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봐. 세훈아. 여기서 이렇게 지수를 t로 치환하면 이렇게.
모르겠어여.
한 번 더 보여줄게.
뽀뽀 한 번 하게 해 주면 들을게여.
준면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세훈을 처다봤다. 너 나랑 지금 장난하니? 두 시간 째 같은 페이지를 넘어가질 못한 모의고사 문제지를 한번, 준면을 한번 처다보던 세훈이 눈을 끔뻑거렸다. 그럼,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지 어떻게 해요? 학생이 모르는 걸 가르치는 게 선생님이 할 일이잖아요.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콩! 하고 이마에 꿀밤을 먹인 준면이 세훈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거야."
"뽀뽀 한번만 해 주면 열심히 들을게요."
"또 헛소리 한다. 좀. 공부 할 때는 좀 제대로 보라니까?"
"선생님은 문과면서 왜 수학도 잘 해요? 우와, 선생님은 못 하는게 없네여?"
급하게 말꼬리를 돌린 세훈이 저자세로 준면을 처다봤다. 괜시리 올라가는 어깨를 으스대면서 준면이 웃었다. 그야, 나는 엘리트니까! 험험. 너 내가 과외 해주는거 고맙게 생각해. 이런 고급인력이 널 도와준다는 걸 감사하라구. 물론 니가 세훈이라서 도와주는거야. 한껏 스스로 만족한 표정인 준면을 턱을 괴고 처다보던 세훈이 웃었다. 칭찬해주니까 좋-단다. 어이구, 우리 준면이. 둥기둥기. 우쭈쭈쭈. 속으로만 꾹 눌러담은 세훈이 문제로 관심을 돌리는 준면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아가야, 좀 잘 좀 보라구. 너 수능이라도 잘 쳐야 대학가지. 응? 조곤조곤한 말투에서 저놈의 '아가' 이야기는 좀 뺄 수 없나? 내가 수능만 다 치면 봐라. 시발, 어디 그때까지 날 얘 취급 할 수 있는지 보자고. 준면이 뭐라고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반 맨 앞자리에 앉은 얘가 그러는 것 처럼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 네, 하고 대답한 세훈이 머릿속으로 천천히 준면의 얼굴을 그렸다. 그리곤 천천히 그 옆에 제 얼굴을 그려넣었다. 오메, 이거 누구 얼굴이길래 이렇게 잘 생겼남? 그리고 삐뚤빼뚤한 준면의 얼굴 위로 허연 몸을 천천히 그려내려가던 그림은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손 덕분에 순식간에 흩어졌다.
세훈아,
으음?
"...그래서 이 y의 범위가 뭐라고 했어, 내가?"
"음... 11 이상 23 미만.... 정도?"
내가 언제 그렇다고 말 했어, 오세훈 학생? 책상 밑으로 무릎뼈를 걷어찬 준면에 세훈이 책상에 고개를 처박았다. 널찍한 어깨를 아양 부리듯이 뒤척거리면서 징징대는 한낱 고딩놈이 준면은 조금 불쌍해졌다. 아, 그래도 진짜. 우리 준면이 순결 걸고 모르겠는데 진-짜 어떻게 해여. 내가 원래 돌대가리라서 알고 싶어도 몰라여. 시발, 내가 뒤져야지, 내가! 준면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이런 것 도 못 알아 듣고! 급기야는 제 머리통을 주먹으로 퍽퍽 소리가 나게 두들기는 세훈의 팔뚝을 잡고 매달린 준면이 다급하게 외쳤다. 세후나....! 자학은 안 돼! 내 말좀 들어 봐!
"이씨....뭔데여?"
"왜 니가 점수를 못 올릴 거라고 생각하는데? 응?"
"누군가는 제가 지금 있는 등수에 있어야 하니까요. 다른 얘들이 이 자리에 있다면 슬플테니까 내가 대신 있어주는 거죠."
.....너 이렇게 패기 없는 얘야, 세훈아? 서늘해지는 공기에 고개를 퍼뜩 처든 세훈의 눈에 준면의 혼현이 어른거렸다. 웃을 때 그 순박하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잔뜩 화난 표정만 남아있었다. 화난 호랑이는 건드리면 안 되는 게 분명했고 건드릴 수도 없었다. 고개만 들었다가는 기백에 눌려서 옴짝달싹 못할게 분명했기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불쌍한 척 표정을 짓고 있는게 전부인 세훈은 그럴 때 마다 이빨을 빠득빠득 갈았다. 꼴에 어른에 선생님이라고 얘 취급하는 게 제일로 싫어. 정말로!
우리 세훈이, 꼭 좋을 때는 선생님 말 전부 다 들을 것 같이 해주더니 공부 이야기 나오니까 자신감을 상실하셨어요? 그러면서 개념도 같이 상실했지? 학생이 공부를 안 하면 다른 거 뭐 할건지라도 생각해 둔 거라도 있나? 응? 우리 세훈이, 고등학교도 6학년 까지 보낼 거 아니지? 내년이면 스무 살인데, 재수 학원에 처박힐래, 아니면 지금 빡세게 공부해서 어떤 대학이라도 들어가고 볼래? 세훈아, 너는 선택권이 없어요. 참고로 나는 무식한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데 세훈이니까 참고 있는거야. 알겠지? 만약 이번 중간고사에서도 이런 등급 받아오면-.
준면이 말을 멈추고 세훈의 발치에 성적표 하나를 툭 던졌다. 언어만 간신히 7등급을 받은 처참한 성적표를 급하게 내려다본 세훈이 침을 꼴깍 꼴깍 삼켰다.
sejun pistols!
세훈 x 준면
오늘 하루도 경수를 관음하면서 알찬 점심시간을 보내고 파워에이드 하나를 쪽쪽 빨면서 반에 들어서던 종인은 안타깝게도 손에 들려있던 음료수 캔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까르릉 굴러가던 캔이 꿀럭꿀럭 파란색 액체를 쏟아낼 때 까지 종인이 멍하게 눈만 끔뻑였다. 제가 잘못보고 있는게 아니라면 오세훈은 어디선가 교과서를 구해다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거였다. 평소에 볼 수 있었던 원피스 만화책도, 야한 만화책도 아니였으며 온전한 영어 교과서였던 거다. 온갖 인상을 팍팍 써가면서 꼬부랑 단어를 씨불거리는 세훈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뭐하냐?
잠시 눈만 돌려서 종인의 존재를 확인한 세훈이 다시 교과서로 이마를 박았다.
"뭐하냐고."
"시발, 종인아. 도대체 왜 메리 다음에는 전치사가 안 오지?"
결혼하다, 의 marry를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교과서 한 귀퉁이에는 merry라고 끄적거리고 있는 세훈의 모습에 종인이 고개를 갸웃, 했다.
"그거야 메리는 3형식 동사니까, 병신아."
".....메리가 너무 외로워 보이잖아. 왜때문에 굳이 전치사랑 같이 나오겠다는 얘를 말리는데?"
그렇게 물어보고도 제가 웃긴지 정색을 빨고 있다가 낄낄낄 웃다가는 또 곧내 정색을 하고 교과서를 묵묵히 내려다보는 세훈을 눈만 끔뻑거리면서 처다보고 있던 종인은 간간히 터지는 웃음의 실체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메리...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도 같이 오는데 왜 전치사만 못 오고 지랄이야. 하하하! 시발! 존나 좋아! 어깨까지 벌벌 떨어가면서 낄낄대는 세훈의 머리꼭지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종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마약에 까지 손을 댔군. 오세훈의 인생이여! 즛또 사요나라, 짜이찌엔. 영원히 널 다시 볼 일은 없을거야.
".....야. 앉아라."
종인이 엉거주춤 떼고 있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김종인."
"뭐."
"시발, 전치사가 뭔지 모르겠어...... 조또 그게 뭔지 알아야 같이 오든 말든 하지......"
내기를 했다. 내기를 빙자한 일종의 공갈 협박이었지만 세훈은 제 인생의 운명이 이 내기라는 것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되새김질 했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3등급 이내 과목 하나라도 만들어 오지 않으면-! 너랑 안 만날거야. 한껏 무서운 표정을 짓고 쿵쾅대면서 카페를 나가는 준면의 뒷모습에 세훈은 콧방귀를 헹, 꼈다. 김준면도 날 좋아하는데 안 만나긴, 무슨. 좆고딩의 개념상실의 표본을 전적으로 보여주던 세훈은 그래도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아, 내가 지금 가오를 잡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를 깨달은 세훈은 시험이 어연 2주가 남은 시점에서 공부를 하려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교과서가 없었기 때문에.
'야.'
'ㅇ, 어? 나 돈 없어.'
'내가 삥 뜯는 새끼로 보여? 돈 말고, 니 교과서나 내놔, 새끼야.'
'교과서?'
'확, 씨. 새끼가 달라면 줄 것이지 말이 많아.'
그리고 하필 그 때 경수와 복도를 지나가던 준면이 그걸 봤고, 저는 가오 털리게 복도 구석에서 주면에게 딱밤을 맞고 그 솜같은 주먹으로 배때지를 몇 대 얻어맞았던 거다. 치사한 놈아! 하고 작게 소리를 지르는 준면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사나이 오세훈, 살면서 비참하게는 살아도 찌질하게는 살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들은 '치사한 남자' 이야기는 오우, 이런. 자다가 공중에 하이킥을 두번 쯤 날리고 다시 이불을 주워와야 하는 일이었던 거다. 준면이가 날 얼마나 호구새끼로 볼까. 아, 존나 쪽팔려! 그 뒤로는 준면도 일체 저에게 아는 체를 안하는 탓에 서러움이 배가 된 세훈은 제 방 구석에서 찌질하게 눈물을 찔끔댔다. 너무해. 시발, 난 공부하려고 한 건데 준면이는 왜 나한테 차갑게 굴어. 좀 도와줄 수도 있는 거 아냐? 찡찡대던 세훈이 손에 들고 있던 샤프를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3등급, 시발, 그거 받아오면 될 거 아녜요.
숟가락으로 밥을 푸고 있던 준면이 눈을 꿈뻑이면서 고개를 들었다.
"받아오면 어쩔건데요. 못 받아오면 그만 만나는 걸로 치면 내가 너무 불리하잖아."
"어, 어? 세훈아. 아직 그 이야기 해? 여기 좀 앉ㅇ-"
"내가, 시발, 받아오면,"
준면은 이게 무슨 봉변인가 싶었다. 오늘 분명히 점심에 잡채밥이 나와서 좋아하고 있었던 게 다였는데. 좀 겁 주는 척을 했더니 제 어리고 못난 남자친구는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잔뜩 화난 얼굴로 옆구리에는 영어 교과서를 끼고 있는게 귀엽기도 했지만 그 전에 준면은 의아했다. 쓸데없이 저에게만 관대하던 어린 소년이 왜 갑자기 저렇게 승부욕에 불타는지는 알 수가 없는 거 였다. 그 와중에도 준면은 급식실에 사람이 많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교복을 입은 주제에 선생님들이 쓰는 급식실에 당당하게 들어온 것만으로도 벌점 폭탄이 날아갈 텐데, 그깟거에 세훈은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콧김을 씩씩 뿜는 작은 머리통이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라 세훈이 배로 커보이는 탓에 준면은 괜히 잔뜩 쫄았다.
"내가 받으면, 쌤이 내 소원 들어주는 걸로 해여."
어어. 잠시만. 급하게 뒤돌아서 급식실을 뛰쳐나가는 세훈에 준면이 숟가락을 내던지고 급하게 뒤따라 나갔다.
이거 무르기 없기!
어. 어어?! 세훈아! 잠시만!
나 공부 안 되니까 중간고사 전까지 보지 맙시다.
으응? 세훈아! 오세훈! 야! 야 이 새끼야!! 이리 와!
-
경수가 오늘 이상했다. 언제나 상쾌한 점심 먹은 다음의 5교시는 경수의 약간 지친듯한 표정을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는데 처음에는 자는 얘들이 수두룩해도 좁은 어깨를 달싹거리면서 열심히 수업을 하더니 점점 그렇잖아도 좁은 어깨를 움츠리면서 학생들이 있는 쪽은 처다보지도 않는 거 였다. 얘들아, 일어나자~ 하고 무기력하게 손뼉을 짝짝 치는 모습도 오늘은 보여주질 않았다. 왜 때문에? 턱을 괴고 열심히 칠판에 휘갈겨진 풀이들을 감상하던 종인이 겁먹은게 분명한 불안한 눈빛으로 이리저리 큰 눈알을 도륵도륵 굴리는 경수에 나즈막히 그를 불렀다. 선생님. 이 문제 모르겠는데요.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금새 제 쪽으로 뽀르르 달려오는 경수는 확실히 발발 떨고 있었다. 겁먹은 토끼가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걸 봐서는 상당히 겁먹은게 분명했다.
"ㄱ, 그래애. 뭐가 문제야, 종인아?"
"선생님은 뭐가 문젠데요? 왜 이렇게 떨어요. 응?"
"으응? 선생님 안 떨어."
거짓말. 경수가 나른한 눈빛에 기가 팍 죽어서 수그러들었다. 으응, 그게 사실은- 하고 말꼬리를 늘리는 탓에 종인이 손을 뻗어서 손목을 그러쥐었다. 왜 그래요. 내가 다 혼내줄게. 잠시 망설이더니 경수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을 까닥까닥 했다. 저기 맨 뒤에 앉은 친구 있잖아. 저기 저 친구. 경수의 말을 따라서 고개를 돌린 종인이 흠칫 했다. 누구요. 오세훈이요? 으응. 걔. 쟤 너무 무서워. 앞에서 수업하는데 죽일 것 같이 노려보더라고. 내가 뭐 잘못했나.... 웅얼웅얼 점점 자신감을 잃는 경수도 그럴만 했다. 눈이 벌개져서는 절대 눈을 감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부릅뜨고 있는 세훈의 그 의지는 너무나도 반가운 거 였는데, 글쎄 그게 사람 생김새에 따라서 그 버프 효과가 약간씩 달랐던게 흠이랄까. 평소에도 화났냐는 소리를 많이 듣는 삼백안은 수면 부족으로 드리워진 음영에 그 날카로움이 배가 됐고, 무슨 이유인지 벌겋게 충혈된 눈은 상당히 뻑뻑해보여서 굶주린 한 마리의 늑대 같았다. 얼핏 들리는 그르렁대는 숨소리까지 더해지자 경수는 딱 죽을 맛이었다. 마주하면 허리께부터 목덜미까지 소름이 쫙 돋는거다. 차라리 잠이라도 자란 말이야, 이놈아. 엉엉. 고개를 들 때 마다 저를 좇는 그 눈빛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오금이 저려서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째 오세훈 공부한다는 소문이 들리더니만-
"선생님. 종 2분 남았는데 저 문제나 마저 푸세여."
공부하겠다는 얘 한테 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준면과 세훈은 코코아와 커피를 하나씩 책상에 올려두고 마주앉아서 아무말도 없었다. 준면이 손을 뻗어서 하얀 봉투를 집어들었다. 길게 뻗은 하얀 손을 따라서 천천히 시선을 옮기던 세훈이 목울대를 울렁거리면서 침을 소리나게 삼켰다. 꿀꺽. 모서리를 따라서 손가락 끝으로 가만가만 쓰는 모습이 교태로워서 세훈은 침을 한번 더 삼켰다. 내용물은 보지 않아도 끔찍할게 뻔했다. 분명히 일주일 동안 열심히 공부 했는데, 정작 시험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았다. 급하게 찍어야했던 omr 카드를 떠올리던 세훈은 숨이 턱턱막혀왔다. 계란 노른자를 스무 개 정도 한꺼번에 먹은 듯 한 기분은 그리 좋은게 아니었다. 제발 하나만 있어라. 제발...! 풀로 칠해져있는 종이가 뜯기는 소리가 잔인했다. 손으로 귀를 막은 세훈이 이마를 책상에 대고 몸을 옹송그렸다.
"세훈아. 눈 떠봐. 너도 같이 봐야지."
"아 싫어여. 보나마나 내가 졌을거야."
"야. 그래도 결과는 같이 봐야 될 거 아냐."
아, 씨. 가오 죽게. 툴툴거리던 세훈이 실눈을 뜨고 준면이 꼭 붙잡고 있는 종이를 향해 시선을 줬다. 근데 진짜 3등급 없으면 우리 헤어지는 거에요? 준면이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럼, 어쩔건데? 니가 약속했잖아. 접혀있는 종이를 한번에 피려는 준면의 팔을 홱 잡은 세훈이 눈을 부릅 떴다. 아! 잠시. 잠시만요. 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훅훅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를 반복하는 세훈이 상당히 귀여웠다. 불안한 눈이 한군데로 내려앉질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근데 우리 진짜 헤어져여? 나 그렇게 쉽게 봤어여? 불쌍한 표정을 지은 세훈이 낑낑대는 우는 소리를 했다.
"두 번 물어보지 마, 이 똥강아지야."
"악! 잠시만여! 나 마음의 준비!!"
눈 앞에 순식간에 들이밀어진 성적표에 세훈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빠르게 숫자 3을 찾아서 헤메는 눈은 사팔뜨기가 되어있었다. 성적표 오른쪽 구석에서 저 대각선 방향으로 반대 쪽까지 빠르게 훑은 세훈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허억.
"어때. 있어?"
".......없으면 우리 헤어져여?"
"세훈아."
"씨발, 쌤. 진짜 헤어지는 거는 안 돼요. 내가 존나 무식하고 할 줄 아는 거 없어도 쌤 그렇게 나랑 헤어지는 건 존나 안 되는 거에요. 네? 나 일주일인가 두 시간만 자고 버텼거든요. 근데 머리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해여. 진짜. 나 쌤 없이는 못 살아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다음 기말고사까지만 우리 기한 좀 늘립시다. 쌤은 이런 거 가지고 헤어질만큼 나 쉽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진짜 아니거든요. 진짜로. 그니까 이번 한번만 따악 봐줍십시다. 으응?"
어어, 이게 아닌데. 준면은 8등급에서 간당간당한 점수를 어연 4,5 등급대 까지라도 끌어올린 세훈이가 상당히 대단하게 보였다. 그렇게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힘들었을 게 분명한데 이주 쯤 되는 시간안에 약속을 지키려고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저보다는 한뼘 하고도 반이나 더 크면서 마음 먹는 건 아직까지 고등학생 티를 못 벗은 세훈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던 준면이 웃었다. 세훈의 몫으로 뽀뽀로가 그려진 앉은뱅이 책상에 올려진 코코아가 그 귀여움을 더해줬다. 기도하는 것 처럼 두손을 꼭 모으고 고개를 팔 사이로 묻은 채로 낑낑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바들바들 떠는 어깨에 손을 올렸더니 고개를 퍼뜩 쳐든 세훈의 눈가가 촉촉했다. 진짜, 안 돼여. 진짜로. 나 헤어지면 울거야.
"우리가 왜 헤어져."
"......우리 안 헤어져여?"
"4,5 등급도 충분히 잘 한거야. 여기서 더 올라가면 되지. 대신 앞으로 이거랑 똑같이 열심히 한다고 약속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멍하게 준면의 얼굴을 처다보고 있던 세훈이 킁, 하고 콧물을 들이켰다. ...머라그여? 수고 했다고.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니까. 멀뚱멀뚱 눈만 끔뻑이던 세훈이 벌떡 일어나는 통에 쏟아질 뻔 한 코코아를 겨우 잡은 준면이 세훈이 하는 양을 처다봤다. 뽀로로 책상을 가차없이 벽으로 밀어버린 세훈이 금새 코 앞까지 다가와서 쪼그리고 앉았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성적표를 다시 한번 더 들여다 보던 세훈이 준면을 처다봤다.
"진짜요?"
"대신 열심히 하라니까."
천천히 호랑이 냄새를 음미하던 세훈이 불쑥 턱 밑으로 코를 들이밀었다. 준면이 턱을 당기는 바람에 턱이 코랑 콩, 하고 부딫혔다. 아코, 하고 멀찍이 물러나서 빤히 눈을 맞춰오는 그 설익은 분위기가 싫지 않았던 준면이 똑같이 눈을 빤히 처다봤다. 눈이랑 어깨만 빼면 세훈이는 상당히 귀엽게 생긴 상이었다. 콧망울도 동그랗고, 입술도 작은 편이여서 오밀조밀한 느낌이 나서 귀여운데 사람들은 그걸 몰랐다. 눈도 엄청 예쁜데, 왜 그걸 자세히 보지도 않고 무섭다 하는지 몰라. 그림처럼 떨어지는 코랑 어깨가 정말 봐줄만 하다고 생각했다. 성격도 그렇게 모나지 않고 순진하고 순한데. 말도 잘 듣고. 뽀뽀 할 것 같이 천천히 입술께로 다가왔던 세훈이 다시 뒤로 물러나자 이번엔 준면이 코를 찡그렸다.
"선생님 지금 나랑 장난해요?"
"장난 아닌데."
"이거 지금 밀당이에요? 와, 겁나 쫀득쫀득 하다."
밀당? 밀당이 뭔데?
아, 진짜 아날로그다, 아날로그. 늙은이랑 내가 뭘 한다고. 그럼 그렇게 정색 빨던 거랑 전부 연기였어요?
당연하지. 나 너한테 화 낼 생각 전혀 없었는데. 그리고 아날로그 아니거든.
쌤이 내 엄마하세요, 진짜. 내가 살다가 이렇게 공부하긴 또 처음이네.
왜, 공부 잘 하면 좋지. 아, 물론 세훈이는 공부 못 하고 무식해도 좋을 거 같아. 실망은 하겠지만.
나도 쌤이 아날로그라서 좋아여. 물론 카카오톡도 할 줄 모르겠지만.
아니거든. 나 할 수 있거든.
콧등을 마주대고 부비적거리던 세훈이 천천히 입술로 내려앉았다.
달달한 세준을 쓰자! 해서 썼는데 이건 뭐... 기승전결따위 ㅇ벗다...
글 쓴 것도 뒤죽박죽이고 내용도 들쭉날쭉이고
뒤엎기는 투자한 시간이 아깝고... 흑흑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해요. 하기는 한다구여... ㄸㄹㄹ..
짧게 쓰는 글을 여러개 붙이는 건 쉽지만 하나를 잡고 길게 쓴다는 건 정말정말 힘든 일이네요. 그래도 열심히! 낄낄낄.
짠~ 암호닉! 이제 정리해쪄여~
사나
비비빅
세모네모
자몽
바닷물
감성
중세시대
사슴
판다
전기장판
오레오
극성팬
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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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망해쪙
미역
나무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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