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고자 최한솔
이럴줄은 알고 있었지만 최한솔은 너무하다. 우리가 사귀기로 한게 조금 아득하게 느껴진다. 사귄다고 해서 뭔가 크게 달라질거라는 생각도 한적 없다. 다만 그냥 보통의 커플처럼 깨볶고 살고 싶었는데..
"..한솔아."
"어."
"뭐해?"
"공부."
잊고 있었다. 얘가 공부에 미친놈이라는 걸. 그래도 그게 여자친구가 있을때에도 성립되는 공식인지는 몰랐다구! 사귀기로 시작한 날부터 최한솔은 더 공부에 미친듯이 전념했다. 물론 나도 이해는 간다. 한솔이는 나와달리 공부도 잘하고 둘다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이겠지.
"..."
근데 내가 공부에 밀린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한솔아. 나 갈게."
"어."
잘가라는 그 흔한 인사도 해주지 않는 모습이 너무 무뚝뚝해서
"..치."
가끔 속상하기도 하다. 그래도 어떡해.
내 남자친구인걸.
연애고자 최한솔 epilogue
어쩌다보니 밀당의 고수
"한솔아. 있잖아."
결국은 서러움이 터져버렸다. 괜찮아, 이해할 수 있어! 하고 다짐해도 가끔은 문제만 맞추지 말고 나랑 눈 좀 맞춰줬으면하는 바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오해가 생기면 빨리 풀어야하는 법. 내가 게속 이렇게 마음에 담아두고 꿍-하게 있어봤자 저 눈치없는 최한솔은 전혀 모르고 있을 거다. 조금 더 솔직한 내가 이러이러해서 서운하다. 말하면서 서로 조금씩 맞춰가면 되겠지.
내게 있어 한솔이가 많이 소중한 것 같다. 이렇게 별거 아닌걸로도 서로 기분상하지 않게 하려는걸보면.
"저기, 그 내가 요즘.."
그래서 불러냈다. 한솔이에게 솔직하게 말하려고. 그렇게 학교뒤에 작은 뜰에 한솔이와 나만 있는 상황.
"이해는 하는데 나한테 좀만 더 표현해주면 좋겠어."
"..."
"막 사귀고나서는 눈도 마주쳐주고 그랬으면서.."
"..."
"요즘은 나랑 눈도 잘 안마주치잖아."
사실은 내가 요즘 서운했던 진짜이유. 사귄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말만하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고 눈은 내리까는 모습이 많이 서운하다. 벌써 내가 질린건가. 집에가서는 엉엉 울었던 적도 있었다. 아닐거야,아닐거야 마인드컨트롤을 하면서도 불안한 기분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솔이는 내게있어 첫남자친구니까 내가 많에 서툴었다. 내가 너무 경험이 없어서 한솔이가 봐도 답답했던 걸까.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건넨 내 말에 한솔이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푹 쉬었다. 심장이 발가락까지 쿵- 내려 앉는 느낌. 뭔가 답답한 듯 인상을 찡그리는 통에 나는 조마조마하게 내 손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안그러고 싶은데"
한숨과 함께 열린 입. 그에 한솔이의 눈을 조슴스레 올려다 보자 한솔이는 내게 눈을 바로 맞췄다.
"너랑 눈마주치면."
그렇게 한솔이가 내게 한발짝 더 다가왔다. 한솔이와 눈을 맞추고 한솔이가 더 가까이 와준게 이렇게 기쁜 일일까. 그간 서운했던 감정이 눈녹듯이 풀리는 느낌. 사아아- 가슴중앙부터 밝게 불이 켜지는 기분이다.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단말야."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꾹 내려찍고 뒤로 성큼성큼 물러나는 한솔이. 어, 방금 입술에.. 당황해서 눈만 꿈뻑꿈뻑하는 내게 한솔이는 급하게 말했다. 나 갈래. 그리고 정말 빨리 뜰을 빠져나가더라. 상황파악이 끝나자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붉어진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단지 한솔이도 서툴뿐이었던 거다. ..최한솔 진짜 치사해. 저렇게 귀여우면 어쩌자는 거야.
- 어쩌다보니 밀당의 고수
"야 뽀뽀쟁이."
"시끄러."
다시 한솔이와는 사이가 좋아졌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더니. 한솔이랑 부부가 될 운명인가.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는 한솔이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야. 뽀뽀쟁이. 내 말에 한솔이는 귀를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끄러. 내뱉는 말과 다르게 볼은 수줍은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에 웃음을 참으며 콧구멍만 벌렁 거리자 최한솔이 내 이마를 콩- 때렸다.
"그런 표정짓지마."
"왜!"
"못생겼으니까."
"..그러는 너야말로 시도때도 없이 귀가 빨개져서 어떡하냐."
"..."
"티가 다나네. 지금 부끄러워?"
한솔이는 말없이 도시락만 꺼냈다. 중앙에 놓인 가지런한 도시락. 고마운마음에 도시락뚜껑위를 한번 쓸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한솔이가 뭐해. 물어보자 나는 웃으면서, 그냥 고마워서. 했다. 한솔이는 어깨를 그냥 으쓱하고 수저를 꺼냈다. 어떻게보면 도시락이 우리 사귀는데 크게 기여했으니까. 예뻐해준다.
"오, 두구두구. 오늘은 무슨 반찬일까요!"
기대에 찬 내말에 한솔이는 바람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렇게 좋냐. 그 말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어머님이 해주시는 건 다 맛있어!"
그에 한솔이가 잠깐 경직됐다가 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님은 조금 빨랐나. 너희 어머니보다는 어머님이 더 친근한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인데.
"그럼 우리아빠는."
"응?"
한솔이는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그럼 우리 아빠는. 한솔이네 아빠가 좋냐고 물어보는 걸까.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자 한솔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 아빠는 뭐라고 부를건데."
"..아버님?"
그러자 한솔이가 눈을 가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왜저래.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하는게 그렇게 좋아?"
"응."
내가 좋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응. 내뱉는 말에 또 두근거렸다. 아, 울렁거려서 밥 못먹겠어.
"좋아."
.
.
.
"야."
"..."
"야아.."
"공부해."
"요 앙큼이."
수업시간. 옆에 한솔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발끝이 간질거려서 한솔이를 쿡쿡 찔렀다. 내 말에 꿈쩍도 하지 않길래 한솔이의 소매를 쥐고 흔들면서 야아- 말을 늘이자 한솔이는 단호하게 공부해, 하더라. 사실 신경쓰이면서 공부에 집중하는 척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래서 요 앙큼이, 하면서 느끼한 아저씨처럼 말을 걸자 한솔이가 소름끼친다는 듯 날 쳐다보더라.
"우리 한번 더 할까?"
"뭐? 미쳤어?"
내 말에 한솔이는 화들짝 놀라며 경악했다. 아 진짜 귀여워. 내가 끅끅 거리며 웃음을 참자 장난이었다는 걸 안듯 최한솔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마. 진짜."
그렇게 말하곤 한솔이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한솔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나도 손에 펜을 쥐었다. 갑자기는 힘들더라도 조금씩 너한테 맞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
"공부해?"
수업을 들으며 칠판을 쳐다보던 한솔이가 시선은 그대로 앞을 향한채 말을 걸었다.
"응."
"잘했어."
그렇게 손만 내쪽으로 내밀길래 나는 활짝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수업시간에 최한솔이 말도 걸어주고. 내가 속상하다고 표현해달라고 하니까 신경쓰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집중도 못하게 하는 것 같아서. 이제 쉬는 시간엔 괴롭히지 말아야지.
"잘했으면 뽀뽀."
"미쳤나봐, 진짜."
아까한 말 취소. 어떻게 안놀릴 수가 있어.
- 어쩌다보니 밀당의 고수
"저번에 나만보면 심장이 두근거려서 멈출 수가 없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한솔이가 했던 말을 과장해서 말하자 한솔이는 얼굴을 붉혔다.
"내가 언제..!"
수업시간이라 크게 말할수는 없는지 작게 속삭이며 화내는 모습이 귀여워 입을 막고 웃었다. 그에 몸을 들썩이며 웃자 반동인지 흔들린 책상. 그리고 떨어져버린 지우개.
"주워라."
한솔이는 주워라- 짧게 말하며 내 이마에 꿀밤을 놓았다. 그에 이마를 문지르며 씨이.. 작게 중얼거렸다. 책상밑으로 몸을 밀어넣고 한솔이의 지우개를 찾았다. 아 뭐야. 최한솔 바로 지 발밑에 있구만. 저만치에 있는 지우개를 향해 손을 뻗으며 몸을 더욱 앞으로 숙였다.
"앗."
갑자기 책상밑으로 몸을 숙여버린 최한솔때문에 깜짝 놀라 나도모르게 앗,하고 소리를 냈다. 뭐야, 놀랐잖아. 내가 소리를 낸 탓인지 최한솔은 손을 입으로 가져다대며 쉬이-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나저나 몸을 숙였으먼 지우개로도 줍던가. 팔자좋게 지우개줍는 내모습 구경하나.
잡았다. 지우개에 손이 닿은 찰나, 갑자기 한솔이가 그 위에 제 손을 올렸다. 왜이래, 갑자기. 그에 한솔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쪽-
입이 닿았다 떨어졌다. 화들짝놀라 움찔거리며 한솔이를 쳐다보자 한솔이는 씨익 한번 웃어주고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야, 잠깐,"
당황한 마음에 야, 잠깐- 꽤 크게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자 책상과 등이 부딪혔다.
"아, 윽. 아파!"
책상이 들썩일 정도로 크게 부딪히는 바람에 교실은 순간 정적이었다.
"김여주 나가라."
"옙."
최한솔 이자식. 감히 태연한척 하고있겠다.
"쌤, 근데요."
"뭐. 빨리 나가."
"짝꿍도 같이 했어요."
"뭐? 진짜야?"
"..."
"최한솔 너도 나가."
그렇게 드르륵 사이좋게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났다. 최한솔은 화를 꾹꾹 눌러참으며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내가 마냥 헤실거리며 웃자 한솔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한솔아, 그래도 나오니까 좋지?"
"..시끄러."
한솔이는 복도에 나와서 창문을 통해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근데 너 진짜 밝힌다."
"뭐?"
"어떻게 그렇게 수업시간에 대범한 짓을.."
"..."
한솔이의 귀끝이 또 붉어져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데 우리 한번 더? 콜?"
장난기 가득한 내 말에 한솔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쯧쯔- 혀도 차면서. 실은 자기도 좋으면서. 다짜고짜 한솔이의 품에 파고 들었다. 좋아해, 진짜 좋아해.
"야. 왜이래."
당황한듯 내 어깨를 잡고 떼어내는 한솔이의 마이깃을 잡고 끌어내렸다.
"좋아해."
한솔이가 당황한 틈을 타서 다시,
*
"한솔이 잠깐 교무실로 올래?"
"네."
교과를 마친후 나도 교과서를 가방에 넣으며 자습준비를 했다. 갑자기 종례를 마친후에 한솔이를 교무실로 호출하는 선생님이 의아했다. 한솔이가 불려갈 애가 아닌데 대체 왜?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한솔이가 책잡힐 거리는 없었다. 의아한 눈빛을 한솔이에게 보내자 한솔이는 자기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혼났어?"
"아니."
"그럼 왜 불려간거야?'
선생님을 보고 온 한솔이는 왠지 표정이 어두워보였다. 혼난건가. 걱정스레 물은 내 말에 한솔이는 옅게 웃었다.
"원래 공부잘하는 애들은 가끔 불려가거든."
"..."
한솔이가 조금 장난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냥, 공부 열심히 하라고. 별거 아닌양 말하더라.
"..그래?"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뭔가 가슴한켠이 찝찝했다.
"너희들 고등학교와서 연애하면 대학망하는 거야."
"네에-"
"쌤 어차피 저희는 못해요."
"김여주 최한솔 제외."
"인정."
아침 조회시간, 뜬금없이 연애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친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어차피 못한다는 말들 사이에서 우리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뭔가 나와선 안될분위기 였던 것 같은데. 한솔이와 나는 둘다 말이 없었다. 요즘들어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드는건 왜일까. 그건 한솔이의 마음이 내게 불확실하게 다가와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냥..
- 어쩌다보니 밀당의 고수
"자, 9월 모의고사 등수나왔다."
"아, 진짜 싫다."
웅성거리는 분위기. 얼마전에 봤던 모의고사 성적표가 생각보다 빠르게 나왔다. 이번엔 어떻게 봤으려나. 한솔이는 잘 봤을까.
"잘 봤어, 너?"
내 말에 한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기관리 철저한 한솔이가 못볼리가 없겠지.
"우리반 1등은 최한솔."
역시. 자랑스러운 마음에 한솔이를 웃으며 바라보자 한솔이가 옆머리를 한손으로 쓸어넘겼다.
"..근데 한솔이 전교등수가 떨어졌네."
"..."
"한솔이는 전교 3등."
한솔이의 얼굴 표정이 잠깐 경직됐다. 어깨를 으쓱하며, 괜찮아.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있잖아, 한솔아. 혹시 그거..
"한솔이 잠깐 선생님 좀 보자."
"..네."
"상담실로 오렴."
나때문이야?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솔이는 아침조회시간이 끝날때에도 선생님과의 상담이 끝나지 않은 모양인지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솔이의 떨어진 등수, 그건 나랑 사귄 날부터였을까. 눈물이 가득고인채로 손을 들어올렸다.
"선생님, 저 배가 아파서 보건실좀 다녀올게요."
발걸음은 보건실로 향하지 않았다. 내 발길이 멈춘 곳은 상담실 앞. 언뜻 들리는 말소리에 문에 귀를 바짝 댔다.
"..래서 요즘 ..김.."
"네."
"..물론- ..그게 너한테 여러모로, -나중에"
말소리가 자꾸 끊겼다. 더 조바심이 나서 문틈새로 귀를 바짝 대자 아까에 비해서 말소리가 꽤나 선명해졌다.
"네 성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해.
"..."
"실제로 요즘 네가 밝아보이기도 하고."
"네."
"그래도 너 원하는 대학 가려면."
"..."
"여주랑 헤어지는게 맞지 싶다."
쿵-. 그 불안했던 감정이 정리가 됐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어. 나랑 만나면 한솔이의 성적에 문제가 생길거라는 걸. 언제부터 알았을까, 아마 선생님이 한솔이를 처음 부른날부터? 사실은 사귀기 시작한 첫날부터? 언제부터였는지, 때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내 머릿속을 계속 차지하고 있는 건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한솔이, 그리고 이번 모의고사 등수. 한솔이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냥 돌아서려고 했던 내 발걸음이 멈췄다.
"선생님."
"응. 말해."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
"죄송합니다."
너는 나를 놓을 생각이 없다. 그렇게 너의 전부인양 굴었던 공부였는데.
"..한솔아!"
선생님의 다급한 부름이었다. 나도 모르게 벽뒤로 몸을 숨겼다. 별거아닌일인데 그냥 이겨내면 될 일인데 나는 못참겠다. 뜨거운 게 울컥울컥 자꾸만 솟구친다. 점차 작아지는 한솔이의 발소리를 듣다가 벽에서 떨어졌다.
"..선생님."
"여주야."
"..."
.
.
.
"어디 갔다왔어?"
붉어진 눈을 가라앉히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조금 생각을 정리했다.
"그냥. 배아파서 보건실."
책상에 엎드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한솔이는 젖어 내 볼에 늘어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많이 아파? 물었다. 무뚝뚝하던 한솔이가 내가 아프다니까 걱정되는 얼굴로 바라보는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안아파. 눈을 꾸욱 감으며 말했다. 한솔이는 몇번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손을 뗐다.
"좀 더 자."
"응."
"이따 선생님오시면 너 아프다고 말씀 드릴게."
"..."
나는 엎드린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 어쩌다보니 밀당의 고수
"한솔아."
저번처럼 한솔이를 학교뒤뜰로 불러냈다. 한솔이는 불려나오면서도 씨익 웃더라.
"왜 또."
"..."
"뭐 또 서운한 거 있어?"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저절로 숙여지는 고개.
"나 요즘은 그래도 꽤 열심히 했는,"
한솔이가 요즘은 꽤 열심해 했다더라. 말이 긴 한솔이가 아닌데 어쩐지 내게 말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 같다. 맞아, 요즘 너 많이 노력했어. 나 아니면 누가알아. 요즘 네가 나한테 표현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는 거. 나도 잘 알아. 근데 이대로 두면 안되잖아.
한솔이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우리 그만하자."
계속 말하려던 한솔이의 입이 어색하게 멈췄다. 빳빳하게 굳은 한솔이의 얼굴. 잠깐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가 이내 고개를 금방 숙여버렸다.
"왜."
"..."
가만히 고개만 저었다.
"왜 그러는데."
한솔이가 내게 물었다. 왜그러느냐고. 나는 입을 앙다물고 고개만 저을뿐이었다.
"말해봐. 여주야, 응?"
애타는 듯 입술을 혀로 축이고 계속해서 물어오는 통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성적, 어떡해."
"..뭐?"
격양된 톤으로 덜덜 떨며 말을 건냈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게 아니었다. 좀더 단호하고 강하게 말하고 싶었다. 손등으로 벅벅 눈가를 닦았다.
"나때문이잖아, 그거."
"대체 누가 그래."
"내가 바보야? 나도 그런 것쯤은 알아."
"..그런거 아냐."
한솔이는 조용히 내 손목을 잡아끌어 내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마에 닿는 한솔이의 가슴에선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솔이를 밀어냈다.
"그만하자."
"싫어."
한솔이가 싫다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어이없는 소리좀 하지마, 김여주. 아랫입술을 한번 앙 물면서 마음을 다시 추스렸다.
"너 앞길 내가 막는 것 같은 느낌 별로야."
계속 내손목을 잡고 있던 한솔이의 손을 한번 꼭 쥐었다가 그 손을 스르륵 떨궈냈다.
"공부 열심히 해."
한솔이가 고개를 푹숙였다. 열심히하라는 내말에 반응도 하지 않았다. 반응을 바라고 한말은 아니었지만. 그길로 매몰차게 한솔이에게 등을 보였다. 잘한거겠지. 제발, 잘한 거면 좋겠다.
"선생님, 자리 좀 바꿔주세요."
"어? 으응.. 그래."
"..."
"어디 가고 싶은 자리 있어? 선생님이 특별히 여주가 앉고 싶은 자리 앉혀줄게."
"..그냥,"
"..."
"한솔이랑 제일 떨어진 자리로요."
"..여주야. 너 우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급식실도 공사가 끝나고 다시 문을 열었다. 한솔이는 저번처럼 혼자 밥을 먹거나하지는 않았다. 저번에 수련회이후로 친구들이 조금 생겼으니. 다행이다.
한솔이는 내게 아는척을 하지 않았다. 한솔이가 날 아직도 좋아하는지 아닌지, 날 미워하는지도 알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건 한솔이가 그렇게 나빠보이지 않다는 것.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없어도 잘 이겨낼 수 있을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몸 군데군데가 스펀지처럼 뻥- 뚫려있어서 그사이로 바람이 슝슝 들어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예전부터 난 이기적이다. 네가 잘지냈으면, 나같은거에 신경쓰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너와 떨어진건데 가슴한켠으로는,
"..너도 허전했으면 좋겠다."
"뭐라구?"
"미쳤나봐. 김여주 밥먹으면서 혼잣말도 하네."
"그러게."
오늘 내꺼 소세지 강슬기가 세개나 먹었어. 그정도면 날강도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잔반을 버리기 위해 급식실 출입구 근처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손으로 식판을 들고 다른 한손은 추욱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그 손으로 살짝살짝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따뜻하면서도 또 부드러운.
옆을 돌아봤을땐 한솔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한쪽손으로만 식판을 들어올린 한솔이가. 그렇게 자꾸자꾸 우연인 척 맞닿는 두 손등. 나도 모르게 손을 내어 한솔이의 새끼손가락을 조금 잡았다가 떼어냈다. 살짝 움찔거렸던 한솔이의 손가락. 다시 양손으로 식판을 고쳐잡았다. 어느새 버릴차례가 다가와서 잔반을 버리고 성큼성큼 급식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혼자 교정을 얼마나 걸었을까 숨이 차는지 슬기가 헉헉거리며 다가왔다.
"김여주."
"..."
"이렇게 힘들거면 헤어지지 말지 그랬어."
- 어쩌다보니 밀당의 고수
"11월 모의고사 성적표 나왔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진짜 시간 빠르다. 혼자 그렇게 생각할때 선생님은 종이를 꺼내들었다.
"우리반 1등은."
"..."
"한솔이."
불보듯 뻔한 결과였다. 잘했어. 한솔아. 잠깐 한솔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바로 마주쳐버린 두눈에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한솔이가 이번에 열심히 했나보구나."
"..."
"다들 박수."
그렇게 짝짝- 교실안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전교 1등도 한솔이야."
"..와, 역시."
친구들의 감탄사에 한솔이는 그저 묵묵히 앞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번에 모의고사 점수 떨어진거 만회했네."
"..."
"수고했다."
짝짝, 계속해서 우리는 박수소리에 나도 덩달아서 박수를 짝짝 쳤다. 축하해, 진짜 축하해.
.
.
.
오늘은 도저히 야자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쌤, 저 오늘은 야자안하고 집 갈게요.'
'응? 그래. 어디 아프니?'
'네, 조금요.'
'그래. 선생님이 감독선생님께 말씀 드려놓을게.'
'감사합니다.'
'아, 여주도 모의고사 성적 많이 올랐더라.'
'네.'
'여주도 고생했어.'
한솔이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았다. 만나고 싶어. 예전처럼 손도 잡고 도시락도 같이 먹고 그러고 싶어. 매일매일 교실에서, 학교에서 보는데도 자꾸 보고 싶어. 찔끔찔끔 나오는 눈물을 그냥 내버려두고 학교 뒤뜰을 찾았다.
그리고 거기엔.
"..한솔아"
"너무 늦어."
한솔이의 코끝이 빨개져있었다.
"왜 여기있는 거야."
우리가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무색하게 우리는 단둘이 있을때 아무렇지도 않았다. 빨갛고 하얀 한솔이의 손등을 보았다. 아주 꽁꽁 얼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솔이의 손을 감싸쥐었다.
"진짜 앞으로는 그러지마."
한솔이는 고개를 푹숙이고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솔이의 뒤통수를 쓸었다.
"내가 너없을때 느낀건,"
"..."
"공부에 더 전념해야겠다. 이런게 아니었어. 그냥.."
"..."
"네가 없다. 이거밖에 못느꼈어."
그렇게 내 어깨에 기대있는 한솔이를 고스란히 받아냈다.
"나 다시 1등했으니까,"
"..응."
"다시 만나줘. 여주야."
"..."
"둘다 확실히 할게. 너도 공부도."
내가 어떻게 싫다고 해.
응. 작게 대답해도 한솔이는 미동도 없었다.
그에 한솔이의 어깨를 잡고 살짝 들어올려 얼굴을 확인했다.
"뭐야, 최한솔 너 자?"
연애고자 최한솔 epilogue : 어쩌다보니 밀당의 고수
"..으으."
한솔이가 작은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깼어?"
"여기가 어디야."
"어디긴, 우리집."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채로 잠이 든 한솔이를 낑낑 집으로 옮겼다. 물론 내가 한건 아니고.
'..저기 좀 도와주시겠어요?'
한번도 말을 나눠본 적 없는 민규선배한테 도움을 청해서. 뭔가 곤란한 상황임을 눈치챈 민규선배는 당황했을 법도 한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같은 동아리여서 어느정도 안면이 있는 게 다행이었다.
"야. 어제가 금요일이었기에 망정이지 이 대책없는.."
"..."
한솔이는 말없이 실실 웃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내 팔뚝을 끌어당겼다. 그에 엉거주춤 한솔이의 품에 안긴 상태가 되어버렸다. 화들짝 놀라 그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자 한솔이는 팔에 더 힘을 꽉 주더라. 그리고는 내 양볼을 잡고 여기에 쪽, 저기에 쪽. 사정없이 뽀뽀를 퍼붓더라.
"미쳤어? 노망났어?"
겨우 틈새를 노려 조금 떨어져 내뱉은 내말에도 한솔이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너 한번만 더 그런식으로 나 골탕먹이기만 해봐."
"..."
"그땐 진짜 가만 안놔둬."
"..응."
"내가 당기기만 할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
"응."
그렇게 짧게 입맞췄다가 다시 입술을 맞물리는 너. 좋아해, 한솔아.
..근데 여기 우리 오빠도 있는데.
"뭐야! 너네 고등학생밖에 안된게. 미쳤어?"
그렇게 이불속으로 날 감추고는 꼭 끌어안는 한솔이. 오빠가 이불밖에서 팡팡 등짝을 내려치는게 느껴지긴 하지만,
"좋아해."
"나도."
"내가 더."
이렇게 품안에서 더 꼭 안아버리는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연애고자 둘, 뜻하지 않게 밀당하다가 오늘부터 '다시' 연애시작합니다.
-연애고자 최한솔 epilogue
어쩌다보니 밀당의 고수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