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뒤에. 세훈이 좀 깨워."
교탁앞에선 담임인 찬열의 말에 세훈의 앞에 앉은 아이가 세훈을 흔들었다. 야, 일어나. 담임왔어. 느어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엎어졌던 몸을 세운 세훈이 눈을 부비다 몸을 쭉 늘이며 기지개를 폈다. 5교시부터 쭉 잠든 터라 퉁퉁 부은 눈을 부릅뜬 세훈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눈을 뜬 세훈의 시선이 제일먼저 향한곳은 준면의 자리였다. 어, 어디갔지? 얌전히 앉아 선생님의 말을 경청해야할 준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준면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도 잠시, 교탁앞에선 찬열의 목소리에 세훈은 준면의 자리에서 시선을 거뒀다. 교탁앞에선 찬열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이를 훤히 보이며 싱글싱글 웃음짓고 있었다.
"선생님이 좋은 소식을 하나 들고왔다."
단축수업, 재량휴일 등등 갖은 추리를 쏟아내는 아이들을 잠시 지켜보던 찬열이 교탁을 두드리며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신을 향하는 수십개의 눈을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은 찬열이 말햇다.
"내일부터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된다."
그게 무슨 좋은소식이냐머 야유를 쏟아내는 아이들을 향해 조용하라는 듯이 입에 손가락을 갖다댄 찬열이 교실이 어느정도 조용해지자 손가락을 떼고는 그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다며 이번에는 믿어보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기 많기로는 학교에서 손에 꼽히는 자신들의 담임이기에 믿음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건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앉아 찬열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다음주 부터는 보충수업!"
찬열의 말에 책상을 치고 발을 구르며 야유를 보내대는 아이들을 보며 찬열이 경쾌하게 외쳤다. 자 그럼 청춘들아, 마지막 자유를 즐겨라! 오늘 종례는 끝!
찬열에게 보내던 야유로 가득찼던 교실안은 가방을 챙기고 책걸상이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여 어수선하게 변했다.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에 대해 불만을 내비치며 하나둘 아이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찬열이 느즈막히 교실을 빠져나가는 세훈을 불러세웠다. 찬열의 부름에 교탁 앞으로 걸어간 세훈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자신을 보고 히죽대며 웃기만 하는 찬열을 보며 세훈이 입을 삐죽댔다.
"왜요."
"이놈 시끼, 쌤한테 말버릇 봐라."
"…왜 부르셨어요."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세훈의 어깨에 팔을 두른 찬열이 세훈을 데리고 교무실로 향했다. 너 인마, 오늘 수업시간에 뒤로 나갔지? 교무실에 이선생이 니 얘기 하더라. 멍 하게 창밖만 보고있다고. 봄타냐? 어? 좋아하는 애라도 생겼어? 옆구리를 쿡쿡찔러내는 찬열의 말에 어색하게 웃은 세훈이 고개를 저었다.
"저 좋아하는애 없는데요."
"에이, 누군데. 말해봐."
"정말 없다니까요."
"부끄러워하지말고."
"아, 쌤!"
"아, 깜짝이야. 없으면 없는거지 왜 소리를 질러."
"쌤이 자꾸 물었잖아요."
"내가 그랬었나?"
얄미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 찬열이 세훈의 어깨에 둘렀던 손을 풀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입을 삐죽대며 찬열을 따라 교무실로 들어간 세훈의 품에 종이뭉치가 한아름 안겨졌다. 대충 내용을 훑어보니 찬열이 보충시간에 쓸 학습지를 만든것 같았다. 종이뭉치를 든채 멀뚱히 서있는 세훈을 교무실밖으로 데리고간 찬열이 교무실 맞은편에 있는 남교사 휴게실을 가르켰다.
"저기 들어가서 준면이랑 학습지 순서대로 정리좀 해."
"네?"
"수업시간에 지적받은거 벌 받아야지. 학습지 정리해."
"아니, 누구랑 하라구요?"
"준면이. 김준면. 우리반 반장."
그럼 부탁한다, 어? 자신의 등을 떠민 찬열이 사라진 교무실의 닫혀진 문을보며 세훈은 그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고개를 들어'남교사 휴게실' 이라고 적힌 푯말과 손에든 학습지 뭉치를 번갈아보던 세훈이 남교사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열린 문틈으로 학습지를 정리하고 있는 준면이 보였다. 세훈의 인기척에 고개를 든 준면이 문앞에 서있는 세훈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어? 너도 쌤이 시킨거야?"
"응."
"무겁겠다. 이리줘."
세훈이 들고있는 종이뭉치의 반절 정도를 든 준면이 휴게실안의 넓은 책상위에 올려두고 세훈에게 손짓했다. 아까부터 내가 계속하긴 했는데, 너랑 같이 하면 더 빨리 끝나겠다.사실 이것때문에 종례시간에도 교실에 못갔거든. 책상 한구석에는 이미 준면이 분류해놓은 학습지가 쌓여 있었다. 세훈이 가져온 학습지 뭉치와 준면이 미처 끝내지 못한 학습지를 한데 모은 준면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 후딱 끝내고 가자! 화이팅!"
해맑게 외치는 준면을 따라 어, 화, 화이팅! 하며 따라 외친 세훈이 학습지를 집어들었다. 학습지 위에서 가끔 부딪히는 손과, 스치는 어깨, 그때마다 미안하다며 웃는 준면의 미소에 세훈의 가슴이 간질거렸다.
사춘기 메들리
w.슈크림붕어빵
02
"으어, 끝이다!"
준면이 손에 든 학습지를 스테이플러로 고정하고 내려놓자 세훈이 기지개를 피며 찌부드드한 어깨를 풀었다. 세훈이 뭉친 어깨를 두드릴 동안 학습지를 한데 모아 차곡차곡 쌓은 준면이 손을 모아 머리위로 쭉 피고는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크, 우리가 했지만 정말 완벽하지 않냐."
준면의 어깨에 팔을 두른 세훈이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으며 감격어린 목소리리로 말하자 준면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수고했어. 너 아니였으면 오늘 다 못끝냈을껀데.
"고마우면 밥사던가."
"밥은 무슨. 벌받는 주제에."
어깨동무를 한 둘의 머리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찬열의 얼굴에 세훈이 소리를 지르며 준면에게서 떨어졌다. 아, 쌤 뭐에요. 간 떨어질뻔 했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가슴에 손을 올린 세훈이 찬열을 향해 원망섞인 말을 내뱉자 찬열이 세훈과 준면 두사람의 머리위로 손을 올렸다. 수고했다, 중생들아. 선생님이 맛있는거 사주고 싶은데 학기초라 시간이 없네.
"그럼 말을 하지 말던가요."
"이놈이 말하는거 봐라."
뭐하러 말을 하냐고… 투덜대는 세훈의 목에 헤드락을 건 찬열이 켁켁대는 세훈의 머리를 흐트러 트리고는 팔을 풀어주었다. 졸린 목을 매만지며 콜록대는 세훈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준면에게 찬열이 만원짜리 한장을 건넸다.
"가는길에 세훈이랑 뭐 사먹어. 수고했다."
"어, 감사합니다. 잘먹을께요. "
꾸벅 고개를 숙이는 준면과 그런 준면을 흐뭇하게 보는 찬열을 흘겨본 세훈이 찬열에게 태클을 걸었다.
"만원가지고 누구 코에 갖다붙여요."
"아, 싫으면 말고. 준면아, 돈 다시줘."
"감사히 잘먹겠습니다. 선생님."
"진작 그러던가."
세훈의 이마에 딱밤을 날린 찬열이 남교사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아오 아파… 이마를 문지르는 세훈을 보며 킥킥대던 준면이 세훈을 남교사 휴게실 밖으로 떠밀었다. 빨리 가자. 늦었어. 준면의 말에 핸드폰을 꺼내들고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7시 30분 이었다. 오늘은 보충수업도 없었으니 4시 30분에 마쳤으니 세훈과 준면은 그 후로 장장 3시간여를 찬열의 학습지 제작에 쏟아부은 셈이었다. 수백장의 종이를 만진 손끝이 저릿하고 어깨도 찌부등했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그 시간동안 준면이 곁에 있었으니까.
남교사 휴게실의 불이 꺼지고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문을 살짝 흔들어 문이 잠겼는지 야무지게 확인까지 마친 준면이 열쇠를 들고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앞에서 준면이 나오길 기다리던 세훈은 준면이 나오자 함께 교실로 향했다.
"쌤이 준 돈으로 뭐 먹지?"
세훈의 물음에 곰곰히 생각하던 준면이 입을 열었다.
"떡볶이."
"그럼 순대도."
"튀김은?"
"좋지. 아, 김밥도 먹고싶은데."
"그럼 후식은 아이스크림으로?"
"콜."
순식간에 메뉴결정을 끝낸 두사람이 가방을 매고 학교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아침에 타고온 자전거를 끌고온 세훈이 준면과 함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걸었다. 교문이 보일때 즈음, 준면이 세훈의 자전거를 가르키며 물었다. 자전거 어떡하지? 미안해, 나는 걸어다녀서… 계속 끌고가기도 그렇잖아…
"에이, 괜찮아. 자전거 별로 안무거워. 그냥 끌고가면돼."
"그래도…. 아, 아니면 반틈은 내가 끌고, 반틈은 니가 끌고. 번갈아가면서 끌까?"
아, 이것도 좀 아닌가… 별것도 아닌 자전거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 준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세훈이 웃음을 터트렸다. 왜, 왜 웃어… 세훈이 웃는 영문을 몰라 눈을 꿈뻑이는 준면을 곁에 세워둔 세훈이 자전거에 올라탔다.
"야, 타!"
"어?"
"뒤에 타라고. 자전거 하나가지고 뭐가 그렇게 심각해. 같이 타고 가면되지."
"나 무거울껀데."
"괜찮아. 빨리 타라, 배고프다."
배고프다는 세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준면이 세훈의 자전거에 올라탔다. 엉거주춤하게 앉은채로 손을 어깨위로 올리는 준면을 흘끔 돌아본 세훈이 말했다. 허리잡는게 나을껄, 위험해.
"그, 그런가?"
"어."
어깨위에 올려둔 손을 허리께로 내린 준면이 세훈의 조끼를 붙잡았다. 조끼가 당겨지는 느낌에 세훈이 그렇게 말고 허리를 붙잡으라 말하자 준면이 멋쩍게 웃으며 허리에 손을 감았다. 세훈의 허리와 준면의 팔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생겨났지만, 여기서 더 꽉 붙잡으라 말하는것도 우스운일인것 같아 세훈은 꼭 잡으라는 말과 함께 자전거를 밟았다.
움직이기 시작한 자전거가 교문의 턱에 걸려 덜컹 거리자 흔들리는 자전거에 놀란 준면이 세훈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허리를 죄어오는 준면의 팔에 세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며 벚꽃이 만개한 길을 달리는 자전거는 잠시뒤 한 분식집앞에 멈춰섰다. 세훈이 자전거에 자물쇠를 감는 사이 먼저 분식집으로 들어간 준면이 떡볶이와 순대, 튀김과 김밥을 시켰다. 세훈이 분식집으로 들어왔을때에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은 준면이 세훈몫의 수저와 물까지 셋팅을 끝낸 후였다. 세훈이 자리에 앉아 준면이 가져온 물 한컵을 다 마실때즘, 준면이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테이블에 놓여진 음식을 보며 젓가락을 쥔 두사람의 눈이 반짝였다.
"맛있겠다."
"어, 배고파 죽겠다."
눈앞의 음식을 본 두 사람은 아무말없이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먼저 김밥을 하나 먹어 빈속을 달래고, 바삭한 튀김과 따끈한 순대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 입안에 쏙쏙 밀어넣엇다. 매콤한 떡볶이맛에 호호 입도 불어가며 주문한 음식을 모조리 비운 두사람이 부른배를 통통 두드리며 물 한겁을 쭉 들이켰다. 아, 좀 살겠다. 나른한 미소를 지은 세훈이 히죽대고 있는 사이 준면이 휴지하나를 뽑아들고 세훈에게 내밀었다.
"너 입에 묻었다."
"어디, 여기?"
엉뚱한 곳을 휴지로 닦아대는 세훈을 보며 거기가 아니라며 답답한 표정을 짓던 준면이 직접 휴지를 들고 세훈의 입가를 닦아냈다. 준면의 돌발행동에 딱딱하게 굳은 세훈의 가슴이 시끄럽게 요동쳤다. 그런 세훈을 아는지 모르는지 깔끔해진 세훈의 얼굴을 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은 준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면이 음식 값을 치르고 오는 동안에도 세훈은 내내 굳어있었다. 준면이 남을 배려하는것이 몸에 베인 사람이란걸 모르는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공격은 당황스러웠다.
"오세훈, 무슨 생각해?"
바로 코앞에 쑥 들이밀어진 준면의 얼굴에 세훈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까,깜짝이야… 티슈로 입닦아주기, 초근접 얼굴 갖다대기로 2콤보 타격을 입어 버벅거리는 세훈을 본 준면이 킥킥댔다. 뭘그렇게 놀라고 그래.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옆 의자에 내려둔 가방을 맨 준면이 먼저 분식집을 빠져나갔다. 멀어지는 준면의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서있던 세훈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아 진짜, 김준면…"
화끈거리는 얼굴을 양손으로 벅벅 문지른 세훈이 분식집을 나섰다. 자전거 옆에서서 자신을 기다리는 준면을 본 세훈은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감추어준 어두운 밤하늘에 처음으로 감사인사를 올렸다. 살다살다 밤하늘에 감사인사를 올릴일이 생길줄이야… 오세훈 인생에 전무후무할 일이었다. 어찌되었든, 세훈은 어느날 시작된 짝사랑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있는 중이었다.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어내린 세훈이 자전거에 올라타자 뒷자리에 앉은 준면이 세훈의 허리를 붙잡았다. 허리에 닿는 준면의 온기에 몸을 움찔한 세훈이 천천히 자전거를 밟기 시작했다. 아까 까지만해도 조금 설렐뿐이었는데 분식집에서 2콤보로 공격을 당한 지금, 이상하게 가슴이 쿵쾅거렸다. 귓가에 쿵쿵 울리는 심장소리가 혹시 준면에게도 들릴까싶어 세훈은 조금 빠르게 자전거를 몰았다. 밤거리의 소음과 자전거가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소리에 자신의 시끄러운 심장소리가 조금이라도 묻혀지길 바라면서.
:) 둘의 데이트임다 데이트라고 우길래 낄낄
준씨눈.. 티슈로 입닦는 사소한 스킨십에도 심쿵하는 우리의 세훈이 (애도)
:) 아아, 우리 고딩게이들.. 풋풋하고 좋네요..
근데 나는 고딩때 저런 풋풋한 연애 못해봄ㅋ
그래서 뭐.. 대리만족하는거죠 뭐.. 그렇다고..(눈물을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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