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중한 외모는 물론이고 이왕이면 몸매도 착하면 좋겠어. 연기도 잘해서 나쁠건 없잖아? 가수가 노래만 부르라는 법이라도 있나? 드라마가 좀 안될 것 같다 싶으면 급하게 아이돌이라도 투입시켜서 시청률 덕좀 보고 영화 출연으로 관객수들 좀 매꿔 보는게 요즘 추세지 뭐. 그리고 얼굴은 가능한 손을 댄듯 안 댄듯 하게 자연스럽게 가자. 또 과거 사진 불러들여서 성형 의혹만 생겨나면 골치 아파진다. 노래 실력 기를 시간에 그냥 헬스장이나 다녀, 정 부르기 싫다 싶으면 대리녹음이라도 알아볼게 넌 목소리가 흔하니까 비슷한 목소리 가진 사람 구하는 건 별로 어렵지도 않아. 좋은 소속사 만나서 데뷔 못하면 어디 스폰서라도 한 번 알아봐. 요새들어서 티비에 주구장창 나오는 걸그룹 걔 알지? 걔도 스폰서 한 번 잘 두니까 요즘 광고며 드라마며 영화까지 다 꽂아주잖아. 요즘 누가 노래실력으로만 아이돌을 해? 그냥 겉모습으로만 화려한게 최고야. 대중들한테는 그게 관심을 받는거고 인기를 얻는거라니까!
연예인의 조건
데뷔하기 훠얼씬 전부터, 그러니까 내가 가수가 될 거라고는 꿈속에서 조차 상상하지 못하던 아주 오래전부터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가 하나 있다. 뭐 대단한 이야기는 없고 그냥 그 날 있었던 일을 쓰기도 하고 아니면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찍은 음식사진을 올려놓고 '와 진짜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올 뻔 했어.' 라며 혼자 예찬하고 아니면 영화를 감상한 후기들도 올리는 등 온전히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였다. 애초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만든 블로그가 아니라서 방문자 수에도 신경쓰지 않았고 내 게시글에는 댓글을 쓰지 못하도록 설정을 해두었다. 그렇게 가수로 데뷔를 하고 난 후에도 난 여느때와 다름없이 포스팅을 열심히 했다. 연예인이 되었다고 해서 딱히 특별한 글을 쓰지는 않았다.
예전처럼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일기를 쓰고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사진도 찍어서 올리며 그냥 닝겐 한명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요, 별 다를거 없어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보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나도 모르게 음악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게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데뷔를 하기 전부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지금까지 모든 작업 기록들을 블로그에 올려둔다. 이도 몇년이 지나고서 보면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데뷔 활동결과가 많이 저조할 때, 그때의 심정도 고스란히 쓴 적이 있다. 예상했던 만큼의 결과였으니 나는 슬픔에 운운하지 않는다..뭐 이런 오글거리는 내용들이다. 그래놓고 마지막에는 통곡하며 울고있는짤을 올렸지. 언행불일치;
아니 근데 요즘에 내 블로그 방문자수가 기하학적으로 높게 치솟고있다. 무슨일인가 싶어 방문자의 유입로그와 키워드를 분석해보니 다들 하나같이 '김여주 블로그' 라는 단어를 통해 들어온 모양이다. 내가 한창 활동하고 있을때도 방문자수가 하루에 30명도 안되더니 활동이 끝나고 나니까 이렇게 폭주하는데는 분명히 무슨 일이 있을거라고 짐작했다.
혹시 블로그 너도 해킹 당했니?
왜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내 블로그를 방문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게시글마다 댓글창을 꺼두었기 때문이다.
그 때 휴대폰에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야 엑소가 또 일냈다..그전에 실검부터 봐봐 아니아니 기사부터...아니 어제 엑소가 나온 라디오..아 몰라 빨리 인터넷 아무거나 켜봐!'
매니저 오빠가 오늘따라 더 이상하다, 평소에도 이상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하다. 요즘 많이 힘든가?
나도 포털사이트 중 하나인 초록창에 들어가 실시간검색어를 살펴보니 매니저 오빠의 말대로 내 이름과 엑소의 이름이 서로 1,2위를 다투고 있었다.
"지난 1년동안의 긴 공백기간을 거치고서 컴백을 하셨는데, 엑소 멤버들은 그 동안 뭐하고 지내셨어요?"
"앨범작업하면서 녹음하고 연습하고..휴가도 다녀오고 여러가지 했죠."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 없었나요?"
"음..저는 쉬는동안 인터넷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팬분들이 올려주신 글도 보고 또 다른 동료 가수분들도 많이 검색해보면서 연구도 좀 했어요."
"오, 그럼 카이씨는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가수가 있었나요?"
"한명이 딱 기억에 남더라구요. 그 친구가 데뷔전 부터 글을 쓰던 블로그에 우연히 들어가보게 되었는데 몇년 전부터 최근까지 쓴 글들을 전부 읽으면서 가수로써 굉장히 많은 걸 깨달았어요. 본인 말로는 이번 활동이 꽤나 순탄치 못하고 실패가 전부였다고 하는데 자기는 절대로 이런 이유로 음악을 포기하거나 싫어하지 않을거래요. 그 글을 보고 사실 감동도 좀 받았구요. 저희보다 후배였는데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깊어서 저를 비롯해서 다른 멤버들도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시간이 남을 때 종종 그 블로그를 몰래 들리곤 했어요. 신인이라도 배울점이 아주 많은 친구였거든요."
"그 친구에 관해서 레이씨가 할 말이 많으신가 봐요."
"오, 카이. 나도 그 칭구 블로그 드러가봐쏘. 중국어 공부 욜씨미 하던데"
"하하. 카이씨, 누군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괜찮을까요?"
와, 10만명 찍었다. 방문자 수.
그것도 3시간만에..
아니 지금 무엇보다 방문자 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엑소가 방송에서 나를 언급해주었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는 점이다. 어제 음악방송 엔딩무대에 올라가 옆에 서서 아주 잠깐 올려다 보았는데, 역시 연예인이라는 말은 이럴때 나오는 구나 싶었다. 외모에서 부터 화려함 그 자체의 기운이 올라왔다. 뭔가 포스가 있다고 할까. 백현이였던가, 그 분이 나한테 말을 걸어주셨는데 당최 그 기운에 눌려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노래 잘 들었어요."
"직접 작곡한거 맞죠?"
"저 앨범도 샀어요!"
이렇게 (엑소느님이) 나에게 질문세례를 쏟아주셨는데 정작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이러고 있었다..
원래 낯가림이 심해서 말이 없는 편인데 게다가 소심한 성격때문에 도저히 답변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난 절대 버릇없는 게 아니고 의도치 않은 철벽을 치게 된 것이다.
아니, 핑계가 아니라.
님들도 엑소 옆에 한 번 서보세요..나처럼 아무말도 안나올걸요.
아무튼 지금 상황이 굉장히 신기하다. 뭔가 일개 새우젓 중에 한명이였던 나를 기억해주는 연예인을 만난 기분이랄까.
"이제 엑소도 데뷔 4년차에 접어들어가고 있는데 연예인 친구들 꽤 많이 사겼죠? 여자연예인들한테 인기도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
"저희가 워낙 저희끼리 뭉쳐다니다 보니까 친한 연예인은 많지 않구요.."
"그럼 이 기회를 통해 찬열씨는 친해지고 싶은 연예인은 있나요?"
"네, 저는 블로그 활동 열심히 하시는 분.."
"아하하. 여주씨요?"
"나중에 친해지면 서로 작곡하고있는 음악에 대해서 심층깊게 논해보고 싶어요. 저도 작곡에 관심이 많아서."
"DJ인 저도 여주씨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오늘 엑소분들 덕분에 새로운 정보들 알아갑니다. 신인이라고 했던가요? 굉장한 친구네요."
내가 연습생때부터 지금까지 귀에 딱지가 얹도록 대표님에게 수없이 많이 들은 말이 기억난다.
'알다가도 모르는게 사람 일이다.'
매일 '못생긴 가수' 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던 내가 회사 직원들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가수로써의 인정을 받아보았다. 처음 겪어보는 일에 굉장히 묘하고도 신비로웠다.
그리고 내가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무려 친해지고'싶은' 사람이 되었다. 그것도 굉장히 유명한 선배 그룹에게서.
대표님, 저는 오늘부터 대표님의 말을 아주 잘 따를 것이에요. 예지력 甲 우리 대표님.
연예인의 조건 02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