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햇빛이 쨍쨍하다. 텁텁한 공기와, 살결이 맞닿기만해도 끈적한 느낌은 기본이였고, 제습기를 아무리 가동시켜도 좀체 수그라들 기미가 보이지않는 습기와, 얼마전 새로 산 흰 신발에 신고식이라도 해주듯 시작된 장마까지. 나는 무척이나 여름을 싫어하는 타입이였다. 극히 더운 날씨와 더불어 제 마음에 휘몰아치듯 자리 잡은 민윤기 덕에 집중이 안되어 노심초사했던 마음으로 매달리듯 붙잡았던 문제집은 걱정과는 다르게 꽤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시험도 끝났겠다, 했으니 남은 건 그토록 노심초사했던 성적의 결과도 아니고, 단연 민윤기였고.
1학기가 끝났으니 타이트한 분위기로 형성해왔던 교실의 분위기가 단숨에 풀어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였다. 여름 방학이 2주도 체 안 남은 상태였고, 수업은 전부 답안지 확인 혹은 자습, 혹은 영화를 보는 일 뿐이였으니. 휴대폰도 걷지 않는 풀어진 분위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 상태였다. 적정 선은 지킬 줄 아는 나이였기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남준과 나의 연애 상담아닌 연애 상담은 꽤 오랫동안 지속적인 고민을 주고 받는 중이였다. 물론 주 화젯거리는 내가 몰고 오는 것이였다.
"시험도 끝났겠다, 윤기 형은 이제 학생회장 일도 끝났고. 데이트라도 안 하냐? "
" 데이트는 무슨, 사귀는 것도 아니고. 오빠도 말도 없는데? "
"기다려봐, 곧 떡밥이라도 던지겠지. 받아먹기나 해라, 옳다구나! 하고."
"아, 난리치지마. 학생 회장 되실 몸이 진중하질 못하시네."
아, 시발. 학생회장.. 괴로운 듯 얼굴을 감싸쥐며 짧은 비명을 내지른 김남준이 책상 위로 엎어졌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태를 보여주듯 다크써클이 내려앉은 모습이 안 쓰러워 등을 두어번 두들기니 한 숨을 푹푹 내쉰다. 언제는 연설에 내세울만한 공약을 추천해달라, 포스터 만드는 것 좀 도와달라. 어째 시험이 끝나고 더 바빠진 것 같다. 안심은 금물이라지만, 김남준과 함께 조를 이룬 부회장 후보들도 워낙 막강한 애들이라서 거의 확실히해졌다고 볼 만큼 유력한 당선 후보였다. 민윤기의 학생회장 활동은 저번 주를 마지막으로 끝이났고, 이제 민윤기는 모레에 있을 학생 회장 당선 축하식에서 마지막으로 짧은 인삿말을 전하는 게 마지막 스케줄이라고 했다. 이제 민윤기는 수시만을 남겨두고 있어 어느 정도 짐을 다 내려놓은 상태라고. 끝으로 대입이라는 큰 벽을 남겨두고 있지만, 고등학교 3년 내내 허투루 학교에 얼굴 도장을 찍고 다닌 건 아니였는지 그리 큰 걱정을 하고 있는 얼굴은 아니였던 것 같다. 저번보다 눈에 띄게 웃음기가 많아진 얼굴에 저마저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아, 영화 보고싶다."
"학교 끝나고, 할 거 없지? 영화 보러갈래?"
옳다구나, 떡밥을 물 시기가 왔다.
러브 로열티 07 :: 여름의 시작, 더불어.
빌리어코스티 - 매일 그대와
기어코 단 둘이서 영화를 보러왔다. 그 동안 수없이 같이 거닐고, 심지어 그저 친한 선후배라고 하기에 낯 부끄러울 스킨쉽을 했던 게 수차례였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데이트라고 정의가 내려진 지금 이 순간이,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 지 모를 일이다. 영화를 예매하고, 30분 가량의 시간이 남아있어 예매소 옆에 딸린 카페에 마주보고 앉아있는 상황이 그저 어색하기만 하다. 물론 나 혼자서만, 내 앞에 앉아있는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지 실실 웃으며 턱을 괴고 날 바라본다.
"시험은, 잘 봤어? "
그게, 잘 보긴 봤는데.. 공부하는 내내 집중이 안됐어.
"왜? 뭐, 안 좋은 일 있었나?"
"아니, 뭐. 그냥.."
그게 오빠 때문이라고, 너 때문이라고 어떻게 말을 하냐고, 내가. 제 속도 모른 채 절 걱정하는 투로 물어보는 게 절 놀리는 건지 싶을 정도로 다정하다. 제 대답이 맘에 안 들었던 건지 그새 뚱한 표정으로 낯을 바꾸고는 절 쳐다보는데, 프라푸치노를 쪽 쪽 빨아먹다 눈이 마주쳐 그 상태로 몇 초 간 가만히 눈만 마주쳤다가 그 순간의 기류가 금세 어색해져서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해버리고 말았다. 그걸 지켜 본 민윤기가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을 내게 가까이 들이민다. 왜, 왜그래.
"왜 눈을 못 마주쳐."
"내, 내가 언제?"
"말은 왜 더듬고."
내가, 그.. 그랬나? 하하. 아닌데.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민윤기가 이제는 아예 제 양 볼을 한 손에 담아쥐었다. 그에 붕어처럼 입술만 퉁 내미는 모습이 되어버리자 눈을 꿈뻑 뜨고는 민윤기를 바라보는데, 여전히 뚱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 민윤기의 눈에 내비칠 제 몰골이 눈에 훤해 고개를 내젓고는 민윤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는데 그걸 또 알아낸 민윤기가 이제는 전처럼 제 볼을 잡아 쭉 늘어트리다 손 자국이 남은 볼을 살살 손으로 쓸어준다.
"가자, 시간 다 됐어."
*
영화를 보는 게 보는 것 같지도 않을 만큼 어색했던 시간이였다. 연인이 된 것도 아닌데, 자꾸만 옆에 앉아 심오한 표정으로 영화를 보고있는 민윤기가 무척이나 신경쓰이고, 또 신경쓰였다. 혹여나 한 번 손이라도 닿으면, 손이 아닌 불에 닿은 듯이 놀라고 저 혼자서 흠칫했다. 누가봐도 저 민윤기 짝사랑해요~ 하는 표를 내고 다니는 것 같아 몹시 부끄러웠다. 영화가 시작되고서부터 끝날 때 까지 나 혼자서 눈치만 보고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어색하게 굴어서 그렇게나 눈치가 빠른 민윤기가 눈치를 못 챌리가 없었다. 바보같이 구는 저에 민윤기도 지쳤는지, 화가 났는지 뚱한 표정으로 영화를 보다 나와서는 어둑 어둑해진 날에 집에 들어가자며 민윤기가 내 손을 이끈다. 영화관에서 나와 아파트까지 같이 걸음 하나 하나마저도, 그 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옆에서 말없이 절 쳐다보는 민윤기의 시선에도 모르는 척하며 꿋꿋이 앞을 걷고 있는데, 기어코 그 낮은 목소리가 제 귓가를 울린다.
"이여주."
"응, 어. 왜? "
"이제 말해봐, 왜 그렇게 뚱한데."
분명 모든 걸 다 아는 눈빛으로 뭘 듣고 싶은 건지 참으로 얄밉기만 하다. 자기도 웃음이 나오는 지 피식 피식 웃음을 흘려놓고는 제게 물어보는 게 또 어이가 없다. ..다 알잖아. 삐뚤어진 마음으로 작게 중얼거리니 그걸 또 들은 민윤기가 크게 웃어댄다. 아씨, 진짜 창피해죽을 것만 같다. 민윤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철저히 숨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알면 이건 반칙 아니야?
"넌 진짜, 좋아하는 거 못 숨긴다."
"아, 놀리지 좀 마.."
"놀리는 거 아니야, 귀여워서 그러는 건데."
"..내가 말을 말지."
"이제, 그만 끙끙 앓아도 돼."
뭐, 뭘. 활짝 웃으며 말하는 민윤기에 또 멍청이마냥 말을 더듬었다. 조마조마해하는 제 모습과는 달리 여유가 흘러 넘치는 민윤기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띄우며 절 쳐다본다. 말의 뜻을 파악하지 못해 인상을 쓰며 민윤기를 올려보니, 제 얼굴을 흘긋 쳐다보더니 축 늘어진 제 팔을 끌어 손을 마주잡는다. 오묘한 분위기에 긴장감이 들어 침을 꿀꺽, 삼키고 민윤기를 말없이 쳐다보자, 민윤기가 히죽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살포시 제 어깨를 잡아 절 껴안고는 하는 말이,
"좋아해, 너뿐만 아니라 나도."
"…"
"뭐가 더 필요해, 이제. 너도 좋아하고, 나도 너 좋아하는데."
"음.."
"좋아해. 연애하자, 우리. "
쨍쨍하고, 눌러붙고, 기분 나쁘도록 찝찝하기만 했던 여름의 시작, 7월 초. 여름의 시작과 더불어, 끊임없이 메마른 땅에 삽질만 해대던, 열렬히 짝사랑만 해대던 내게도 단비가 내리려는 지 늦은 저녁 하늘은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그토록 바랬던 두 손이 내 두 손을 감싸잡았을 때, 수줍기만 했던 온도가 내 손에 내려앉았고, 들뜬 마음을 추스려주는 듯 내 양 손을 쓰다듬어준다.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리는 밤 바람에 무겁기만 했던 마음이 가벼워진다. 들뜬 마음이 설레임으로 천천히 전환되고, 날 껴안은 단단한 두 손이 닿을 때,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 이내 설레임도 사랑으로 전환되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긴 공백을 마치고 왔음에도 이렇게나 짧은 분량이네요ㅠㅠ 죄송해서 이번 편은 5p로 포인트를 쭉 내렸습니다ㅠㅠ
독자님들에게 찾아뵐 면목도 없네요.. 근 한 달간 잘 지내셨어요? 이렇게 질질 끄다가 이제서야 시험을 끝나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연재 텀이 더욱 길어진 것 같아서 더욱 죄송스러운 마음이에요. 이 글이 뭐가 잘났다고.. 너무나 죄송합니다ㅠㅠ
이번 편도 감사해요! 항상 제 글에 댓글 달아주시고, 기다려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말로 표현은 다 못하지만 정말로요ㅠㅠ!!
독자님들이 좋아하실 드디어 고백 부분이 다 나왔어요 ㅋㅋ 이제 남은 건 둘의 달달 터지는 연애 뿐..?
오랫동안 쌍방향 삽질을 했던 만큼 달달 터질테니 기대해주세요! 이번 편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너무 감사해요ㅠㅠ
♡남준아 여기봐/1013/8ㅅ8/귤/회색별/권지용/0324/슙슙/비빔밥/버누/민군주님/인사이드아웃/씨걸정국/사귀자/춘심/국아여기봐/짐그래/들국화/눈부신/슈가슈가슈가너만이나의스타/외로운쿠키/론/박지민/꺄룰/핑슙/밤비/탱탱/밍/녹차/페이볼/달걀/짱구/마름달/슈팅가드/천상여자/짱구/토끼/밀짚모자/햄쮸/젤리/들레/이부/짐짐/미니미니/제이/이삐/매직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