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희- 아빠 오랜만에 보는건데 이럴꺼야? 아빠 싫어?'
'난 엄마가 조은데 아빠는 엄마를 시러해. 그럼 나도 아빠시러해!'
제 아빠가 싫다고 앙칼지게 말할때는 언제고
장난감세트에 사라졌던 애정도 샘솟았는지 세훈에게 폭풍 애교를 보이며
밥투정도 않고, 울지도 않고 6시간을 노는게 4살또래 남자애 다웠다.
제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있는 준희의 어깨를 토닥이던 세훈이
멀찍이 떨어져있던 휴대폰을 끌어와 준면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세훈과 저 사이 일에 준희는 끼우지말자고 한건 준면 본인이 아니었던가.
그래놓고 대체 애 앞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길래... 세훈은 생각할 수록 기가막혔다.
택시에서 튕기듯이 내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준희에게 아무일도 없기를- 하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준면의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이었다.
17층에 도착해서 도어락에 준희의 생일을 입력하면서도
눈앞에 준희의 사고가 펼쳐져있으면 나는 어떻게해야하나, 를 고민했지만
준면의 상상과는 다르게 거실엔 아무도 없었고 고요하기만 했다.
오세훈과 그의 아들 오준희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걸 봐선 나가진않았을테고.
자연스레 안방으로 걸음이 옮겨지고, 문을 열었을 때
준면은 어이없는 상황에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준희는 엄마닮아서 좋다던 토끼인형을,
세훈은 분신처럼 자신과 똑닮은 그런 준희를 끌어안고 단잠에 빠져있었다.
이 평온함을 무어라 해야할까.
준면은 주저앉은채로 감사합니다-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준면이 이토록 혼비백산해서 달려온 이유는 다 세훈의 문자에서 비롯됐다.
[준희 울고난리야. 집으로와]
놀란 마음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돌아오는건 꺼져있다는 여자의 기계적인 음성뿐이었다.
그 순간부터 차키가 어디있는지, 신발은 제대로 신었는지 확인할 틈도없이
지갑과 휴대폰만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탔고,
세훈의 집으로 날아오다시피 했다.
지버릇 개못준다는 옛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연애할때도 세훈은 준면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앞뒤 다 잘라먹고 근심 가득하게 만들 문자만 보내고 잠수타기.
너무 오래되서 잊었던건가, 하는 생각에 짜증이 난 준면이
살금살금 걸어가 준희 머리맡에 깔려있던 세훈의 팔을 조심스럽게 빼내고 베개를 대신 넣어준 후
세훈의 어깨를 톡톡 쳤다.
"오세훈 일어나"
"......금방왔네."
"준희 깰거같으니까 따라나와"
준희와 놀아주느라 피곤하긴했는지 잠시 잔걸텐데도 세훈은 영 잠에서 빠져나오질못했다.
그런 세훈을 지켜보는 준면의 표정은 점점 더 구겨져만갔고.
"니가 아직도 철없는 대학생이야? 애 아빠라는 사람이 애기 일로 꼭 장난을 쳐야겠어?
난 전화도 안받고 무슨 일 있는줄 알고 얼마나..."
"안그랬으면 니 발로 이 집에 들어올일은 없었겠지.
애한테 별소리를 다했던데, 연애하니까 내 욕이 절로나오나보다"
"비꼬지말고 똑바로말해. 준희가 뭐라고했어?"
"나는 엄마가 좋은데 아빠는 엄마를 싫어해. 그럼 나도 아빠 싫어해"
준희의 말을 따라하는 세훈의 굳은 음성에 거실공기가 얼어붙었다.
세훈이 어디 해명이라도 해보라는듯 눈빛을 쏘아댔으나 준면은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말도 꺼내지않았다.
"애한테 상처주기 싫다고, 우리 일은 우리끼리 해결하자고 하던건 너야.
똑바로 얘기안하면 준희 못보내줘. 말해 김준면"
준희를 보내주지 않겠다는 세훈의 말에 준면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저께 너 집으로 불렀을때 바쁘다고 안왔잖아.
준희가 아빠는 엄마생일인데 왜 안오냐고. 미워해서, 싫어해서 안오는거냐고.
아니라고 달래도 계속 울면서 그런거라잖아.
다른 집 엄마아빠는 매일매일 같이 산다고.
어려서 그런지 말해줘서 못알아듣는 눈치야. 기대한 내가 이기적인 엄마지만"
아. 세훈이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준면은 친부모님을 찾게되서 진짜 생일을 알았음에도 세훈과는 항상 보육원에서 붙여준 생일을 챙겼다.
5월의 김준면 보다는 9월의 김준면으로 살아온 세월이 많아 낯선 탓이었다.
잠시 헤어졌을 때도 이 날은 잊지않고 챙겨줬고, 이혼후에도 역시 한번도 빼먹지 않은 날이었다.
거리의 인파에 떠밀려 부모를 잃은 날인데 그날까지 혼자로 두고싶진 않았기에.
"너 분명 신경쓸까봐 얘기안할려고 했는데. 아빠보러간다고 좋아하길래
금방 다 잊은줄 알고있었어. 그래서 문자보낸거야?
"종인이가 구해준 장난감 내미니까 바로 먹히던데. 아. 진짜 미안하다. 바빠서 날짜감각이고 뭐고 없었어"
"이제 부모님도 계시고 준희도 있으니깐. 그리고 이혼하고도 2년이나 챙겨줬으면 너 할만큼한거야"
왜 잊었을까. 어떻게 잊었을까.
너무 당연해서 잊은걸까, 아니면 진짜 준면과의 사이가 멀어져버렸다는 이야기일까.
미안할 짓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미안해야 할 일이 다 남아있다는 생각에
세훈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준면의 감정없는 표정이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퓨즈가 나갔어잠시. 전산망 마비로 난리나서 중국에서 레이한테 다 떠넘기고 몸만 넘어온거라."
"그랬구나...준희 몇시간잤어? 데리고갈께"
"한시간 안됐는데 그냥둬. 안그래도 외식하자고 노래를 불러서 저녁때 너 나오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두시간만 집에 좀 있어. 일때문에 잠깐 나가봐야겠다"
"......"
"침대, 바꿨는데 너도 좀 누워있던가.
7시까지 기사님 보낼께"
잠시후 간단히 옷을 갈아입은 세훈이 차키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준면은 그제서야 3년만에 들어와본 집을 둘러봤다.
끄아아아아악 |
첫글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무려 첫글이 세준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재미없는 글 끝까지 보느라 수고하셨어요. 다음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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