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추위를 무지막지하게 잘 탄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호석이도 알고 있다는 건데...
평소에는 걸어다닐 때 빼고는 날 배려해서 겨울에는 카페 같은 실내에서 많이 만났는데 오늘은 꼭 밖에 있어야 한다고 우기는 중이다.
물론 나는 안에 있고 싶다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는 중이긴 하지만...
"자기야 내가 오늘은! 진짜 오늘은 양보가 어렵다!"
이렇게 내게 희망을 주지 않는 호석이를 어찌 하면 좋담. 날 너무나도 배려해 주는 호석이인 걸 알기에 오늘 하루 정도는 나도 양보를...
하고 싶지만 인간적으로 다른 날도 아니고 왜 하필! 왜 오늘이냐고! 이렇게 추운데!
"호석아 내일은? 내일도 있고! 아니면 앞으로 우리가 만날 날이 얼마나 많은데!"
"아 물론 많기는 한데~ 나는 꼭 오늘이어야 한다니까?"
"아니 그러게 왜 오늘이냐고...... 오늘 완전 춥다 그랬단 말이야."
"자기 추우면 나한테 안기면 되지. 사실 그걸 노렸, 아 장난이야 장난! 일단 좀 걸을까?"
저렇게 해맑게 말하는데 거기에 대고 어떻게 눈을 흘기겠어... 졌다는 식으로 호석이가 건넨 손을 꼭 잡고는 그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무래도 겨울은 연인들이 붙어 있기에 최고의 계절이구나 싶다. 여기 거리만 해도 커플들이 몇 쌍인지......
근데 하늘이 하얀 게 꼭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기분이다. 겨울이긴 해도 아직 남았는데, 괜히 설레고 그러네.
"춥긴 해도 걸으니까 좋네..."
"좋지, 그치? 역시 내 선택이 탁월했어. 그래도 다음부터는 지금보다 더 안 춥게 해 줄게."
"지금보다 더 안 추우면 그게 겨울이야?"
"내가 진짜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다니까?"
니 말만 들어도 따뜻하네요.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말에 웃어 보이고는 그의 어깨에 살짝 기대어 걸었다.
호석이는 앞을 보다 나를 보다, 가끔 하늘도 쳐다보는 등 눈을 바쁘게 움직였다. 걸으면서 보인 길거리는 가게에 트리가 있기도 했고
눈결정 장식, 선물상자 등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겨울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근데 자기야."
"으응."
얼굴이 시려워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걷다 호석이의 부름에 고개를 들어 보였다. 얘도 얼굴 빨개졌네, 추우면서.
"왜?"
"내가 왜 오늘 밖에서 걷자고 한지 알아?"
"추우면 너한테 안기라고 그런 거 아니야?"
"아니 물론 그것도 맞지만~"
말을 더 잇지 않고 웃던 호석이는 내 양볼을 제 손으로 감싸쥐고는 위를 가리켰다. ...... 설마.
커진 눈으로 그가 가리킨 하늘을 쳐다보았다.
"첫눈 같이 맞았어, 우리."
첫눈이었다.
"맞다 탄소야, 오늘 첫눈 온다?"
"... 내가 첫눈을 너랑 맞아야 한다는 거니."
"와, 그 반응 뭐야? 싫어? 어? 야 싫냐?"
아니 장난이지. 이미 상처를 받은 듯한 눈빛의 박지민한테 미안하다고 심심한 사과를 건넸다. 놀리는 거 하여튼 재밌다니까.
귀엽게 생겨서는 목소리도 귀엽고 키도... 운동 잘하는 거 보면 반전이기는 한데 그래도 멀었어. 이렇게 말할 때면 박지민은,
"너 또 방금 나 귀엽다고 생각했지, 아니라고 했다."
최소 독심술사.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근데 작년에도 첫눈을 박지민이랑 맞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민아. 너 작년 첫눈도 나랑 맞지 않았어?"
"응, 어 기억하네? 너 그럼 내가 그때 했던 말도 기억해?"
"... 아니 그것까지는."
그럴 줄 알았어, 꼭 저렇게 하나씩 까먹어요. 기억력이 안 좋은 나를 많이 챙겨 주기도 하고 나에 대해 워낙 잘 알고 있어서인가.
궁금해서 뭐라 했냐고 물어봤더니 이따 정말로 첫눈이 오면 말해 준단다. 만약에 안 오면 못 듣는다는 거잖아. 눈님 꼭 내려 주세요.
아무튼, 따뜻한 게 마시고 싶어서 들어온 카페인데 나도 모르게 아이스 카푸치노를 시켜 커피는 반도 안 줄어든 상태였다.
"감기 걸리고 싶구만 아주."
"아 버릇 들어서 그렇거든? 어 야 지민아 눈 온다 눈~"
지민이가 잔소리를 못 하게 막 가리키면서 말했는데, 창문을 쳐다보니 정말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인연이야...
"너 눈 오면 말해 준다고 했지? 너 말하라고 지금 눈 내리는 거네. 얼른 말해 봐."
"하여튼 김탄소 성격 급해......"
"네 저 성격 급하니까 얼른 말해 주시죠?"
제가 시킨 컵을 만지작거리던 박지민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꼭 깨물고는 다시 웃었다.
"내가 작년에는 겁쟁이라 내년 첫눈에 말한다고 했었거든? 아 진짜 1년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야. 오늘은 너 싫어."
"... 뭐? 내가 싫어?"
"내년 첫눈은 친구로 맞지 말자. 좋아해. 솔직히 나 티 엄청 많이 냈거든?"
나도 모르게 차가운 카푸치노를 입에 머금고는 그제서야 머리가 띵해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건 차가워서 오는 느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지민이가 날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던 건 아니지만 부정해 왔었다. 친구 사이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친구지, 친구인데 내가 감정 조절이 안 돼서 그 선을 넘었고... 좋아한다고, 가시나야."
"... 한 번만, 야 한 번만 더 말해 봐."
"탄소야, 사귀어 줄래? 아니 사귀자."
분량 조절에 크게 실패한 이느낌은 뭐죠
오늘은 삘받으면 두편도 쓸생각이에요 ㅎㅎ 근데 소재없음.... 다들 읽어주셔서 사랑해요
그리고 제목이 양자택일이지만 하나를 고를수없는 건 저도 마찬가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