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텅 빈 도시에서 홀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늠름하게 빛을 발하는 그 풍정에서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휩쓸리고 패거리를 만들고, 친해졌다 배신하며 서로 속고 속이며 넘어가는 우리는 그 고독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끌려드는 거라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아버리는 우리가 그것을 동경하는 것이라고.
-도쿄타워 (릴리 프링키 저) 中-
*
"미쳤냐 너?"
"아니 그럼 기절했는데 그냥 두고 오라고? 내 얼굴도 봤단 말이야. 저 여자가 신고할지 뭔 지랄을 할지 어떻게 알아"
아 정말, 남자는 뒷머리를 신경질 적으로 뒷머리를 털어냈고, 탁자 위에 있던 담배를 들고는 사라져버렸다.
남은 또 다른 남자. 새로운 얼굴이였다. 검은 옷에 검은 바지를 입었는데, 피부가 하얀 탓인지 전혀 어두워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있다가 물 수건과 슬리퍼를 가지고 왔다. 내가 신기에는 좀 커보이는 슬리퍼를 옆에 내려두고,
무릎을 꿇고 앉더니 내 발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사람 죽이는거 처음 봤어요?"
"피 보자마자 기절했다 그래서 혁이가 당신 들쳐매고 왔더라고"
도데체 무슨 영문인지 죽이려면 죽이든가, 아니 죽기는 싫었다.
아무리 쓰레기같은 삶을 산다고 해도, 살면서 자살을 생각했다고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은 없었다.
항상 죽음이라는 심판 앞에 나는 뒤돌아 도망쳤다.
칙칙한 방 한구석 쇼파에 앉아 살인자와 대화를 나누던 남자가 내 발을 닦는다.
이 사람도 살인자일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내 눈은 앞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점점 떨림이 심해지자 남자도 알아챘는지 잡고있던 내 발목을 내려놓고 피로 물든 물수건을 들고 일어났다.
나는 그 동작이 끝나 다음엔 죽는거 아닐까 피는 증거를 없에려 닦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고여있던 눈물이 내 바지에 떨어져 얼룩지기 시작했다.
"왜 울어요"
"사, 살려주세요. 죽인거 아무한테도 말 안할께요.."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고 말했다.
사람이 아무리 자존심이 높아 도움을 청한 적 없었다그래도, 경험치 못한 어둠 앞에서는 뒷걸음치는 것은 잘못 된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어떤 악마가 실험을 하려고 엄마와 그녀의 아기를 긴 통에 넣었다. 통의 뚜껑을 닫고 물을 틀어 통 안에 물이 점점 차오르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소중한 아기를 물에 잠기게 하지 않으려고 허리까지 차오르면 가슴에, 가슴까지 차오르면 머리 위에 아기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물이 엄마의 코 까지 차오르면서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이 오자
엄마는 아기를 발판 삼아 밟고 일어서 목숨을 더 연장했다고 한다.
두려움 앞에 사람은 눈에 뵈는것이 없다고 악마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여자를 보고 악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지금 이 남자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울지마"
"안죽여요 그러니까 울지마요"
남자는 피로 물든 수건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
"이름이 뭐야"
"..김별빛"
"이름 이쁘네"
남자는 내가 진정될때까지 옆에 앉아있는듯 했다. 따뜻한 커피를 타와 마시라고 하면서 이름을 물어봤다.
이래도 되는건가 싶지만 나도 왠지 점점 긴장이 가라앉고 있는걸 느꼈다.
그래도 커피는 입에 대지도 못했다.
"나는 정택운이라고 해요"
"아까 걔는 한상혁"
커피 마시고 있어요, 혁이 데려올께, 남자는 태연하게 일어나 방을 나가고, 이 집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나는 커피를 한 입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는 옆을 돌아 파악할 수 있는 자그마한 여유가 쥐어졌다.
탁자 위에는 내 가방과 나 마시라고 둔건지 물이 놓여져 있었다. 가방은 그 사람들의 손이 닿았는지 열려져 있었다. 열어봐도 아무 획득이 없었는지 뒤지다가 던져 놓은듯 했다. 그 이외에 이 방에 있는 거라곤 벽에 걸린 시계, 책꽂이에 책 몇권 그리고 내가 앉은 쇼파가 전부였다.
여기서 사는건가 싶었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턱 없이 뭔가가 많이 부족했다.
시계는 오래전부터 멈춰있는듯 했고,
책은 오랫동안 읽지 않았는지 전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거실에는 나가보지 않았지만 어떨지 추측하는건 이걸로 충분했다.
많은 책 중에 한 권, 한 권이 가로로 놓여져 있었다.
나는 정택운이 가져다준 슬리퍼를 신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 책을 집어들었다.
빨간 책. '살인자의 기억법'
그 책 사이에 책갈피 같은 나뭇잎이 끼워져 있었다.
거의 맨 마지막 즈음 끼워 놓은 책갈피를 빼어서 그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찾아와 만났다. 기자라고 했다. 그는 악을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 진부함이 나를 웃겼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악을 왜 이해하려 하시오?"
"알아야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말했다.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방금 읽은 부분이 지금 상황과 너무 비슷해서 마치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철저하게 꾸며놓은 듯 했다.
신의 장난인지 책을 덮는 동시에 누군가가 말을 걸어 왔다.
"내가 무서워?"
*
안녕하세요 장미빛 고래입니다.
저번 편에 달린 댓글 전부 읽었습니다.
정말 생각치도 못했는데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싸 초록글 훠오)
그래서 그 보답으로 연재를 해보려고 합니다.
많이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이쁘게 봐주세요.
*중간에 쓰인 구절은 작가 김영하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책의 일부분 입니다. 지어낸 것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