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반존대를 써요 /채셔
나는 토가 뚝뚝 떨어지는 입을 소매로 닦았다. 망개는 굳어서 토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우리 망개, 더럽혀져써…. 미안해…. 망개는 후다닥 내게서 떨어지더니 위로 성급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몇 분 있다가 다시 후다닥 내려왔다. 이번엔 얼굴이 약간 빨개진 아랫집 남자와 토끼 같은 남자 둘과 함께였다. 망개는 걸레 몇 개를 들고 와 토를 닦아냈다.
"아, 박지민 진짜 오지랖 부리지 말라고 했지."
"미안해애…. 그냥 집에만 데려다줄려고 했는데."
"혀엉, 나 또 쉬 마려워여."
"야, 넌 왜 자꾸…."
울먹이는 토끼를 보낸 망개는 토와 걸레를 검은 봉지에다 쓸어담은 후 제 옷을 훌렁 벗어 봉지에다 같이 집어 넣었다. 내 앞에 보이는 저게 복근인가. 남자 복근을 처음 봐서 저게 복근인지 모르겠다. 야, 이거 버리고 와. 망개는 아랫집 남자에게 건넸다. '아, 내가 왜 가.', '아, 그럼 나 옷 벗었는데 어떻게 가.'같은 설전이 오고 간 뒤에 아랫집 남자는 욕을 나지막히 내뱉고는 검은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나는 일어서서 허리를 굽혀 미안합니다아, 하고 인사했다. 망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곧 망개는 주머니에서 물 티슈를 꺼내서 몇 장을 뽑아 내 입과 손을 닦아주었다. 밖에서 이렇게 술 마시면 안 돼요. 봐, 여기도 다 더러워졌네에. 망개는 핀잔을 주며 머리카락에 묻은 것까지 꼼꼼히 닦아주었다.
"근데 망개야아…."
"또 다른 거 필요해요? 가져올까?"
"나아…. 한 번만 먹어봐도 돼?"
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망개에게 물었다. 얼른 딱딱해지기 전에 먹어야 하는데.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망개의 배를 툭툭 만졌다. 망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 나는 발꿈치를 들고 서서 망개의 볼을 이로 앙 물었다. 응? 왜 맛이 안 나지? 한 번 더 앙 물었지만, 내가 원하는 맛이 아니었다. 나는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제 자리에 섰다. 비틀거리자 망개는 어어, 하고 내 어깨를 꽉 잡았다. 망개떡 썩어써…. 퉤퉤. 내가 울먹이자 망개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귀여운 게 술버릇이에요? 망개는 작게 속삭이며 물었다. 나는 귀엽다는 말에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 비밀번호가 뭐예요? 얼른 집 들어가자. 안 추워요?"
"…으으응, 싫어."
망개는 내 어깨를 잡고 서서 다시 작게 물었다. 이런 기분으로 집에 들어가긴 싫다. 지금 집은 완전 쓰레기장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냥 인간 망개랑 계속 있고 싶은데에. 내가 망개를 잡고 울먹이자, 망개는 입을 막고 웃었다. 나도 망개를 따라 웃고 있는데, 아랫집 남자가 씩씩거리며 등장했다. 야, 그냥 내버려두고 올라가. 어? 아랫집 남자는 인상을 잔뜩 쓰고는 짐짓 무서운 투로 말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계단에 한 칸 올라서서 눈높이를 맞추고, 아랫집 남자의 인상을 펴주었다. 아랫집 남자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치, 잘생긴 얼굴은 이렇게 써야지. 나는 다시 나를 보고 웃는 망개를 따라 웃었다.
"어, 그거어 내 핸드폰인데에."
아랫집 남자는 나와 망개를 바라보다 고개를 젓고, 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빼갔다. 곧 내 엄지손가락을 잡아들어 핸드폰의 동그라미에 꼭 맞춘 아랫집 남자는 몇 번 핸드폰을 클릭, 클릭했다. 그러더니 누구랑 통화를 한다. 네. 네. 여기 여자 분이 쓰러져 있어서요. 네. 여기 방탄빌이요. 네. 망개의 입술 꼬리가 쑥 내려갔다. 나 망개랑 헤어져야 하는 거야? 나는 울먹이며 망개를 꼭 안았다. 망개가 또 굳는다. 망개떡이랑 여기 있을래애. 내가 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하자 망개는 내 등을 토닥였고, 아랫집 남자는 '앜ㅋㅋㅋㅋ 망개떡ㅋㅋㅋㅋㅋㅋ'하고 빵 터져가지곤 입을 막고 웃었다.
"나 망개랑 있을래애."
"주현이 언닌가, 그 사람 불렀는데요."
"망개느은?"
계속 보채자 남자는 한숨을 푹 쉬며 망개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눈을 깜빡이고 있자, 남자는 핸드폰을 건넸다. 자, 여기 안에 망개 있어요. 나는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았다. 진짜 망개 들어갔네에. 나는 핸드폰을 꼭 안아서 다시 계단에 앉았다. 우리 망개, 나랑 집에서 같이 자자아. 나는 핸드폰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렇게, 잠들었다.
2. 만남의 꽃은 어디에서나 피어난다
이후로는 망개와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이후로 주현이 언니가 올 때까지 아랫집 남자와 망개가 같이 기다려줬고, 언니가 오자마자 망개가 나를 업고 집에다 데려다준 뒤 둘은 내려갔다고 했으니까.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핸드폰에 남겨진 망개의 흔적은 지우지 못했다. 또 다시 만나면 꼭 옷을 사주리라 다짐했으니까,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혹시나 아랫집 남자의 집에 올 일이 있을까, 항상 화장을 하고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아랫집을 힐끔 쳐다보았지만 만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아랫집 남자에게 가서 번호를 물어보는 건 나에게는 너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 일을 다 저지르고 어떻게….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하지만 두 번째 만남은 뜻밖의 장소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기다려도 만날 수 없었는데. 뜻밖에 기획사 홍보 담당 신입사원으로 들어가게 된 거다. 내가 홍보 담당 직원이 될 거라곤 절대 상상할 수가 없었는데. 들어보니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던 윤기 선배가 날 추천해준 모양이었다. 이래서 인맥을 중요시하나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윤기 선배가 정말 무서웠는데, 지내다보니 꽤 친해졌다. 내 힘이 아니라 선배 찬스로 취업을 하게 되니까 모양새는 좋지 않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였다. 놓칠 수도 없고, 놓쳐서도 안 되는 그런 기회.
"회사는 둘러봤어요?"
"아, 아니요."
"아, 근데 내가 지금 좀 바쁜데…."
윤기 선배의 친한 동생이라던 남자는 두리번거리다가 '야, 지민아!'하고 크게 누군가를 불렀다. 어, 호석이 형. 왠지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바쁜 것 같아서 발장난을 치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하고 놀란 티를 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다들 눈치 챘겠지만, 내 앞에는 망개가 있었다.
*
안녕하세요! 역시 첫만남부터 적으니까 엄청 느리네요. 다음 3편부턴 휙휙 진도를 빼야겠어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편에 댓글 적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해요.
열심히 글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