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생각하며 걸으니 내 발은 당연하게도 구의 집으로 향했다. 구의 집 앞에 서서 녹슨 철문을 골똘히 쳐다보았다. 집 안에선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기다릴까. 기다리다 만나면 뭐라 말할까. 잘 지냈냐고 물어볼까. 너 때문에 나는 만사가 시시해졌는데 너는 사는 게 어떠냐고 물어볼까. (...) 봄밤을 그렇게 통째로 날려버렸다. 서성이며 망설이며 돌아서며, 돋아난 꽃이 피고 지고 밟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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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 태어나서 전쟁만 겪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전염병이 유행하는 곳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조상들의 전쟁에 휘말려 평생을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이나 질병은 선택 문제가 아니다. 나는, 구의 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구의 인간다움을 좀먹고 구의 삶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돈이 전쟁이나 전염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를 게 없었다. 그건 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부모가 물려준 세계였다. 물려받은 세계에서 구는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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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구가 죽었다고, 내 이름으로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 여기 내 눈앞에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몸이 있는데. 만지고 안을 수 있는데. 그 누구도 몰라야 한다. 어차피 관심 없지 않았는가. 사람으로서 살아내려 할 때에는 물건 취급하지 않았는가. 그의 시간과 목숨에 값을 매기지 않았는가. 쉽게 쓰고 버리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 하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받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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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 우리를 기억해줄 사람은 없어. 우리가 우리를 기억해야 해.
| 구의 증명 / 최진영 |
총평 구질구질한 노란장판 로맨스...... 그렇지만 사랑은 다 구질구질한 게 아닌가? 싶은... 제목이 왜 '구의 증명'인가가 잘 이해가 안 가서 세 번을 읽었어요 (길이가 짧기도 해서 이틀만에 세 번 읽기 가능입니다) 글 속에서 화자들은 '사람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번 물어요 전쟁 속에서 태어난 사람은 전쟁으로 살다 죽는 것처럼 가난과 빚더미 속에서 태어난 구의 삶은 사람보다는 빚더미에 가깝고...... 38 페이지에 '증명' 이라는 단어가 담이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등장해요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구가 죽었다고. 내 이름으로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가.(...) 없는 취급받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제목이 구의 증명인 이유는 아마 '이런 사람 같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는 구가 숨쉬며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이자 객체이자 사람임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고 로맨스 서사를 통해 다소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읽고 나서 보니까 최진영 작가님 글 중 가장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작품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아주 재밌다고 느끼지는 못했지만 몰입감 자체는 뛰어났어요 작가님이 9와 숫자들의 창세기를 언급하시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추천받은 같이 들으면서 읽으면 좋을 노래 첨부합니다 여러 번 읽은 만큼 글이 길어졌어요...... 이번 주는 왠지 모르게 정신이 없어서 뜸하게 등장했는데 다음 주는 다시 부지런한 뻘필원 되겠습니다 다들 11월의 남은 반토막도 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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