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타 - 내 눈에 별도 없고 내 안에 별도 진 밤
어린 아빠 15
(특별편; 별은 지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명사로써의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흔히들 말하는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 혹은 소중한 사람을 아끼는 마음. 그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고, 그 사람 덕에 웃고, 그 사람 덕에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게 되는 것. 사랑이라는 것은, 참 어려운 것.
앞서 말했던 사랑이 모두, 사랑이라면. 그래, 나는 사랑을 했다. 사랑을, 했다. 열여덟. 누군가가 본다면 코웃음을 칠만큼 어릴 나이었지만 그 해 여름, 나는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다. 사랑해서, 사랑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사랑하니까, 사랑이니까. 사랑이었으니까. 사랑이라서. 수많은 이유 중 사랑이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없었다. 그래,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당신은 나와 너무나도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아서. 집 나간 엄마. 알코올 중독자였던,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버지. 변변치 못한 집 안 사정. 죽지 못해 살아가는 나와는 달리 유복한 가정, 단아하신 어머니, 인자한 아버지를 가진 당신은, 조금은 유치한 표현이겠지만 참 빛나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듣는다면 웃음을 터뜨렸겠지만,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정말로 빛이 나서, 정말로 근사한 사람처럼 보여서, 마치 별나라 왕자님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당신이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정말로 놀랐다. 마치 하면 안될 짓을 한 아이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남아 있는 가족이 없었다. 친척들은 모두 나를 서로에게 떠맡겼다. 내가 아주 불쾌한, 짐덩이라도 되듯이 서로 가지지 않으려고 바등거리며 나를 다른 집으로, 또 다른 집으로, 또, 또 다른 집으로 떠밀었다. 그들이 나를 떠민 곳은 다른 친척 집이 아닌, 벼랑이었다. 결국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그들은 어쩌면, 아니 티나게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겠니? 퍽 다정한 목소리로 물은 물음은 끔찍했다. 가만히 막내 고모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떨어지는 고개는,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는지. 아니면, 무력감이었는지.
달마나 나오는 보조금으로는 벅찼다. 학교에서, 그리고 밖에서 내 사정을 아는 사람은 단 한사람이었다. 담임 선생님. 어쩌면 교무실의 선생님들도. 남들에게 내 치부를 보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어린 나이어서 더 그랬다. 최대한 밖에서는 평범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남들 하는 것 다하고, 먹는 것 다 먹는.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반에서 가장 조용한 아이. 그런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밤마다 알바를 해야했다. 몇 개씩이고 해야했다. 잘리고, 다시 알바를 구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다 당신을 만났다.
다행히 나를 야간 알바생으로 써주는 편의점이 있었다. 그 덕에 하고 있던 알바를 관둘 수가 있었다. 일부로 아이들이 잘 오지 않는, 집에서도 걸어서 몇 십 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자다가, 집에 와서 알바갈 준비를 하고는 늦은 밤 집을 나섰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밤은 습했다. 그럼에도 나는 부지런히 걸어서 편의점으로 갔다. 저녁 근무인 언니와 교대를 하고 나면, 밤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그냥 멍하니 허공만 볼 때도, 아무 연락도 오지 않는 휴대폰만 만지작거릴 때도, 그리고 아주 심심할 때는 편의점 곳곳을 청소하고는 했다. 지루하지만 온전히 나의 것인 새벽이 지나고 나면 아침 근무를 하는 오빠와 점장님이 오셨다. 그리고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집으로 와서는 곧바로 학교로 향하고는 했다.
학교에서 나는 아주 조용한 아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좋았다. 조용한 집과 편의점보다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로 가득한, 활력 넘치는 그 공간이 좋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곳이, 나는 좋았다.
-
그리고 당신은, 아주 빛났던 사람. 언제나 사람들에 쌓여 있고, 그 사람들의 중심이 되었던 사람. 학교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당신의 평판은 아주 좋은 편이었다. 나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당신은 그랬다.
늦은 밤, 어김없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술에 거나하게 취한 진상 손님들이 어지럽히고 간 뒤라 매장 안은 너무나도 더러웠다. 대걸레를 빨아와 천천히 바닥을 닦아갈 때 쯤, 딸랑 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어서오세요. 서둘러 대걸레를 정리하고는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라면 쪽은 서성거리던 남자는 곧 컵라면 하나와 봉지 라면 하나를 들고는 카운터로 설렁설렁 걸어왔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바코드를 찍고는 1500원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나를 알아볼까봐, 지나가다가 한 번이라도 봤을까 싶어서 떨렸다. 남자는 천천히 내게 이천원을 건넸다.
이천원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이천원을 놓지 않았다. 의아해진 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남자가 싱긋 웃었다. 여기서 알바해? 사근사근한 목소리였다. 애써 침착하게 남자를 바라보자 남자가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래서 늘 피곤한 표정을 지었구나. 남자는 그제서야 이천원을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오백원을 거슬러주자 남자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라면을 손에 들었다. 딸랑. 다시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도 없었다. 남자가 나를 알아봤다. 그것은, 당신과 나의 첫만남이었다. 당신은 어쩌면 기억하지 못할, 여름날의 밤.
-
남자는 자주 나를 찾아왔다. 아주 늦은 밤이었지만 가끔 찾아와 내게 말을 걸곤 했다. 서서히 남자와 친해지는 그 순간들이, 나는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남자와 나는 꽤 통하는 점이 많았다. 어쩌면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 휴대폰 번호도 교환하고, 연락도 하기 시작했다. 남자도 밤을 새는 일이 잦아졌다. 남자가 밤을 새는게 온전히 내 탓이라는 게 즐거웠다. 짜릿하고, 행복했다. 까만 밤을 지새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연애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열여덟. 남자는 열아홉이었다. 무덥고 습했던 그 해 여름, 나는 사랑을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서로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어차피 득 볼 것이 없으므로. 나는 나대로 조용히 살고 싶었고, 그는 그대로 그의 삶을 살고 싶어했다.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의 낮은, 그리고 나의 낮은 무던히도 흘러갔지만, 서로의 밤은, 길고 길었다.
어느날,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여력한 남자가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한참을 꾸물럭거리며 편의점을 돌아다니던 남자가 카운터에 와서 건넨 것은, 다름 아닌 콘돔이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그를 보다가 천천히 바코드를 찍었다. 절로 손이 떨렸다. 해가 밝고, 처음으로 나와 남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은, 내가 오롯이 그의 낮을 가진 날이었다.
-
남자가 나를 버릴까 두려웠다. 더 이상 내게 사랑해준다고 하지 않을까봐, 내가 예쁘다고 말해주지 않을까봐, 내 마음을 확인했으니 나를 내던져 버릴까봐, 그렇게 또 떠나갈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는지 나를 대하는 남자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더 자주, 자주... 그의 낮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낮을 가지게 되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게 화근이었을까. 어느날부터 생리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하는 마음이었다. 주기가 늦어지는 것이겠지,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생리가 멎은지 딱 두 달이 되었을 때, 약국으로 향했다. 애써 침착한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확인한 테스트기에는 빨간 두 줄이 그여있었다. 멍하게 빨간 두 줄만 바라보다가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근처 약국으로 달려가 다섯개를 더 사왔다. 잔인하게도, 테스트기는 모두 두 줄을 만들어냈다.
온 몸을 꽁꽁 감았다. 늦여름이었지만 얇은 후드집업과 마스크, 그리고 모자까지 썼다. 온통 배가 부른 여자들 사이에서 나 혼자 초조하게 앉아있었다. 아, 당신은 알고 있을까.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기분을. 내 인생에 사형선고를 받는 것 같았던, 그 순간을.
할 말 있어요.
남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갈게. 짧은 답이 돌아왔다. 집 앞에 잠시 서있자 곧 남자가 밝은 표정으로 걸어왔다. 무슨 할 말? 남자는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내 말에 남자는 재촉하지 않고 응, 왜? 하며 물었다. 그게...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남자를 보자 이상하게도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 뱃속에 그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아직 아주 작아서 그런걸까.
"나... 임신한 것 같아요."
"...뭐?"
"임신... 한 것 같아요..."
왈칵 눈물이 터졌다. 그제서야 눈물이 터지고,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다. 남자는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정하게 나를 달래줘야할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서있다가 뭐? 하고 다시 되물었다. 내 배에, 오빠 아이가 있다구요... 나, 임신했다구요. 엉엉 울면서 쏟아낸 내 말을 들은 남자는 표정을 굳혔다. 장난 치지마, 재미없다. 남자의 말에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테스트기를 꺼내어 던졌다. 오빠가 봐요, 보고 말해요! 내 말에 남자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지우자. 지우자, 응? 남자는 애절하게도 내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아니면 사랑한다고, 둘 중의 어떤 말도 하지 않고는, 그저 지우자는 말만 기계처럼 되풀이했다. 왜 오빠가 그런 표정을 지어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난 오빠 발목 잡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는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 줄 알아요?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배가 잔뜩 부른 사람들 속에서, 죄인처럼 온 몸을 감싸고! 고개 숙이고! 덜덜 떨면서 기다렸는데... 얼마나 무서웠는데... 그런데 지우자고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내 말을 들은 남자는 내 어깨를 살포시 잡아왔다. 네 맘 알지, 아는데... 그래도 지우자. 응?
남자의 말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오빠가 그래요! 어떻게! 믿으라더니! 어떻게! 엉엉 우는 나를 차갑게 내려다 본 남자는 돌아섰다. 지우는 거 아니면 연락하지마. 내 애, 아니야. 알아서 해. 흐린 시야 사이로 남자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나를 떠났다. 여름은, 끝났다.
-
자퇴를 했다. 아는 사람은 없었어도 좋았는데 꽤 아쉬웠다. 미련없이 교무실을 나오다 그와 마주쳤다. 그는 무심하게 날 내려다보고는 교무실로 들어섰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속이 많이 쓰렸다. 그 날 밤, 편의점 알바하던 것도 관뒀다. 점장님은 꽤 아쉬워하셨다. 그동안 고생많았다며 몇 푼 더 넣었다고, 그렇게 웃어보이셨다. 감사합니다. 점장님께 인사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까만 봉지에서 쨍. 쨍. 하고 유리병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집은 컴컴했다. 조심히 집으로 들어섰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방 한 구석에 앉아 봉지를 꺼냈다. 점장님이 오시기 전, 몰래 사서 싸둔 소주였다. 초록병을 가만히 보다가 뚜껑을 땄다. 이런 거 마시기 싫은데. 잠시 고민하다가 병째로 마시기 시작했다.
웩. 절로 헛구역질이 나왔다. 썼다. 알코올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왜 어른들은 이런 걸 마실까. 가만히 초록색 병을 바라보다가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먹은 게 없어 나오는 것이라고는 위액 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더하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소주를 들었다. 미안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병째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왔다. 몽롱하게 취하는 기분이었다. 미안해, 아가야. 혼자 배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너는, 너는... 축복받지 못해서... 미안해...
그 상태로 드러누웠다. 남자가 무척 보고 싶었다. 휴대폰을 들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번호를 눌렀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신호음이 한참 울리고도 남자의 목소리는 들리지가 않았다. 착잡한 기분으로 휴대폰을 껐다. 완전히 전원까지 끈 휴대폰을 방 한구석으로 던졌다. 와, 세상이 돈다. 혼자 실없이 웃다가 손으로 눈을 가렸다. 당신이 무척 그리웠다.
나의 세상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
매일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다. 술이 달게 느껴지면 인생이 아주 쓰고 고달픈 것이라던데. 혼자 청승맞은 생각을 하며 웃었다. 실없는 소리. 그와의 추억을 몇 번이고 되뇌어보며 밤을 지샜다. 그가 없는 밤을, 그를 그리며 나는 지새고 있었다. 그와의 추억은 안주가 되어주었다. 고장난 테이프처럼 나는 몇 번이고 그와의 추억을 되짚었다. 아주 바래질 때까지.
생명이라는 것은 얼마나 감탄할만한 것인지. 내가 그렇게 노력아닌 노력을 했음에도 내 뱃속에서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와 나의 아이. 이따금 부른 배를 내려다보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는 했다. 미안해. 내 아이가 뱃속에서 가장 많이 들었을 말은, 미안해.
혼자 아이를 낳았다. 우습게도, 한 생명이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나는 경외감마저 들었다. 나 역시도 아이의 손을 붙잡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가. 우리, 아가.
다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집도 팔았다. 혹시라도 그가 찾아올까봐, 아니면 해코지라도 할까봐. 사실은 그를 보면 흔들릴까봐. 그렇게 쫓기듯이 집을 떠났다.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다행이도 모아놓은 돈이 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정신이 멀쩡할 때 내게 남겼던 돈도. 보조금과, 내가 버는 돈과, 모아둔 돈. 그리고 몇 푼 안되지만 살던 집을 판 돈까지 합쳐 무리하게 이사를 했다. 아이는 나를 보며 웃을 뿐이었다.
-
아이는 때때로 아빠를 찾았다. 아빠는 도망갔어. 아주 쉬운 한마디를 해 줄 수가 없어서 쩔쩔 맸다. 응, 아빠는 돈 벌러갔어. 백밤만 자면 돌아올거야. 겨우 아이에게 말해주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가 아빠가 없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될까. 알면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이렇게나 예쁜 아이인데.
아이는 순하고 착했다. 밝고, 귀여웠다. 남자를 쏙 빼닮은 아이었다. 점점 커갈수록 느꼈다. 누가봐도 그의 아이였다. 가끔 잠든 아이를 보다가 쓴 웃음을 짓고는 했다. 남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 걱정하는 내 모습은 너무나도 우스웠다.
-
그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살면서도, 나는 때때로 허무해지고는 했다. 삶에 대한 의욕이 없어진 상태라고 해야하나. 내 세상이 무너진 후부터 더 그랬다. 아이를 위해 사는 삶도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졌고, 나는 일하고 있던 곳에서 잘렸다. 어느새 훌쩍 커 세 살이 되어버린 아이를 보다가 머리를 감싸고 한숨을 쉬었다. 어떡해야 좋을까. 너를.
아이의 손을 잡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꽤 값이 나가는 매장에 들어섰다. 눈이 휘둥그레져있던 아이는 하얀 원피스가 맘에 드는지 한참을 보았다. 우리 딸, 그거 입고 싶어? 내 물음에 아이는 날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작게 대답하는 아이를 보다 계산해주세요. 하고는 말했다. 아이는 직원과 함께 탈의실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이었지만 망설임없이 계산했다. 예쁜 구두도 사서 신게 했다. 아이는 만족한듯이 웃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도 먹고, 한참 아이를 안고 돌아다녔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한참 걷다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멈춰섰다. 여기면 될까.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를 내려놓았다. 한 가정집 대문 앞이었다. 아이의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우리 딸. 내 부름에 아이가 활짝 웃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미여졌다. 아이의 손에 미리 써온 종이쪽지를 쥐어주었다. 아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엄마가 미안해. 아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고는 웃었다. 억지로 웃어보이자 아이도 나를 따라 활짝 웃었다.
여기서 열 밤만 기다리면 아빠 올거야. 알겠지? 엄마 어디 갔다올게. 조금만 기다려. 아이에게 단단히 일러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여나 아이가 나를 쫓아올까봐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자꾸만 중얼거리면서 뛰다싶이 걸었다.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어느새 해는 지고 밤이 되어 있었다. 엄마 원망해도 돼. 엄마가 너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정말로. 아이에게 들리지 않을 말을 하며 뛰다보니 어느새 익숙한 동네에 와있었다.
남자의 집 앞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집으로 향했다. 아이가 없는, 우리의 집으로. 가는 길에 정말 오랜만에 소주를 샀다. 병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걸을 때마다 들렸다. 집에 들어서자 껌껌했다. 4년 전의, 늦여름의 밤 같았다. 그 때처럼 방 한구석에 앉아 소주 뚜껑을 열었다. 그가 생각났다.
나는 오늘 당신의 아이를 버렸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 때처럼 날 싸늘하게 내려볼까. 소주를 한 입 마시고는 인상을 썼다. 역시나 쓰다. 자꾸만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못나서, 너무 미안해.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소주를 마셨다. 애초에 자격도 없는데 왜 너를 낳았을까. 결국엔 이럴거면서.
그 때와 다름없는 여름밤이었다. 당신을 처음 만난 여름밤. 꿈 속이었는지, 내 상상이었는지, 주마등처럼 당신과 보낸 시간이 흘러갔다. 아주 오래된, 빛바랜 필름처럼.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그 해 여름, 유난히도 습하고 더웠던 그 날. 당신의 낮을 오롯이 안았던 날이 자꾸만 생각났다. 서랍 마지막 칸에서 과도를 찾았다.
별이, 졌다.
***
우선, 제가 뭐 특정한 무엇을 이야기하거나 뭐 그럴려는 것은 아닙니다. 조심해서 쓴다고 썼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사실 어린아빠를 연재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꼭 쓰려고 준비했던 편이에요. 이야기를 진행하더보니 이렇게 미뤄지게 되었지만요. 번외로 넣을까 참 고민을 많이 하다가 특별편으로 끼워넣었어요. 아이의 친모 이야기인데요. 저는 열여덟 살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지금 딸래미도 열여덟, 태아빠가 딸래미를 처음 만난 것도 열여덟. 딸래미의 친모가 딸래미를 가진 것도 열여덟. 열여덟이라는 나이가 좀 불완전하고, 그러면서도 성숙한 것 같기도 하고, 저는 글 쓸 때 열여덟이라는 나이가 제일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제 대부분의 글의 주인공들은 열여덟이었죠ㅎㅅㅎ
어쨌든 친모에게도 그런 사정이 있었고, 딸래미의 탄생과 아픈 배경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쩌다보니 찌통 이야기가 되었지만. 사실 딸래미 놓아두고 가는 장면 정말 쓰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책임을 지지 못했다는 게... 참, 어쩌다보니 암울하고 쓰라린 현실을 쓴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꽁기하네요.
사실 요즘 어린아빠도 울적한 거 쓰고, 이거 번외도 울적한거고, 또 글 쓴다고 울적한 노래만 듣다보니 제가 다 울적해지는 기분이에요. 허헝...ㅠㅠ 그래서 방연시 쓸 때 신나는 건가...ㅠㅠ 어쨌든 이렇게 우울한 편은 이번이 거의 마지막일거에요. 그러니까 대놓고 울적한 글요!
왠지 센치해지네요. 어쨌든 글 속의 친모도 안타까운 사람이지만 그녀를 옹호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하. 저는 또 과제하러 가야게써여. 아, 태태앱 기차 받고 가야게따ㅠㅠㅠㅠ
여튼 늘 고맙고 사랑합니다. 여러분. 알죠?'ㅅ'
암호닉
꼬박/탕수육/너를 위해/라현/솜이불/비비빅/뿝뿌/바카0609/슈룰루/구구콘/마틸다/모찌모찌해/오곡/디즈니/햄쮸/연/밥팅이/들레/토마토마/즌즌국/민피디/몽글/맙소사/범블비/샘봄/boice1004/민윤기/슈비두바/눈웃음/초딩입맛/태아빠/우리사이고멘나사이/인사이드아웃/이부/알라/핑구/단쿠키/버블방탄/태꾹/흥탄소년단♥/심지/꾸꾸/다람이덕/판콜에스/독자1/침침맘/플랑크톤회장/현지짱짱/새별/박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