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감화서
w.규닝
03.
종이를 매만지는 성규의 손길에서 힘이 빠져갔다. ‘상소’라고 적어 놓은 서찰의 첫머리가 실은 택도 없는 소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개 서생이 올리는 상소는 궐 문턱까지도 닿지 않을 것임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바인 데다가, 성균관 유생이 올리는 관소가 아니고서야 승정원을 통과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몇 번이나 구깃구깃 종이를 접어대던 성규의 손이 느려졌다. 기어이 꼭 쥐고 있던 붓을 필낭 속에 집어넣고 나서야 삼켜두었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성규가 엎어지듯 상 위에 몸을 뉘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정국의 정치에 있어서 기개와 소신만으로는 뜻이 통하지 아니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리고 그것은 가진 것 없는 서생들의 붓모를 꺾어냈다. 그와 덩달아 하려고자 하던 의욕까지 단번에 꺾여버려 마음은 이미 뒤숭숭 해 진지가 엊그제였다. 성규의 허한 숨이 접어놓은 종이 위로 자꾸만 뱉어졌다.
성균관 약방의 약제는 날이 갈수록 부족해져가는 실정이었고, 전의감에서 제조해 내는 약제도 전보다 시원찮게 떨어져 나왔다. 그래서 성규는 양 손 두둑히 약방에 들렀던 것과 상반되게 요사이 들어서는 가벼운 손으로 성균관을 찾았다. 허나 전보다 찾아드는 횟수는 잦아졌기에 약방의 약제 칸이 쉬는 날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는 고사하고ㅡ 혜민서 관상감제조 대감에게라도 넣어 올릴 서찰을 써 보기로 했다. 상에 엎드린 성규의 볼이 지긋이 눌렸다. 당장 하늘에서라도 약제가 뚝 떨어졌으면 원이 없겠다는 실없는 생각과 함께.
*
대사성의 발걸음이 정록청 문간채를 바쁘게 지났다. 갑자기 이렇게 걸음 하는 양반이 아닌데…. 대사성의 머릿속이 그의 발만큼 바삐 돌아갔다. 그러나 혹여 상감마마의 어환에 문제라도 난 건가 싶어 허겁지겁 달려가 맞은 수의 대감의 낯빛은 썩 보기에 괜찮았다. 대사성이 크게 한숨을 돌렸다.
“대감께서는 어인 일로 이리 기별 없이 성균관을 찾는단 말이오? 이리 놀라다간 명이 다하겠소.”
“대사성의 말마따나 아직 아무런 기별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찌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단 말이오.”
수의 대감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가까스로 한 숨을 돌린 대사성이 바삐 놀렸던 걸음을 멈추고 흐트러진 관복을 가다듬으며 정록청으로 드십시다. 하며 덧대었다. 격식을 차리다가 만 목소리가 그러합지. 하며 서스럼 없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의 걸음소리가 문간채 앞을 지났다.
관원들이 물러간 정록청 안방이 고요했다. 대사성이 펄펄 끓고 있던 찻주전자를 수의 대감의 찻잔에 기울였다. 잠시 후에는 사기 위에 김이 어렸다. 대사성이 점잖게 앉아 대감의 찻잔 위로 찻잎을 띄워 올리자 대감의 묵직한 목소리가 감사를 표했다. 고맙소. 대감이 편하게 앉은 자리에 체중을 실었다.
“내 예고 없이 찾아들었건만 영감께 손수 차까지 대접 받게 될 줄은 몰랐소.”
“대접이랄 것 있소? 관직을 떠나 오랜 벗이 걸음하였는데 기별이 없었다 하여 어찌 문전박대를 할 수 있겠소.”
대사성이 저의 찻잔에도 차를 따라내며 말했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미리 일러주는 게 좋겠소.”
“꼭 상부에 책잡힐 만한 일을 저지른 사람처럼 어찌 이리 안절부절이란 말이오.”
수의 대감이 껄껄거리며 웃는 소리가 정록청을 채웠다. 대사성이 먼저 잔을 들어올리면서 그를 따라 덧없이 웃었다. 꼭 그리한 건 아니오만. 그의 화려한 도포 자락이 상 위의 모서리에 걸쳐졌다.
“아, 영감. 내 들은 게 하나 있소.”
“무엇이오?”
대사성이 난데없는 주제로 시작된 대화에 의아하게 물었다. 수의 대감이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그 아이가 다녀가오?”
“그 아이라 함은, 누구를 이르는 게요?”
“혜민서에서 성균관 약방 전담으로 내린 의관 아이 말이오.”
진중한 대화를 나누기 이전에, 가벼이 대화의 물꼬를 틀기 위해 화두에 올린 말이었다. 대사성은 잠깐 동안의 침묵 이후에 제 무릎을 탁 치며 반응을 내보였다. 아, 그 아이 말이오? 대사성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올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둑 공부로 존경각에 매일같이 발도장을 찍는 아이를 말하는 게라면 그렇소. 해시(오후 9시~11시) 사이에 다녀가는 걸로 아오.”
“역시 그랬던 게로군.”
대감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아시게 되었소? 대사성이 껄껄 웃으며 대감의 안색을 살폈다. 퍽 진지하게 감추고 있던 표정이 풀렸다.
“요사이 그 아이의 작문실력이 월등히 늘은 것을 보고 어디선가 도둑 공부를 하고 있을 줄 짐작은 하고 있었네만 이리 간 큰 짓을 하고 있을 줄은 차마 알지 못하였소. 영감께서는 어찌 내게 귀띔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오? 내 그 아이를 각별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 아니하오?”
“딱히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괜찮소. 그리고 그 아이가 잘되는 것이 즉 대감을 돕는 일이 아니오? 나는 지금껏 벗에게 한 번도 해가 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소.”
그리한데 어찌 나를 책망하는 것이오. 대사성의 말에 대감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그것은 맞는 말이오! 화끈하게 높아진 목소리가 한바탕 크게 정록청을 울렸다. 대사성도 그의 비워진 찻잔에 두 번째 차를 따르면서 목소리를 같이 했다. 대감이나 그 아이나, 학문에 열의를 다하고 있다는 건 인정하고 있는 바요. 그에 딱 알맞게 기분이 들뜬 수의 대감이 아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에는 대사성이 먼저 목소리를 낮추었다.
“허나 조심해야 할 것이오. 내 대감의 수제자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오네만 요사이 존경각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서책들이 사라지고 있으니 동장의 서장의 할 것 없이 상색장들조차 그 서책 도둑을 잡기에 혈안이니까 말이오.”
“서책 도둑?”
“자칫하다간 그 아이가 도둑으로 몰릴 수가 있단 말이오.”
대사성이 목소리를 죽이다가 대감의 등 뒤편으로 난 창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이미 수복이며 서리가 비킨 정록청 주위는 아까처럼 고요한 듯 했다. 대감이 제 수염을 움키다가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처음 듣는 일이네만 그 아이는 그럴 만한 위인이 아니오. 뭣보다 그런 짓을 저지를 만한 배짱이 없어. 도둑 공부를 하는 것 치고는 겁이 많은 아이란 말이오.”
“알고 있소. 그 아이를 의심하는 게 아니오.”
대사성의 입가가 흐뭇하게 올라갔다.
“약방에 들르느라 성균관으로 들어올 때에도 될 수 있는 한 유생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숨어 다니는 아이라는 거 알고 있소. 혹 좋지 아니한 일로 몰릴까 외려 걱정 하고 있는 거요.”
그렇잖아도 전의감에서 새로 내린 성균관 의관이 수의 대감의 애제자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그렇기에 언젠가 마주친다면 얘기라도 나누어보아야겠다는 심산으로 성규의 뒤꽁무니를 눈으로 좇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눈이 마주칠세라 무섭게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다가 샛길로 도망길에 오르는 성규를 쉬이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성규가 존경각에서 숨어 지내며 도둑 공부를 일삼는다는 사실을 돌려 들었을 때에는 믿기지 아니하기도 했다. 그 의관 아이가…? 대사성이 금방이라도 제 눈 앞에서 게걸음을 하다가 줄행랑을 칠 것 같은 성규를 떠올리다가 웃었다. 수의 대감이 점잖은 목소리를 내었다.
“모쪼록 그 아일 잘 부탁하오.”
“아무렴.”
대사성이 저의 찻잔을 조용히 내려두었다. 이미 마음으로는 존경각으로 키워내고 있는 자식 같은 마음이오. 각별히 여기는 마음만큼은 대감 못지않을 듯합니다. 수의 대감이 대사성의 농에 기분 좋은 듯 웃었다. 그리 여겨준다면 고맙소. 두 사람이 따라내던 찻주전자가 벌써 절반 넘게 비워졌을 때에는 대사성이 먼저 용무를 텄다.
그의 사기 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대화의 시작을 알렸다.
“그나저나 주상전하의 어환은 어떠하시오? 대감 측에서 먼저 기별이 들길 기다리고 있었소만 영 소식이 없어 묻는 거요.”
“…….”
“혹,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을 내가 떠 물은 것이오?”
대사성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수의 대감의 목소리도 덩달아 낮아졌다.
“말은 아낄수록 금이네.”
“…….”
“그러나 영감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대감의 입이 어렵사리 떨어졌다가 다시 침묵을 가져왔다. 대사성은 차분히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감이 느리게 찻잔을 감싸 쥐었다가 손을 떨궜다.
“좋지 아니하오.”
“…….”
“호전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전의 새벽은 격일 꼴로 바빠지기 일쑤라오. 아마 하루 중 궐 내에서 가장 분주한 곳이 강녕전이 아닐까 싶을 정도니. 될 수 있는 한 우려하는 목소리를 감춘 대감이 농을 섞어 말했지만 대사성은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상황이 나아지기는 어렵겠다는 것을. 수의 대감의 말마따나 이어지는 대사성의 목소리에도 근심이 어렸다.
*
“꼬마야.”
성규가 아이 재직의 눈높이에 맞게끔 허리를 숙였다. 저만치 동떨어져서 멀뚱멀뚱히 성규를 살피고 섰던 재직이 화들짝 놀랐다. 성규가 먼저 활짝 웃어 보였다.
“이리 온.”
성규의 부름에 쭈뼛쭈뼛이 발돋움을 하던 재직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유생들이 성균관 내에서 흔히들 쓰는 유건이 아니라 갓을 쓰고 있는 데에다가 외출하고 들어온 유생이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허름한 도포자락을 보아하니 외부 손님인 것을 짐작한 재직이 멀찍이 서서 성규를 경계하고 있던 터였다. 더군다나 이렇게 다 헤진 짚신을 신은 유생은 본 적이 없어! 재직은 성규의 부름에 달려가 그 앞까지 섰는 와중에도 낡아빠진 짚신을 훑어보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성규가 재직의 눈높이에 맞게끔 허리를 숙여 앉았다.
“아까 멀리서부터 보았는데, 잔기침을 달고 있더구나.”
성규가 고사리 같은 손을 꼭 붙잡으며 눈을 맞추었다. 재직의 동그란 눈이 고 사이에 성규의 얼굴을 이리저리 훑고 있었다. 재직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는 거의 격일 꼴로 성균관 약방에 찾아들고 있는 터였다. 한 번에 많이씩 약재를 빼오기가 힘에 부쳐 차라리 여러 번 걸음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바쁘게도 전의감과 성균관을 오가는 발걸음이 쉴 줄을 몰랐다. 그러다보니 집이며 저잣거리에 붙어 있는 시간이 줄어 흙바닥을 헤매는 통에 가지고 있던 신이란 신은 전부 헤져 볼품없었다.
오늘도 동이 난 약제 칸에 약제를 놓아두고 활인서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성규의 눈에 밟힌 것은 작은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 잔기침을 하고 있는 어린 재직 하나였다. 성규가 제 눈을 똑바로 보고 있는 재직에게 눈을 접어 웃었다.
“혹 내가 무서운 것인게냐?”
“그것은 아니옵지만, 쇤네가 처음 뵙는 분이라서 그럽지요.”
절반 정도 잠겨있는 목소리가 또박또박 발음했다. 성규가 재직의 어린 팔을 붙들었다.
“나는 궐에서 내려온 의관이다.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궐이라는 말에, 재직의 동그란 눈이 성규의 허름한 옷가지며 신발을 내려다보다가 작게 끄덕였다. 성규가 재직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었다.
“혹 고뿔에 든 것이냐?”
“예. 닷새도 훨씬 전부터 앓았지요.”
“내가 간혹 약방 한켠에 재직들을 위한 약제를 놓아두고는 하는데. 혹 그것을 모르는 것이냐? 그렇다면 지금 나와 약방에….”
“약제는 있습니다요!”
재직이 지레 손사래를 치며 성규의 말을 끊었다.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재직을 어르려던 성규가 뒷목을 곧추세웠다.
“약제를 얻었느냐?”
“예. 요사이엔 약방을 찾아도 약제가 전부 동이 났다고 하여 가지 않고 있었는데, 나흘 전에 도헌 도령님께서 주신 약제를 달여 먹고는 좀 완화되었습죠.”
재직이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성규가 별안간 가늘은 눈을 크게 뜬 것은 느닷없는 대목에서였다. 성규가 재직의 팔을 다시금 붙들었다.
“뉘시라고 하였느냐?”
“예?”
“방금 어느 상유께서 네게 약제를 달여 주셨다 하지 않았더냐?”
성규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제가 들은 별호가 ‘도헌’ 인 것으로도 모자라 그가 친히 ‘달여’ 주었다니? 재직은 성규의 물음에 천연덕스럽게 다음 말을 뱉었다.
“도헌 도령님이시라고 했습니다요.”
“…….”
“귀동냥으로 들은 말이옵건대, 도헌께서 쇤네 말고도 다른 재직들에게 갖은 약제를 베푸셨다고도 들었습죠. 쇤네와 같이 약제를 얻은 아이들은 하나를 달여도 모두 나누어 먹었으니 고뿔은 문제없습니다.”
여전히 코를 쿨쩍거리면서도 제법 어른스러운 말은 줄줄줄 튀어나왔다. 성규가 멍하니 입술을 벌리고 재직의 얼굴에 넋을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눈을 바로 했다.
별다른 말없이 입만 벙긋거리는 성규를 쳐다보던 재직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달음박질하였다. 잔기침은 여전했지만 아픈 구색 하나 없는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성규가 굽혔던 허리를 천천히 피며 일어났다. 어설프게 틀어 올렸던 상투 끝이 향관청 너머로 쏙 하니 사라지자 성규가 어색하게 제 턱 끝을 매만졌다.
도헌…. 성규에게 있어서는 ‘선의’와 멀고도 먼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린 재직의 입에서는 한없이 다정하고 인자한 인물로 둔갑하여 튀어나오자 가슴께를 간질이는 괴리감에 딱 어색하여 죽을 맛이었다. 성규가 의뭉스러운 제 머리를 까딱였다. 도헌께서 약제를…. 성규는 신삼문을 지나 반촌에 다다를 때까지도 머릿속에서 혼자만의 이상 묘한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
주역(周易) 강의 내내 어쩐지 낌새가 좋지 아니하다 했더니, 우현은 보기 좋게 마른기침을 입에 달고 명륜당을 나섰다. 자꾸만 코가 막혀 우현의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 코를 움켜쥔 탓에 가려진 옷자락 사이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동기 유생이 그 몰래 고개를 저으며 우현과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진사 식당에 들어서는 와중에도 우현의 싫은 소리가 애먼 동기 유생의 심기에마저 찬물을 끼얹었다.
“아무래도 내가 죽으려는 건가보네.”
“그리 앓고 있지만 말고 약방을 다녀오는 게 어떠한가?”
동기 유생의 표정이 기어이 찡그려졌다.
“고뿔은 초기에 잡아줘야 산다네. 비복에게 약제를 가져다가 달여 달라 이르면 그리 해 줄 겐데 무슨 체면을 살리자고 이리 버티고 있단 말인가?”
“괜찮네. 나는 괜찮아.”
“평소에는 누가 보채지 않아도 잘만 약방을 드나들던 양반이….”
쯧쯧. 동기 유생이 우현의 옆얼굴을 들여다보다 혀를 찼다. 우현은 별다른 대꾸 없이 코를 훌쩍이며 제 상을 바라보았다. 동재의 생원들이 진사 식당에 들어 주루룩 자리에 늘어 앉자말자 수복의 목소리가 호령했다. 권반(權飯)! 식사를 알리는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현의 수저가 따뜻한 국을 퍼올렸다.
식사 내내 우현의 수저는 잠깐조차도 국에서 떠나질 않았다. 남은 찬들이 점점 식어갔다. 동기 유생은 죽상으로 국을 퍼 올리고 있는 옆얼굴을 쳐다보다가 다시금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국을 꼭 미음처럼 먹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저 양반 성격에 보통 아픈 게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고집 또한 여전했다. 우현의 국이 채 식기도 전에 바닥을 드러냈다.
식당을 나선 우현의 발걸음은 곧장 동재 쪽을 향하지 않았다. 대성전을 지난 발걸음이 한참동안이나 그 앞에 묶여 있다가 띄엄띄엄 서재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다시 그러기를 여러 번, 술시(7시~9시)의 끝자락이었다. 어린 재직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청재를 울렸다. 취침! 취침! 우현은 청재 앞마당에 혹여나 제 옷자락이 삐져나갈까 급하게 모퉁이를 돌아 존경각 쪽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염병. 내가 왜….”
우현은 낮도 아닌, 술시라는 엉뚱한 시각에 제가 도서고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탐탁치않아 제 기분을 못 이기고 욕지거리를 뱉었다. 도저히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우현의 세계에서는. 우현은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미닫이를 힘주어 열었다가 그대로 닫았다. 역시 창고 안쪽의 공기는 바깥보다 찼다. 우현은 가지고 온 호롱불을 호들갑스럽게 켜 두어 쾌쾌 묵은 고서더미 위에 올렸다.
그렇게 멀뚱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점잖은 양반 놀이를 하던 것도 잠시였다. 우현은 제가 왜 이런 추위마저 감수하고 서생원을 만나려 하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바짝 약이 올라 벌게진 얼굴이 자꾸만 보고 싶어서. 그 쩔쩔매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묘하게 통쾌한 기분이 들어 자꾸만 저의 입가가 흐뭇해지려는 것을 참아내기에 바빴었다. 우현은 제가 서생원에게 한 방을 먹이는 생각만으로도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붙잡아 내리며 툭툭, 제 입을 두드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뻑뻑한 미닫이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확 열렸다.
“으아!”
단연 충실한 반응이 도서고를 울렸다. 우현은 고개를 돌리자마자 마주한 얼굴을 보자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우현의 인기척에 질겁해 곧바로 나자빠진 얼굴이 허옇게 떠 있었다. 제가 원했던 것보다 더욱 뿌듯한 반응이다. 우현이 슬금슬금 올라가려는 입가를 애써 굳히며 헛기침을 했다.
“어찌 그리 놀라느냐? 도깨비라도 본 것 마냥.”
“도,도. 도헌께서….”
“오늘 배운 주역을 다시 공부하러 들러보았다.”
우현이 미리 챙겨온 서책을 성규의 눈앞에 흔들어보였다.
“예가 너만 드나드는 곳도 아니질 않느냐. 외려 네가 이곳에 있는 것보다는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함이 더 이치에 맞는 것이니 놀랄 것도 없다.”
성규가 여전히 벌렁거리고 있는 제 심장께를 움키면서 소리 나게 침을 삼켰다. 우현이 어깨를 으쓱하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와, 엉덩방아를 찧음과 동시에 마룻바닥에 떨어트렸던 호롱불을 더듬거리며 집었다. 풍파처럼 요동 쳤던 가슴의 맥박이 차츰 제 꼴을 갖춰가고 있었다. 성규가 바싹 마른 제 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 맞사옵니다. 도헌께서 자리하셔야 마땅하옵고 하니…, 그럼 소인은 저 뒤쪽…”
우현의 눈매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들어와라.”
“예?”
“나는 상관없다. 네가 있어도.”
그렇게 말하는 우현의 눈빛은 거의 ‘당장 들어오지 아니하면 목숨은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쯤을 말하고 있었다. 성규가 금방이라도 일으키려던 몸을 잔뜩 수그렸다.
*
저번처럼 나란히 붙어 앉은 창고 안은 좁고 또 좁았다.
결국은 또 꾸역꾸역 들어앉은 성규가 우현의 어깨와 닿지 않게끔 저의 옷자락을 자꾸만 제 쪽으로 끌어당겨 몸을 사렸다. 살짝 눈을 틀어 옆을 살피니, 제게는 전혀 관심조차 두고 있지 않은 옆얼굴이 주역 책에만 줄곧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성규가 조금 헛기침을 하자 우현의 눈이 잠깐 동안 그를 향했다가 다시 돌아갔다.
도대체 좁아 죽겠는데 어인 이유로 들어오라 이르신거야…. 아주 잠시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머릿속에는 불길이 일어 성규가 대뜸 고개를 틀었다. 성규의 머리가 조금은 과한 동작으로 반대쪽으로 틀어지자 우현의 고개가 자동으로 돌아와 그의 갓머리를 흘겼다.
“어찌하여 나를 훔쳐보곤 그리 홱 고개를 트는 것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인은 그저 창고가 너무 좁아 얼굴이 가까웠기에….”
돌려 앉을 수 없어 고개를 돌린 것뿐입니다. 반대편으로 향한 머리에서 어눌한 목소리가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현이 그 뒷통수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다시금 눈을 서책에 가져왔다.
사실은 당장이라도 서책을 접어버리고 발이나 뻗고 자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왕 서생원을 놀려먹으러 자리한 것이니만큼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사 체면에 일개 서생조차 서책을 읽겠다고 찾아온 도서고를 먼저 발 벗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현이 억지로 두 눈을 치켜뜨며 꼬부랑 글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헌데… 도헌께오서…”
성규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귓바퀴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목소리가 좋지 아니하십니다.”
우현은 제 귓가의 바로 앞에 간지러운 숨이 닿자 소름이 돋아 어깨를 떨었다. 뭐? 그도 잠시, 부러 큰 소리를 냄과 동시에 성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우현이 저도 모르게 과민 반응을 비쳤다. 방금 전까지도 저를 보고는 허옇게 질려 말을 아끼고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성규의 똑바른 눈이 우현의 안색을 뚫어져라 살피고 있었다. 상황은 엎어져, 도리어 당황한 우현의 눈이 성규의 눈과 대적했다.
“뭐야? 내 목소리?”
“예. 소인의 이견으로는 아마 고뿔의 초기 증상 같사온데….”
성규가 목소리를 죽이며 고개를 기웃했다.
“약제는 취하셨습니까?”
방금까지도 어떻게든 제게서 어깨를 떼어내려고 노력했던 서생원이 지금은 제 옆에 딱 붙어 저의 건강을 묻고 있었다. 우현이 대뜸 그를 흘기던 눈에서 힘을 풀었다. 병(病) 얘기에 있어서는, 단박에 눈을 빛내며 적극적인 얼굴을 대면하자니 그 열의에 느닷없이 힘이 풀려버린 것 같기도 하다. 우현이 대답을 얼버무렸다.
“아, 아직이다.”
“어째섭니까? 성균관 약방의 약제는 상유들께 무상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계시지 아니합니까?”
“나보고 감히 약방까지 걸음하라 명하는 것이더냐?”
우현의 대답을 기다리던 성규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거짓 위엄을 담은 목소리가 뻔뻔스럽게도 모순된 말을 뱉고 있었다. 그 동안 우현은 할 일이 없어도 심심하면 약방을 찾아들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성규가 우현의 얼굴을 흘겼다.
“병을 키우십니다.”
“뭐야?”
“한 번만 약을 취하시면 일찍이 털고 일어날 수도 있는 고뿔을 굳이 보름 정도 안고 가겠다 이르시니 이리 답답할 데가 없습니다.”
성규가 작게 한숨을 뱉었다. 우현이 입을 꾹 다물자 성규가 우현 쪽으로 옷자락이 닿을 정도로 당겨 앉았다.
“약제도 받아 놓지 아니하셨습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허나 소인이 여느 재직에게 들은 바, 도헌께서 갖은 약제를 아이들에게 베풀어 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대목에서는 우현의 심장이 덜컹했다.
일부러 약제를 훔쳐다가 방 안에 박아둔 사실을 들통 난 것일까 반사적으로 뛰어대는 가슴 때문에 우현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것을 모르고 성규가 눈썹을 내렸다. 그저 제 앞에 앉은 유생의 안색이 좋아 보이질 않아 속상해져오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가 설령 미웁게도 저를 괴롭히고 있는 괴팍한 유생일지라도. 대책 없이 아픈 이들을 보면 솟아나는 정의감 같은 것이었다. 성규가 저도 모르게 우현의 팔을 꼭 붙들었다. 우현이 덜컥 숨을 참았다.
“아무리 어린 재직들을 위했다 하심이었을 지언정… 본인의 건강도 중한 줄 아셔야 합니다.”
안쓰러이 내려간 목소리가 우현을 달래듯 조곤조곤히 뱉어졌다.
그에 반해 아직 상황 파악이 더딘 우현의 눈은 당황감에 차 있었다. 어린 재직들을 위함이라? 내가? 우현이 힘주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제 시야에 한가득 들어찬 걱정스러워 뵈는 서생원의 얼굴이 아까부터 줄곧 저만 향하고 있음을 그제서야 알아차린 우현의 목울대가 소리 나게 넘어갔다. 너무 가까이 붙어 앉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난 후에야 저의 팔을 붙든 손의 느낌이 선연하게도 다가왔다. 우현이 티가 나지 않게 성규의 얼굴과 저의 팔을 번갈아 내려다봤다.
“그리하여 결국은, 도헌께 남은 약제는 없다 이르신 겁니까?”
성규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우현에게 물었다. 우현이 그에게 잡혔던 팔을 단박에 빼 내며 헛기침을 시작했다. 물론 약제니 뭐니 하며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얼떨결에 얻어버린 환심을 마땅히 거절해 낼 이유는 없었기에 우현은 이미 '척'에 돌입하기로 했다.
“당연하지. 다 나눠 주어 내게는 한 톨도 남지 않았다.”
“바보같은 짓 하셨습니다.”
“…….”
“다시 한 번 이르는 것이오지만, 제 몸 중한 줄 아십시오.”
정말이지 순수하게 저를 걱정해오는 눈을 마주하고 있자 아무래도 찝찝한 마음을 이겨낼 수 없음이었다. 우현이 보고 있었던 주역 책으로 눈을 돌렸다. 창고 안에는 잠시 동안 어색한 공기가 들어찼다. 우현이 저도 모르게 코를 훌쩍였다. 성규의 신경은 우현의 갈라진 목소리 하며 마른기침, 혹은 아픈 기색에 쏠려 있어 그 표정은 줄곧 좋지 아니했다. 우현이 저 대신 가라앉은 옆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무심한 목소리를 내었다.
“내 저번에도 말한 바를 금세 잊어버린 것이로구나.”
“예?”
“나는 전의감에서 검열도 거치지 않고 성균관으로 내리는 약제는 믿을 수 없어 복용하지 아니하겠다고 이른 적 있다.”
“…….”
“그러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네가 나에게 이로운 약제를 골라 줄 때까지.”
이미 엉망으로 잠긴 목소리가, 잔뜩 병을 안고 있는 주제에 뻔뻔스러운 말은 잘도 늘어놓고 있었다. 생각 없이 우현의 변명을 듣고 있던 성규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여간 한 길 속 꿍꿍이도 내다볼 수 없는 양반이다. 성규는 자꾸만 귀찮게도 제게 약제를 내려오라 명령하는 목소리를 그로부터 두 식경(1시간) 정도는 더 들어내야 했다.
시간은 결국 축시(1시~3시). 고약한 유생을 만난 탓에 평소보다 두 식경이나 미뤄진 귀가에 서둘러 신삼문을 빠져가는 걸음에 속도가 더했어도 성규의 머릿속에는 이상하고도 묘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고 있었다.
결국은 쿵쿵거리며 들뜨던 발걸음이 하마비 앞에 닿아서야 묶였다. 성규는 순라군이 보이지 않는 길거리 앞에 멀뚱히 서서 방금 전까지도 닿아 있었던 어깨의 주인공을 찬찬히 그려보았다. 도헌. 알면 알수록 이상하고도 모르겠는 사람이었다.
저에게만 야속한 것이었는지, 실은 재직들 하나하나에게 제가 갖은 약제를 내어다주고 본인은 도리어 병을 키워갈 만큼 다정한 사람이었는지를 다시 되짚어보는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성규가 단단히 동여맨 필낭 끈을 움켜쥐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느 게 맞는 거야? 사실은 지금껏 제게는 너무나 고약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ㅡ 조금이라도 좋은 분이실거라 믿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는 바였다. 결국은 일 다경(15분) 정도 후에서야 다시금 귀갓길에 오른 성규의 걸음이 성균관을 나설 때보다는 훨씬 많이 느려져 있다는 것을 본인만큼은 깨닫지 못하였다.
귀갓길 내내, 밤바람에 여늘거리는 갈대 사이로 걸음을 옮기는 성규의 갓머리 위로 희붓한 달빛이 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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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성[ 大司成 ]
수의
궁궐 내에서, 임금이나 왕족의 병을 치료하던 의원을 어의(御醫)라 이르며 그 중의 우두머리를 지칭.
순라군[ 巡邏軍 ]
조선시대에 도둑 ·화재 등을 경계하기 위하여 밤에 궁중과 도성(都城) 안팎을 순찰하던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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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씨눈 아님 마이웨이를 가고싶은거예요 모든일에 있어서, 그대들도 그렇게 되실 수 있기를 너무 오래는 묶여있지 마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