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의 저글링 02 |
너의 웃음은 그 무엇보다 빛나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조금이나마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던 그때부터 내 곁에 항상 있었던 너는, 언제나 내게 곁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모든 즐거움을 선사했으며 나는 하루하루 너에게서 선물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기뻤다, 너의 존재가. 정확히는 내 곁에 있어주었던 너의 존재가. 그 어린 시절부터 지독할만큼 함께였다는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네가 전부였듯이 너 역시 내가 전부일 줄 알았던 그 착각은 후에 모든 것을 뒤바꿨으며 지금 너는 무지의 상태로 살아가며, 나는 홀로 기억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에겐 서로뿐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마술사의 저글링 written by. B&D
02
“다녀왔습니다.” “벌써 마쳤니?” “아, 저, 그냥 머리 아파서 일찍 왔어요.”
점심시간부터 시작된 찝찝함은 하루종일 곁을 맴돌며 경수를 재촉했다. 떠올려, 기억해. 경수는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소리없는 외침에 오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결국 보충 수업부터는 두통이 심하다는 핑계로 조퇴까지 해버렸다. 반을 나가기 전 둘러 본 교실에는 커다란 무리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전학생은 엄청난 친화력으로 벌써부터 바글바글한 무리 사이에서 같이 농담을 주고 받는 반의 구성원으로 완벽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경수는 더 심해지는 강박증 수준의 조급함에 서둘러 발을 뗐다.
보통 시간보다 일찍 하교한 경수는 엄마의 물음에 거짓말을 해버렸다. 경수의 엄마는 약이라도 챙겨먹고 일찍 자라며 난리였지만 경수는 서둘러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차분한 블루톤으로 꾸며진 방의 한쪽 귀퉁이에는 아이보리색의 책장이 놓여져있었다. 경수는 아무렇게나 가방을 벗어두고 빽빽한 책장을 뒤졌다. 심장의 박동 하나하나가 귓가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경수는 아무래도 제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가장 아래칸에 숨겨져있던 빛 바랜 갈색 졸업앨범을 찾았을 때 경수는 귓가에 생생했던 심장 박동을 뒤로하고 졸업날의 설레임을 회상했다. 금박으로 적혀진 모교의 이름이 간질했다. 빨리 그 친구를 찾으려 앨범을 펼치는 순간 경수는 전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경수는 고개를 잔뜩 도리질을 치고는 앨범을 넘겼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가득한 추억에 잔뜩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 장까지 다 보고 난 후 앨범을 닫으려던 순간 경수는 허전함을 느꼈다. 자신이 찾으려 조퇴까지 했던 그 친구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경수는 다시 방을 나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나 잡채 있으면 편식 안했잖아요. 그거 중학생 때 생긴 버릇 맞죠?” “그렇지. 그래서 콩밥이랑 같이 밥 차리곤 했잖니.”
경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앨범을 뒤적였다. 자신에게 그런 영향을 끼칠 만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은 사진은 존재하지 않았다. 경수는 또다시 기시감에 휩싸였다. 허언증이라도 걸린 마냥 멋대로 기억을 지어낸듯한 기분이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듯한 느낌은 별로 좋지 않았다. 허무하게 모교의 이름을 응시했다. D 중학교. 그리고 A 중학교. 경수는 머릿속에 침입한 무언가에 깜짝 놀라 앨범을 떨어트렸다. 큰 소리에 놀란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경수야, 무슨 일 있니?” “엄마. 혹시 A 중이라고 알아요?” “…글쎄. 들어본 적 없구나.” “나 전학이라던지 이런거….” “머리가 많이 아픈가보구나. 얼른 약 먹고 일찍 자.”
경수는 의심이 가득 올라왔다. A 중학교. 전학. 그리고 엄마. 입을 막아버리려는듯 서두르던 엄마의 불편한 모습이 아른거렸다. 경수는 문고리를 잡은 엄마의 등에 물었다.
“초등학교 앨범은 어디있어요?” “…약 가져다 줄테니까 누워있어.” “어디있냐구요.” “네 물건은 네가 챙겨야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나 초등학교 어디 나왔는데요?” “도경수!” “나 왜 전부 기억이 없는건데요!”
경수는 처음으로 부모에게 소리를 쳤다. 항상 웃던 모습이 아닌 잔뜩 화가 난 모습이었다. 경수의 불안한 시선과 마주한 엄마의 시선은 두려움에 가득차있었다.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체 무얼? 그런 시선을 마주하는 경수의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어제까지만해도 평화롭던 시간들이었다. 전학생이 온 오늘부터 경수의 시간은 갑작스럽게 뒤틀리고 있었다.
경수는 이틀의 시간동안 겪었던 일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여태 관련없던 일이라 신경쓰지 않았던 기억들이었다. 멍청하게 고개를 돌려 옆분단에 앉은 전학생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전학생의 파급력은 너무나도 컸다. 교실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과 경수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것이었다. 전학생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전학생이 오고 난 뒤부터 갑자기 터진 사건들이 의심스러웠다. 수업이 마치는 종이 울리고 전학생은 왼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놓았다. 아이들은 부리나케 식당으로 뛰어갔다. 경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학생은 그때까지도 자리에 앉아있었다. 교실에 남은 것은 전학생뿐이었다.
경수는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몇 숟갈 떠먹고 있자 맞은편의 빈 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전학생이었다. 이번에도 경수의 수저는 멈추었지만 전학생은 능청스럽게 오른손에 수저를 쥐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전학생의 수저질은 어설펐다. 경수 역시 이번에는 마저 밥을 먹었다. 둘은 암묵적으로 함께 식사를 했으며 둘은 비슷한 속도로 식사를 마쳤다. 자연스럽게 식당을 나서는 것도 함께였다. 식당을 나오고 건물로 다시 들어가는 길을 걷는 동안 경수의 뒤에는 백현이 따라가고 있었다. 경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늦게 먹는 경수 덕에 점심시간을 끝을 달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교실로 들어간지 오래라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백현은 경수를 마주했다.
“왜.”
경수는 밥을 먹는동안 줄곧 묻고 싶었다.
“너 중학교 어디 나왔어?” “그건 왜?” “그냥.” “여기서 좀 멀어. 모를거야, 넌.”
백현의 표정은 담담했다. 경수는 그 담담함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숨이 막혀왔다. 그런 경수를 눈치챘는지 백현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A 중학교 졸업했어.”
경수의 시선이 더욱 떨렸다. 경수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한 번 더 물었다.
“너.” “응.” “너 나 알아?”
경수는 긴장했고 백현의 눈빛 역시 달라졌다. 예비종이 울렸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학생들이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빨랐다.
“알지.” “…….” “2학년 6반 16번 도경수.”
우습게도 백현은 현재의 경수를 얘기했다. 긴장했던게 민망할만큼 백현은 개구진 웃음을 짓고 있었다. 허탈함에 경수의 어깨가 축 처졌다. 경수는 백현에게서 뒤돌아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경수의 뒤엔 백현이 있었다. 근데. 백현의 진지한 목소리에 경수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백현은 경수를 무심하게 바라보면서도 진지한 눈빛이었다.
“내가 진짜로 알고 있으면 어쩔건데?”
수업종이 울렸고 그들은 여전히 그곳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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