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 B
나는 평범하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뛰어난 구석도 없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누구도 날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왔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 어느샌가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아침 저녁을 혼자 밥을 먹는 것도, 등교하는 것도, 심지어 가고 싶은 곳에 혼자 가는 것이 더 편할 정도로 혼자가 익숙해졌다.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내 성격도 점점 조용해지고 큰소리를 싫어하게 되고 많은 것을 가지는 것보단 나 혼자서 필요할만큼만 조금 가지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런 삶을 반복하며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늘 그렇듯이 바쁘신 부모님은 내 입학식에 오시지 않았다.
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약간 허전함을 느낄 뿐 부모님께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입고있는 이 교복도, 신발도, 학교에 내는 학비도 모두 부모님이 나와 있는 시간을 버려가면서 얻은 결과니까.
오늘 아침 엄마가 나에게 전화로 입학식에 가지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혼자서도 잘한다고 대답했다. 그게 사실이니까.
나는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도 조용한 성격 탓에 초반에 반 친구들과 친해질 타이밍을 놓쳐 정말 친한 친구는 없고 대화만 하는 정도의 친구들만 있었다. 그 결과로는 친구들과 놀 시간에 나는 공부를 했고 결과도 좋게 따랐다. 주위 애들은 애석하게도 날 재수없다고 얘기했고, 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괜히 큰소리 내기 싫어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는 3년간의 공부의 결과로 꽤나 이름있는 사립 고등학교로 입학하게 되었고 나와 같은 중학교를 다닌 아이들과는 모두 헤어지게 되었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입학식이 시작하고 사립 고등학교여서 그런지 대부분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 나와 비슷해 보여서.
식이 진행되고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아이들의 집중이 흐트러지는게 눈에 보였다.
내 양 옆에는 남자 아이들이 앉아있었는데 둘 다 폰을 하고 있었다. 여간 지루한게 아니었나 보다.
오른쪽 아이는 검은 머리에 큰 눈을 가지고 있었고, 콧대도 있어보였다.
왼쪽 아이는 어두운 갈색 머리에 예쁘장한, 딱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나도 여자인지라 나도 모르게 왼쪽 아이를 힐끔 힐끔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런 내가 신경쓰였는지 갑자기 그 아이가 나와 얼굴을 마주했다.
" 너 나한테 할 말있어? "
매우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입꼬리를 올릴락 말락한 표정을 짓고서 내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가 눈을 크게 뜨고 할 말을 찾고 있는데 그 아이가 다시 말했다.
" 응? 왜 쳐다봤냐니까. "
" 어.. 미안. 신경쓰였어? "
얼른 대답해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말 할 때까지 캐물을 거 같아 얼른 답을 했다.
" 신경쓰이지 그럼. "
" 미ㅇ.. "
" 너처럼 생긴 애가 자꾸 쳐다보면 떨리잖아. "
" 어? "
" 장난이야, 뭘 그렇게 놀라. 너 진짜 나한테 관심있어? "
" 아니거든? "
" 아니면 아닌 거지 엄청 튕기네. "
그 아이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와 대화했다.
만난 지 10분도 안 됐는데 편해진 느낌이다. 이 아이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나와는 너무 달라서.
한 20분 쯤 입학식을 진행할 동안 그 왼쪽 아이와 대화한 결과, 그 아이의 이름은 김태형이고 성격이 매우 밝은 거 같았다. 호기심도 많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듣고 대화가 끊기지 않게 이어나가는 배려심이 있었다. 그리고 태형이가 내 옆반에 배정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옆반에 배정되었다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반이었으면 더 좋았을테지만.
태형이와 입학식이 마무리 될 때까지 수다를 떨었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과 열심히 대화하고 재밌은 적은 실로 오랜만인 거 같았다. 앞으로도 이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아이가 생겼다.
입학식이 끝나고 안 사실인데,
태형이와 내 오른쪽에 앉은 아이는 친구였나보다.
끝나자 마자 내 오른쪽 아이는 태형이에게 다가갔고 나는 아직 친해지지 않은 그 아이와 태형이 사이에 낄 방법을 찾지 못해 태형이를 콕콕 찌르고 손 인사를 하고 뒤 돌아 배정 받은 반으로 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 때 태형이는 내 양 어깨를 손으로 턱 잡더니 날 돌려세웠다.
" 너 반 가는 거지? "
" 응.."
" 그럼 우리랑 같이 가자, 어차피 나랑 옆반이라며. "
" 아.. 아니야, 옆에 친구도 있는데.. "
" 불편해서 그런가? 그럼 친해지면 되지! 얘는 전정국이고. 야, 얘는 성이름. 나랑 아까 친해짐, 둘이 인사해! "
" ..안녕? "
" 어. "
그 아이의 이름은 전정국이라고 했다. 태형이는 전정국과 나를 인사 시키고는 " 이제 친해진 거지? " 라며 좋아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웃는게 딱 예전에 우리 옆집 살던 꼬마아이 같았다. 그에 반해 전정국은 정말 차분하고 또 조용했다. 나와 비슷했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둘의 온도 차가 엄청 난데 어떻게 친해졌는지 신기했다. 다음에 이 아이들과 친해지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같이 반으로 걸었다.
" 야, 전정국. 너 몇반이더라? "
" 7반, 저번에 말했는데 또 까먹었냐. 하여튼 김태형. "
" 뭐, 내가 뭐. 까먹을 수도 있지. "
" 멍청이. "
" 아, 어쩌라고! "
태형이는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듣고는 전정국에게 열심히 따졌고 옆에서 열심히 따지는 태형이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전정국을 보곤 속으로 ' 아, 저렇게 노는구나. ' 하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편한 사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 어? 근데 이름이 7반인데, 둘이 같이 다니면 되겠다! "
" ... "
" ... "
그 말을 들은 전정국과 나는 허공에서 해맑게 웃는 태형이를 사이에 둔 채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