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야 탄소야!"
학교에 가자마자 나를 찾는 친구한테 왜냐고 물어보니, 친한 남사친인 민윤기가 아침부터 날 찾았다며 가 보라고 말했다.
핸드폰도 안 내는게 뭐하러 교실까지 와서는... 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남녀 분반인 우리 학교에서 여자반까지 올 성격이 아닌 민윤기가 올 정도면
꽤 중요한 일이겠구나 싶어서 민윤기가 있는 반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민윤기! 야, 설탕!"
하얀 죄로 별명은 설탕이지만 성격은 달지 못한 그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고 다른 애들만 힐긋힐긋 쳐다보고 지나간다.
찾았으면 교실에 있어야 할 거 아냐, 괜히 툴툴거리며 다시 교실로 돌아가려고 뒷문을 닫고 몸을 반대쪽으로 빠르게 돌렸는데,
"엄마 깜짝아......"
"넌 왜 우리 반 앞에 있냐, 나 찾았어?"
"아 인기척 좀 내고 다녀!!!! 그리고 니가 찾았다면서 무슨...!"
"찾을 때 제때제때 나와 그럼."
남자 치고 키가 큰 건 아닌데 내 키가 크지 않아서인지 나는 민윤기를 올려다봐야만 했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있을 수가 없어...
"왜 찾았는데? 그것도 아침부터?"
"... 야 김탄소, 너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지."
날 왜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거야...? 민윤기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오늘이 어떤 날인지 생각해 보았다.
일단 11월이고, 수요일이니까 11일인가...? 11월 11일?
"아 빼빼로데... 너 지금 나 놀리냐?? 죽을래?? 뭐 빼빼로라도 줄려고 불렀어?"
"아니. 내가 왜 널 주냐?"
정말 당연하다는 양 말하는데 그럴 거면 찾지를 말지? 민윤기의 하얀 피부로 가래떡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의외로 소심했다.
아마 그걸 입밖으로 내뱉었다가는 저 표정에서 오싹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괜히 기대했다. 민윤기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다시 교실에 들어가려는 듯 문을 더 활짝 열었다.
"진짜 왜 찾았는데 그럼! 그냥 알려만 주려고?"
"어, 알려만 주려고."
"와 민윤기 대실망...... 나 교실 갈래."
"어야, 가는 길에 애들 눈한테 사과도 좀 하고."
민윤기 구워삶는 법 구해요, 내공 100. 울컥한 표정으로 교실로 돌아가는 도중에 본 민윤기의 흐뭇한 표정은 잘못 본 거겠지.
저런 애를 친한 친구라고 두고 있는 나한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교실에 가서 잠이나 자야지, 하고 문을 열어 제꼈는데.
"김탄소!!!!!! 책상에 뭐야? 대박, 야 너 남자친구 있었어?"
이건 또 무슨 민윤기 피부 까매지는 소리?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내 책상으로 갔더니 세상에 이게 웬일,
예쁘게 포장된 빼빼로가 내 책상에 크지 않은 쪽지와 함께 놓여져 있었다. 뭐야, 드디어 내 인생에 로맨스가...!!!
게다가 빼빼로도 내가 좋아하는 아몬드맛으로 가득하다. 이 분 최소 배운 분이네. 옆에서 호들갑떠는 친구를 쫓아내고는
심호흡을 하며 쪽지를 펼치는 순간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맛있게 먹고 살이나 쪄라, 끝나고 교실에서 기다리든지.]
이 글씨의 주인은 하나밖에 없는데?
---- 1, 츤데레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사실 좋아하는) 남사친 민윤기 ----
[12월 23일]
[탄소야, 잠깐 도서관으로 올래?]
이번년도 학교 홍보 책자를 만들면서 알게 된 석진 선배의 문자였다.
생긴 것도 은혜로운데 공부도 잘하고 특히 글을 잘 쓴다는 말에 쓰러질 뻔했는데... 석진 선배가 날 왜 찾지? 싶어 궁금하면서도,
뭘 시키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서관으로 향했을 때 선배는 책을 펼치고는 살짝 졸고 있었다.
깨워야 하는지, 그냥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하며 안절부절 못 하는 사이 선배가 깨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답장도 안 하고 급하게 온 걸 보면, 문자 안 보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아...? 답장 안 보냈... 아니 그, 근처여서 그랬어요!"
"장난이야, 장난. 당황까지 한 거 보니까 진짜인 거 아니야?"
유난히 다른 사람보다 나한테 더 장난을 많이 거는 선배 앞에서 오늘도 당황해서 말이 꼬이고 만다.
아니거든요~ 최대한 능청스럽게 말하며 선배가 뒤로 빼 준 의자에 앉았다.
"근데 왜 부른 거예요?"
'아, 탄소야. 혹시 이번 크리스마스에 바빠?"
"...... 네?"
"아직 바쁘냐고밖에 안 물어봤어."
사실 바로 아뇨 저 완전 한가해요, 라고 말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 되물은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바쁠 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나 교회에서 무슨 행사 준비한다고 놀 때 빼고 크리스마스는 그냥 집에서 보내는 휴일에 불과했다.
대답 대신에 고개를 저으니, 선배는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면 나 좀 도와줘야겠다."
"아... 네..."
사적으로 만나자고 하는 건 줄 알고 괜히 기대했더니 탄식이 제멋대로 나와 버렸다. 하긴 이렇게 잘생긴 선배가 나를 왜 찾겠어.
근데 왜 하필 크리스마스람, 짧게나마 오해할 뻔했다.
"왜냐고는 안 물어보게?"
"뭐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까요... 알바나 막노동 이런 건 아니죠?"
"진짜 그거 시켜도 네 입으로 네라고 했으니까 나와야 되는데, 어떻게 하려고."
"크리스마스에 막노동... 하, 선배 너무해요."
"탄소야."
선배가 이름만 부르니까 갑자기 얼굴이 또 빨개지려 그런다. 겨울에 부채질을 할 수도 없고 이거.
내가 외모 지상주의인가 심각하게 고민하며 대답하니까 선배가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부른다. 탄소야, 있잖아.
"크리스마스에 좋은 추억 만들게 나 좀 도와달라 이거야."
"......"
"거절할 생각 말고 예쁘게 입고 나와야 된다. 다시 문자 보낼 테니까 이제 교실 들어가, 춥겠다."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야. 내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는 거야?
선배 입꼬리가 올라간 것 같은데 이거 말하면...... 석진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무심코 쳐다본 창문 밖 풍경에는,
곧 크리스마스가 올 거라는 것을 반기기라도 하는 듯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 2, 장난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정함의 끝판왕인 김석진 ----
다음번 주제랑 인물 추천도 받아요~
처음쓰는데 제가 쓰면서 만족하는 기분ㅋㅋㅋㅋㅋㅋ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