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부터 미성년은 결코 축복받지 못하는 존재다.
십대 특유의 감성과 갖고 있는 다듬어진 자질은 이십대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에게 동일한 인격체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자유를 꿈꾼다는 거창한 이론은 이유가 되지 못했다. 괜히 설친다는 죄목을 쓰게 되면 돈 없고 빽 없는 모든 십대들은 그대로 무참하게 어른들에 의해 짓밟혀진다. 그것은 깨나 그럴싸한 예술 고등학교라는 타이틀을 멀쩡하게 달고 있었던 이 학교에도 마찬가지였다.
공정하다고 소문이 났던 학교는 이미 과거형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는 부패하고 타락해 갔다. 우수한 실기 위주로 학생을 뽑는다지만 기실 성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부모들의 치맛바람으로 졸업 성적을 좌우한다고 보아도 다름이 없었다. 고로 가끔 가다 학교 측에서 어쩔 수 없이 뽑아주는 타고난 천재들과 장학생들은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경쟁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는 소리다. 결국 학교측의 썩을 대로 썩어버린 교육관과 억지로 이루어지는 경쟁 끝에 어중간한 학생들은 전부 다 밀려났고, 그제서야 학교는 뒤늦게나마 중국에 있는 예술 학교와 교류를 맺으면서, 금전 하나에 눈이 멀어 제대로 실추된 명예를 후회했지만 결국 이 학교의 명맥도, 그간 쌓아왔던 명문이라는 단어조차 전부 죽어버렸다. 예고 중에서도 최고의 꼴통 학교 취급을 받고 있는 지금의 학교에는 본래의 명맥에 무색하게 학생 수도 초라해졌다.
그나마 실력 좀 된다는 대갓집 아드님들은 학교가 망하기 전에 일찌감치 발을 빼셨고, 딱 둘만 남았다. 자질이 있는 존재들과 진상 꼴통들, 그리고 최근 들어 등장한 소수의 중국 교환 학생들. 한때는 예술가들의 성지라 불리던 재학생들조차 퇴색해버렸다. 당연히 실력도 좆도 없었던 후자들은 일찌감치 진상 꼴통으로 남아 주셨고, 중국 학생들을 제외하면 남은 것은 상위 클래스의 재학생들 뿐이었는데 이미 수없는 경쟁 끝에 지쳐버린 후자의 학생들은 기껏 경쟁에서 살아남았더니 꼴통 학교 학생이라는 오명만 쓰게 된 제 현실을 비관하여 점차 타락해갔다. 학교의 잘못으로 졸지에 시궁창이 된 제 인생을 구제할 바가 있겠는가? 당연히 이미 꼴통 학교 학생이 된 이상 편입을 받아주는 학교도 없었고, 결국 그들은 추락 끝에 설렁 설렁 인생을 살아가다 종래에는 자유로운 예술론을 추구한답시고 발을 들인 음지에서 시궁창인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 결국에는 그들조차 순간의 쾌락인 섹스와 마약에 빠져 끝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들기 일쑤였다.
선생들에 의해 억지로 구축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찬열은 홀로 놓자면 패자였다. 그러나 실은 전자도 후자도 아닌 애매한 관계가 구축된다. 어찌 보면 그는 승자였고, 어찌 보면 패자였다. 학교 최고의 장학생이지만 결국에는 그 또한 무력한 기득권층에 질려버려 섹스와 마약 중독자가 되어버린 패자 안에 속한다. 소년에도, 청년에도 끼지 못한 어중간한 그 신세가 참으로 가련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찬열은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자유를 찾아보겠다고 짓밟힌 몸을 일으켜세운 이들 중 한 사람이었지만, 학교가 이 꼴이 된 이상 아직까지 그 굴레와 멍에를 제대로 떨쳐내지조차 못한 무력한 십대였다. 보통이라면 순응하며 그 본래의 이론과 본분에 충실한 모범생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찬열은 그러지 못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이 학교에서는 성적만 좋다면 섹스와 마약은 쉬쉬되는 존재라고 해도 무방했지만, 결국엔 구실 좋은 양아치라는 소리였다.
" 선배. "
그러나, 그 어느 누구에게조차 인간의 감정을 억압할 자격이나 있을까?
찬열은 제 앞에 서 있는 날짐승의 건조한 두 눈을 마주하며 멍하니 생각했다.
학교 최고의 특기생이자 최악의 문제아였던 김종인. 적어도, 제 앞의 이 흉폭한 야수를 말릴 수 있는 존재는 어른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찬열은 이내 저를 노려보고 있는 그 시선에서 우러나오는 불꽃을 본다. 그러나 그저 보고만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처럼 그에게 호의를 가질 마음 따위는 지금의 찬열에게 결코 없어야 했다.
[카찬/백도/세루] 시계태엽 오렌지
-1-
[종인/찬열] 미드나잇 블루 00
학교 맨 위 옥상은 언제나 조악한 풍경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얼굴에 찬열은 작게 치를 떨었다. 작게 내리깐 두 눈을 비웃는 입꼬리가 오만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찬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무어라 말을 하지도 못하고, 간신히 그를 무표정하게 쳐다보려 노력하며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겁에 질렸던가? 글쎄, 그건 자신도 잘 모르겠다. 저를 죽일 듯이 쳐다보는 지금의 종인은 광폭한 포식자였다. 원한다면 언제든 찬열을 물어뜯고 광폭하게 변할 수 있는 악랄하고 비열한 포식자인 그가, 실은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일 기세로 이죽거리는 종인이 두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때리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 선배는. "
" 고급 창녀 같아요. "
" 김종인. "
그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찬열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낼 생각을 지워버렸다. 두 눈에 잔뜩 날이 섰다. 예전에나마 잠깐 보였던 호의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것이 고작이었다. 말이 없자 종인의 표정이 더욱 굳어갔다. 답잖은 고고한 척으로 보였을까, 애써 종인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찬열의 고개를 억지로 저와 마주하도록 돌려세운 종인의 표정이 더욱 차갑게 굳었다. 자신에게 무자비한 폭언을 내뱉는 종인을 다른 이라면 따귀 한 대라도 갈겼어야 할 터였다. 아니, 찬열이 아닌 다른 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끝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 고고한 척 하지 말아요. "
" ……. "
" 걸레 주제에… "
그러나, 찬열은 인내했다.
예의 그 고고한 표정으로 종인을 외면하는 찬열의 표정 역시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종인은 억눌린 목소리로 욕설을 뱉어내지만, 찬열은 애초에 종인을 보려 들지도 않는다. 종인의 무표정한 얼굴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잠시나마 틈을 보인 종인의 얼굴이 잔뜩이나 일그러졌지만, 찬열은 그것을 보면서도 외면해 버렸다. 종인이 제게 어떤 표정을 짓든 제 알 바가 아니었다. 종인이 금방이라도 제 목을 조를 듯 턱을 잡아 올리는 손길에도, 찬열은 가만히 있었다. 종인이 두 눈을 감았다 뜬다. 잠시나마 균열이 가 있던 표정이 금새 없어진다.
" 얼굴은 그런 대로 반반한데.. "
" 그렇게, 말 하지 말라고 했어. "
몸을 막 굴리니까, 어쩔 수 없는 창녀잖아.
화를 참기 위해서인지 잔뜩 억눌린 듯한 종인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거침이 없다. 투박한 목소리는 찬열에게 있어 유일한 성역이었던 세계를 순식간에 붕괴시킨다. 그러나 찬열은 그 모욕을, 저 자체를 붕괴하는 듯한 무차별한 공격에도 그 아픔을 꿋꿋이 참아냈다. 그저 최대한 종인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에, 종인의 얼굴이 보기 좋게 다시 일그러진다.
" 눈 떠요. "
" …싫어. "
" 뜨라고 했.. "
- 종인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종인을 보고서야 찬열은 안도했다.
그러지 마, 제발.
아, 경수다. 이 사태를 아무 것도 모른 채 김종인과 사귀고 있는 장본인, 누구보다 친절한 찬열의 베스트 프렌드. 종인을 말리는 경수의 목소리에 찬열은 안도하면서도 실소했다.
- 찬열아, 괜찮아?
" 나 괜찮아. 김종인이 나한테 이러는 거, 이제 너무 지겨워서. "
" 박찬열. "
미처 상대할 생각도 안 나.
발끈한 종인이 찬열의 목을 짓누르자 놀란 경수가 서둘러 둘을 떼어놓았다. 종인이 손을 놓자마자 경수에게 힘없이 쓰러지는 찬열을 보는 종인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어갔다. 찬열은 언뜻 무미건조한 종인의 비틀린 두 시선에서 이상한 감정을 읽었다. 종인은 경수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늘상 검고 짙은 두 눈, 예의 그 건조한 얼굴 안에서 얼핏 야수의 형상을 목격한 찬열이 작게 몸을 떨었다. 그러나, 곧 다시 표정은 싸늘해진다. 자신을 쳐다보는 김종인의 경멸에 찬 눈빛이 이상해서, 더는 보기도 싫어졌다. 눈을 감아버리자, 이내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찬열이 본래의 온화한 얼굴로 돌아온다. 경수의 걱정어린 표정도 그다지 좋은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찬열은 경수를 제 연인이 있을 곳으로 서둘러 보내기로 했다.
" 난 됐으니까 가. "
- 그치만, 찬열아..
" 나 진짜 괜찮아, 그러니까 가도 돼. "
그렇게, 억지로 경수를 보내고서 그가 멀어지는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가 멀어졌다.
그러고 나서야 찬열은 비로소 온전히 추락할 수 있었다. 쪼그려 앉아 고개를 무릎에 파묻는다. 억지로 소리가 새나갈까 입을 꼭 막고 나서야 소리 없는 울음이 터졌다.
" 흐윽.. "
새어나오려는 울음소리를 억지로 입을 막아 참자 괴상한 소리가 샌다. 찬열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사랑을 부정하면 부정할 수록 아픔의 감각은 더욱 더 선명해지므로.
찬열은 어차피 제 자신이 자초한 일인 만큼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등을 돌리는 게 쓰디쓰다 해도 모순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 이상 저 자신의 마음도 접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 하루 죽어가는 제 마음을 자각하면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이 사실 자체가 찬열 자신에게는 끔찍하리만치 잔인하긴 했지만, 경수를 위해 마음을 접는 게 옳은 일일 거라 여겼다.
그러나, 우리들의 고장난 초침은 어째서 비틀렸는지.
깍듯이 존칭을 쓰면서 태연스럽게 찬열을 모욕했던 종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찬열의 구멍 뚫린 가슴 새를 뼈아프게 파고든다. 너무 아파서, 울음조차도 나오지 못한다. 고장난 심장은 종인의 목소리 때문에 계속 아파왔다. 비선형으로 흐트러진 세계는 곧 찬열의 세상이었다.
경수야, 아무 것도 모르는 너는 죄가 없는데, 나는 어째서 네가 그리도 잔인하게 보일까.
찬열은 종인이 경수와 사귀면서 했을 입맞춤을 상상했다. 그러고서는, 제 입술을 매만져 보았다. 메말라 있다. 종인의 입술이, 제 입술과 맞닿는 상상을 해 본다. 그가 갖고 있을 입술의 온기도 생각해본다. 따스할까? 아니, 어쩌면 조금 차가울지도 모른다. 맞닿으면 어떻게 될까? 거칠한 기운이 손가락 새로 느껴진다. 찬열은 그와의 키스를 상상하며 스스로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고 비웃었다.
네가 끊어낸 사람, 이제 와서 미련이 느껴져?
그 순간, 실소가 터졌다.
박찬열, 어차피 그 애는 이제 널 좋아하지도 않아.
그것도 네가 자초한 거잖아. 속내에서 찬열에게 끝없는 독설을 내뱉는다 찬열은 그럼에도 쉴새없이 흐느꼈다. 눈물로 범벅이 된 흉한 꼴로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가 종결내다시피 한 그 애의 입맞춤을 그렇게도 받고 싶었니?
혼잣말을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비참해진다.
뒤늦게 도착한 백현의 부축을 받으면서, 찬열은 비로소 자신의 세계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 선배.
- 걸레 같아요.
백현 선배랑 잤잖아요.
나는 너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의 초침은 진즉에 엇나가 버렸기에, 그 어긋난 초침이 나의 심장을 찌르는 것이다. 태엽은 고장났고, 더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이다. 네 시선은 이미 경멸에 차 있으며, 그것을 행한 자는 다름아닌 나이다.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직접 태엽을 고장내 스스로 심장을 할퀴었다 부르짖어도 감히 할 말이 없었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지금까지 네 말 한 마디에 끊임없이 상처받고 있었다.
그러나 죽일 듯 노려보던 눈빛,
증오는 길었고 네가 원할 굴종은 없었다. 죽어가는 나의 세계, 나를 증오할 네 심정을 아는데도.
어째서 애정은 달기만 한지.
그래,
결국 나는 영원히 치유되지 못할 운명인 것이다¹.
찬열은 다시 실소했다. 제 세계는 이미 붕괴하고 있다.
째깍,
시계 초침이 돌아간다.
망가진 태엽은 다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온전하게 모순을 걷어낸 눈앞에는 진실된 영혼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¹ 시계태엽 오렌지의 명대사, " 나는 완전히 치유되었다 "를 변형
이거 타 커플 아닙니다.. 카찬 맞아요.. 특징상 시점은 여러 사람을 돌아갑니다.. 다음 화부터는 과거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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