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이 말은, 내가 그랬단 말이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어제의 일을 기억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도 그러하고, 그 목소리로 읊는 말들도 그러하고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인 뭐, 애인 대행 서비스라고 그랬던가. 그러니까 그게 내가 아는 그것이 맞다면 요즘 티비고 어디고 말 많은 그런 것이 아니던가. 머리가 핑핑 돌고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 골까지 울리는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건너편에선 느긋하게 다시 말이 이어진다.
- 그러니까 이것도 참 귀찮은 일인데 말이죠.
"아, 네…… 그러시구나……."
- 일단 그 쪽이 입금은 제대로 해 주셨으니까 저도 이렇게까지 해 주는 거거든요.
아아, 내가 입금을 했구나. 당신은 참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람이에요! 가 아니고 무슨 입금을 해. 내가 어제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순간적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숙취가 달아나는 것 같았다. 내가 말을 더듬으며 입, 입금이요? 하고 물으니 한숨이 돌아온다. 혹시 기억 못 하시는 건 아니죠? 술 마신 것 같기는 했는데. 그리고 그렇게 다시 알 수 없는 대답도 덧붙여졌다. 그래 내가 어제 술을 마시기는 했어요, 그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이거예요. 근데 내가 무슨 입금을 하고 당신은 누구시고, 애인 대행은 또 무슨 말이냐구요. 역시 술이 문제라더니 이걸 정말 그만 마시든지 인간 관계를 끊던지 휴대폰을 끊든지 해야겠네.
그러니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내가 어제 술에 꼴아가지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그게 애인 대행 서비스였고, 내가 어떤 말을 짖었는진 모르겠지만 그게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나는 입금을 했다 이거잖아. 김탄소, 너 진짜 미쳤구나. 나 또한 한숨을 쉬면서 꼬여버린 상황에 대해 한탄을 했다. 기억 안 나는 게 제일 무서운 일이라니까. 그래도 뭐 장기매매 이런 곳에 전화 안 한 게 어디야. 위안 아닌 위안을 하면서 환불 요청을 위해 이 모든 일을 취소하자는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상대편이 무서운 타이밍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들려오는 말은 역시 어마무시했다.
- 아, 참고로 환불은 불가능합니다. 이게 한 번 입금이 되면 저희 돈이거든요.
"뭐야, 그런 게 어딨어요? 환불 안 해 주시면 신고할 거예요."
- 하셔도 별 도움은 안 될 걸요. 저희가 괜히 장사하는 줄 아시나본데요.
"미친…… 그래서 제가 얼마를 입금 했는데요?"
님이 지금 한 달을 신청하셨거든요. 근데 일단 제가 전화를 받은 걸 운 좋게 생각하셔야 돼요. 요즘 이렇게 돈 받는 사람 또 없다니까요. 보통 세 시간에 12만 원 이렇게 받는 건데, 이것저것 사정 봐드리고 애잔하기도 했고. 일단 제가 이 사람, 저 사람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나는 건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싸게 해드린 것도 있어요. 본인도 싸다고 엄청 좋아하면서 쾌속으로 입금 했던데. 아아, 아무튼 총합 깔끔하게 400 입금 했네요, 그죠. 기억 안 난다고 내빼도 이거 환불 안 돼요. 아니 씨발 말 많이 하는 거 제 적성 아닌데 이렇게까지 설명도 해 주고.
줄줄 들려오는 말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아온 가격 직격타에 나는 다시 침대로 풀썩 쓰러졌다. 숙취고 뭐고 슬슬 제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기는 했다.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으니까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와, 통장에 있는 전 재산이 다 넘어갔네. 아이고 텅장 님, 그냥 저와 함께 죽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 죽자! 죽으면 생각도 안 해도 되잖아. 모든 일이 다 편해질 거 아니야. 복세편살. 저는 이대로 영원히 잠들겠습니다. 온갖 개소리를 머릿속으로 중얼중얼 늘어놓으며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나는 통화 종료를 조용히 눌렀다. 나는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테야……. 마지막 가는 길은 독사과를 먹은 백설공주처럼…….
그리고 통화가 끊기기 무섭게 지랄 맞게도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다. 한 번 가볍게 무시하니 다시 띵동. 두 번 부드럽게 무시하니 띵동, 띵동. 헛웃음을 지으며 실성한 사람처럼 껄껄 웃고 있는데 이제 쿵쿵쿵 난리도 아니다. 멈출 줄 모르는 우리 집에 대한 구애에 결국 발소리를 부러 크게 내면서 현관으로 씩씩거리며 걸어갔다.
"아, 누구세!!!!! ……요?"
"네 남자친구세요."
그리고 그 뻔뻔한 목소리는 참 이상하게도 통화 속의 그 남자와 참 많이도 닮았다는 것이다. 저는 그쪽 처음 보는데요. 집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문을 다시 닫으려는 순간, 나보다 더 고운 손이 문을 턱 잡아왔다. 제발 영업 방해 좀 하지 말아 주세요, 김탄소씨. 이거 다 먹고 살자고 열심히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님도 돈 아깝잖아요. 저 들어갑니다. 더 들으니 확신이 생겼다. 그 남자다, 그 남자야. 내가 벙찐 와중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쏙 들어온 그는 겉옷을 벗어 소파에 잘 올려두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자리에 앉는 그를 보면서 나는 지난 날의 나새끼를 죽이고 싶단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래, 솔직하게 모든 일을 말하자면 나는 어제 밤 술을 마시자고 애들에게 울음 섞인 목소리로 빽 소리를 지르기 전에 잘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에게 차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애인 대행 서비스고 뭐고 그런 좆같은 곳에 전화를 걸었으리라. 아…… 눈 뜨고 삥 뜯긴 기분이다. 삥은 원래 눈 뜨고 뜯기는 건가, 아무튼.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현관문을 닫았다. 그의 개쌍마이웨이 멘탈을 보면서 나는 반대로 기가 빨리는 것 같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상태로 서서 그를 계속 쳐다보니 시선이 느껴졌는지 한참 후에야 눈을 슬며시 뜨고 어깨를 한 번 으쓱 올리는 그.
"마침 문 열어 달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매정하게 전화를 끊더라고."
"아니 왜 반말이세요……."
"몰랐어 김탄소? 내가 너보다 나이 더 많아. 근데 와, 오늘 날씨 진짜 춥더라."
원래 영업의 시작은 다 그런 거지. 특히 나는 서비스직이니까 처음이라고 예의 좀 차려봤어. 에이, 요즘 누가 연인 사이에 존댓말을 쓰고 그러냐, 어제 그렇게 네 정보고 뭐고 다 알려 줬으면 끝난 거지. 근데 넌 진짜 술 마시지 말아라. 따지고 보면 나도 초면이었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 수도 있었는데 뭘 믿고 그랬던 거야? 그렇게 덜컥 돈 보내고 주소 불고 그러면 진짜 큰일난다, 너. 진짜 남자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이제는 잔소리까지 늘어놓는 그의 모습이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보살이 되고 싶었던 욕망이 내면 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리고 지금 밖에 날씨가 춥든지 덥든지 제가 무슨 상관이 있답니까. 아, 그냥 다 꺼졌으면 좋겠다. 아니 뭐 대행으로 해 줄 거면 내 전 남자친구 성격이고 뭐고 그런 거라도 들어서 비슷한 척 행새라도 하든가. 이건 뭐 소개팅도 아니고 내가 대신 대행해 주는 기분이네. 잘 가라 내 돈, 내 멘탈, 내 시간. 마른 세수를 하며 이 상황을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데 손을 내리니 그가 바로 내 앞에 서있었다. 이게 뭐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어버버 몸을 뒤로 빼는데 허리를 살짝 숙여 나와 시선을 맞춘 그가 코앞에서 말했다.
"내 이름은 민윤기."
앞으로 한 달동안 보기 싫어도 징하게 볼 사이인데 우리 정 좀 붙이자고, 알겠지? 그의 말에 반 정도 포기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정 붙일 생각이기는 했지만 이건 정말 뭐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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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받습니다 :-]
여러분 오랜만이애오. 사실 제가 좀 게으름 좀 피었어오.
그래도 아프로 자주 오깨오, 용서해 주새오.
조직물을 쓸까 하다가 사실 그랬다간 진짜 감당 못 할 것 같아서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깔깔
지금까지 쓰던, 그러니까 아직 완결이 안 났거나 도입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 한 시리즈들은 연재를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일단 가볍게 뭔가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이거는 모두 핑계로 들리겠지만 예 약간의 슬럼프라고 해둘게요
이 작품 역시 단편입니다 아주 금방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될 예정이라 완결도 금방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연재 텀은 장담은 못 하지만 최대한 자주 짧게 올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이런 작가를 욕하셔도 좋아요 ^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