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하.. 일어나보셔요.. 눈을, 뜨셔야 합니다.. "
경수의 눈에 눈물이 일렁였다. 어느새 제 품안에서 눈물을 훌쩍이는 왕자의 머리를 한번 쓸어준 뒤, 뒤에 서있는 어의에게 턱짓으로 황제를 가르켰다. 어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가실듯하시다.. 당황하며 허둥대던 어의가 재빨리 경수의 반대편에 꿇고 앉아 진맥을 짚기 시작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가고 덜덜 떨리는 손에 주먹을 한번 꾹 쥔 뒤 내리깐 눈을 조용히 들어 어의를 쳐다보자 어의가 경수를 향해 고개를 젓는다. 아.. 왕자를 안고있던 경수의 손이 힘없이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곧이어 침실 밖에 서있던 내시가 급하게 들어와 방안의 상태를 둘러본 뒤, 큰소리로 소리쳤다.
황제폐하께서 승하하셨다!
작천국(酌天國)의 태조 박헌이 붕어했다.
An Emperor Mistres : 제왕의 첩
W. 라리아
하얀상복을 차려입은 경수가 느릿하게 눈을 떠 장지문을 바라본다. 마마, 폐하께서 드셨나이다.. 늙은 상궁의 알림에 멍하니 앉아있던 경수는 몸을 일으켜 매무새를 단장했다. 모시어라..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정갈하게 황룡포를 차려입은 찬열의 모습이 보인다. 찬열이 입고있는 빛나는 금빛의 황룡포가 눈이 저리도록 당당했다. 내 아이는 어디에 있는거지.. 문득 왕자의 소식지가 궁금해져왔다. 그러나 이내 눈을 꾹 감았다 뜨곤 찬열을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췄다. 그대의 어미가 내 생명줄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입안에서 이 독하고도 잔인한 말이 맴돌았다. 그러나 입 안쪽 여린살을 파득 깨물으며 참고 또 참았다. 살아야 했기 때문에, 경수의 이유는 그게 다였다.
경수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찬열에게 앉으시라 손짓했다. 버릇처럼 아래에 앉으려던 찬열은 아.. 하는 작은 감탄소리와 함께 상석으로 자리를 옮겨 경수를 바라봤다. 눈 밑이 붉은 것이 또 울은 것인가 싶어 찬열의 마음이 아릿해져왔다. 궁의자락에 감춰진 경수의 손이 버릇처럼 바들바들 떨려왔다.
" 마마께서는.. 몸상태가 좋아보이시진 않습니다.. "
" 말씀 낮추세요 전하.. "
" 아니요.. 그래도.. 전황제의 가장 아끼시던 후궁이신데.. "
전 황제의 후궁, 그 말을 내뱉을때마다 찬열은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고 또 참았다. 전황제, 그래 이제는 내가 황제지.. 자신이 입고있는 황룡포를 슬쩍 내려본 찬열이 다시 눈을 들어 경수를 찬찬히 살펴내렸다. 능선이 고운 하얀 이마에서 천천히 내려오면 단정한 눈썹이 보이고 그 아래로 영롱히 빛나는 눈이 있다. 그 눈은 자신을 바라 보고 있었다. 여인이 아닌 남자인데도 이리 고울수가 있을까.. 이상하게 찬열의 마음 한 구석이 휑했다.
지명군은 어디있습니까? 찬열이 궁녀가 내온 차를 들어 입술을 축였다. 손가락으로 찻잔의 주둥이를 매끄러히 쓸던 경수가 고개를 들어 갸웃했다. 아시면서 왜 물으십니까? 폐하의 어머니, 그러니까 모후께서 어젯밤 같이 침수를 드신다고 데려가셨습니다. 그 목소리가 퍽이나 원망스러워 찬열은 피식하고 웃어보였다. 제 지아비를 죽인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꾀나 빨리 알아챈거 같았다. 똑똑한 이니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경수는 몰락한 문관 가문의 막내 아들이었다. 첫째 아들은 무관이 되어 변방으로 내쳐졌고 둘째 여식은 늙고 호색한 장사치의 첩으로 가서 소식조차 알 수 없었다고 들었다. 작은 초가집에 제 몸 하나 간신히 연명하는 것을 승하한 황제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어 들어 와 내리 사랑을 그대로 받고 어쩌다 황제의 승은을 받아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죽어벌린 낮은 품계의 후궁의 아이를 제 슬하에 넣어 지명군이라는 왕족의 호칭을 지어주고 행복하게 살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짧디 짧은 5년의 세월에 불과했다. 지금은 그저 권력싸움에서 밀려 죽어버린 황제의 후궁으로써 언제 궐밖으로 내쳐질지 몰랐고 그마저도 황제의 모후의 눈밖에 거슬려서 목숨이 끊길지도 모르는 조그만 새, 그것이 경수와 지명군이었다.
" 저와.. 지명군은.. 언제 궐밖으로 나가도 좋은 것입니까? "
" 예? "
" 모시던 황제가 죽으면, 그 후궁과 왕자는 궐밖에 나가 죽은 듯이 사는 것이 관례 아니옵니까. "
냉기가 흐르는 목소리로 무심하게 말을 내뱉은 경수는 미소짓고선 차를 들어 홀짝거렸다. 그 말 뜻은 그만 저를 탐내고 내보내달라.. 이건가? 예상외로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찬열을 놀란 눈으로 응시한 경수가 찬잣을 내려놓고 숨을 깊게 내쉰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제 그만 저와 지명군을 탐내십시오. 저는 태조의 후궁, 지명군은 태조의 왕자. 당신의 태조의 동생. 현 황제이십니다.
경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둘 사이에 놓여져있던 반첩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옆으로 밀려지고 찬열이 거칠게 경수를 눕혀 그 위로 올라탔다. 예상이라도 했던 일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찬열의 아래에서 그를 올려다보는 경수의 눈빛이 쓸쓸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빛이났다. 그렇지 짐은 황제지.. 그 눈을 바라보다 한자한자 곱씹어 보듯 내뱉던 찬열이 밖에서 들어오려던 상궁과 내시들에게 들어오지말라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상궁과 내시들은 허둥지둥대다가 소리를 죽이고 물러났고 찬열은 길다란 손가락에 경수의 옷고름을 말더니 천천히 풀어내렸다.
다 풀어진 상복 사이로 뽀얀 경수의 가슴팍이 고왔다. 엄지손가락으로 찬찬히 목덜미를 쓸어내리던 찬열이 경수의 얇은 허리에 손을 두르고 끌어당겨 일으켜 앉아 자신의 품에 안았다. 찬열의 품에 안긴채로 앉아 어깨에 기대 숨을 죽이던 경수가 딱딱한 목소리로 찬열의 귓가에 속삭였다.
" .... 차라리 죽여주시지요 "
" 그대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보고싶지않은가? "
" 그럼 이 자리에서 죽겠다.. 그 말씀이십니까? "
" 당돌한 말이군, 그 말을 내 뱉은 지금 이 순간 그대는 역적이 되었다. 그대의 아들 지명군 또한 역적이지.. "
다 드러난 경수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눈을 감은 찬열이 찬찬히 눈을 뜨고 머리를 단단히 받쳐주던 비녀를 뽑아내었다. 결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다 드러난 경수의 새하얀 어깨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 * *
찬열이 물러가도 경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옷깃을 여밀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다 풀러진 머리자락이 바람새에 조금씩 나풀거렸다. 눈가에 맺힌 눈물도 바람새때문일까.. 그대로 흘러내렸다. 그 눈물마저도 어떻게 닦아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황제는 욕심이 많은 남자였다. 그러기에 제 형을 죽일 수 있었고 그 자리에 올라 그의 모든 것을 탐내하는 것이겠지.
" 이리 계시면 고뿔이 드십니다 "
펄럭이며 파란 옷자락이 경수의 몸을 덮었다. 힘이 들어가지않는 고개를 들어 경수가 올려보자 백현이 미소지었다. 안녕하셨습니까.. 대답할 힘도 나지않는거같아 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 몸에 덮어진 옷자락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상궁들과 내시들은.. 열려진 장지문 사이로 아무도 보이지않는다. 지명군을 데려오라했습니다, 모두 모후전으로 갔지요. 경수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금방이라도 울음소리가 바깥으로 샐까봐 움켜쥔 주먹을 다시 고쳐쥐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백현이 열려져있던 장지문을 닫고 경수의 앞으로 가 한쪽 무릎을 꿇고 물끄러미 내려봤다. 가녀린 사람.. 백현이 경수를 품에 안았다.
이제 우셔도 됩니다. 아무도 못들어요, 들어도 말하지 못해요 내 품이니.. 그 말에 참았던 경수의 눈물이 팍하고 터졌다. 엉엉 소리내며 제 가슴을 모질게 치기까지하는 경수의 손목을 잡은 백현의 손가락이 길고 아름다웠다. 한쪽 손으로는 경수의 머리를 가만가만 쓸어주었다. 그 손길에 울던 경수의 울음도 조금씩 잦아들었고 헐떡대던 소리마저 멎을무렵 경수가 백현의 어깨를 밀어내고 눈물젖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 왜, 왜! 황제가 아니십니까? "
" .... "
" 왜 황제가 될 마음조차 먹지않고!! 저를 이리 궁지로 모는 이를 황제로 만드시는데 동조하신겁니까? "
" ... 죄송하다 말씀 드려야 되는겁니까? "
" 제게 죄송한 마음이 들긴 하십니까? 죄송하시다면 지금 당장 궁밖으로 저와 지명군을 내보내주십시오 "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백현을 보며 고개를 돌린 경수는 파란 궁의를 고이 접어 백현에게 건네고 자신의 옷고름을 묶고 매무새를 정리했다. 방 한쪽에 넝그러져 있는 비녀를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다가 거칠게 손에 쥐곤 솜씨좋게 머리를 땋아 올린 경수가 다른 비녀를 꺼내 머리에 장식했다. 이 비녀는 가져다 버리라 일러야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소중한 것을 두는 듯한 섬세한 손길에 백현의 눈썹이 일그려졌다.
저는 황제감이 아닙니다, 제 형이 황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요. 궁의자락을 걸치며 옷고름을 묶은 백현이 경수의 앞에 앉아 흘러내려온 머리카락 한 줄기를 귓가에 넘겨주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경수가 빠져나가려던 백현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느릿하게 뜬 눈이 마주했고 경수는 흐릿하게 미소지었다. 그 모습이 한폭의 수채화같았다.
" 제가 불쌍하십니까? "
" .... 예.. "
어깨를 으쓱한 백현이 잡힌 손에 힘을 주어 경수의 손을 다시 고쳐잡았다. 이제 궁밖에 나가는 것은 무리겠지요? 한줄기의 희망이라도 기대한듯이 작게 소근거리는 경수의 말에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형님이 오늘 당신을 찾아오지않았더라면 나갈방도는 있었겠지요.. 손을 놓고 몸을 일으킨 백현이 장지문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돌려 경수를 바라봤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경수의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간절함을 듬뿍 담고있었다. 그 안에 연모하는 마음도 있으면 좋으련만.. 마음이 참 썼다.
도와주세요 대군.. 울먹이는 경수의 부탁은 백현은 언제나 거절하기 어려웠다. 저와 지명군을 살려주세요.. 이 궁에서.. 살아갈수있도록.. 곧이어 눈물방울을 흘리며 백현을 바라보던 경수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백현의 발목을 잡았다. 조그만 손이 바들바들 떨려오는게 눈에 선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안타까운지 누군가 지나가는 이가 보았더라도 거절할 수 없을만큼 가슴이 절절해져왔다. 그 부탁이 경수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아들을 위한 것인지 알 방도는 없었다.
" 조금 기다리시면 그대를 도울 이를 보내겠습니다 "
" ... "
" 누구도 연모하지마세요, 제 것이 될 수 없다면.. "
백현이 내뱉은 그 말이 너무나 써서 경수는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 * *
작가의말 |
됴총이다 됴총!!! ㅇㅁㅇ!!!!!
엑소 멤버들이 경수를 사이에 두고 권력싸움하는 내용이죠 뭐...ㅋㅋㅋ 그 사이에서 경수는 묵묵히 사랑만 받냐? ㄴㄴㄴㄴㄴ 경수 또한 그 엑소 멤버들과 눈치싸움 권력싸움 열심히 합니다 ㅋㅋㅋ
그럼 경수의 마음은 누구에게로? 음.. 그건 쫌 더 생각해봐야되겠어요 *^^*
오늘은 백현이와 찬열이만 나왔지만 내일은 준멘 종인 세훈 엑솜 멤버들까지 천천히 내보낼생각입니다 순서는... 내 맘대로!! ^^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