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지네요 내 가슴속에 새까만 달이 지네요 아무 말도 못하는 나를 닮았죠너무 그리워 부르고 또 부르면새까맣게 재가 돼 버린 추억이야 원식은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차갑게 식어가는 몸은 더 이상 제 힘으로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로 굳어버렸다.자신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연유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들추어 내고 싶지 않았다.이렇게 살 바에야, 그냥 이대로 죽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만류하는 하인들을 기어이 내 보내 버리고 홀로 방에 남았다. 쓸쓸한 고요함이 원식의 가슴을 헤집었다.정말, 이제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붉은 매화가 그려진 하얀 저고리를 입은 그녀가 나풀거리며 날아든다.목이 메이는 느낌에 걱걱거리며 숨을 내 뱉었다. 홀로 남은 그녀도 이랬을까. 지독한 외로움에 떨며 이렇게. 힘이 들어 가지도 않는 주제에 주먹을 꽉 쥐어본다.원식의 길게 늘어진 눈꼬리로 눈물이 타고 내려온다. - 좀처럼 자신을 부르지 않는 아버님이 나를 들이셨다.어쩐지 덜컥 겁이 났다. 불길한 느낌이 온 몸을 휘감았다. 방문 앞에 선 몸이 무거웠다. 뒤 돌아 달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서 세화의 곁으로 가 보아야 하는데.나의 아이를 가진 그녀의 곁을 지켜주어야 하는데.. "대감님. 도련님이십니다." "들이게." 중후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가 듣기 싫어 눈을 질끈 감았다.한 번도 아버님께 이런 불경한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오늘 따라 어지러이 흩어지는 마음에 원식은 당황했다.마음을 다잡고 하인이 열어 주는 방문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원식을 올려다 보는 김 대감의 눈초리가 매섭다. 원식은 애써 떨리는 손을 그러쥐고 김 대감에게 절을 올렸다.절이 끝나도 원식과 김 대감 사이에는 한 마디의 말도 오 가지 않았다.시린 정적에 결국 원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버님. 무슨 연유로 저를……." "묻는 말에 대답하거라." "……." "네가, 홍련이 그 년과 연화루를 드나든다는 것이 사실이더냐?" "……." "대답하지 못 하겠느냐!" 쩡, 하는 김 대감의 불호령에도 원식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홍련이라면, 세화. 그녀가 기루에서 쓰는 가명이었다. 묵묵부답인 원식의 태도에 김 대감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를 냈다.귀에 박혀드는 김 대감의 호통을 묵묵히 받아내던 원식은 이내 눈을 치켜뜨고 김 대감을 보았다. "네 이놈! 감히 아비를 그딴 눈으로 보는 것이냐!" "홍련이라는 여인과 연화루를 드나드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뭐야?" "기루에 드나드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까? 저만한 또래의 사내들이 여인을 한 둘씩 낀 채 기방에 다니는 것은 꽤 흔한 일인 것으로 아옵니다." "이……." 혹시, 아버님이 한 때 연모하셨던 여인이기 때문입니까. 부친의 말을 잘라먹는 것이 얼마나 불경한 행동인지 아는 원식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 쯤 이성을 잃은 채로 김 대감에게 말을 쏟아냈다.김 대감은 그런 원식에 할 말을 잃은 채로 손만 떨어 댔다. 그 순간, 분노를 이기지 못 한 김 대감이 손에 잡히는 벼루를 원식에게 던졌다.원식의 눈과 광대를 스치고 지나 간 벼루가 그의 등 뒤에서 쾅, 하고 깨졌다. 주륵- 하고 흘러 내리는 혈액이 원식의 볼을 적셨다.괘씸한 놈. 김 대감의 잇새로 흘러 나오는 분노가 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김 대감은 반성하지 않는 원식에 밖의 하인에게 명령을 내렸다. "밖에 있는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놈을 한성으로 끌고 가도록 해!" 원식은 그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한성이라면 김 대감, 자신의 부친이 곧 정승의 관직으로 서는 성이다.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자신을 그 곳으로 데려가겠다는 말은……. "갈 수 없습니다!" "닥치거라!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철부지 같은 언행을 보인다면 가차 없이 벌을 내릴 것이야!" "……." 홍련아. 홍련아. ……세화야. - 원식은 김 빠지는 웃음 소리를 내었다.세화를 홀로 두고 온 이 곳에서 혼례를 치루었다. 사랑하지 않는 여인과 몸을 섞고, 그 결실을 맺고.하루하루를 죄책감과 그리움에 묻혀 살아갔었다. 달이 휘영청 뜨는 날이면, 아무도 모르게 밖으로 나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울곤 했다.이미 재가 되어 버린 추억이 원식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자신을 향해서 환하게 미소 짓던 하얀 얼굴. 붉은 입술. 동그란 눈매, 어여쁜 섬섬옥수.그리고.. 세화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던 재향의 그 말. 심장을 부여잡고 울었다. 서럽게도 울었다.난생 처음 사랑했던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두고 홀로 떠나왔다. 외로움에 몸서리 칠 세화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원식은 그렇게 무너졌다. 남몰래 세화의 절친이었던 재향의 행적을 조사했다.그 조사를 뒤따라 온 소식은, 세화의 죽음과 택운의 생존. 그 두 가지였다.원식은 명령했다. 택운을 데리고 오라고. 그것을 방해 하는 것들은, 죽여도 상관 없다고. 눈 앞에서 본 택운은 세화를 많이 닮아 있었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세화와는 달리 앙칼지게 올라간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이제야, 이제야. 너를 만났구나. 그렇게 택운을 양자로 들였다. 원식은 심해지는 한기에 몸을 웅크렸다.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한상혁. 자신의 가문 대대로 호위를 맡아 오던 한씨 가문의 아들이자, 원식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 중 한명이기에 택운을 맡길 수 있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택운을 잘 지켜 낼 수 있겠지. 원식의 몸에서 서서히 온기가 걷혔다.독이 삽시간에 퍼지는 느낌에 원식의 손과 발이 오므렸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그것은, 불행한 자신의 삶을 향한 마지막 집착이었다. 김원식. 그는 그렇게 쓸쓸히… 사랑했던, 아니.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여인의 뒤를 밟았다. 1다음 글[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27편12년 전이전 글[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13편12년 전 소리꾼 l 작가의 전체글 신작 알림 설정알림 관리 후원하기 이 시리즈총 0화모든 시리즈아직 시리즈가 없어요최신 글최신글 [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결말 79년 전위/아래글[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25편 (암호닉은 이 편 이후로 마감 하겠습니다.) 112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24편 96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23편 105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22편 (+사담) 130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21편 10512년 전현재글 [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20편 114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19편 (+암호닉 공지) 119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18편 124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17편 102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16편 119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15편 10012년 전공지사항잘 지내셨어요? 5410년 전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탈한 한 해 기원합니다! 1310년 전[VIXX/켄엔택] ㅎㅅㅎ 레드오션 메일링 ㅎㅅㅎ 353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19편 (+암호닉 공지) 11912년 전[VIXX/택운총수] 왕의 남자 11편 (+암호닉 공지) 11912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