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텅 빈 도시에서 홀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늠름하게 빛을 발하는 그 풍정에서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휩쓸리고 패거리를 만들고, 친해졌다 배신하며 서로 속고 속이며 넘어가는 우리는 그 고독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끌려드는 거라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아버리는 우리가 그것을 동경하는 것이라고.
-도쿄타워 (릴리 프링키 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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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예,예 죄송합니다아. 술에 취해 눈에 뵈는게 없는지 머리에 차오르는 말들을 필터링도 안하고 내뱉었다.
어휴 요즘 젊은 것들이란, 회사원들의 퇴근시간 다들 술 한잔하고 집에 들어가면서 술에 쩔어 휘청거리는 나를 보고서는
들릴듯 말듯 입으로 삿대질을 하며 지나갔다. 다행히 알코올의 힘인지 아님 머리에서 도와주는건지 그 말들은 한 귀로 흘러 나갔다.
이제 적응할때도 됬는데 빌어먹을 점장님은 내가 어디가 그렇게 맘에 안드는지 알바로 채용된 뒤로 한달 내내 딱따구리 마냥 내 옆구리를 쪼아댔다.
그러나 나에겐 언제나 그랬듯이 쥐어진 선택권이란 없었다. 주인이 키우는 강아지가 한 번 짓기 시작하면 제 시간에 사료를 내어주지 않는게 방책이듯이
내가 한번 짓기 시작하면 그 쪽에선 버리면 그만이었다.
철이 들지도 않았을때부터 알바를 해왔다. 어릴때 나를 낳은 두 부모는 싸우다 지쳐 엄마가 도망가고, 술과 담배에 찌든 아빠는 나를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것처럼 밤에 고아원에 버리고 갔다. 나를 돌봐줄 여유가 없었던 거겠지 하면서 나이를 먹은 뒤부터는 원망하지도 않고 그냥 그러려니 했다.
세상에는 나보다 못 먹고 못살고 못 입는 사람이 많으리라.
적어도 나는 아빠란 사람에게 고아원에 두고 간게 어디야, 라며 애써 고마워했다. 고아원에서 나오면서 원장님은 나에게 방 하나와 통장 한 개를 주면서 잘 살아서 멋진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며 눈 웃음을 끝으로 사라졌다. 원장님은 아이들에게 잘해주었고, 그 보답으로 천사라는 별명을 달게 되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서 알게되었다.
나에게 잘 해주는 이유는 그냥 불쌍해서였다.
저번 알바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른 알바를 구한게 시급이 높아서 였는데 어쩐지 쉽게 구해진다 싶었다.
고등학교를 안다녀 친구도 없는 나는 혼자 화를 삼켜가며 술을 마시다가 취해 소리를 지르며 꼬장을 부렸는지 주인이 시끄럽다고 술 값도 안받고 쫓아냈다.
그게 뭐가 좋다고 내심 속으로 오늘 땡 잡았다고 속삭이면서 이런 내가 또 한심하고 스스로 어이가 없는지 웃다가도 한숨이 나왔다.
"아이고"
일명 달동네. 높은 언덕에 옹기종이 작게 모여든 집들이 아래에서 보면 꼭 달로가는 길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이 달동네 달동네 하면서 이쁘다 하고 달을 구경할때는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여기서 살면 그 말이 목구멍으로 들어갈꺼라고. 높은 비탈길을 올라가기전 항상 언제 올라가냐 하면서 다리를 짚으며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나 오늘 술에 약한 내가 얼마나 마셨다고 휘청거리며 시작부터 삐끗거리기 시작했다.
"발 아파"
아무도 없는데 뭐 어때, 깜빡거리는 전봇대를 잡으며 새끼 발가락을 짓누르는 검은 구두를 벗기 시작했다.
양쪽손에 구두를 들고는 쪼그려 앉아 발의 상태를 보려고 흐릿해지는 안구를 최대한 집중해서 초점을 맞추었다.
내 눈에 보이는건 피로 물들고 있는 발이었다. 순간 너무 놀라 구두를 던지며 일어났다.
어디서 이렇게 피가 많이 나는 거지, 그 출처를 알기 위해 고개를 들어 앞을 내다 봤다.
전봇대보다 좀 위에서 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앉아있는 사람과 그 앞에서 무언가를 들고 서있는 사람.
칼, 칼이였다.
피를 본 탓에 심장이 뛰어 머리가 빠르게 일을 하기 시작했고, 이 상황을 본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려 들고 있었다. 칼에 찔려 주저앉은 사람은 배에서 부터 많은 양의 피를 뱉어내기 시작해서 물이 흐르는 순리와 같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 발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칼의 주인은 나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며 눈을 마주치려 하고 있었다.
"그 발"
"잘 씻어야 될꺼 같은데"
동경 : [憧憬]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 생각함
*반응보고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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