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written by. jjj
bgm.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mr
19, 그와 사랑에 빠지고,
29, 그와 결혼을 하고,
79...그의 마지막을 바라보다.
![[기성용]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a/e/1/ae164b5a3627b966d8e3e96e816d9f5b.jpg)
![[기성용]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e/9/b/e9ba7e7060c6da31338b48800b6f1d67.jpg)
˝당신, 기억 하려는지 모르겠어.˝
2년 전 원인 모를 이유로 쓰러져 전신마비가 되어, 남은 생을 침대신세로 누워서 보내야하는 그의 얼굴앞에 액자 하나를 흔들었다.
어젯밤 오랫만에 짐정리를 하다가 찾은 낡은 상자 속 고이 잠들어있던 분홍색 작은 액자. 그 액자에는 국가대표 축구유니폼을 입고 막 공을 패스받은, 젊은 시절 그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담겨있었다.
…기억이 난다. 51년 전 우리 한창 연애하던 시절, 경기장까지 찾아 온 그의 열혈 유치원생 팬이 그에게 직접 건네 준 작은 정성.
그리고 또 그 날은, 그가 처음으로…
「아저씨 완전 멋있어요! 팬이에요!´」
...아저씨 소리를 들은 날이기도하다.
「아이구, 우리 기성용 아저씨~.」그 날 나는 하루종일 그의 품속을 파고들면서 놀려대었고, 그때마다 그는 날 떼어내며「야! 나랑 동갑인 너도 아줌마거든!」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굴었지만…
모를리 없었다. 안 그래도 20대 초반의 그 기운을 잃었다며 살짝 우울해하던 20대 끝자락의 그에게, 작은 상처였다는 것을.
그날 밤, 그가 걱정되어 그의 집에 몰래 찾아간 나는 그의 방 문 앞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야만 했다.
방문 틈새로 보이는 그는, 침대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작은 탁자 위에 세워놓은 액자를 텅 빈 눈으로 멍하니 쳐다보고있었다.
보는 사람이 다 안타까울 정도로,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해보였다.
…그 때, 내가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하면서까지 무슨 생각을 했어?
그 생각속에 우리의 '지금' 도 들어있었어…?
˝그 꼬마가 뭘 알긴 알았던 것 같아. 2012년…이 해에 당신 제일 멋있었는데. 내가 런던까지 간 보람이 있었다니까.˝
˝…˝
˝…이 때 확인했잖아, 내가. 이 사람 정말 놓치면 안 되겠다…. 하고."
하얗게 센 그의 머리칼을 가만히 쓸며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그는 지금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했다.
이럴 땐 어떻게든 그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생각해내어 맞춰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두 뺨 가득 눈물을 흘리고 만다.
늙어 병상에 있어도 그의 자존심만은 여전히 패기 넘치던 20대의 기성용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의 눈물을 보는 것이 싫었다. 내게는 한없이 크기만 했던 그의 눈물은…, 이해가지 않겠지만 내게 있어서 큰 상처였다.
그나저나 뭘까. 그는 내가 눈을 마주칠때마다 눈동자를 잠깐 흔들다가 두 눈을 꾹 감았다가 뜨고, 다시 감았다가 뜨고를 반복했다.
무슨 의미야, 당신. 눈을 떠서 날 한번 봤다가, 다시 감고. 또 떴다가, 다시 감고…. 뭐지, 나보고 눈을 감으라는 뜻인가.
˝…나 눈 감으라고?˝
그의 눈동자가 좀 큰 모양새로 좌우로 흔들린다.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뭐지…. 눈을 감았다가, 뜬다. 눈을 감았다가…감았다가…감았다가….
아, 알아냈다.
˝같이 누워 자자고…?˝
그제야 그의 눈이 부드럽게 감겼다. 이것은, 맞다는 뜻이다.
쓰러지고 나서부터 그는, 대단할만큼 낮잠을 많이 잤다. 그가 낮잠을 잘 때마다 나는 옆에서 책을 읽는다던지 TV를 본다던지 했는데,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고 그와 낮잠을 자는 일이 확 줄긴했다.
하여튼 애같긴…알았어, 알았어~.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 작은 서랍장 위에 액자를 올려놓고 그의 옆자리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살며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아보았다.
젊은 시절 내가 그에게 많이 했던 애정표현이다. 그의 몸이 그 때처럼 단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운동을 한 사람인지라 듬직하다.
쓰러지기 바로 직전까지 마당에서 손주가 곧잘 가지고노는 축구공을 만지작대던 그였다. …왠지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아 그의 옆구리에 늙고 지친 얼굴을 비벼본다.
잠잠하던 그가 컥, 컥 하는 거친소리를 낸다. 가끔, 그를 간호하면서 내가 울 적마다 애처롭게 내는 그의 헛기침소리. 하여튼, 귀신같긴.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슬쩍 웃었다.
˝늙어서 주책이지?˝
˝…˝
˝…당신 옆이니까 그래. 친구도, 자식도 아닌 당신 옆이라서….˝
그의 옷자락을 말아쥐었다.
시간이 지나 얼굴이 변하고, 모습이 변해도 이상하리만큼 변하지 않던 그의 냄새가 늙은 코끝에 와닿는다. 그와 함께하는 오랫만의 낮잠, 기분좋게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을하며 눈을 감았다.
그와 내가 함께 덮고있는 하얀 이불위로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궁글었다.
…좋은 꿈을 꿀 것 같다.
……….
˝…해?˝
˝…?˝
˝…생각해?˝
˝…어…?˝
˝나 참, 더위먹었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고!˝
뭐지…?
돌연, 누군가 까만 커튼을 걷는 느낌이 나서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는데 나를향해 허리를 숙이고 서서 눈을 맞춰오는 의외의 인물 때문에 깜짝 놀랐다.
…20대 초반의 기성용…. 어떻게…?
˝시간없어. 지금이 태어나서 제일 바쁜 순간이야. 어디갈래?˝
˝기성용…? 성용이 맞아?˝
˝…아이고, 우리애기 드디어 미쳤나보다.˝
어안이 벙벙하다. 지금 내 두 뺨을 쥐어오는 이 손. 그리고 반사적으로 그 손 위에 얹은 내 손. 쭈글쭈글하지도 않고, 듬성듬성 검버섯이 있지도 않다.
그냥…하얗다. 우리 참 하얘, 성용아. 이게 무슨 일일까? …나, 지금 환상을 보고있는걸까?
˝음…간만에 축구하는거 보여주고 싶은데. 연습장가자!˝
막무가내로 내 손을잡고 어디론가 향하는 그를 따라 정신없이 두 다리를 움직이는데,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핫팬츠와 하이힐이 내 다리와 발에 감겨있는게 보인다.
그에 기겁을 하며 앞서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상황을 정리하는데…이거 설마….
휙, 뒤를돌아 방금 그와 나선 건물을 보았다. ´Coffee dream.´ …그와 내가 젊었을 적에 데이트코스에 꼭 넣었던, 사람도 적고 아담해서 비밀연애하기 딱 좋았던 작은 카페.
눈물이 핑 돌았다. 환상이라면 사라지지말고,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봤냐! 오빠가 이 새끼 제끼는거!˝
˝아 씨, 기성용. 여친 앞이라고 플레이 좀 쩐다?˝
몇 십년 만인지 모르겠다.
정말, 정말 오랫만에 들른 연습장에 자철씨도 보이고, 청용씨도 보이고, 두리씨도 보이고…. 반가운 마음에 한명 한명 다 찾아가 인사드리고와서 그가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역시 축구를 할 때 가장 빛나는 사람. 하지만 신이나서 공을 이리저리 모는 그를 마냥 웃으면서 보고있기가 힘들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사람의 미래를 알기 때문일까. 자꾸 그 미래의 모습이 겹쳐보여서….
한창 공을 차다가 멋진 슈팅으로 완벽하게 마무리를 끝낸 그가 뾰루퉁해진 자철씨와 어깨동무를 하며 내게 다가왔다.
자철씨… 3년 전, 자택에서 조용히 생을 마친 자철씨가 전신마비가 된 그와 함께 내 앞에 서있다. 그것도 그들이 가장 빛났던 순간 그대로.
잊을 뻔 했다. 이렇게 크고 멋진 사람들이였다는 것을.
˝답답하면 니가 여친 만들던가.˝
˝아오, 이 새끼가 진짜…안 그래도 서러워 죽겠는데.˝
장난스럽게 그와의 어깨동무를 풀어 낸 자철씨가 다시 연습코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모습을 말갛게 바라보던 그가 실없게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숱많은 그의 더벅머리와 그가 좋아하던 긴 생머리의 내 머리칼을 가볍게 헤집는다. 나는 50년 전에 늘상 그랬듯,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는 오랜 습관처럼 그 쪽으로 돌아앉아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을 내 손등으로 닦아내었다.
그런 나를, 알수 없는 눈을 한 그가 내려다본다.
˝…자철이랑 축구 오랫만이다.˝
˝…응?˝
˝가자, 데려다줄게.˝
…순간, 직감했다.
지금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걸, 그도 알고 있다는 것을. …그걸 알고나자, 집에 가고싶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그가 내민 손을 잡지 않고 한참이나 쳐다만봤다.
그에 그가 살짝 한숨을 쉬더니 등 뒤로 꼭꼭 감춰둔 내 손을 끌어다 잡았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의 시선이 얽혔고,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그였다.
시선을 아래로하고 말없이 내 손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내 귓가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만 듣게끔 작게 속삭였다.
˝…둘만 있고 싶어서 그래.˝
˝…˝
˝너. 아니 당신이랑, 둘만.˝
당신. 2년 전까지 결혼 후부터 늘상 듣던 그 말이, 20대 초반 연애시절의 그의 입에서 나오니 왜 이렇게 어색한지. 그래, 너랑 나는 당신이지….
간절한 눈빛에 못 이긴 척 일어나 그를 따르는데, …뒤에서 2,30대 젊은 남자들의 왁자지껄한, 너무나 그리운 그 목소리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 연습코트 안을 들여다 보는 순간, 자철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철씨가 들고있던 축구공을 내려놓고 입주위에 손나팔을 만들어보였다. 그러더니 입만 벙긋벙긋.
´성용이랑 같이 기다릴게요.´
…자철씨는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두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버린 나는, 한참동안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다왔네. 쫌만 더 같이있고 싶은데…아쉽다, 그치.˝
˝….˝
˝헐…왜 울어.˝
˝…니가 제일 잘 알잖아.˝
말문이 막힌 듯, 그가 멋쩍게 뒷통수를 긁적인다.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바보처럼 내 얼굴 한 번 봤다 땅바닥 한 번 봤다,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헛기침만 킁킁….
커다란 거짓말을 들켜버린 소년마냥 한참을 쭈뼛쭈뼛 거리던 그가 내 눈치를 보며 살며시 입을 열었다.
˝…울지말라고 해서 그칠 것도 아니겠지만….˝
˝…˝
˝그래도 울지마라.˝
˝…몰라.˝
˝너 우는 거는 몇십 년을 봐왔는데도 볼 때마다 안절부절 못 하겠더라.˝
˝…˝
˝…으, 비온다.˝
어색하게 웃는 그와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는 내 머리 위로 비가내린다. 옷을 살짝 적시는 정도의 가벼운 비….
비에 송글송글 젖어 짐짓 찌푸린 얼굴을 해보이며 하늘을 올려다 본 그가 ´가시나, 울지 말라니깐….´ 하고 혼잣말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쉽사리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다.
그는 떠나는 사람대로, 나는 남겨지는 사람대로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지난 시간동안 부모님과 친구들 몇을 보내주면서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그때 느꼈던 슬픔이 이만큼은 아니였는데….
어린아이처럼 철없게 그의 옷자락을 잡고 의미없이 흔들었다. 그런 내 손을 그가 살짝 떼어놓으려는 걸 힘을 더 꽉 쥐어 막아내었다.
…놓기 싫어…보내주기 싫단 말이야….
˝그래도 간만에 젊게 데이트하니까 좋았지.˝
무거운 얼굴로 비가 스며드는 땅만 쳐다보던 그가 결심한 듯 씩 웃었다.
이 시점에서는 정말 같이 웃어주어야 하는데, 좀처럼 그럴 수가 없어서 입술을 삐죽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되버린다.
그의 넓은 가슴에 떼를 쓰며 안기고 싶은 그런 철부지 소녀가 되버린다.
˝뭐, 알아버렸으니까 하고싶었던 말 할게.˝
˝…˝
˝놀거 다 놀고, 즐길 거 다 즐기면서 천천히 와.˝
˝…그럴려고 했어.˝
˝…할튼간, 노는 거 참 좋아해. 대신에 옆집 흥민이새끼랑은 어울리지마. 그 놈 나이먹어서까지 순진한 척 하는데… 어딘가 음흉해.˝
…
풋.
결국 작게나마 웃음이 터진다. 기성용은 젊어도, 늙어서도, 그리고 마지막에서도 기성용이구나 싶어서.
나이를 이렇게나 먹었는데, 바람 같은거 안 펴.
…그래도 흥민이랑 가깝게 지내는 건 안 돼.
…못말려.
평소처럼 실없는 대화가 오갔고, 그 사이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쳤다. 여우비였나… 순식간에 맑게 갠 하늘을 보며 그가 그제야 활짝, 제대로 웃는다.
그래, 이렇게 좋은 시절의 시간에 그것도 저렇게 활짝 웃을 때 보내줘야겠지. …어쩌면 기회일지도 몰라.
그를 따라 쓰게 웃으며 말아쥐고있던 그의 옷자락을, …놓았다.
˝…이제 가봐.˝
˝올…. 다 컸네, 보내줄 줄도 알고.˝
˝빨리가, 이 바보야.˝
붙잡기전에…. 하는 뒷말은 차마 못하고 입술만 질끈 깨물었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그가 실없이 웃더니 옷 매무새를 다듬는다. 그러더니 불쑥 하는 말.
˝나 그 분홍색 액자랑 같이 보내주라.˝
˝응?˝
˝오늘 니가 보여 준 액자말이야. 거기에 있는 사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거든. 런던 올림픽 때 나 볼 잡은 딱 그 순간에 찍힌거.˝
˝…뭐야, 내 사진은. 애들 사진은!˝
˝너나 애들은 계속 살아가잖아. 산 사람 담아가는거 아니야. 뭐니뭐니해도 그 때의 내 모습은 꼭 담아가고 싶다. 알았지. 꼭이다.˝
˝…치. 알았어.˝
그가 가볍게 내 머리를 헝클이고 천천히 뒤를 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끝까지 보려고 했는데,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어 나도 뒤를 돌아야만 했다.
할 수 있으면 쿨하게 보내주고 싶은데, 사랑하는 남자를 먼저 하늘에 올려 보낸다는게 쉽지만은 않다. …또다시 남겨진다는 게 두렵다. 그치만…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야하고, 보내주어야 할 사람은 보내주어야 하는 법이니까….
세월이 흘러 야속하긴 한데, 그래도 한 가지 고마운건 이별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그나마 금방 덤덤할 수 있다는 것.
눈을 들어 마주한 예전의 내 집 아파트 현관문이 맑은 빛을 내고 있었다.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빨려들어갈 듯한 오묘한 맑은 빛. 분명 이 문 너머에 현실세계가 있을 것이다. 쭈글쭈글 할머니와 전신마비의 할아버지가 나란히 누운 침대가 있는 현실세계.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마음을 먹고 문을 밀고 들어가려는데, 엄청난 힘에 의해 몸이 뒤로 돌아가는 것이 먼저였다.
이어서 곧바로 단단한 손이 내 뒷머리를 잡아 끌었고, 뜨거운 입술이 내 입술위로 불똥처럼 떨어졌다.
그동안 그와 해왔던 키스가 설렘이였다면, 지금의 키스는 가슴이 터질듯한, 그런 무언가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겁고 슬픈 것이 온몸을 두드렸다. 맞닿은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작은 흐느낌과 함께 들썩인다.
…그가 울고있었다. 그의 눈에서 서럽게 뚝뚝 흐르는 눈물이 우리가 함께 한 모든 시간을 담아 흐르고 있다는 것 쯤은, 굳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키스를 끝내고 말없이 내 얼굴을 꼼꼼히 눈에 담던 그가 한 순간 휙 돌아서 저 편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나도, 두 눈을 질끈 감고 망설임 없이 아파트 현관의 문을 밀었다.
…….
역시 꿈이였다.
꿈에서 완전히 깼지만, 차마 눈을 뜨진 못했다.
깼다, 라고 자각한 순간 감은 눈을 비집고 눈물이 터져나와버려서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그의 허리를 껴안고 목놓아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햇살이 밝은 오후.
막 젊음을 느끼던 열아홉부터 정말로 서로에게만 의지해 버텨온 일흔 아홉의 노년까지. 오랜 세월을 함께한 그가 먼저 내 곁을 떠났다.
쿨하지는 못했지만, 웃으면서 보내주었으니 나는 참한 아내야. 그치 여보?
실없는 소리를 하며 그의 옆구리에 내 볼을 부벼본다.
잘 가…
때가 되면, 나도 곧 갈게. 기다릴꺼지?
…사랑해.
진짜 진짜 사랑해.
그 땐 알지 못했다.
옷자락을 말아쥐고 잠들었던 나의 손이 어느 샌가 그의 커다란 손안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전신마비인 그가 어떻게 내 손을 잡아올 수 있었을까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분홍빛 미스테리.
때가 되어 하늘에 올라가 그를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당신은, 알고있지?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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