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았을까. 12월 12일 오늘이, "네? 제가요?" "솔직히 나다 씨 말고 이거 할 사람이 없어서.." "와... 지금 당장 갈게요." 평소에 지랄맞은 최승철 부편집장이 나한테 사근사근 인터뷰 부탁을 하는 그런 그리고 나한테 기자의 꿈을 만들어준 연예인 3개월 밀착 다큐 인터뷰 담당자가 나라는 그런 황홀한 말을 해준 "그렇게 빨리 안가도 되는데.. 내일도 있고 시간은 많아!! 그러니까 그렇게 빨리.." "가나다 다녀오겠습니다!!!" "안가는게 좋을.. 텐데.." 최고의 날이자. 바로 연락을 하고 찾아간 그 연예인의 집 문이 열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인사를 건넸을 때, "안녕하세요 권순영씨!! 플디 잡지사에서 나온 신입 기자 가나다 라고 합니다!!" "씨발, 안 사요." 쾅- "에..?"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대우를 받은 최악의 날이 될 줄이라고는.
-쫓겨났다고?-
"네... 인사만 했는데.."
-이상하네 분명히 매니저한테 연락이 갔는데. 조금만 기다려.-
뚝-
"씨잉.. 최승철 개새끼.. 부편 개새끼.."
깡!
뚝 끊긴 전화기를 들고 멍하니 서있다보니 괜히 울컥한 마음에 옆에있던 소화전을 쾅 찼다.
아야... 물론 제 발이 과학적으로 강도가 훨씬 약했기 때문에 금방 발가락을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그렇게 3분을 뻘짓을 하며 기다렸을까.
라면 하나 먹고도 남았겠다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는데 꼭꼭 닫혀있던 문이 다시 벌컥 열렸다.
퍽
"악!!!!"
"어?? 뭐야. 왜 거기 있어요. 바보 아니야? 기자님이라며? 얼른 들어와요."
...저 개샊...
욱씬거리는 이마를 문지르며 다시 안으로 후다닥 들어가버린 순영의 뒤를 따랐다.
"앉아요.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네네..."
"기자님? 그거 사원증 같은거 없나?"
"있어요. 여기. 켁."
순영의 레이더 속 소파에 앉아 목에 걸려있던 사원증을 보여주니 그냥 잡아당긴다.
이리저리 보석 감별을 하듯 훑어보더니 이내 툭 던져버린다.
"되게.. 생긴게 개성있네."
"아하.. 네 칭찬으로 들을게요. 하하."
"칭찬인데?"
퍽이나. 지금 당장이라도 샐샐 웃으며 말하는 면상에 엿을 날리고 싶었지만 그러려니 허허 웃었다.
제 앞에서 하얀 나시에 오부 츄리닝 바지를 입고 서있는 남자는 권순영.
아역 배우로 시작해서 앨범을 내기만 하면 차트 1위를 달리는 가수까지 발을 넓혔다가 지금은 35
살에 그냥 만능 탑스타다.
그리고 내가 기자의 꿈을 가지게 한.. 첫 연예인이었는데.
솔직히 지금 다 때려치고 싶다.
"어 형. 아 그때 그거야?"
굳이 '그거'에 악센트를 두면서 나를 쳐다보는 이유가 뭘까.
분명히 오기전까지 핸드폰으로 사진을 핥을 때는 존나 잘생긴 남자였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사람 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뭐하면 돼?"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면 심장에 안 좋은, 잘생긴 사람인건 여전하다.
코 앞까지 들이댄 순영의 얼굴로부터 뒤로 서서히 물러난 뒤 크로스 백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에 순영은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밀착 다큐 인터뷰라는데 이게 이번에 잡지 새 섹션이라.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일단 인터뷰 같이 막 하면 되는건가?"
"그렇게 물 끼얹듯이 하는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요... 아니 잠깐 언제 봤다고 반말을."
"싫으면 나다씨도 해."
아니 제가 댁보다 나이가 적은 건 맞아서요.
그냥 도박 하듯이 반말을 하지도 못하고 그냥 애꿏은 손가락만 꾹꾹 씹었다.
"이갈이해? 이가 막 간지러워?"
"에? 아니요. 그냥 습관인데요."
"거참 습관 한 번 개같네."
"네??"
"강아지 같다고. 귀엽네."
저 시베리안 허스키가. 잡지사 기자라고 문학 그딴거랑 아예 관계 없어보이냐.
아... 자꾸 보니까 최승철 같아.... 부편 개새끼......
나보다 괜히 10살이나 많은데 잘 생긴게 아니었구나.
싸가지도 10배로 없었어.
"아직 상사님한테선 연락이 안 왔나봐?"
"네."
"흐음... 그럼 난 일단 아침, 아니 브런치 좀 먹을게. 방금 일어났거든."
지금이 3신데.... 나다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순영을 바라보았다.
약간 긴 듯한 갈색 머리를 슥슥 뒤로 넘기던 순영은 얇은 고무줄로 앞머리를 묶기 시작했다.
사.. 사과머리!? 저 나이에? 저게 어울려?!!!
어울려.
존나 귀여워.
"그렇게 뚫어져라 보지마. 성희롱으로 신고한다."
"에... 씁... 네.."
"내 소파에 침은 안 흘렸으면 좋겠는데."
급하게 소매로 입을 훑었다.
아니 저건 침을 안 흘리는게 이상한 비주얼인데.
이걸 별별순영별(권순영 팬클럽) 사람들이 봤으면 미쳤을거야.
회원님들 제가 오늘 권순영 사과머리를 영접했어요.
이걸로 기사를 써도 베스트 기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꺼냈다.
식빵을 다듬으며 식빵 테두리를 우물거리고 있던 순영은 아무 소리 없는 기자님이 궁금해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헐.. 지금 이 몰골을 찍겠다고?"
"네."
찰칵-
"신고해도 돼?"
"아니요. 일단 인터뷰 하기전에 이런 사진 찍어놓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어차피 인터뷰는 오늘부터 시작이니까."
"우음... 배짱이 좋네 신입 기자라더니."
순영은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입가를 닦고 한개씩 쪽쪽 빨았다.
미쳤어. 저런 대사를 치면서 저런 행동이라니.
본능/본심 가득한 카메라 셔터 소리는 점점 빨라졌고 그 모습을 다 만든 샌드위치를 물고 계속 보고있던 순영은 한 입 베어물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나 담당 기자님 바꿔도 돼?"
"아니요."
"왜?"
"그야..."
"스탑."
질문을 하면서 걸어오던 순영은 순간 속도를 높이면서 나다의 카메라 너머로 몸을 밀착했다.
흐읍.
자동 반사적으로 나다의 숨은 정지했다.
"이런 팬서비스 받기 힘든거 알지? 사진 지워."
떨어지면서 귓가에 속삭이는 순영의 말이 왠지 모르게 오싹해서 바로 카메라를 놓치듯 내려놓았다.
입술이 하얗게 바래서 삑삑 소리를 내며 사진을 지우는 기자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순영은 다시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한장 정도는... 깽값으로 줄게. 그대신 개인 소장 알지?"
"헐. 네."
벌써 파랗게 멍이 들어가는 이마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큰 것 같다.
헤헷 이거 전국에 나만 가지고 있는거지? 헤헷.
헤실거리며 웃는 기자님을 보니 빙구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다씨 나 좋아해?"
"그럼!!!..요..."
낚시를 하듯 툭 던진 질문을 덥썩 문 나다의 눈동자는 순영의 손에 들려있던 샌드위치로 슬금슬금 도망쳤다.
재미있는게 굴러왔네.
마지막 샌드위치를 입에 물며 순영이 조용히 읇조렸다.
"인터뷰 하다가 나 막 덮치고 그러면 안돼?"
이미 눈빛으로는 그쪽이 저를 덮치다 못해 엎어치고 매치고 돌리고 있는뎁쇼...
아까 제 만행이 생각나서 고개를 푹 숙이고 범죄자 같이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그래요....."
"그래, 내 담당 기자님인데 이정도는 믿어줘야지. 앞으로 잘 부탁해."
악수를 하자는 듯 손을 내밀길래 자연스럽게 손을 딱 잡으려는데
순간 순영이 손바닥이 보이도록 뒤집었다.
"손."
"에."
"옳지."
이건 마치 핸들링 훈련 100점을 받은 강아지가 시범을 보이는 듯한...
"잘하네."
마지막으로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 것까지, 며칠 전 동물농장에서 본 한 장면과 비슷.. 아니 똑같았다.
처음 봬요.(수줍)
그냥 같이 신나게 달려봐요..!!(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