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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담 전체글ll조회 2101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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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먹는 연애 7

해담



 

  미술 시간이 끝나자마자 어디 가냐는 가영이의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백현 오빠가 있는 반으로 달려갔다. 쉬는 시간 때마다 나오는 박찬열은 수업시간에 잠을 잤는지 부은 눈을 비비며 뒷문을 열면서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니 박찬열은 방금까지 찌푸리고 있었던 눈을 크게 뜨고서는 왜 왔냐고 묻는다.


 "앞 길 막지말고 나와."

 "나 보러왔냐?"

 "미쳤냐?"


 별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는 박찬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박찬열이 인상을 확 구기며 나를 쳐다봤다. 박찬열을 보려면 한참을 올려다 봐야 한다. 쓸데없이 키만 커가지고 짜증난다. 교실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어 백현 오빠를 찾을 때였다. 박찬열이 내 목덜미를 잡아 끌었다. 그러고서는 나와 시선을 맞추는 놈이다. 짙은 쌍꺼풀이 꿈벅거린다.


 "변백현?"

 "어디 갔어?"

 "야."

 "어디 갔냐고?"

 "너네 진짜 사겨?"


 내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던 박찬열이 도리어 내게 묻는다. 누가 들을까 얼른 박찬열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아버렸다. 자기 입을 막고 있던 내 손을 무심하게 떼어내던 박찬열이 또 다시 물었다.


 "어."


 귀찮아질까봐 그냥 대답했다. 어차피 박찬열은 눈치가 빨라서 말을 안 해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게 분명했으니까. 박찬열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뜬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황당한듯이 나를 쳐다본다. 네가 걔랑 사귄다고?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들이 박찬열의 말에 우리 쪽을 쳐다본다. 교실 안에 있던 선배들도 나와서 뭔 일인가 물어본다. 나보고 찬열이 동생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누가 이상한 말이라도 주워 듣기 전에 박찬열의 교복 소매를 끌어당겨 계단 쪽으로 향했다.


 변백현이 훨씬 아깝다 야. 박찬열이 또 시비를 건다. 주먹을 꽉 쥐고 박찬열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세게 친 것도 아니고 그냥 장난치는 정도로 살짝 때린건데 박찬열은 엄살을 피우며 자기 머리를 감싸쥔다. 시간이 다 가기전에 본론을 말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려 올라가버린 치마를 손으로 내리며 앉아있었던 계단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백현 오빠는 어딨냐고."

 "그걸 내가 어찌 알아?"

 "같은 반인데 그것도 몰라?"

 "내가 걔 일거수 일투족 감시하는 애냐?"

 "아 진짜 말 대답."

 "걍 꺼지세요."


 박찬열이 내 어깨를 살짝 치고 지나가더니 얄밉게 혀를 내밀어보이면서 교실로 쏙 들어가버린다. 진짜 박찬열은 사상 최악의 쓰레기다. 어떻게 저런 애가 내 오빤지 모르겠다. 내가 더 빨리 태어났으면 아주 갈궈먹었을텐데. 속으로 박찬열을 맘껏 욕하면서 계단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이건 뭐 찾아온 보람도 없다. 괜한 시간만 낭비했다. 다시는 여기 안 올라올거다. 아니다. 백현 오빠는 보러 와야한다.


 "여주야."

 "엥?"

 "어디 갔다와?"


 모퉁이를 돌았더니 갑작스레 저 뒷편에서 백현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홱 고개를 돌려서 뒤를 쳐다봤더니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백현 오빠가 있다. 깜짝 놀라서 손가락질을 했다.


 "오빠는 어디 갔다왔어?"

 "너네 반. 넌?"

 "오빠 반."

 "완전 엇갈렸네."


 백현 오빠 앞으로 다가가 오빠와 같이 벽에 몸을 기댔다. 살짝 내리깐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백현 오빠가 살풋 미소를 지었다. 백현 오빠와 마주보고 있는 와중에도 혹시나 누가 지나가고 있지는 않을까 주위를 둘러봤다.


 "앞으로 반에 가 있어. 여기 찾아오지 말고."

 "오빠나."

 "또 엇갈리면 어쩌려고?"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그럼 나 가만히 있을게."


 오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쓰다듬을 가만히 받고 있는데도 들킬까봐 심장이 떨렸다. 여기에 사람이 없는 것이 참 다행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예비종이 치고 계단 쪽에서 서로 빨리 올라가라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얼른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이럴거면 차라리 점심 시간에 찾아올 걸 그랬다. 1학년이 있는 건물로 통하는 다리를 건너려다가 뒤를 돌아 백현 오빠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오빠가 나를 본다.


 "나 예쁘게 그려줘서 고마워."


 그 말을 하자마자 부끄러워서 바로 몸을 돌려 조급한 발걸음을 했다.








 휴식기에도 바쁜 건 여전했다. 이번에 들어온 새로운 커피 광고를 찍으려 매니저 형의 차를 통해 이동하는 중이다. 허벅지에 올려놓은 책을 한 장씩 넘겨본다. 도서관에서 보았던 시집이 마음에 들어서 직접 서점에 가 구매까지 했다. 책갈피를 꽂아논 페이지를 펴서 꼼꼼히 시를 읽는다. 요즘 따라 왜 이렇게 문학이 좋은지 모르겠다. 핸들을 잡고 있던 매니저 형이 아직 광고 촬영장에 도착하려면 한참이 남았으니 잠이라도 자두라 한다. 아직 잠이 오진 않았다. 들고 있던 시집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잠깐 신호에 걸려 차가 움직이지 않던 때였다. 매니저 형이 옆 좌석을 뒤적이는 것 같더니 찬 물병을 건네준다. 광고 촬영에다가 인터뷰까지 있을 예정이니 목 좀 축이란다. 옆으로 돌려서 뚜껑을 따 물을 마시고 난 뒤에 옆에 있는 서랍에 넣어두었다. 깜빡 잊고 있던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온 연락이 있는지 확인했다. 새로운 메세지가 있다는 알림이 울렸다.


 「잘 갔다와!」


 메세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여주였다. 뭐라 답장하려다가 지금 시간을 보고서는 답장을 하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새벽 두시였다. 지금 메세지를 보내면 여주가 혹시나 잠에서 깨진 않을까 걱정된다. 촬영이 끝나고 난 뒤에나 보낼까한다.


 카톡에 들어가서 그동안 여주와 나눴던 대화들을 쭉쭉 훑어본다. 여주는 자기가 자기보고 애교를 못 부린다 했다. 뭐 핸드폰으로는 잘 부릴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안 되니 그게 문제란다. 그러니 애교 같은 건 바라지도 말란다. 그게 귀여워서 볼을 꼬집었더니 바로 손을 팽개쳤다. 싫다는 어투로 툴툴 거리면서도 얼굴은 금방 붉어진다.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가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너 왜 자꾸 그렇게 웃어대?"

 "안 웃었어요."

 "웃었어, 임마. 예능 보는 중이야?"

 "아뇨."


 매니저 형이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안 웃었다고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매니저 형이 자일리톨을 어디선가 꺼내더니 나한테 두 알을 넘겨준다. 그것을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형."

 "엉?"

 "형 여자친구 있죠."

 "한 달 전에 헤어졌다니까. 아픈 상처를 왜 들추냐?"

 "아 맞아 까먹었어."


 내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미안하다 말하자 매니저 형이 됐다 하면서 다시 핸들을 잡았다. 언제는 자기 여자친구가 한지민이나 박보영보다 훨씬 예쁘다 자랑했었는데. 아쉽게 됐다. 그 때는 별 흥미없이 듣던 매니저 형의 사랑 타령을 이제는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운전을 하고 있던 매니저 형이 그런데 그건 왜 갑자기 묻냐한다. 읽고 있던 시집의 페이지에 다시 책갈피를 끼워 책을 덮어서 시트에 올려두었다.


 "그냥요."

 "뭐가 그냥이야."


 역시나 박찬열만큼 눈치가 빠른 형이다. 뭔가 알아챈건지 주절거린다.


 "너같이 학생 때에는 짝사랑도 쪼까 해보고 까이기도 해보고. 뭐 그러면서 크는거다. 연애도 함 하면 좋지."

 "..."

 "이미 하냐?"

 "뭘요?"

 "아니 전자든 후자든."


 전자는 짝사랑, 후자는 연애. 이미 둘 다 거쳐봤다. 후자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전자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단순간에 끝난 짝사랑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괜히 찔려서 밝게 켜진 핸드폰 화면을 꺼버리고 매니저 형을 바라보았다.


 "전자면 응원하겠는데 후자는 안 된다."

 "모순이죠. 형."

 "이게 왜 모순인데?"

 "짝사랑은 응원하면서 연애는 안 된다는게 뭐야. 모순이지."


 형이 그런가? 하며 얼굴을 벅벅 긁는다. 그렇게 긁어대면 상처가 난다면서 손을 잡아채니 별 걱정이라며 웃어보이는 매니저 형이다.


 "들키지만 마."

 "응."

 "뭐야 진짜 하냐? 새끼야?"


 형의 유도 심문이었다. 그 덫에 내가 걸려버리고야 말았다. 매니저 형이 갑자기 페달을 밟더니 차가 급정차 해버렸다. 몸이 앞으로 쏠려서 모르고 형의 머리카락을 잡아버렸다. 고의가 아니었다. 형이 꽥꽥 소리를 질러댄다. 너 지금 복수하냔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형이 도로 가에 차를 세우고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서는 진짜 연애 하고 있냔다. 누구랑. 어디서. 나이는. 언제부터. 쉴 틈도 없이 들러붙는 질문에 진저리가 났다. 여주가 선물로 준 수면 안대를 꺼냈다.


 "형 마음대로 생각해."

 "야 너 진짜 하냐고?"


 형의 말을 무시하고 수면 안대를 착용했다.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혀 수면을 취하려 했다. 내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데도 불구하고 형은 계속 질문을 했다. 결국 밑으로 안대를 살짝 내리고선 형을 향해 말했다.


 "지각하겠다."

 "아이 씨. 넌 진짜 죽었어."


 형이 다시 시동을 건다. 픽 웃어보인 다음에 다시 안대를 위로 올렸다. 깜깜한 어둠이 드리운다. 매니저 형은 단순해서 탈이다.


 광고 촬영이 끝나고 난 뒤에야 여주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피곤에 절은 눈을 비비고 이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걸음을 옮겼다. 연예가 중계에서 나왔다는 리포터는 나에게 별별 질문을 다 했다. 차기작은 선택했냐.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느냐 등등의. 꼬박꼬박 질문에 대답하며 중간에 카메라를 향해 웃어보이기도 했다.


 "벌써 마지막 질문인데요."

 "아 벌써요?"

 "백현씨랑 함께 하니까 이렇게 시간이 빨리가네요."

 "에이 아니에요."


 손을 연신 휘저어댔다. 리포터가 하얀 치아를 보여주며 활짝 웃어보인다.


 "백현씨의 많은 여성 팬 분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질문 1순위인데요. 이상형은 어떻게 되세요?"

 "이상형이요?"

 "백현씨도 막 하얗고 아담하고 그런 여성분을 좋아하시려나?"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톡톡 쳐보였다. 고민하는 척이다.


 "저는 딱히 정해진 이상형은 없고.."

 "그럼요?"

 "애교 없으신 분. 좀 특이하죠."

 "많이 특이하신데요? 정말 애교가 없으신 분을 좋아하세요? 보통 남성분들이라면 애교에 꿈뻑 죽는게 다반사인데. 애교 없는 거말고 또 있나요?"

 "애교 안 부려도 귀여운 거 티 나는 분. 예를 들면 얼굴 빨개지거나 그런거요. 겉으로는 싫은 척 하면서 얼굴은 빨개지는. 어쨌든 그렇게 태생적으로 귀여운 분."


 리포터가 입술을 오므리고 힘껏 힘을 주더니 자기도 얼굴이 붉어졌는데 어떠냐며 물어본다. 나는 그 농담에 하하 웃어보였다. 화기애애하게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다들 자리를 뜬다. 매니저 형이 차키를 들고 이쪽으로 달려오더니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너 임마."

 "응?"

 "진짜 누구냐고. 설마 김소애야? 아니면 유한솔?"

 "무슨. 아니야."


 김소애와 유한솔은 나와 같이 아역 배우부터 시작한 여자 배우들이었다. 매니저 형이 우뚝 멈춰서더니 진짜 누구냐고 묻는다. 대답해줄 때까지 출발 안 할거라고 한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하면 알아?"

 "뭐?"

 "모르지?"

 "누구냐고? 이름만."

 "박여주라고 있어."

 "걘 누구야? 연예인이야?"


 묵묵 부답으로 대응했다. 형이 너 이러다가 진짜 혼난다면서 겁을 준다. 그만 말하고 빨리 가자면서 형을 끌고왔다. 차에 올라타고 점점 아파져오는 허벅지를 주물렀다. 그러다가 창문을 내려서 쌩쌩 달려가는 차들을 구경했다. 지루하다. 초록색 표지판을 보니 아직도 부산이다. 빨리 가서 여주 보고싶다.







  백현 오빠가 드디어 돌아왔다. 그동안 학교 생활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껏 집에서 박찬열 얼굴 보는걸로도 충분히 지옥이었는데 학교에서까지 박찬열 얼굴을 봐야 한다니 정말 토가 나올 것 같았다. 그 토기를 잠재워주는 백현 오빠가 없으니 진짜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이제 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백현 오빠가 광고 촬영을 끝내고 다시 왔으니 이제 박찬열은 신경 안 써도 된다. 오늘 아침에 기분이 너무 좋아서 노래를 부르니까 박찬열이 자기 귀가 아파한다며 시비를 걸었다.


 오전에는 이동 수업이 꽉 차있어서 백현 오빠를 보러 갈 시간이 남지 않았다. 점심 시간이 되어 백현 오빠를 찾으러 반으로 달려갔다. 양치를 하고 돌아오는 선배들에게 물어보아도 오빠의 현재 위치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어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걸까. 딱따구리 마냥 이마를 벽에 찧어대며 아까운 시간만 까먹고 있는데 저 멀리서 멀대같이 큰 박찬열이 걸어오고 있었다.


 평소에는 참 재수없는 얼굴이지만 이렇게 긴급한 때에는 구세주처럼 빛난다. 박찬열에게 달려가 손을 붙잡으며 백현 오빠는 어딨는지 물었다. 박찬열의 왼쪽 손에는 까만 봉지가 들려있었다.


 "걔 그림 그리러 갔는데."

 "또?"

 "그 프로젝트 있잖아. 내가 저번에 말했던 거."


 프로젝트라면 지난 날 백현 오빠가 그림을 그리던 그것을 말하는 걸테다. 축제 때 내놓는다며 빈 교실에 그림을 그렸었는데 그걸 아직도 하고 있다니.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축제 때에 백현 오빠의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잊고 있었다.


 "그거 축제 때 한다며? 끝난 거 아니었어?"

 "무산 됐어. 그래서 이번 종업식 날에 전시한다던데."

 "뭐?"

 "뭐."


 박찬열이 날 무심하게 바라본다. 박찬열이 들고 있는 까만 봉지에는 지난 날 내가 백현 오빠가 그림을 그리고 있던 빈 교실에서 찾아갔었던 때 처럼 과자와 빵이 가득했다. 박찬열에게서 그 까만 봉지를 빼앗았다.


 "내가 전해 줄래."

 "뒤진다. 그거 내꺼다."

 "뭔 소리야. 백현 오빠 꺼잖아."

 "아니 그거 진짜 내꺼라고."

 "아 그냥 백현 오빠 줘."


 박찬열이 나에게서 봉지를 빼앗아들려고 이리저리 손을 뻗는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주머니에서 아침에 가져온 만원을 꺼내 오빠의 손바닥에 얹어주었다.


 "까까 사먹어. 됐지?"

 "뭔 까까야. 지랄이야, 진짜."

 "응. 잘 있어. 맛있는 거 먹어."


 박찬열이 저걸로 맛있는 걸 사먹든 말든 내 알빠 아니다. 남매간의 예의 차원에서 급히 손을 흔들어보이고 백현 오빠가 있는 빈 교실로 향했다. 축제 때 그림 전시를 안 했었구나. 나도 그걸 까먹고 있었네. 하여튼 내 머리는 정말 쓸데가 없다. 혀를 끌끌 차며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단듯이 문 쪽을 바라보고 있는 오빠다.


 "와 이제는 대놓고 기다리는 것 봐."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역시 이래서 사람은 잘 해주면 안 된다니까. 내가 이렇게 잘해주고 한 번 차가운 태도 보이면 확."


 백현 오빠가 내 농담에 장난스레 웃어보인다. 봉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오빠를 도와주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물감 묻는다며 저기 가 있으라 했지만 고집을 부렸다.


 "이번엔 진짜 도와줄게."

 "셔츠에 물감 묻으면 잘 안 지워져."

 "그럼 나도 오빠가 입고 있는 앞치마 주라."


 그거 여유분 있는지 모르겠네. 백현 오빠가 들고 있던 붓을 물감통에 넣어놓고는 벽걸이 티비 밑 서랍장으로 향했다. 서랍을 열어보더니 새 앞치마가 담겨 있는 봉지를 찢는 오빠다. 오빠가 분홍색 앞치마를 건네고 나는 그것을 입는다. 뒤에 끈을 묶어주라하니 뒤로 돌란다. 별 걸 한 것도 아닌데 가슴이 떨린다.


 앞치마를 입고 나서야 제대로 붓을 들었다. 축제가 끝나고 난 뒤에도 오빠는 계속해서 그림들을 채우고 있었는지 어느새 덧입혀진 색깔들이다. 오빠 옆에서 물감을 칠하다가 살짝 팔이 아파서 가만히 쉬고 있었다. 붓을 내려놓고 백현 오빠의 옆태를 감상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햇빛이 드는 교실에서 앞치마를 입고 물감을 칠하고 있는 백현 오빠라니. 이게 만약 드라마고 내가 감독이라면 청춘물 찍고 있는 기분이겠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백현 오빠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라서 내려놓았던 붓을 얼른 들어보였다.


 "농땡이 치고 있었지 너."

 "아니?"

 "이번엔 진짜 도와준다며."

 "아니, 진짜 진짜 도와주고 있어. 봐봐, 나 한 반은 칠했어."


 자랑스럽게 그림을 내보이자 백현 오빠가 픽 웃어보인다. 오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물감을 칠하는데에 열중한다. 심심하다. 빨간 색 물감을 붓에 입혔다. 그리고는 오빠 볼에 콕 찍었다. 차가운 촉감에 오빠가 화들짝 몸을 움츠리며 나를 본다.


 "혼날래."


  다시 붓을 움직여 오빠 볼에 또 찍어버렸다. 오빠 얼굴이 굳었다. 이제서야 겨우 하트 모양이 완성됐다. 백현 오빠가 팔레트에서 파란색 물감을 붓에 칠하더니 그걸 들고서는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주춤주춤 뒤로 움직이자 백현 오빠가 따라온다.


 "아 진짜."


 달리기 경주가 시작됐다. 백현 오빠가 누굴 쫓는 사람처럼 붓을 들고 나를 쫓아오고 있다. 살짝 넓은 교실에서 우리는 뱅뱅 돌고 있었다. 뒤를 돌아 백현 오빠를 쳐다보면 아까의 빨간 하트 모양이 선했다. 그렇게 달리다가 어떤 것에 걸려 결국 넘어지고야 말았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바닥을 짚었던 손바닥 위로 무언가 찰박하게 얹어진다. 다름아닌 물감이었다. 물감 통을 쏟았다. 그것도 하얀색을.


 "이게 뭐야!"


 하얗게 물들여진 손바닥을 보면서 경악을 했다. 백현 오빠가 다가와 무릎을 굽히더니 엎어진 물감통을 똑바로 세운다. 그리고 서랍에서 물티슈를 가져왔다. 내 손을 일일이 닦아준다.


 "이제 이거 물감 못 쓰는 거 아니야?"

 "저기 분홍색이랑 검정색 빼고는 다 버릴 것들이야."

 "그래?"


 또 다시 장난기가 도졌다. 백현 오빠가 닦아줘서 깨끗해진 손을 다시 물감 통에 집어넣었다. 이번엔 초록색이다. 물감을 잔뜩 묻혀 백현 오빠의 뺨에 칠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슈렉 역할을 맡으셨나봐요."

 "박여주 진짜."


 내가 봐도 참 얄밉다.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오빠도 따라 일어선다. 옆에 있던 노란 물감통에 손을 넣었다. 손에서 노란색 물감이 늘어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백현 오빠가 내 앞으로 다가온다. 뒷걸음질을 치다가 벽에 닿고야 말았다. 바로 옆으로는 햇빛이 드는 창문이 있다. 도망갈 길이 없다.


 "미안."


 재빨리 챙겨온 물티슈를 꺼내서 물감으로 흥건해진 손바닥을 벅벅 문질렀다. 백현 오빠가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갑자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순간 모든 행동이 정지됐다. 더러워진 손바닥을 닦고 있던 손길이 멈췄다. 당황해서 오빠를 올려다봤다.


 "뭐 했어?"

 "굳이 말로 설명해야 해?"

 "이왕 할거면 제대로 좀 해. 왜 이마야?"


 오빠는 천연덕스럽게 웃다가 다시 입술에 입을 맞췄다. 백현 오빠가 눈을 살짝 감자 눈꺼풀이 선명하게 보인다. 길게 자란 속눈썹이 떨리는 것도 눈에 담는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진부한 대사가 생각이 난다. 정말 그 말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그게 안 되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 하고 싶다. 느리게 혹은 영원히.




암호닉


모찌 / 줄리 / 김토끼 / 3관왕센 / 붉은여왕 / 다니 / 바닐라라떼 / 히메 / 호빗 / 금귤 / 꼬깔콘 / 천재아이돌큥 / 콧구멍 / 몽이 / 뽀또 / 큥덕 / 빛나는 밤 / 뚜뚜 / 됴깡 / 증원 / 미세모 / 백설기 / 두큥거려 / 차차 / 로카멜 / 베니


거의 일주일 만에 왔네요 ㅎㅎ 다들 메리크리스마스는 잘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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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캬...키스라니.......잘보고갑니다 선생님
8년 전
독자2
3관왕센이에요!!ㅠㅠㅠㅠ아 너무 달달해서 좋아요 재밌게 잘 읽고갑니다
8년 전
독자3
헐 달달해 ㅠㅠㅠㅠㅠㅠㅠㅠ 넘나 좋은거ㅛ ㅠㅠㅠㅠㅠㅍㅍ
8년 전
독자4
줄리에요ㅠㅠㅠ 서로서로의 반에 가면서 길도 엇갈리고ㅠㅠㅠㅠ 달달하네요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날로 먹는 연애가 지금까지 본 것중에 제일 설레요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독자5
두큥거려에요 ㅎ 현실에는 왜 저런남자가 없는걸까요...ㅠ백현이 핵설레요 ㅠ
8년 전
독자6
몽이에요ㅠㅠㅠ설렌다ㅠㅠ진짜
8년 전
독자7
세상에............ 지금 학교에서 럽럽이네? 아주좋아요
8년 전
독자8
첫키스!아무일없이이대로 달달하길ㅎ
헤어지면 테러한다ㅋ
제발ㅠㅠ

8년 전
독자9
백현아....헐 키스라니ㅜㅜㅜㅜ설레쟈냐
8년 전
독자10
헐....나도이런일이일어났으면좋겠지만..여고..ㅂㅂ
8년 전
비회원19.230
항사 잘 읽고있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 아 혹시 암호닉 신청 아직 받으시나요..? [너구리] 로 신청하겠습니다!!!
8년 전
독자11
모찌에여ㅜㅠㅠㅜㅜ핡 ㅜㅜㅜ너무 달달해여ㅠㅜㅜㅜㅜㅜㅜ다음편 빨리올려주세여ㅓㅓㅜㅜㅜㅠㅜ핡 ㅠㅠㅠㅠ
8년 전
독자12
로카멜입니다!! 키쮸라니...하...심장터지는 줄 알았어요ㅠ 백현이랑 안 들켰으면 좋겠지만 들킬 거 같은 이 느낌은 뭐죠?
8년 전
독자13
[큥덕]이에요!와 진짜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ㅠ자까님 한달이되든.일주일이되든 기다려서 보고싶은 내용이네여ㅠㅠㅠㅠㅠㅠㅠ자까님 짱 ㅠㅠㅠㅜ
8년 전
비회원141.44
암호닉 신청 된다면 [백큥큥큥]으로 신청할게요! 백현이 너무 설레잖아요ㅜㅜㅜㅠㅠㅠ진짜 현실 학교선배 이미지ㅜㅜ좋야요
8년 전
독자14
으아아아아ㅠㅠㅠㅠㅠㅠㅠㅠ 넘나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 둘이 너무 귀여운 커프류ㅠㅠㅠ
8년 전
독자15
오아ㅜ...... 변백현 .... 진짜좋다 말로표현못하겠다 ...사랑해여 ..
[그므시라꼬] 신청이영

8년 전
독자16
[멍뭉미]로 암호닉 신청할께요! 아 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ㅠ근데 뭔가 앞날이 순탄하지않을것같은 느낌ㅠㅠㅠㅠ필력짱짱입니다 작가님!
8년 전
독자17
신알신하고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백현오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독자18
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완전 설레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독자19
아 진짜 달달하다ㅜㅜㅜㅜ 짱설레...
8년 전
독자20
ㅠㅠㅠㅠㅠ꽁냥꽁냥ㅠㅠㅠㅠ엄청 설레네요ㅜㅜ
8년 전
독자21
김장이 진짜 두준두준깃똘깃쫄 와 진짜 난니랐어여ㅠㅜㅠㅠㅠ와 진짜 와 너무 설레서 오장육부가 막 지멋대로 움직이는 느낌ㅠㅠㅠ
8년 전
독자22
아! 아모닉 신청을 깜빡 해쓰용! [오꼬구먹맛]으로 신청할게요!!
8년 전
독자23
바닐라라떼에요!!! 워.... 입뽀뽀..... 뭐죠 새해부터 설렘...ㅠㅜ 진짜ㅠㅠㅠㅠㅠㅠ작가니무ㅠㅠ하트ㅠㅠㅜㅜㅜㅜㅜㅠㅠㅠ아 백현아ㅜㅠㅠㅠ둘이 계속 행쇼ㅠㅠㅠ퓨 제바루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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