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이야, 성열아."
나를 쳐다보던 성열의 눈이 커졌다.
"너 진짜로 내가 아는 이성종 맞아? 한성중학교 이성종?"
당황이 제일 크게 느껴졌지만....
성열의 눈에서는 왠지 모를 안도가 느껴졌다.
".....응."
"이렇게 보니까 너 그대로다. 얼굴도 하나도 안 변하고... 왜 내가 널 한번에 못 알아봤지?"
"......."
넌 나한테 관심이 없었으니까.
"너 성일고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대학은?"
"지금은 휴학중이야. 너는 외국에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 명수한테 들었어?"
"아니. 우현씨한테."
"아... 어. 유학 겸, 여행 겸 해서 유럽에 1년정도 다녀왔어."
"그랬구나."
어색함과 긴장감이 카페 안을 맴돌았다.
"너를 이렇게 만나게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나도."
"다행이다. 너한테, 맘 편히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겠어."
성열이가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성열이는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럼 아직 내 능력에 대해서 모르는 거겠지. 고등학교는 따로 갔지만 똑같은 동네 안의 고등학교 였으니까, 소문을 들었다면 알거라고 생각했는데.
뭐, 관심이 없었겠지.
"명수가 사람을 쉽게 사귀는 애가 아닌데, 너랑은 친해보이더라. 넌.... 착한 애니까."
순간 성열이의 눈을 봤고, 내가 느꼈던 안도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서 성열이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의미대로 될거라는 것도 깨달았다.
"..... 나 그렇게 안 착해."
"응?"
난 솔직하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난, 명수씨하고 더 가까워지고 싶어."
".....뭐라고?"
나의 말에, 성열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내 의견에 대해서 제대로 말한 적이 나도 거의 없으니까.
"니가 명수씨한테 어떤 상처를 남기고 떠났는지 알아. 그리고 니가 이때까지 어떻게 명수씨를 대해 왔는지도."
"............"
"그리고, 너도 알겠지. 명수씨가 절대 자기 감정표현은 안 한다는걸."
"........."
"그리고. 니가 그걸 다시 명수씨의 마음을 되찾아 오는데 이용할거라는 걸 난 알아."
"이성종!"
성열이가 큰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막으려 했다.
복합적인 감정이 성열에게서 느껴졌지만, 내가 자신의 생각을 읽었다는 것에 대한 당황감이 가장 커보였다.
"또. 니가 날 알아 본 순간, 날 잘 다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한 것도."
"......"
"하지만 나, 한성중학교에서 니가 원하는 대로 다 퍼주던 이성종 아니야. 니가 원하는 대로 내가 그동안 지켜본 명수씨에 대해서 다 말하지 않을거야."
".........지금 니가 무슨 말 하는지 나 잘 모르겠어. 내가 그렇게 너한테 나쁜 애로 인식되어 있었던거야...?"
상황판단이 끝났는지, 나를 노려보고 있던 성열의 눈빛이 순해지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연기하지 않아도 돼. 우현씨한테 직접 들은거니까."
"....... 우현이형한테?"
다시 성열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더 이상 나한테 뭔가를 얻어내려 하지마."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명수씨한테 더이상 상처주지마. 이건, 내가 경고하는 거야."
자리에서 나서려는데 성열이가 나의 팔을 잡았다.
입술을 쓰윽 만지며, 자신도 일어나 나에게 말했다.
"이런 모습을 보일거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많이 당황스럽네..."
"......나도 내가 이렇게 바뀔거라곤 생각 못했어. 다, 명수씨 덕분이야."
명수씨의 이름이 나오자 성열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난 내 꺼를 되찾을거야."
"명수씨, 아니. 명수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그 소유욕부터 먼저 버려."
날 잡고 있던 성열의 손을 툭, 쳐서 내렸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해서 감당할 자신은 없었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마음이 편안했다.
*
"그래서, 이성열한테 다 말했다고?"
"응."
"너, 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거야?! 대책도 없이 그렇게 막 말하면 어떻게 해?"
성규가 날 앉혀놓고 혼내고 있었다.
같은 동네였기때문에, 성규도 성열이에 대해선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성열이 어떤 의미인지도.
"이를 어쩐다.... 그 독한 애가 이제 어떻게 나오려나..."
성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 잘했지?"
"....... 이 대책없는 놈을 어떻게 해야 내가 잘 때렸다고 소문이 날까. 잘하긴 뭘 잘해?"
성규가 답답한지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언제까지 끌려다닐 수는 없잖아. 이번에도 그러고 싶진 않았어."
성규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날 바라보았다.
"니가 하고 싶었던 말, 솔직하게 다 한거 잘했어. 언젠가 니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해야 너도 니 상처에서 자유로워질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
"이렇게 만나게 되서 이야기 하게 될 줄은 생각 못했지만."
성규가 따뜻한 눈빛으로 날 바라 보았다.
양호실에 누워있다가 눈을 떴을때 본, 성규의 눈빛과 비슷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준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고 고단한 일이야. 거기다가 이성열까지 연관됐으니까."
".........."
"나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생길지도 몰라. 이성열이 어떻게 나올지... 잘 모르겠어."
"........"
"그래도, 니가 지켜주기로 큰 맘 먹은거니까. 한번 잘 해봐."
"......고마워, 성규야. 시간이 지날수록 너한테 고마운 맘뿐이야."
"그걸 이제 알았냐? 아, 너 밥은 먹었어?"
"......... 아니."
"밥 사줄게. 가자. 오늘은 너한테 정말 의미있는 날이니까."
성규 말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되준다는 건 많이 힘든 일이겠지만
명수는 충분히 그런 힘든 일들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근데 넌 남의 마음은 잘 읽어도 니 맘은 잘 못 읽는 것 같다?"
"무슨 소리야?"
"두고 보면 너도 알겠지. 근데 넌 참 등신인 것 같아..."
"응?"
"밥이나 먹으러 가자. 모태솔로한테 내가 뭘 바라겠냐..."
"야, 김성규! 뭔데. 제대로 이야기 해봐."
"아이. 이건 얘기해도 모르는 거야. 니가 깨달아야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성규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하며 집을 나섰다.
오랜만이네요...ㅠㅠ 개강도 하고 이것저것 일들이 많이 생겨서, 이렇게 늦게 다음편을 들고 왔습니다..ㅠㅠㅠ
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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