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주의. 처음엔 사랑이란게 들으면서 읽어주세요.
귓가에 흐르는 음악은 사람을 센치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세훈아? 너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세훈아, 오세훈. 듣고있어? 어휴. 또 자니? 묻는 너의 목소리가 자주 같이 가던 뒷동산 나무 아래에서 울려오는 것 같다. 찰칵- 머리를 흔들고 이마를 부여잡으며 내려오는 골목에서 네가 한 낙서를 발견한다. 김준면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의, 초등학교의 기억이 떠오른다. 떠오르기만 할 뿐, 네가 그립지는 않아 준면아. 다시 찰칵- 골목을 지나쳐 큰 길의 버스정류장. 그누구보다 단정한 차림을 하고 버스를 기다리던 네가 생각난다. 형, 학교가? 하고 물으면 응, 세훈이도 잘갔다와, 언제나 부지런하네. 하고 대답하던 네가 생각나기는 하지만 더 이상 외로워하고 있지는 않아. 준면아. 또 다시 찰칵-
좋아해. 하고 너에게 고백하던 내 모습도 기억난다. 수줍게 웃으면서 세훈아, 사실. 하고 말하던 네 모습도 기억난다. 그렇게 영원할 줄 알았지. 장장 십년간의 짝사랑은 그렇기 결실을 맺었었지. 찰칵- 난 네가 내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되기를 영원히 너와 내가 사랑할 수 있을거라고 바라고 믿었지. 나는 늘 너에게 가까이 가지 못해 안달이었고 넌 그런 나를 조금은 부담스러워 했어. 알고는 있었어 네가 커밍아웃하지도 않았고 너에겐 교육자 집안이라는 굴레가 있었다는 것 정도는. 나를 만나면서도 조심스러웠고 네 집에 갈 때면 난 늘 친한 후배연기를 해야했어. 또 찰칵- 덕분에 너와 같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하루에 세시간만 자면서 공부했던 기억도 난다. 나를 그렇게 만드는 사랑이 다시 올 수 있다면, 그때는 이전처럼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면서까지 다가가지는 않고, 하지만 그사람과 내가 함께할수 있을 그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겠지. 다시 찰칵-
모퉁이를 돌아 도착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공원.
가슴이 툭하고 바닥에 쳐박히는 기분이다.
너는 나를 모조리 잊어버린걸까.
몇년만에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 네 뒷통수를 보았다. 찰칵- 옆 사람은 누구니. 너는 날 정말 모두 잊고 모두 지워버린 걸까. 너와 나의 추억이 담긴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너의 집과 내 집의 중간지점, 늘 약속하면 만나던 그 장소. 넌 늘 5분 일찍 나왔고 난 그런 너를 위해 10분 일찍 나와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행복한 기다림을 저 그네에서 누렸지. 또 찰칵- 너에게서 나에 대한 그리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구나. 옆 사람에게 얼굴을 돌려 웃음을 보이는 모습이, 너는 나와 달리 전혀 외로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다시 찰칵-
기억은 할까? 너와 나의 첫키스. 너는 내게 말했지. 뭐, 뭐야. 키스하고 나서 반응이 그랬었어. 떫은 것 같기도 하고, 달큰한 것 같기도 하고. 하얀얼굴으로 훅훅 올라오는 핑크빛은 금새 붉은색을 했지. 첫 키스 장소는 공원 놀이터의 이글루. 찰칵-그 때 부터였지. 널 준면이라고 불렀어. 난 영원히 너에게 준면이라고 불러도 될 거라 생각했어. 그래, 그렇게 믿고있었는데.. 찰칵- 나중에도 또 세살이나 더 많더라도 이름을 마구 부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생기겠지. 이 그네가 바뀌었듯. 찰칵- 다음에 그런 사람이 다시 생긴다면, 그땐 누나나 형이라고 때때로는 불러줘야겠지. 너무 가깝게 다가가서는 안될테니까. 그래 마치 이 다람쥐통에서 먹이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 빨리 뛰어야 하는 것 처럼. 찰칵-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온다. 꾹꾹, 머리 뒤쪽의 움푹 파진 곳을 눌러대니 좀 가라앉는 것 같기도 하다. 너와 같은 학교를 다니던 고등학생, 꼭 들리던 분식집. 지금은 망해버린 그곳에 대고 다시 찰칵- 새로 바뀐 책방의 간판 밑에서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 야간자율학습 땡땡이의 기억. 그 밤에 우리는 튀김 두 접시와 떡볶이 2인분을 신나게 먹어댔었다. 아쉽지만 그 자리에서 다시 찰칵- 그 밤의 기억이 머리를 잠식한다. 하루종일 그때 그 동네를 돌아다니며 찍은 폴라로이드가 주머니에 가득. 마지막으로 너와 함께했던 언덕 위, 자전거 데이트의 종착역이던 그곳을 향했다. 붉게 타오르는 해는 꼴까닥대며 넘어가고있었다. 달동네의 슬레이크 지붕들은 예쁘게 물들었고 너의 집도 코랄색으로 예쁘게 물들고 있었다.
"오, 세훈?"
그리고 네가 내 앞으로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다.
그러더니 망연자실하게 또 날 바라본다. 아니 정확히는 내 뒤를.
"아니, 있을리가 없지-"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너.
"세훈아 , 잘있어 ? 거긴, 어때?"
폴라로이드 뭉치가 주머니를 빠져나가 흩날린다.
사실 세훈이는 이미 죽었어요. 준면이는 세훈이를 잊거나 버린게 아니라, 보내준거죠. 언덕 위는, 세훈이 유골 중 한줌을 뿌려뒀던 장소에요. 세훈이의 주머니에서 폴라로이드가 빠져나와 흩날리는건 세훈이가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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