발걸음이 쉽게 떼어내 지지 못 했
다. 나도, 너의 그 새 하얗게 질린 네 좁은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고만 싶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