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건 내망상 ㅋ
- 망상 쩐다 우워우어우 막상망상망상망상 -
창 밖에는 굵은 장댓비가 내린다. 그 와중에도 남자의 직업정신은 매우 투철해보였다. 3일이나 낮밤 없이 식사마저 거르며 나와 함께한다. 남자는 시멘트의 퀘퀘한 냄새가 나는 취조실에서도 입을 가만두지않았다. 한편으로는 피곤에 쩔어 퀭한 눈을 하고는 거칠게 추궁했다. 이것은 매우 지독하고 끈질겨 날 지치게 했다. 그저 무엇이든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다. 그들이 내게 바라는건 형식상의 말 한두마디었지만, 이는 분명 어렵지않지만. 다만 나는 애초에 그 형식에 틀어맞춰야할 사람이 아닌데. 나는 아닌데. 나는 안죽였는데.
“제가 죽인거 아니에요.”
하지만 나는 제법 담담했다. 이는 내 한계를 벗어난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탓이었다. 심지어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분탕질을 쳐놓건 저인데, 날 짐승으로 만들어버린, 그래놓고도 안색이 한참은 좋은, 그 개같은 면상을 보니 확 돌아버려 찔렀다고.
그런데 그 새끼는 결코 순순히 내 손에 죽어줄 놈이 아니었다.
“목격자가 있어.”
“저는 안죽였어요.”
“살인동기는 충분하잖아.”
“그렇게따지면……재범률이 50%를 넘지는 않겠죠. 형사님 말씀대로라면 강간당한 모든 여자가 강간범을 죽였을테니 다시 좆질은 못할거아닙니까.”
“……장난은 그만해. 난 너와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 없어. 그냥 사실만을 말해.”
“이게 사실입니다. 나는 안죽였어요. 목격자? 그 망상증 걸린 새끼는 또 누굽니까.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어떤 미친놈인지, 어떤 새끼가 나 엿먹으라고 그러는지. 내가 그새끼를 알아야 형사님한테 뭘 알려주든 말든 할거아닙니까.”
“그럼 니 지문이 찍힌 칼자루는?”
다만 내가 순순히 죽어갈 뿐이었다. 나의 죽음에는 모든게 완벽했다. 목격자라는 증인. 지문이라는 증거. 날 매장하기 위한 모든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티끝없이 완벽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순순히 죽어갈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온 몸을 잠식할것만같은 거대한 무능력함이 가장 익숙했다. 이게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한다. 차라리 그때 죽었을 게 좋았다고 생각할만큼. 수치심이든, 뭐든. 이미 정신이 죽어버렸을 때 이 더러운 몸뚱이도 같이 죽여버릴껄. 모든 현실은 제 멋대로 흘러가라 나뒀다. 그리고는 그저 후회했다.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제서야 형사의 목소리가 들리지않는다. 덕분에 조금 편안해졌다.
“그 독종은?”
“묻지마라.”
“이야. 강력계 주름지기 홍명보도 포기한 놈이 있다니. 것 참 대단하구만.”
“……그 새끼. 사람 죽인거 확실해?”
“뭐?”
“사람 죽인거 확실하냐고.”
물증의 근본은 심증이다. 그리고, 형사는 감이다. 십여년 넘게 있었던 강력계에서도 난 단 한번도 내 감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내 심증은 빨랐고, 완벽했으며 백전백승이었다. 이 모든 것에는 내 태생의 영향이 컸다. 내가 태어날때부터 내 곁에는 쓰레기가 있았다. 그건 내 아버지였다. 내 아버지는 강간범이였으며 내 어머니는 그의 희생자였고, 내 아버지는 살인자였으며 내 어머니는 그의 희생자였다. 그렇기에 내 감은 유난히 남달랐다. 쓰레기는 쓰레기가 알아본다고 쓰레기의 씨를 받고 태어난 나는 쓰레기였으며, 나와 같은 쓰레기를 보았다. 그래서 나는 형사를 천직으로 알았다. 숱한 쓰레기들을 보며 내 어미에게 사죄하듯, 힘없던 유년시절에 방관할 수 밖에 없던 내 자신을 합리화시키듯, 그렇게 이 사회에 암적인 존재들을 가려냈다.
여태껏 그랬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온 몸의 모세혈관이 니코틴을 넣어달라 아우성쳤다. 3일 동안이나 한모금 대지도 못했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나는 필터 하나를 꺼내 물지를 못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진범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살인자가 아니었다. 살인자에게 당한 피해자에 불과했다.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허.. 이 친구,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목격자는 구자철이랑 무슨 관계지?”
“……넌 그냥 취조만 좀 도와줘. 내 사건이잖아. 너까지 신경 안써도……”
“말해. 목격자는 누구지?”
“……”
“대답해.”
“……구, 구자철의 여동생.”
“여동생……?”
“그리고…… 기성용의 여자친구… 구희정…….”
“……뭐?”
손 안에 잡힌 담뱃재가 떨어져나갔다.
“나도 의심되는게 한 둘이 아냐. 하지만 어쩌겠어? 위에서 시키는걸. 분위기라는게 또 있잖아. 에이, 니미. 말이 철밥그릇이지. 공무원 뭐 그거 별거있나? 그냥 시키는대로 하는거지. 내가, 응? 우리 홍형사 잔머리없고 사람 참 좋은거 알아서 애초에 말 안한건데. 암튼 너무 깊게 알려고 하지마. 홍형사 마누라랑 애들들도 생각해야지.”
“구희정은 지금 어디있어?”
“……내 말은 무슨 허투로 듣더라……한국에는 없어.”
비록 나는 쓰레기였지만. 혹은 여전히 쓰레기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바꿀 수 없는, 내 태생의 문제지만. 단 한번도 사람을 쓰레기라 매도한 적은 없었다. 내 죄의식으로 시작된 이 일이 타인의 원망까지 떠안고 갈만큼 험난하길 바라지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이는 순전한 내 이기심이었다.
“내 말 들어. 기성용이 누구 아들이야. 응? 그. 거기, 그 어디냐. 거 있잖아. 거기 회장 첩 아들이라며. 건들면 아주 그냥! 근데 죽었잖아. 솔직히, 좀 복잡하긴 하드라. 좀……크흠흠, 게, 게이라고 하나? 그. 기성용이 그거라매. 그래서 구자철을……크흠. 암튼, 그랬대잖어. 그니까 너무 깊게 파지마. 이거 분명 온통 칼밭이다.”
“……파일 다 넘겨.”
“뭐?”
“차형사가 못하겠다면 내가 재조사 할께.”
“미, 미쳤어? 진짜 밥통 깨지고 싶어서 그래?”
“집에 넘쳐나는건 돈이다. 밥통 없어도 돼. 어차피 이혼했어. 애들도 내 얼굴 몰라.”
“이, 이사람이 큰일날 소리를……!”
“애초에 돈벌려고 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괜찮아. 됬으니까, 일단 파일부터 넘겨. 2008부터 지금까지, 관련 자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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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스포 지웁니다
글 못쓰는거 아는데도 이런거 한번쯤은 써보고 싶었쯤요..ㅠㅠ
화내디망..ㅠㅠ
P.S 구(희정=내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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