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파란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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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문이 열렸다. 냉장고는 못마땅한 듯 찬 냉기를 뿜어냈고, 이어 밑바닥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케케묵은 악취가 훅 하고 달려들었다.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코 주변에 손 부채질을 했다. 코 끝을 자극하는 냄새에 조건반사적으로 문을 닫았지만 금새 악취가 방 구석구석에 베어버렸고, 신경질적으로 그가 낮게 욕을 읊조렸다. 씨발. 속이 욱신거렸다.
까슬한 머리칼을 쓸어내리던 남자는 결국 모자를 뒤집어썼다. 슬그머니 현관문을 여는 남자의 얼굴엔 의도치 않은 불쾌함이 묻어있었다. 현관문은 열리자마자 철컥, 하고 바로 닫혔다. 밖으로 나서자마자 불어오는 추위에 오드드 소름이 돋았다. 9월의 추위를 만만하게 보고 얇은 반팔티를 입은 것이 잘못이었다. 바람 한 줄기 없이 햇빛만 그득거리는 여름 날씨 같던 기온은 며칠 전 장마가 시작되고서부터 급격하게 뚝 떨어졌다. 신발을 신은 채로 집 안에 뛰어들어가 손에 잡히는 대로 옷가지 아무거나 들고 다시 나올까, 잠시 생각했지만 귀찮을 것 같아 관두었다. 지이잉. 전화의 착신을 알리는 진동 소리가 남자의 신경을 자극했다. 도경수. 액정에 뜬 이름은 심히 을씨년스러웠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액정만 바라보던 남자는 연이어 울리던 핸드폰이 소등되고 나서야 걸음을 다시 재촉할 수 있었다. 나는 할 말도 없으면서 왜 자꾸 전화하고 싶어하는 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도 참지 못했다. 물론 네가 받진 않았지만.
故박목월의 아침마다 눈을 뜨면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밝은 하루를 제게 베푸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착한 일은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이 구절은 내가 김종인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발견이 되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만끽하는 계절을, 하루를 기대하는 설레임을, 나의 눈동자에 비춰지는 정다운 네 모습을 보기 전에 나는 죽음을 먼저 배웠다. 그리고 비바람을 맞았다. 남자는 걷는 길이 지루했던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 파란 고래 |
경수X종인X백현 중심이구요. 짧고 굵게 연재하겠습니다.^^.... 내용은 느긋하게 풍부해질 예정이에요. 비루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저 아마 덧글 보면 눈물 짤.. 듯. 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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