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환아. "
" ........ "
" 재환아, 내가 부르잖아. "
홍빈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아무 감정없이 묵묵히 재환을 부르는 홍빈.
이내 마지못해 돌아본 재환의 얼굴과 교복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천천히 일어나 홍빈에게로 다가온 재환은 그와 눈도 못 자주치며 여전히 안전부절 떨고있었다.
" 필기정리 다했어? "
재환과 다르게 홍빈은 그를 똑바로 직시하며 차분히 물었다.
바들바들 떨던 재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공책한권을 가져왔고,
그걸 건네받은 홍빈은 훑어보기 시작했다.
" 재환아. "
" 어... 어? "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재환의 이름을 부르는 홍빈.
시선은 공책에 고정되어있었다.
한손으로 휙휙 넘겨가며 훑던 홍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들고있던 공책으로 재환의 머리를 내려쳤다.
" 이딴것도 정리라고 했니? "
" 미안해.. "
제법 쎄게 맞은듯한데도 꿈쩍않고 가만히 있는 재환이 조금은 답답했다.
조용히 공책을 갖고 자리로 돌아간 재환은 책상에 엎드렸고, 여리게 어깨가 떨리는게 보였다.
" 차학연? 창원? "
다시 자리에 앉은 홍빈이 다리를 꼬으며 나와 눈을 맞췄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당당할려 했는데 그와 눈이 마주치자 왠지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 원식아, 창원이 어디야? "
" 어? 저기 밑에 경남.. "
손톱을 뜯으며 넌지시 묻는 홍빈의 질문에 옆에 서있던 원식이란 아이가 답을 할려고했지만,
이내 올려다보는 홍빈의 눈빛을 읽은건지 말을 바꾸는 원식이었다.
" 몰라, 어디 촌구석이겠지. "
다들 나를 비웃고있다. 키득대는 소리가 교실에 가득찼고,
수업시작 종이 울리자 다들 자리로 돌아갔다.
곧이어 1교시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홍빈의 태도는 또 다시 바뀌었다.
" 선생님! 오늘 전학온 친구가 있습니다. "
" 어머, 그래? 어디? "
" 제옆에 학연이라는 친군데 창원에서 왔대요. "
" 아, 정말? "
" 네, 그래서 그런데 학연이가 교과서가 없습니다. 같이봐도 될까요? "
" 홍빈이는 역시 마음씨도 곱구나, 그렇게하렴. "
홍빈이 학연의 책상을 끌어 자신에게 밀착시켰고, 가운데 교과서를 두었다.
하지만 홍빈은 그 어떤 말도 걸지않았다.
수업에 집중하며, 필기하나 놓치지않았고, 학연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런가보다싶어 책상에 엎어진채 한참을 잔 것 같다.
잠시 후 누군가 깨우는듯해 몸을 일으키자 홍빈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까운 그의 얼굴에 놀라 뒤로 주춤하니 어깨를 쥐며,
점심시간이라고 사람 좋게 웃으며 교실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 점심 뭐 먹을래? "
" 오늘 급식 완전 꽝이야. "
" 그래? "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홍빈덕에 모두가 멈춰섰다.
원식과 처음보는 아이, 그리고 홍빈과 학연.
복도에 우두커니 서선 무슨일인가싶어 홍빈을 바라보자
학연을 위아래로 훑으며 피식 웃는 홍빈이었다.
" 그럼 난 학연이 먹을래. "
" 어? "
반항할틈? 그런게 있을리가.
순식간이었다.
홍빈의 한마디에 처음보는 아이와 원식이가 학연을 붙잡았고,
화장실로 끌려가다싶이했다.
" 뭐하는거야? "
" 배고프잖아. "
" 그런데? "
학연도 남자지만 남자2명의 힘을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학연보다 훨씬 덩치가 좋은 둘.
학연의 팔을 붙잡고 셔츠단추를 풀려는걸 거세게 반항했다.
이름모르는 아이의 왼쪽가슴팍엔 '정택운'이라고 수놓아져 있었다.
그의 팔을 쳐내고 사이를 비집고 도망치듯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교실로 돌아와 이게 무슨일인가 생각할 겨를도없이 홍빈과 택운,원식이 교실로 돌아왔다.
" 에헤이.. 학연이가 싫은가보네. "
" ..... 제 정신이 아니구나? "
" 어쩔수없지, 재환아 따라와. "
밥을 먹지않은건지 자기자리에 앉아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있는 재환.
지금 그가 저들을 따라가면 무슨일을 당할지 학연은 알고있었다.
자신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재환의 팔목을 잡았다.
" 가지마. "
" 이거 놔.. "
" 가지말라고 멍청아!! "
" 니가 무슨 상관인데? 이거놔. "
학연의 손을 뿌리치고 재환은 그들에게로 향했다.
희미하게 들리는 웃음소리가 학연을 조롱하는듯 했다.
귀를 틀어막고 자리에 앉아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전학온 첫날 선생님앞에선 착한척. 뒤에선 .....
그리고 그 타켓은 재환인듯 했다.
전학왔단이유로 자신으로 타겟을 바꾸려한것 같지만 반항하자 포기한거 같고..
학연은 머리가 아파옴을 느끼고 두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후.. 하는 짧은숨을 내쉰 학연은 재환이 나간 뒷문으로 시선을 옮겼고,
이건 아니다. 란걸 느꼈다.
아침 조례시간에 폭행 1번.
그리고 지금은 상상도 하기싫은 추악한일이 벌어지고 있을것이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들의 행동.
재환은 그동안 얼마나 고통받고 있었을까.
학연은 다시 한번 얼굴을 감싸진뒤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겁웠지만 한걸음한걸음 힘겹게 교무실앞에 도착하자 그 다음이 걱정됐다.
' 내가 이 사실을 선생님들에게 알리면 재환이는 어떻게 되는거지?
전학 첫 날부터 내 이미지가.. '
문을 열려던 손을 걷어내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교사용화장실에 또 다시 재환이 떠올랐고,
죽을때 죽더라도, 할말은 하고 죽어야한단 생각에 다시 교무실 손잡이를 잡았다.
나무와 쇠의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선생님들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구석에 앉아있는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조심스레 입을 뗏다.
그녀는 아침과 같이 꽃무늬원피스에 분홍색 가디건을 걸치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학연을 올려다보았다.
" 무슨일이니 학연아? "
" 선생님, 재환이가 큰일났어요. "
" 뭐?? 재환이? 재환이가 왜? "
" 그.. 홍빈이란 아이가. "
" 어머, 홍빈이가 재환이랑 싸우기라도 했니? "
" 아뇨, 더 심한.. "
" 학연아, 너가 뭘 잘못 알고있는거 같아. 재환이는 항상 그런아이고, 홍빈이는 그럴아이가 아니야. "
" 그럴 아이라뇨? "
" 음.. 사건사고를 부른다고나 할까? "
" 아니, 선생님… "
" 선생님 바쁜데 그만 가주면 안돼? "
이홍빈. 그녀석이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 것인가.
학연은 마른입술을 핥으며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것 같았다. 하고싶은 얘기는 단 하나도 하지못했다.
멍하니 신발을 질질 끌며 신관으로 향했다.
교실로 돌아와 여전히 멍하게 자리에 앉아 앞을 바라보자 재환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침처럼 엎드린채 여리게 어깨를 떨고있는 아이.
갑자기 쏟아지는 잠에 책상에 엎드렸다.
아.. 차학연 잠신이라도 들렸나?
정신을 차리고보니 벌써 하교시간이었다.
어떻게 잤다하면 4시간 3시간이니 학연아..
책상옆에 걸어둔 가방을 들쳐매고 뒷문으로 향했다.
모두가 나간 텅빈교실을 다시 한번 둘러보자, 아직있는 단 한명.
이재환
" 재환아 안가? "
" 어? 어.. 가야지. "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매곤 도망치듯 앞문으로 나갔다.
학연을 그런 그를 따라가 괜시리 친한척 어깨동무를 하며 "짜식아! 같이가자." 하며
장난스레 재환의 등을 퍽퍽 쳐내렸다.
집의 방향은 같았고, 한참 걷던 중 제법 화려하게 꾸며놓은 공원이 보여
재환의 손목을 잡아끌어 아무 벤치에나 앉았다.
잠시만 기다리라말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수 2개를 사
하나를 재환에게 건네주었다.
" 고마워.. "
" 재환아, 무슨일 있어? "
" 어? 뭐가? "
" 이홍빈이랑 걔네 너한테 왜 그래? "
" 글쎄.. 왜 그럴까. "
학연의 질문에 씁쓸하게 웃은 재환이 음료수를 한입 홀짝이곤 벤치에서 일어났다.
"늦었어.. 나 먼저갈게." 그말을하고 뒤도는 재환의 등에 외쳤다.
" 재환아! 난 네 친구되줄수 있으니까, 힘든거있음 뭐든 말해. "
잠깐 멈춰선 재환이 고개만 돌리고 학연을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온 학연은 여전히 찝찝하고, 알수없는 이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침대에 누워 이것저것 생각하며 잠이 들 쯤
문자알림소리가 들렸다.
「 학연아, 나.. 너무 힘들어.
삻기싫고.. 죽어버리고 싶어. 미안해.
너가 친구라해줘서 정말 기뻣어.
하지만 내일도 그 애들 얼굴을 봐야한단게
너무 괴롭고 힘들어.. 고마워미안해. pm.11:57 」
학연은 눈앞이 막막해졌다.
당장이라도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무언가가 발목을 잡아 끄는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그저 멍하니 문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 학연아!! 아침먹어라! "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을 뜬 그곳은 창원.
원래 살던 그 집이었다.
다시 둘러봐도 자신의 방이 틀림없음을 확인한 학연이
베개밑에 둔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 함을 확인하였다.
' 수신메시지 0건 '
" 이게 뭐야..? "
학연은 믿기지않는 현실에 책상으로 달려가 컴퓨터본체를 급하게 켰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모니터화면이 켜지기만을 기다리던 학연이
파란색 창이 지나가고 배경화면이 뜨자마자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창을 클릭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진정시켜 키보드위에 얹었다.
' 서울고등학교 '
분명 자신이 전학을 갔던 학교.
그 학교는 실제로 존재했다. 하지만 곧이어 뜬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 서울고등학교 3학년 수월반 이모군. 지난밤 11시~12시경 자살. 」
이모군.. 이재환?
11시.. 12시.. 기억하는 메시지 도착시간은 11시57분.
학연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않는 상황에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겨 주방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식사준비에 바쁘셨고, 아버지는 식탁에 앉으셔서 신문을 보고 계셨다.
학연이 그앞에 앉자 아버지는 신문을 접으시며 흠흠,하는 헛기침과 함께 중대발표를 하셨다.
" 학연아, 우리 이사간다. 서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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