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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박지민] 불나비 10 | 인스티즈




자우림 - 전하고 싶은 말

반복재생 부탁드립니다.








불나비

10








 정말로 지키지 못할 약속일까. 그렇다고 말하면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 아닐까. 정해진 숙명이라고 하기에는 달갑게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절망에서 발버둥 쳤던 나날, 이런 것을 바라고 숨을 쉰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절망스럽게도 지키지 못할 말이래도, 저는 할 생각이었다. 말뿐인 약속, 말뿐인 다짐, 말뿐인 미래에 불과하더라도 미약한 기대감만이라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제 가슴에 그릴 꿈이 하나라도 폭풍에 버텨 남아준다면 그런 말쯤은 어렵지 않았다. 실은 아주 거대한 말이지만. 저의 존재를 넘어서는, 저의 삶을 넘어설 약속이지만. 같은 꿈을 그릴 수만 있다면, 같은 미래를 그릴 수만 있다면.


 “지민아, 우리 잠깐 바람 쐬고 올까.”

 “…좋아, 어디로 가고 싶어?”


 자선 행사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지민의 고개가 연화를 향했다. 내일이면 지민이 아니라 제이가 올 것이었다. 그래서 연화가 제 일을 제쳐두고 하는 말임을 지민은 모르지 않았다. 연화의 입에서 무슨 말이 새어 나올지 기다렸다. 연화가 가자고 하는 곳이 어디든 지민은 따를 것이었다. 연화는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이 없었다. 팔목에 채워진 시계를 한 번 바라봤다. 이번에도 지민이 채워준 것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다녀오면 몇 시쯤 되어 있을까. 장거리 운전, 지민은 피곤하지 않을까. 제가 대신 운전하겠다고 말해도 바꿔줄 리 없다.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부산. 너무 먼가?”

 “좋아요. 부산.”


 그들의 고향이었다. 기억에 제대로 남은 것은 무엇도 없지만. 다섯 시간은 걸릴 것이었다. 거기서 하루 자고 오면 되겠다. 연화가 말했다. 지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화는 옥경을 떠올렸다. 예양과 함께 고향을 다녀온 옥경, 은퇴하면 고향에서 살자던.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지민의 얼굴을 보면 저도 그 말이 하고 싶었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이기를 바라면서. 기억에 남은 것은 오직 부산이라는 두 글자뿐임에도,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정이 그러했다. 지민 역시 고향에 대해 남은 기억은 별로 없었다. 지민은 태어나서부터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했고, 열셋에는 리안화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닥쳐온 기대감만큼이나 절망감도 컸다. 연화는 이상하리만치 지민에게 많은 말을 건넸다. 지민 역시도 그런 연화의 말을 모두 들었다. 제 가슴에 새겨둘 것처럼 굴었다. 대답은 언제나 간결하지 않았다. 연화는 제 머리를 자꾸만 지민의 가슴팍에 기대어 두고 있었다. 지민은 그런 연화의 머리칼을 습관처럼 쓰다듬었다. 연화의 목소리가 마치 종이에 맞닿아 닳아가는 연필심처럼 서툴면서도 기분 좋게 들렸다. 그 누구도 당장 있을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먼 미래를 이야기했다. 우리, 우리, 우리. 그런 말로 저들을 한 데 묶어 표현했다. 고작 말뿐이었대도 그들은 소속감과 더불어 안정감을 느꼈다. 처음부터 저들의 것이었던 것처럼. 연화는 지민의 손을 잡고 걸었다. 손을 잡고 걷는 것은 둘 모두 처음이었다. 그러나 낯선 감정보다는 부드러운 감정이 먼저 솟아올랐다. 풍경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그들은 기어코 약속하고야 말았다. 새벽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하늘에 박힌 별을 눈에 담으면서. 연화가 지민의 귀에 대고 무어라 작게 속삭였다. 바닷바람이 코에 스쳤다. 지민이 잡은 연화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응, 그러자. 연화.”


 지민이 대답했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연화가 따라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굴에 미소를 띤 채였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배경음악처럼 잔잔히 섞여 있었다. 연화와 지민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보답으로 둘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기에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끈질기게 찍어주겠다며 웃었고, 연화는 결국 그 웃음에 넘어가 지민과의 사진을 남겼다. 처음 찍는 사진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어정쩡했다. 얼굴의 미소만이 진짜로 남아있었다. 아, 이게 일상이 될 수 있을까? 연화는 생각했다. 어쩌면 제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 자리, 공간. 그러다 마주친 두 눈에 연화는 가만 입을 다물었다. 그래, 지민을 만났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다녀올게, 연화.”

 “응, 다치지 말고 돌아와. 지민아.”

 “연화도, 다치지 말고 돌아와요.”


 그곳에서의 이틀은 한밤의 꿈처럼 짧게 스쳐 지나갔다. 짧게 스쳐 지나간 탓에 현실감각마저도 모두 가져가 버렸다. 자선 행사가 당장 코앞으로 닥쳐왔다. 그리고 지민 대신 제이가 오겠다고 한 날이기도 했다. 지민은 연화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 의미를 알았다. 제 얼굴을 가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또 언제 마주할지 모른다는 그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래서 연화는 가만 지민의 눈동자를 보고 있었다. 제 얼굴이 가득 찬 그 눈동자를. 지민의 손이 올라와 연화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 온기가 그대로 연화에게 느껴졌다. 너무나도 뜨거워서 데어버릴 것만 같았다. 지민은 침을 한 번 삼켰다. 연화, 제가 붙잡고 있어도 더 잡고 싶은 연화. 무슨 일이 있어도 빠르게 돌아와야만 했다.


 지민을 보내기가 무섭게 같은 얼굴을 한 제이가 연화의 앞에 나타났다. 여전히 검지만 이전에 한 탈색 때문에 약간 색이 빠진 머리칼. 지민이 즐겨 입던 흰 셔츠, 나비 펜던트 목걸이, 반지, 피어싱, 심지어는 향수까지. 연화가 아니면 구분할 수 없었다. 연화는 그런 제이의 모습을 보며 숨을 한 번 참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을 구분해낼 것이라고 연화는 다짐했다. 제가 감히 짐작도 하지 못할 그들의 과거, 저만은 구분해내야만 했다. 지민을 위해서라도.


 “오랜만에 뵙네요.”

 “그래. 정말 감쪽같다, 너.”

 “그래도 연화는 구분하잖아요. 나랑 지민을.”


 연화는 지민의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제 마음에 제이까지 모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제가 믿는 것은 지민이지, 제이가 아니었다. 제 앞에서 하는 말이 무슨 의미를 담은 것인지 연화는 아직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가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지민, 그러나 당장 제 눈앞에 있는 것은 지민과 같은 차림을 한 제이이다. 그래서 연화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제이가 저에게 별다른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긴장감을 늦출 수는 없었다. 애초에 제이가 제게 해가 될 짓을 벌일 것이었으면, 지민은 저를 혼자 남겨두지 않았을 것이었다. 연화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민, 그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제 감정마저도.


 “바로 갈 거야. 행사장으로. 얘기는 들었겠지?”

 “그럼요. 문제 없게 할게요.”


 제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제이는 두뇌 능력에 특화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훈련받았다고 말했다. 연화는 지민의 말을 상기해냈다. 그들의 과거를 유추해내기엔 부족했지만, 아는 바로는 그랬다. 제이가 지민이 아님을 들킨 것은 오직 단 한 번, 저에게서뿐이다. 들킬 리가 없다. 연화는 그것을 안다. 저를 보는 눈동자, 그 절망. 그리고 매일 밤, 악몽처럼 되살아나는 그 고통. 환상통. 그것으로 연화는 저와 지민을 한 데 묶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일종의 울타리였다. 그래서 구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알아차릴 리 없었다.


 제이는 뒷좌석의 문을 열었고, 연화는 그에 자연스럽게 차에 올라탔다. 앞선 차에는 옥경과 예양이 타고 있었다. 제이가 제 옆으로 올라타고 문이 닫혔다. 연화가 안전벨트를 멨다. 제이는 그런 연화에게 뻗던 손을 다시 거둘 뿐이었다. 제이가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러곤 작게 웃어 보였다. 제이가 안전벨트를 메자 차량이 출발했다. 제이의 입안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지민의 이름으로 올 때가 나았을지도 모른다. 알고는 있었다. 연화의 다정함은 지민에게 한정된 것임을, 그리고 지금 당장 마주친 저의 존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마저도. 욕심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제 것이 아닌 다정에 감히 휩쓸리지 말자고, 그것은 모두 저를 향한 다정이 아니었다고. 제발 욕심내지 말았으면, 제이는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다. 제이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저녁에는 비라도 올 모양인 듯했다.


 행사장 내에 도착해서 연화는 제 이름을 댔다. 그러자 직원의 안내가 이어졌다. 연화는 제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제이는 그런 연화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둘 사이에서는 별다른 말이 오가지 않았다. 연화가 발걸음을 내딛으면, 그저 제이도 그런 연화의 뒤를 따르는 것뿐이었다. 연화는 디아바이오 측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받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좋은 성과를 내셨네요.”

 “이게 다 리안화 덕분입니다.”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면서 악수를 나누었다. 제이는 그런 연화의 옆에 붙어 있었다. 지민이 그랬던 것처럼, 연화의 왼편에 서서. 악수를 나누는 사이 연화의 손바닥에는 작은 USB가 하나 쥐어졌다. 그녀가 가져오라고 지시했던 물건이었다. 문득 연화는 이 작은 UBS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바이오, 복제와 관련된 일일까? 연화는 아직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와는 관련 없던 바이오산업이 제 앞으로 성큼 다가온 까닭은 무엇일까. 저도 결국은 이전의 연화와도 같은 끝을 맞이하게 될까. 내게는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는 이름, 그리고 바이오산업. 끝없는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지만 연화는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제가 배운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리안화 대표로 참석한 연화입니다. 우선 초대해주신 디아바이오 측에 먼저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리안화 역시 디아바이오의 성장에 큰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디아바이오와 첫 시작부터 함께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연화는 마이크 앞에서 계속 말을 뱉어냈다. 제이는 연화의 한 걸음 뒤에 서서 그런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꾸만 목이 탔다. 연화가 고개를 돌려 저를 볼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잠식당할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지만, 연화가 지민이 아닌 제이를 볼 이유라곤 정말 하나도 없었지만. 제이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아서 차라리 모르고만 싶었다. 애써 차오르는 욕심을 가슴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럴수록 제 가슴에 뭉근한 감정이 차올랐다. 데여버릴 것만 같았다. 가까워지면 안 되는데, 가까워지고 싶었다. 닿으면 안 되는데, 닿고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제가 내릴 결말은 이미 정해놓았다. 절대로 바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연화의 시선에서는 옥경과 예양이 걸렸다. 옥경과 예양은 마치 가족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양이 옥경의 귀에 무어라 속삭이는 듯한 모습을 취하면 옥경은 작게 웃어 보이며 그런 예양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럼 예양도 따라 웃었다. 잔에 채워진 샴페인이 그에 따라 출렁거렸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래, 어쩌면 그런 그들의 궤도를 벗어난 건 애초부터 자신이었다고 연화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연화는 그들이 도는 궤도 내에 없었다. 제가 연화라는 이름을 가지기 전부터도. 옥경이 이름 없는 저를 친근히 아가라고 불러주던 그때도. 연화는 그 속에 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연화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제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헛헛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이니까.


 예양이 입고 있는 노란색 원피스는 연화의 것이었다. 행사장에 오기 이전, 오랜만에 행사장에 간다며 설레있던 예양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연기를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예양은 그게 좋다 말했다. 무엇이든 관련된 주제는 다 이야기하고 보는 습관을 가진 예양에 따르면 그랬다. 저는 마약 없이 살 수는 없지만, 마약이 있어서 죽을 것만 같다고. 어쩌면 마약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래서 저는 자선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고 말했다. 리안화의 이름이 아닌 LB호텔의 이름을 사용한대도 예양은 상관없었다. 그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저도 그냥 사람이 된 것만 같다고 말했다. 연화는 그런 예양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예양은 그런 연화의 눈에서 다정함을 읽어내렸다. 두양애, 그것이 예양과 관련되었든 지금 당장은 예양을 내칠 수 없다. 연화는 그런 인물이 되지 못한다. 저를 방해하는 무언가를 향해 달려들 용기는 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또 예양이 그것을 원한다면. 예양까지도 저를 바라보도록 만들고 싶었다.


 연화는 예양이 생각하는 평범한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에는 옥경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서 사는 소소한 일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전까지 연화는 그런 예양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평범한 삶을 원한다는 것, 연화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예양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민과 다녀왔던 부산의 공기를 떠올렸다. 우습지만 남아있는 저와 지민의 첫 사진도, 시끄러운 대화 소리도, 뜨거웠던 공기마저도. 그래, 그제야 연화는 예양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예양이 바라는 소소한 일상이 무엇인지, 연화는 이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상을 저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양의 소소한 일상, 그마저도 이루어주고 싶었다. 연화는 예양의 발간 볼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연화는 예양에게 노란 원피스를 빌려준 것이었다. 체형이 비슷해 사이즈를 걱정할 필요는 당연히 없었고, 옷을 빌려주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양이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연화를 보고 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던 기억이 있었다. 밝은 노랑이라 화사하고, 옷 재질도 너무 잘 어우러지고…. 예양이 조잘조잘 그렇게 한참을 떠들었던 것을 기억해내곤 빌려준 것이었다. 옷을 받아든 예양은 환하게 웃었다. 감사해요, 연화. 정말로 먼지 하나 안 묻혀서 오도록 노력해볼게요.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여전히 작은 떨림이 있었다.


 “옥경, 저 정말로 옷 잘 어울려요?”

 “잘 어울린다고 벌써 다섯 번째나 말하는 중이야, 뤠이양. 그렇게 마음에 들어?”

 “네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연화는 어떻게 딱 이 옷을 빌려줬을까요? 너무 좋아요, 옥경.”


 연화가 들었으면 티는 내지 않았겠지만, 퍽 좋아했을 말이었다. 예양이 제 말이 진심이라는 듯 자꾸만 방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에는 옥경이 전에 선물로 주었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옥경은 잠시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그 목걸이에 시선을 두었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옥경은 생각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말을 이어가고 있는 연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옥경은 연화만 보면, 생각이 많아졌다. 연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 옆에는 항상 그가 지키고 서 있었다. 언제나 그의 시선은 연화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오늘도 그랬다.


 행사에 참석한 이상 그들에게도 주어진 임무가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연화가 지시한 임무라기엔 굉장히 사소했다. 그저 예양을 참석하게 만들기 위한 부탁 정도에 불과했다. 옥경과 예양은 모녀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 별다른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평소 모습 그대로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자연스럽게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인사를 건네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일급비밀을 공유하듯, 속삭이는 것이었다. 디아바이오가 개최한 행사에 참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주 은밀하게.


 “그런데 리안화가 이제 갤러리에 집중한다는 소문이 돌던데. 진짜일까요? 바이오산업에서 필요한 부분은 이미….”


 그렇게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는 것이었다. 주로 시작은 옥경이 했다. 그럼 예양은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해도 되냐며 옥경을 말리는 것처럼 이끌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이를 농담으로 치부하는 척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할 것이다. 아닌 척, 소문이 돌고 돌아서 디아바이오에도 닿을 것이고. 그리고 예양이 두양애가 맞다면 그곳에도 분명히 닿을 것이다. 예양은 이것이 그저 거짓된 소문인지 아닌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연화는 미끼를 던진 것뿐이다. 과연 어느 쪽에서 먼저 반응이 올지. 


 “아이고,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다 아프네.”

 “옥경, 그럼 이것 좀 마셔봐요.”


 옥경이 예양이 앞으로 내민 잔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따라 시선이 예양의 얼굴로 올라갔다. 잔을 받아들곤 내용물을 입으로 흘려보냈다. 예양은 잠시 쉬자며 옥경을 의자로 이끌었다. 옥경은 그런 예양에 가만 끌려다녔다. 옥경은 예양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는 없었다. 예양은 자꾸만 저의 모든 것을 떠올렸다. 제 청춘부터, 지금의 삶까지. 모든 것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예양의 겉모습이든, 과거이든, 첫 만남이든.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랬다. 


 옥경은 가만히 앉아 예양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지금도 예양은 마른 축에 속했지만, 그 당시는 가죽만 남아있다고 표현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본적인 영양분도 부족해 보였다. 팔에는 주사 자국이 가득했고, 온몸은 멍투성이였다. 하물며 얼굴까지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두덩이가 멍이 다 빠지지도 못한 채 누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흔적이었다. 그런 여자아이 하나가 골목길에 널브러져 있었다. 옥경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자신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급하게 옥경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풀린 눈이 옥경과 마주쳤다. 아직 약에 취해있었다. 10년 전 여름, 중국에서였다.


 “얘. 나랑 같이 가자.”


 옥경은 그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약에 취해서인지, 갈 데가 없어 그랬는지 내밀어진 손을 겁도 없이 덥석 잡는 그 아이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손을 내민 나도, 그런 손을 잡은 너도 모두 이상했다. 그러나 모두가 이상했기 때문에 이상함을 느낄 수 없었다. 평소 발길이 닿을 일 없는 골목에 들른 이유는 널 만나기 위해서였구나. 옥경은 생각했다. 저는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이 골목길에 다다른 거라고.


 “나랑 같이 가면, 행복할 수는 없어. 평범할 수도 없어.”

 “괜찮아요.”


 옥경은 자꾸만 예양에게서 제 딸의 모습을 찾았다. 제 딸이 살아있었으면 예양만큼의 나이가 되었을 테니까. 익숙한 상처투성이의 몸만 아니었어도, 옥경은 예양을 제 집으로 들이지 않았을 터였다. 옥경은 가끔씩 찾아오는 유난히도 짙은 밤이면 후회를 했다. 예양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을. 옥경의 손을 잡은 이상 예양은 영영 목줄 채워진 신세로 살아야만 할지도 몰랐다. 저 자신도 그런 처지였다. 고작 딸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고, 그런 너의 인생까지 같은 결말로 이끌 수는 없는데. 그러나 옥경은 예양에게 후회하느냐고 물을 수 없었다. 후회한다고 대답한다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저를 원망한다면, 저는 더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예양은 어째서 저의 손을 잡았을까?


 후회의 연속 이후 옥경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그나마 남아있던 딸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었다. 전부 지운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예양이 있는 공간에서는 예양을 예양으로 보고 싶었다. 그게 겁도 없이 제 손을 잡고 저의 길을 따라온 예양을 향한 남은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의 약통부터 버렸다. 딸은 자주 아팠다. 그래서 약을 달고 살았다. 그것을 챙겨주는 것도 저의 몫이었다. 그것만 보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취해있으면. 자꾸만 예양에게 약을 건넸다. 예양은 난처한 기색 없이 술에 취한 옥경을 달래 재웠지만, 그런 예양의 속을 망쳐놓았을 거란 추측쯤은 할 수 있었다.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버리지 않아도 돼요. 떠올릴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두어야죠.”


 예양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결심한 옥경은 제 선택을 바꾸지 않았다. 예양의 얼굴을 보면 그런 결심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상처가 아물고, 제법 살이 올랐음에도 옥경은 나날이 불안해졌다. 제 딸은 맞아 죽었다. 모두 제 잘못이었다. 처음부터 제가 리안화에 있지 않았더라면. 자주 아팠던 딸은 그래, 그들이 말하기엔 쓸모가 없었다. 아무리 숨기려 들어도 기어코 찾아냈다. 간신히 찾아낸 시체에는 구타 흔적이 가득했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서는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딸의 죽음과 함께 저도 매일을 죽어가는 것처럼 살았다. 그러다 예양을 마주쳤다. 어느 낯선 골목길에서. 우연일까? 나는 감히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예양은 결국 리안화에 들어갈 수밖에는 없었다. 제 손을 잡은 대가이자 결과였다. 마약. 그래, 예양은 마약을 했다. 첫 만남부터 약에 취해 있었으니. 할 줄 아는 게 있다는 것으로도 다행이었다. 저는 그렇게 예양으로 모든 청춘을 채웠다. 예양을 보며, 예양의 목소리를 들으며, 예양의 웃음소리가 무슨 마약이라도 된 듯. 그리고 예양과 연화가 만났다. 제가 언젠가 아가라고 부르던 그 연화. 그래도 우린 살 수 있겠구나. 옥경은 지레 안심했다. 연화, 옥경이 아는 유일한 다정한 사람이었다.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행복을 찾을 수도 있겠구나. 뤠이양, 행복. 그 단어를 함께 나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바람은 불고, 공기는 뜨겁다. 낯선 소음이 불쾌하지 않다. 마치 처음부터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약속은 어째서 기대를 하도록 만들까. 이루어지지 못한대도 그 기대를 안고 살아갈 수 있다. 고작 십 음절로 이루어진 그 한 마디. 영원히 남아 맴돌 그 목소리.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끌어올린 그 다정함. 그 짧은 순간에 영영 머물고 싶다. 감히 그렇게 하고 싶다.



202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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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거 보려고 인티 가입했습니다,, 지우지 말아주세요 작가님 좋은하루 되세요!
3년 전
소슬
감사합니다. 독자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3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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